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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노동공제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0353
한자 靑松勞動共濟會
영어공식명칭 Chosun Labor Credit Union, Cheongsong Branch
이칭/별칭 조선노동공제회 청송지회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시대 근대/일제강점기
집필자 허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0년대 초반 - 청송노동공제회 설립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25년 2월 8일 - 청송노동공제회 정기총회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25년 11월 19일 - 청송노동공제회 임원회의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26년 10월 15일 - 청송노동공제회 정기총회, 회칙 개정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26년 11월 29일 - 청송노동공제회 ‘가나다야학회’ 시작
성격 노동운동단체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청송 지역에서 설립된 노동운동 단체.

[개설]

청송노동공제회는 1920년대에 청송 지역에서 노동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을 주도했던 단체로, 민족 현실과 노동 현실에 관심을 가진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지역민의 사회의식과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활동을 펼쳤다.

[설립 목적]

청송 지역 노동자의 권익 옹호와 교육 활동 등을 통해 지역민의 사회의식과 민족의식을 고취시킬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변천]

1920년 4월 서울에서 조선노동공제회가 설립된 후 전국에서 조선노동공제회 지회의 성격을 띤 단체가 결성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볼 때, 청송노동공제회의 창립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920년대 초반에 설립된 것으로 보인다. 1925년 2월 8일 청송노동공제회는 정기총회를 가지고 회장 윤상진(尹相鎭), 부회장 김창호(金昌鎬), 총무 권위병(權位炳), 지덕부(智德部)를 비롯한 각 부서의 부장과 평의원 8명을 선출하였다. 같은 해 11월 19일에는 임원회의를 개최하여 노동야학 실시를 포함한 사업 전반을 논의하였다.

1926년 10월 15일에는 정기총회를 개최하여 회칙을 개정하고 임원들을 재선출하였다. 그 결과 임원으로 윤우영(尹宇榮)을 비롯한 4인과 신양선(申養善)을 비롯한 4인이 평의원으로 선출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청송 지역은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90% 이상인 전형적인 농촌 사회였고, 양조장·유기 제조 등 영세 사업장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일부 존재했을 뿐 공장 노동자가 없어 노동운동이 전개될 수 있는 기반이 취약하였다.

청송노동공제회는 정기총회와 임시총회 등을 개최하여 사업 내용을 논의했다. 주요 사업은 교육 활동으로 설립 초기부터 경제적 어려움으로 진학하지 못한 아동과 지역민을 대상으로 야학 운영을 추진하였다. 그 결과 1926년 11월 29일 청송청년회 회관 내에서 아동 52명을 대상으로 ‘가나다야학회’를 시작하였다. 가나다야학회 회장은 윤우영, 강사는 윤학수(尹學秀), 조갑득(曹甲得), 윤주학(尹周鶴)이었다.

또한 지역민에게 청송노동공제회를 선전하고 사회의식을 높이기 위하여 소인극[연극]을 연습하여 마을을 순회하며 연극을 공연하였다. 특히 전국에서 지탄받고 있던 보천교(普天敎)[증산교의 교조 강일순의 제자인 차경석이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정읍에서 창건한 증산교 계열의 종교]가 1925년 4월 1일에 정교부(正敎部)[[보천교의 지방 조직]]를 설립하고 지역민에게 보천교를 선전하는 강연회를 열자, 청송청년회와 연합해 회장 윤상진이 강연 내용을 논박하고 간판의 철거를 요구하였다. 그 결과 강연회 연사가 잘못을 시인하고 간판을 철거했으며, 참석했던 교인들도 해산하여 청송 지역에서는 더 이상 보천교가 활동하지 못하였다.

[의의와 평가]

청송노동공제회는 노동자의 권익을 옹호하는 등의 활동을 펼쳐 사회의식을 고취시켰다. 또한 야학 운영을 통해 노동자를 비롯한 지역민에게 민족의식과 사회의식을 고양시켰다. 그러나 청송 지역은 노동자 수가 극히 적어 노동운동을 전개할 수 있는 기반이 매우 취약했으므로 활동이 활발하지 못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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