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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0317
한자 三豆等院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지도보기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박재관

[정의]

조선시대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에 있었던 국영 숙식 시설.

[개설]

삼두등원(三豆等院)은 경상북도 청송 지역에 설치된 진보현(眞寶縣) 관할하에 있던 국영(國營) 숙식 시설의 하나이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원(院)은 출장하는 관원(官員)을 위해 각 요로(要路)와 인가(人家)가 드문 곳에 둔 국영 숙식 시설로 설립되었다. 이곳을 통해서 지방의 민심이나 지방관과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기도 하였다. 삼두등원의 설립 시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늦어도 조선 전기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일대에서 운영된 것으로 보인다.

[관련 기록]

삼두등원에 관해서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진보현 역원조(驛院條)에 기록되어 있으며, 명칭과 치소(治所)에서의 이격거리[현의 동쪽 15리] 정도만 언급되어 있다.

[내용]

삼두등원은 조선시대 진보현 관할에 있었던 원의 하나로,『신증동국여지승람』의 진보현 역원조에 현의 동쪽 15리[약 6㎞]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이후 발간된 『읍지(邑誌)』류에서는 찾을 수 없다. 따라서 원으로 설립된 것은 오래되었을 것으로 보이나, 이른 시기에 그 기능을 잃고 사라진 것으로 추정되며, 그 위치도 알 수 없다.

[변천]

조선시대에는 공무 여행자의 숙식을 위해서 객사(客舍)와 원이 준비되어 있었다. 객사는 빈객(賓客)을 접대하는 각 고을의 관(館)이었고, 원은 객사 이외에 각 요로에 설치한 여관(旅館)으로서 삼두등원도 그러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일반적으로 원은 조선 전기까지는 많이 활용되었으나, 역과 마찬가지로 임진왜란 이후 점차 본래의 기능을 잃고 대부분 폐지되었으며, 주막이나 주점 등으로 전락하거나 사라지게 된다. 삼두등원도 그러한 운명을 피하지 못하고 그 기능을 상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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