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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있는 마을. 상당산성 안에는 창말과 아랫말이 있다. 아랫말은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동문안이라고도 한다. 아랫말은 성안의 아래쪽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동문안은 상당산성의 동쪽 문 안에 있는 마을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상당산(上黨山)[419m]의 정상은 492m이며, 상당산성의 주위는 대체로 400여 m의 높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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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산남동 아랫탑골마을에 있었던 원삼국·고려·조선시대의 무덤, 건물지, 가마터 등의 유적. 한국토지공사 충북지사에서 계획한 청주 산남3지구 일원에 대한 택지 조성 공사에 따라 지표조사(1994년) 결과 실시된 발굴조사(2004년)이다. 조사결과 원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무덤, 구덩유구, 건물터 등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절터가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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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비하동과 지동동에 걸쳐 있는 산. 전설에 의하면, 원래 이산은 아양산이라 불렀으나 몽고의 침입 때 이 지방 사람들이 이곳으로 피난을 하였던 바, 이 산은 항상 안개가 끼어 있어 산 밑에서 평지를 노략질하던 적군의 눈에 뜨이지 않아 공격을 받지 않았고 그 결과 한 사람도 다치지 않고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성안의 물이 떨어져 사람과 말이 목말라 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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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비하동과 지동동에 걸쳐 있는 산. 전설에 의하면, 원래 이산은 아양산이라 불렀으나 몽고의 침입 때 이 지방 사람들이 이곳으로 피난을 하였던 바, 이 산은 항상 안개가 끼어 있어 산 밑에서 평지를 노략질하던 적군의 눈에 뜨이지 않아 공격을 받지 않았고 그 결과 한 사람도 다치지 않고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성안의 물이 떨어져 사람과 말이 목말라 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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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에 있는 산. 『호서읍지(湖西邑誌)』에는 “청주 서쪽 5리에 수구(水口)에 사람들이 두 개의 산을 만들어 놓고 야양(爺孃)이라고 부른다”는 기록이 있다. 이로써 이 산이 오래 전부터 ‘야양산’으로 불려왔음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이름으로 불려지는 ‘아양산’은 ‘야양산’에서 변한 것이다. ‘아양’은 단독으로 쓰여 마을을 지시할 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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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인물. 청주사람으로 궁예(弓裔)가 아첨을 좋아하는 것을 보고, 같은 고을(청주) 사람인 입전(笠全)과 신방(辛方) 그리고 관서(寬舒) 등을 참소하였다. 이 참소를 해당관리가 심리하였으나, 수년 동안이나 판결이 나지 않자 고려 태조(太祖)가 그 흑백을 분간하여 판결을 내리니 여러 사람들이 그것을 유쾌하게 생각하였다. 태봉의 궁예에게 아첨을 하기 위해 같은 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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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에서 활동한 충북민족미술인협회가 기획한 작가중심의 개인 전시회. 2000년 8월 22일 제1회로 시작한 청주미술의 점검과 침체된 미술시장의 생성을 위해 충북민족미술인협회가 기획한 청주지역 최고의 미술축제이다. 청주예술의 전당을 중심으로 개인부스를 만들고 각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는 기획으로 기타 한국의 아트페어와는 성격이 다르다. 아트페어는 미술시장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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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14일에 모든 것을 아홉 번 하는 풍속. 동양에서 9라는 숫자는 양구(陽九)라고 하여 매우 귀히 여기는 수다. 