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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0291
한자 禮州
이칭/별칭 예주목,덕원소도호부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김호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 시기/일시 940년연표보기 - 예주 설치
개정 시기/일시 1018년 - 예주 영현으로 보성부와 청부현을 둠.
개정 시기/일시 1259년 - 예주에서 덕원소도호부로 승격
개정 시기/일시 1259년 - 덕원소도호부에서 예주목으로 승격
개정 시기/일시 1310년 - 예주목에서 영해부로 강등
관할 지역 예주 - 경상북도 영덕군| 영양군|청송군|울진군

[정의]

고려 전기 경상북도 영덕군 일대에 설치된 행정구역.

[개설]

예주(禮州)는 1259년 덕원소도호부(德原小都護府)로 승격되기 전까지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일대에 있던 행정구역이다. 여러 고을을 영현(領縣)으로 거느렸는데, 영현 가운데 보성부(甫城府)청부현(靑鳧縣)은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을 이루고 있던 지역이다.

[제정 경위 및 목적]

940년(태조 23) 효율적인 지방통치를 위해 지방 행정구역을 개편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유린군(有隣郡)에 예주를 설치하였다.

[관련 기록]

『고려사(高麗史)』,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단편적인 기록이 확인된다.

[내용]

『고려사』 권57, 지(志) 제11, 지리(地理) 2, 경상도(慶尙道) 예주조(禮州條)에 “예주는 원래 고구려의 우시군(于尸郡)인데 신라 경덕왕이 유린군으로 고쳤다. 고려 초 지금 명칭으로 고쳤고, 현종 9년에 방어사(防禦使)를 두었으며, 고종 46년에 위사공신(衛社功臣) 박송비(朴松庇)의 내향(內鄕)이라는 이유로 덕원소도호부로 승격시켰다가 다음에 다시 예주목(禮州牧)으로 승격시켰으며, 충선왕 2년 전국의 목(牧)이 없어짐에 따라 영해부(寧海府)로 고쳤는데, 단양(丹陽)[성종이 정한 명칭이다]이라고도 부른다. 관어대(觀魚臺)가 있으며 본 주에 소속된 부(府)가 1개, 군이 3개, 현이 2개 있다.”라고 되어 있으며, 이어 영현(領縣)으로 보성부, 영양군(英陽郡), 평해군(平海郡), 영덕군(盈德郡), 청부현을 차례대로 소개해 놓았다.

『세종실록지리지』 권150, 경상도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에는 “본디 고구려의 우시군인데, 신라에서 유린군으로 고쳤고, 고려에서 예주로 고쳐, 현종 무오년(戊午年)에 방어사를 두었는데, 고종 46년 기미(己未)에 위사공신 박송비의 내향이라 하여 덕원도호부로 승격하였다가, 뒤에 예주목으로 올렸고, 충선왕 2년 경술(庚戌)에 여러 목을 없앰에 따라 영해부로 고쳤다.”라고 언급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4, 경상도 영해도호부, 건치연혁조(建置年革條)에는 “본래 고구려의 우시군이다. 신라 경덕왕이 유린(有隣)으로 고쳤다. 고려 초에 예주로 고쳤으며, 현종은 방어사를 두었다. 고종이 위사공신 박송비의 고향이라고 하여 승격시켜 덕원소도호부로 하고, 뒤에 승격시켜 예주목으로 하였다. 충선왕 2년에 목을 없애면서 고쳐 지금 이름을 사용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변천]

예주는 1018년(현종 9)에 단행된 전국적인 행정구역 개편 때 방어사가 두어졌다. 이때 관할구역을 크게 넓히며, 보성부·영양군·평해군·영덕군·청부현을 영현으로 두게 되었다. 1259년(고종 46) 덕원소도호부로 승격되었고, 이후 예주목으로 승격되었지만, 1310년(충선왕 2) 전국의 여러 목을 없애면서 영해부로 강등(降等)되었다.

[의의와 평가]

예주의 설치와 읍격(邑格)의 승강(陞降)은 고려시대 지방통치의 일면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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