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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0304
한자 松生縣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시대 고려/고려
집필자 박재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정 시기/일시 1143년 - 송생현에 감무를 파견하고 예주에서 분리
개정 시기/일시 1423년 - 송생현과 청보군을 통합하여 청송군 설치
관할 지역 송생현 -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지도보기|주왕산면지도보기

[정의]

삼국시대부터 1423년까지 경상북도 청송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개설]

송생현(松生縣)은 고대 삼국시대부터 1423년(세종 5) 청보군과 통합되어 청송군으로 개편될 때까지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주왕산면 일대에 있던 지명이다.

[제정 경위 및 목적]

고대 송생현의 연혁은 확인되지 않으며, 1018년(고려 현종 9) 처음 존재가 확인된다. 고대 삼국시대부터 남북국시대까지 지방통치를 위한 행정구역 개편 과정에서 설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관련 기록]

송생현의 존재에 대해서는 『고려사(高麗史)』를 비롯해 조선 전기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의 『지리지(地理志)』류, 그리고 조선 후기 청송도호부(靑松都護府)를 다룬 각종 『읍지(邑誌)』류에 그 연혁이 간략히 소개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세종실록지리지』의 경상도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 청송군(靑松郡)에는 송생현의 연혁을 “예전 청부(靑鳧)는 본디 고구려의 청기현(靑己縣)인데, 신라에서 적선(積善)으로 이름을 고쳐서 야성군(野城郡)의 영현(領縣)을 삼았고, 고려 초에 부이현(鳧伊縣), 다시 운봉현(雲鳳縣)으로 삼았다가, 성종 5년 병술(丙戌)[986년]에 또 청부현(靑鳧縣)으로 고쳐서 예주(禮州)[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의 임내(任內)에 붙였다. 본조 태조 3년 갑술(甲戌)[1394년]에 진보(眞寶)와 합하였는데, 무술년(戊戌年)[1418년]에 금상(今上)이 즉위하자, 공비(恭妃)의 내향(內鄕)인 까닭으로 청보군(靑寶郡)으로 승격시켰다. 송생현은 신라 때의 명칭은 자세히 알 수 없고, 고려 현종 무오년(戊午年)[1018년]에 예주 임내에 붙였다가, 인종(仁宗) 21년 계해(癸亥)[1143년]에 비로소 감무(監務)를 두었는데, 금상 5년 계묘(癸卯)[1423년]에 청부에 합하여 이름을 청송(靑松)으로 고치고, 진보(眞寶)를 쪼개어 다시 현감(縣監)을 두었다. 속현(屬縣)이 한곳이니, 안덕현(安德縣)이다. 본래 고구려의 이화혜현(伊火兮縣)인데, 신라에서 연무(緣武)로 고쳐서 곡성군(曲城郡)의 영현으로 삼았고, 고려에서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 현종 무오년에 안동 임내에 붙였다가, 공양왕 2년 경오(庚午)[1390년]에 비로소 감무를 두었다. 본조 태조 3년 갑술(甲戌)에 송생현에 합하였다가, 금상 계묘년에 내속(來屬)시켰다.”라고 소개해 놓았다.

또한 『대동지지(大東地志)』에 따르면 송생현은 757년 소량현(召良縣)을 고친 것이라고 한다

[변천]

고대 송생현의 존재는 알려진 바가 없고, 1018년(고려 현종 9) 예주의 속현으로 두어졌다는 기록이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연혁이다. 1143년(고려 인종 21) 지방관으로 감무가 파견되면서 예주로부터 독립하였고, 조선왕조 개창 직후인 1394년(태조 3) 안덕현을 속현으로 삼았다. 이어 1423년(세종 5) 청보군과 통합되어 청송군이 되었다.

[의의와 평가]

송생현은 조선 전기 안덕현을 영현으로 삼은 후 청보군과 통합되었던 고을로, 조선 전기 지방 행정구역 재편 실태를 살펴볼 수 있는 사례가 된다. 한편, 현재 사용하고 있는 ‘청송’이라는 지명은 청보군의 ‘청’과 송생현의 ‘송’을 따서 붙인 것이다.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9.04.08 행정지명 현행화 부동면 -> 주왕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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