그래서 유독 아홉 번을 강조라는 것으로 생각한다. 정월 14일은 우리 속담에 ‘나무 아홉 짐 하고, 밥 아홉 그릇 먹는다’ 는 말처럼 하는 날이다. 이날 남자들은 부지런히 나무도 해오고 종일 일을 하면서 자주 밥을 먹는다. 그러나 실제로 나무 아홉 짐을 하기는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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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비하동과 지동동에 걸쳐 있는 산. 전설에 의하면, 원래 이산은 아양산이라 불렀으나 몽고의 침입 때 이 지방 사람들이 이곳으로 피난을 하였던 바, 이 산은 항상 안개가 끼어 있어 산 밑에서 평지를 노략질하던 적군의 눈에 뜨이지 않아 공격을 받지 않았고 그 결과 한 사람도 다치지 않고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성안의 물이 떨어져 사람과 말이 목말라 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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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내곡동에 있는 마을. ‘소래울’은 내곡동을 가르키고 있는 말 인데 ‘안골’ 또는 ‘내곡’이라고도 한다. ‘소래울’은 ‘소래’와 ‘울’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는데, ‘소래’라는 지명은 들, 마을, 산 등의 이름으로 널리 쓰이는 지명이다. ‘소래’에 대해서는 ‘소라처럼 생겨서 붙어진 이름’, ‘소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 ‘지형이 좁아서 붙여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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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서촌동에 있는 마을. ‘안그미’는 1차적으로 ‘안’과 ‘그미’로 분석된다. ‘안’은 물론 ‘내(內)’의 뜻이다. ‘그미’는 다시 ‘그’와 ‘미’로 나뉜다. ‘그’는 ‘신(神)’의 뜻인 ‘’에서 기원한 것으로, ‘크다’나 ‘높다’를 뜻한다. 지명에서 ‘감’·‘검’·‘금’·‘가마’·‘가매’·‘고마’·‘가미’·‘가무’·‘개마’·‘개매’ 등으로 다양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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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서촌동에 있는 안동김씨 판관공파의 단소(壇所). 같은 마을에 살던 전주이씨(全州李氏) 종의군파(從義君派)와의 산송(山訟) 분쟁에서 패배하여 선조들의 묘소에 있던 석물들이 훼손됨에 따라 묘소가 실전되어 부득이 단소를 마련하게 되었다. 본래의 단소는 김정, 김보린(金寶麟), 김환, 김담수(金聃壽), 김상, 김응생(金應生) 등 여섯 분의 신위를 모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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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김씨 하당공(荷堂公) 김첨(金瞻)의 묘역에서 출토된 16~17세기의 복식(服飾)유물. 1985년 경기도 광주군 초월면 지경리 경수부락에 위치한 안동김씨 묘역이 중부고속도로 호법인터체인지부지로 편입됨에 따라 이 묘역을 옮기던 중 3기의 묘에서 복식이 출토되었다. 묘 이장시 미이라화된 시신과 함께 나온 복식들은 묘 이장 후 주변에 방치되어 있던 것을 충북대학교 박물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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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순흥(順興)이고, 자는 덕수(德叟)이며, 호는 취성자(醉醒子)이다. 청주가 거주지로 아버지는 안종우(安宗遇)이고, 할아버지는 충현공(忠顯公) 안홍국(安弘國)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안언필(安彦弼), 처부는 강윤겸(姜允謙)이다. 1650년(효종 1)에 증광문과(增廣文科)의 갑과(甲科) 2위로 급제하였고, 이듬해 승정원(承政院)의 가주서(假注書)가 되었다.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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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순흥(順興)이고, 자는 덕수(德叟)이며, 호는 취성자(醉醒子)이다. 청주가 거주지로 아버지는 안종우(安宗遇)이고, 할아버지는 충현공(忠顯公) 안홍국(安弘國)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안언필(安彦弼), 처부는 강윤겸(姜允謙)이다. 1650년(효종 1)에 증광문과(增廣文科)의 갑과(甲科) 2위로 급제하였고, 이듬해 승정원(承政院)의 가주서(假注書)가 되었다.