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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당리 함안조씨 집성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0627
한자 明堂里咸安趙氏集姓村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명당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상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장터마을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명당리 지도보기
성격 집성촌
가구수 약 40가구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명당리 장터마을에 세거하고 있는 함안조씨 집성촌.

[개설]

명당리 함안조씨 집성촌명당리 장터마을에 있는 함안조씨 세거지이다. 함안조씨는 경상남도 함안군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 시조 조정(趙鼎)은 당나라 절강 사람이다. 조정은 신라 말기에 동생들과 함께 귀화한 뒤 고려가 통일을 이루는 데 공을 세웠으며, 후손들 또한 고려왕조에서 대대로 현달(顯達)하였다. 내헌공파(耐軒公派)는 덕성리 입향조 내헌(耐軒) 조연(趙淵)을 파조(派祖)로 한다.

[명칭 유래]

장터마을은 마을에 장터가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명당리 장터마을은 생육신 어계(漁溪) 조려(趙旅)의 증손 덕은(德隱) 조정백(趙庭栢)이 임진왜란 때 개척하였다. 그 후, 생육신인 조려의 현손이자 내헌 조연의 손자인 망운(望雲) 조지(趙址)가 마을에 정착하였다. 조지는 조부의 명으로 안덕에 이주한 이후 정자를 짓고 고향을 그리워하였는데, 이를 기려 객지에서 고향의 어버이를 그리워한다는 뜻의 ‘망운’으로 편액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조병국(趙柄國)조현욱(趙炫郁), 신태휴(申泰休) 등과 함께 화목장터에서 3.1독립만세운동을 이끌었다. 명당리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75가구의 함안조씨가 세거하였으며, 1992년에는 55가구로 그 수가 점차 감소하였다.

[자연환경]

명당리의 동쪽으로는 보현천을 경계로 장전리, 서북쪽으로는 구실재를 사이로 하여 감은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남쪽은 복리와 경계를 마주하고 있으며, 남서쪽에는 저수지인 오리골못이 있다. 보현천은 마을 동쪽 경계를 따라 남에서 북으로 흐른다.

[현황]

2017년 현재 장터마을에는 약 100가구가 거주 중이며, 그중 함안조씨는 약 40가구이다. 현재도 마을의 함안조씨들은 봄마다 화수회 모임을 가진다. 망운 조지가 안덕면으로 이거하며 건립한 정자인 망운정(望雲亭)은 1976년에 중건되고, 1999년에 중수되었다. 남포(南浦) 조순도(趙純道)가 세운 남포정(南浦亭)은 1950년경 6.25전쟁으로 소실되었으나 1965년에 중수한 것이다.

[참고문헌]
  • 『朝鮮の姓』(朝鮮總督府, 1934)
  • 경북향토사연구협의회 편, 『경북마을지』-하권(경상북도, 1992)
  • 『문화유적분포지도』-청송군(청송군·안동대학교박물관, 2006)
  • 인터뷰(명당리 주민 김종삼, 남, 2017. 7. 28.)
  • 인터뷰(명당리 주민 조영구, 남, 2017. 7. 28.)
  • 인터뷰(명당리 주민 송영래, 여, 42세, 2017.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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