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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0601
한자 道里義城金氏集姓村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도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상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재동마을 -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도리 지도보기
성격 집성촌
가구수 20여 가구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도리 재동마을에 세거하고 있는 의성김씨 도곡공파 집성촌.

[개설]

도리 의성김씨 집성촌은 도리 재동마을에 있는 의성김씨 세거지이다. 의성김씨는 경상북도 의성군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 시조 김석(金錫)은 신라 경순왕과 후비 낙랑공주 왕씨 소생의 차남으로, 의성군(義城君)에 봉해졌으며 후손들이 의성을 본관으로 삼아 이어오고 있다. 청송의 의성김씨 입향조는 도곡(道谷) 김한경(金漢卿)으로, 김한경은 1456년(세조 2) 개성 풍덕에서 태어나 1506년(중종 원년)에 공신에 임명되었다. 중종반정 후 중앙정치에 염증을 느낀 김한경현서면 도동으로 거처를 옮겨 후학을 양성하였다. 그의 후손들은 현서면 모계리, 월정리, 도리 등에 세거지를 이루고 있다.

[명칭 유래]

의성김씨 도곡공파 입향조 도곡 김한경의 호를 따 도곡이라 하였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의 행정구역 폐합으로 재궁골[재동]과 하리, 문천의 일부를 병합하며 도곡에서 이름을 따 도리(道里)라 하였다. 재동마을은 의성김씨 재실인 추원당(追遠堂)이 있다고 하여 재궁(齋宮)골 또는 재동이라 불렀다. 문천 또는 문내라는 지명은 마을 주변 계곡의 모양이 ‘문(文)’ 자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경상북도 청송군 의성김씨 입향조 김한경은 연산군을 폐위시키고 진성대군이었던 중종을 옹립한 중종반정의 공신으로, 정국원종공신(靖國原從功臣)에 훈록되었으나, 반정공신들이 분열하여 대립하는 것을 보고 중앙정치에 염증을 느껴 현서면 도곡으로 낙향하였다. 김한경의 후손들은 이웃마을인 모계리월정리에도 세거지를 이루고 있다.

도리의성김씨 가구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42가구로 조사되었으며 1992년에는 45가구로 나타난다. 현재는 그 수가 감소하여 20여 가구가 남아 있다.

[자연환경]

도리문봉산모계리 사이에 위치한 산촌으로, 전답을 사이에 두고 원도동, 문천, 큰마, 재동의 네 개 마을이 있다. 서쪽에는 크고 작은 두 개의 저수지가 있다. 재동마을은 서쪽과 동쪽이 산으로 둘러싸인 산촌으로 길안천을 따라 뻗어 있는 청송로에서 서쪽으로 향하는 도리길 안쪽에 위치하고 있다. 입구에는 수구막이 나무가 있다.

[현황]

2017년 현재 도리의 가구 수는 52가구이며, 주민의 반 정도가 의성김씨이다. 마을이 가장 융성했던 시기에는 70여 가구가 살았으며, 그중 60가구 이상이 의성김씨였다.

도리, 모계리, 월정리 등에 있는 도곡공의 후손들은 음력 10월 15일에 도리 재궁골에 있는 도리 추원당에서 제를 올린다. 추원당은 청송 입향조인 도곡 김한경의 뜻을 받들고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것으로, 그 인근에는 과거에 재실로 사용하던 도동사(道洞社)의 유허비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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