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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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외남동에 있는 들과 흥덕구 상신동에 있는 마을. ‘안산너머’는 ‘안산’과 ‘너머’로 분석된다. ‘안산(案山)’은 ‘주산(主山)의 책상 혹은 안석(案席)과 같은 역할을 맡고 있는, 주로 마을 앞에 있는 산’을 뜻한다. 전국적으로 ‘안산’이란 지명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흔하다. 청주시에서도 ‘안산’은 무려 열아홉 번이나 발견된다. ‘너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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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오동동에 있는 마을. ‘안새비룡’은 ‘새비룡’의 안쪽에 있다하여 붙여진 마을이름으로 ‘안새부흥’이라 하기도 한다. ‘새비룡’의 ‘비룡(飛龍)’은 ‘비룡봉(飛龍峰)[76m]’ 기슭에 있는 마을에 붙여진 이름으로 파악된다. ‘새’의 의미는 분명하지 않은데, ‘새’를 사이(間)나 새로운(新)의 의미로 볼 수도 있다. 또한 ‘새’를 ‘사(沙)’의 변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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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오동동에 있는 마을. ‘안새비룡’은 ‘새비룡’의 안쪽에 있다하여 붙여진 마을이름으로 ‘안새부흥’이라 하기도 한다. ‘새비룡’의 ‘비룡(飛龍)’은 ‘비룡봉(飛龍峰)[76m]’ 기슭에 있는 마을에 붙여진 이름으로 파악된다. ‘새’의 의미는 분명하지 않은데, ‘새’를 사이(間)나 새로운(新)의 의미로 볼 수도 있다. 또한 ‘새’를 ‘사(沙)’의 변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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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정하동에 있는 마을. ‘안오곰’은 ‘안’과 ‘오곰’으로 분석된다. ‘안’은 물론 ‘내(內)’의 뜻이다. ‘오곰’은 ‘오금’의 변화형으로 추정된다. 지역에 따라서는 ‘안오금’이나 ‘안오그미’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오금’은 지명에서 흔하게 발견되는 선행 요소 중 하나로, ‘오그미’나 ‘오구미’로도 보인다. 이들은 ‘오금’에 접미사 ‘-이’가 붙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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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신(家神)을 대상으로 하는 종합적 제의. 「안택굿」 또는 안택제. 청주지역의 안택은 보통 4~5개의 작은 굿거리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큰 굿이며, 각 거리마다 일정한 역할을 지닌 신격(神格)이 등장한다. 대개 조왕(竈王), 제석(帝釋), 터주(土主), 삼신(三神), 조상(祖上) 등이다. 제일은 정월과 시월을 전후한 시기에 택일된다. 일종의 정기제(定期祭)인 셈이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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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신(家神)을 대상으로 하는 종합적 제의. 「안택굿」 또는 안택제. 청주지역의 안택은 보통 4~5개의 작은 굿거리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큰 굿이며, 각 거리마다 일정한 역할을 지닌 신격(神格)이 등장한다. 대개 조왕(竈王), 제석(帝釋), 터주(土主), 삼신(三神), 조상(祖上) 등이다. 제일은 정월과 시월을 전후한 시기에 택일된다. 일종의 정기제(定期祭)인 셈이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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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신(家神)을 대상으로 하는 종합적 제의. 「안택굿」 또는 안택제. 청주지역의 안택은 보통 4~5개의 작은 굿거리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큰 굿이며, 각 거리마다 일정한 역할을 지닌 신격(神格)이 등장한다. 대개 조왕(竈王), 제석(帝釋), 터주(土主), 삼신(三神), 조상(祖上) 등이다. 제일은 정월과 시월을 전후한 시기에 택일된다. 일종의 정기제(定期祭)인 셈이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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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택[특히 성주굿, 제석굿, 조상굿 등]에서 구송(口誦)하는 가신경(家神經)의 일종. ① 天開於子하니 天皇天尊이 나계시고 地闢於丑하니 地皇地尊이 나계시고 人生於寅하니 人皇氏가 나계시고 物生於卯하니 鬼出於辰이라 …… ② 此時에 聖賢大德이 出現하시고 諸位神靈任이 나시어 人間救濟할 때 天帝桓因任이 開天하시고 天山에서 天神祭를 주관하사 拭木視 上通下察하시고 萬百姓의 壽命을 定하사 天地造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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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오동동에 있는 마을. ‘오남(梧南)’이 정북동(井北洞) ‘머긋대’(오동나무) 마을의 남쪽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추정은 오히려 그 마을의 동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잘못된 추정이다. 