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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의진 흥해출진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0326
한자 靑松義陣興海出陣所
이칭/별칭 흥해출진소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권대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896년 5월 9일연표보기 - 흥해출진소 설치
종결 시기/일시 1896년 7월 20일연표보기 - 흥해출진소 화전등전투 이후 해산
발생|시작 장소 흥해출진소 -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
종결 장소 화전등전투 - 경상북도 청송군 부동면 상평리 지도보기
성격 의병 부대
관련 인물/단체 남승철|홍병태|윤정우

[정의]

1896년 청송의진(靑松義陣)이 흥해(興海)[지금의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에 파견한 의병 부대.

[개설]

청송의진은 창의(倡義) 이후 흥해, 영덕 지역과 척후(斥候)를 파견하거나 사통(私通)을 주고받으며 협조 체제를 구축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흥해로 군사를 파견하여 출진소(出陣所)를 설치하고 후원하였다.

[역사적 배경]

청송의진은 흥해의진(興海義陣), 영덕의진(盈德義陣)과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일이 있으면 서로 돕는다.’는 약속을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청송의진은 경주 지역으로 참모(參謀) 홍병태(洪秉泰)를 소모장(召募將)으로 파견하여 활동하고 있었으며, 김하락(金河洛)의 이천의진(利川義陣)이 흥해로 진출하자 함께 흥해로 나아갔다.

[경과]

1896년 5월 9일 청송의진은 군사를 소모(召募)하기 위해 도총(都摠) 남승철(南昇喆), 선봉(先奉) 홍병태, 우방장(右防將) 윤정우(尹楨禹)로 하여금 포정(砲丁) 4초(梢) 약 70명을 흥해로 파견하였다. 이른바 흥해출진소(興海出陣所)이다. 흥해출진소는 흥해 지역에서 소모 활동을 벌이는 한편, 관군에 대응하여 본부로 첩보를 보내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결과]

청송의진은 흥해와 영덕에 출진소를 설치하고 활동하던 중, 1896년 5월 25일 본진을 해산하고 군내 8면(面)으로 분진(分陣)하여 면군체제(面軍體制)를 갖추었다. 청송의진 흥해출진소영덕출진소와 함께 6월 28일 영덕으로 진출한 김하락의 이천의진과 합세하였다. 흥해의진, 영덕의진, 영해의진(寧海義陣), 안동의진(安東義陣)과 연합하여 7월 14일 영덕전투(盈德戰鬪)에 참여하였다. 이 전투에서 흥해출진소의 소모장 홍병태가 전사하였다. 이와 같이 청송의진은 흥해와 영덕의 출진소를 바탕으로 경주, 흥해, 영덕 등지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하였다.

[의의와 평가]

청송의진 흥해출진소는 경상북도 동해안 일원의 흥해, 영덕, 영해 지역에서 각처 의병진과 연합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한 파견부대였다. 전기 의병에서 각처 의병진이 의병부대의 연합을 모색하였던 구체적 사례로 매우 주목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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