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토리분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0610
한자 福里平山申氏集姓村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복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상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소대마을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복1리 지도보기
성격 집성촌
가구수 6가구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복리에 세거하고 있는 평산신씨 판사공파 집성촌.

[개설]

복리 평산신씨 집성촌안덕면 복리 소대마을에 있는 평산신씨 세거지이다. 평산신씨는 평산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 시조는 고려의 개국공신인 신숭겸(申崇謙)이다. 평산신씨 영해파(寧海派)는 장절공(壯節公) 신숭겸의 13세손 신현(申賢)이 영해군(寧海君)으로 봉해짐에 따라 ‘영해신씨’로 분관(分貫)하였다. 1960년 영해신씨에서 평산신씨로 본관을 변경하고, 평산신씨 대동보규에 의거하여 15세손 신득청(申得淸)을 분파조(分派祖)로 하는 판사공파(判事公派)로 분파하였다.

1464년에는 신숭겸의 18세손인 판사공파 풍호(風乎) 신지(申祉)진보면 합강리에 입향하였다. 신지의 9세손 신한태(申漢泰)는 진보면 합강리에서 파천면 중평리로 이거하여 마을을 개척하였다. 신한태의 자손이 판사공파 진보종파(眞寶宗派)이다. 진보면 합강리 일대에 잔류한 평산신씨는 진보파라고 불린다. 신지의 5세손 우헌(寓軒) 신연(申演)은 안덕에 이거하여 청송파(靑松派)의 파조(派祖)가 되었으며, 후손들은 안덕면 복리지소리 등에 세거하고 있다. 신지의 7세손 성천(聲川) 신전(申𥴈)은 합강 서편으로 분가하여 서파(西派)의 파조가 되었으며, 그 후손들은 신촌리부곡리 등에 산거(散居)하고 있다. 이 외에도 청송 지역에는 평산신씨 25세손 신종위(申從渭)를 파조로 하는 어천파(魚川派)가 있다.

[명칭 유래]

복리는 산세가 수려하여, 조선 중종 때 만강공(滿江公) 이씨가 ‘자손에게 복이 이어질 고을’이라 하여 복동(福洞)이라 명명했다고 한다. 소대마을은 본래 노송이 우거져 송대(松臺)라 불렸다. 이후 소엽(蘇葉)[차조기]이 자생하여 소대(蘇臺)라 하였던 것을 현재는 ‘소대(蘇垈)’ 또는 ‘소대(蘇坮)’로 표기하고 있다.

[형성 및 변천]

복1리의 자연촌락인 소대마을은 한성부우윤(漢城府右尹)을 지낸 평산신씨 판사공파 신연의 증손자인 신광계(申光繼)가 1654년에 개척하였다. 6.25전쟁 때 폭격으로 마을의 여러 건물이 파괴되었으며 마을의 당목 또한 파괴되어 마을 제사도 중단되었다.

[자연환경]

면소재지 남쪽 1㎞가 채 못 되는 곳의 골짜기에 위치한 복리는 지역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보현천을 기준으로 서쪽은 복1리, 동쪽는 복2리로 나뉜다. 복1리는 소대, 웃뭇골의 자연촌락으로 이루어졌으며, 과거에는 고추와 벼를 주로 재배했으나 현재는 사과 재배가 주를 이루고 있다.

[현황]

2017년 현재 소대마을 24가구 중 6가구가 평산신씨이다. 조선 영조 때의 선비 송오(松塢) 신해관(申海觀)이 강학하던 장소에 지은 송오정(松塢亭)이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마을로 들어오는 길목에는 1988년에 세운 ‘송대소대지명유래비(松臺蘇垈地名由來碑)’가 세워져 있다. 후면의 비문에는 입향조 신광계의 입향 과정과 소대마을 지명 유래에 대한 내용이 새겨져 있다.

[참고문헌]
  • 『평산신씨영해파세보』갑편
  • 『평산신씨영해파세보』을편
  • 경북향토사연구협의회 편, 『경북마을지』-하권(경상북도, 1992)
  • 『문화유적분포지도』-청송군(청송군·안동대학교박물관, 2006)
  • 평산신씨대종회(www.pyeongsan.com)
  • 인터뷰(복1리 주민 김성봉, 남, 2017, 7, 26.)
  • 인터뷰(복1리 주민 김정수, 남, 2017, 7, 26.)
  • 인터뷰(복1리 주민 남영식, 남, 2017, 7, 26.)
  • 인터뷰(복1리 주민 신농희, 남, 2017, 7, 26.)
  • 인터뷰(복1리 주민 정봉수, 남, 2017, 7, 26.)
  • 인터뷰(복1리 주민 정천수, 남, 2017, 7, 26.)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