아마도 새비룡 지역을 일컫는 ‘오동(梧東)’ 마을의 남쪽에 있다고 해서 ‘오남(梧南)’으로 불린 것으로 추정된다. ‘오남’을 ‘안터’라 부르기도 한다. 이곳은 낮은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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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정북동과 정하동에 있는 들. ‘앞말내’는 1차적으로 ‘앞말’와 ‘내’로 분석된다. ‘앞말’은 다시 ‘앞’과 ‘말’로 나뉘는데, ‘앞’은 ‘전(前)’의 뜻이다. ‘말’은 중세국어 ‘[리(里)]’에서 비롯된 것으로, 지명에서 ‘마을’·‘말’·‘마실’·‘물’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앞말’은 ‘앞에 있는 마을’을 뜻한다. ‘내’는 신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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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무신. 청주사람으로 태봉 때 청주에서 무신으로 활동하였다. 그런데 궁예(弓裔)는 참소하는 말을 믿고 사람을 죽이기를 좋아하여 청주의 호걸들이 사변을 일으킬까 두려워하였다. 그래서 궁예는 장차 청주사람을 모조리 없애버릴 목적으로 청주에서 군인으로 있던 애견(愛堅), 윤전(尹全) 등 80여 명의 무고한 사람들을 불러 죽이려고 포박하여 끌고 오게 하였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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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을사늑약(乙巳勒約) 이후 1905년~1910년 사이에 개화자강파(開化自强派)가 전개한 국권회복을 위한 실력양성운동. 한말의 애국계몽운동은 의병운동과 더불어 국권수호운동의 주요한 두 흐름 중 하나이다. 애국계몽운동은 갑신정변과 독립협회 운동으로 대표되는 개화자강 계열의 민족운동을 이은 것이었다. 을사늑약 체결을 계기로 개화자강 계열의 새 지식인들은 국권회복을 위한 애국계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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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를 어르면서 부르는 노래. 어른들은 어린아이의 몸을 움직여 주거나 또는 무엇을 보여 주거나 들려주어서 어린아이를 달래거나 기쁘게 하여 준다. 애기어르는 소리는 주로 어린아이의 몸을 움직여 주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애기어르는 소리에는 아이의 겨드랑이를 잡고 세워서 좌우로 흔들면서 하는 ‘「불무노래」’, 앉은 애기나 선 애기의 손을 붙잡고 앞으로 당겼다 뒤로 밀었다 하면서 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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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에 있는 바위. 애기바위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온다. 조선 중기에 청주 고을에 낙향하여 사는 최참판 내외가 있었다. 최참판은 부부가 화락하고 생활은 어려움이 없는데 슬하에 자녀가 없었다. 부인정씨는 첩이라도 들여서 자녀를 두어 보자고 했으나 최참판이 허락하지 않았다. 부인정씨는 명산대찰을 찾아가 백일기도를 하는 등 온갖 방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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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 상봉고개(상봉재) 근처의 애기바위라고 불리는 부녀상(婦女像) 바위에 얽힌 전설. 명암약수터를 우측으로 내려다보면서 방죽거리(중봉)를 지나 시유림을 따라 상봉 쪽으로 올라가면, 우측으로 용정동저수지를 바라보며 선도산의 낙엽송 계곡을 마주한 곳에 애기바위가 있다. 이 바위에 얽힌 다음과 같은 설화가 있다. 조선 광해군 때 한양에서 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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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곡동 쑥골에 위치한 조선시대 제방의 터. 이 제방은 기록으로 보아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여지도서(輿地圖書)』청주목 제언조에 ‘재주남오리주위칠백구십일척수심삼척(在州南五里周圍七百九十一尺水深三尺)’이라 하여 청주 남쪽 5리에 있으며 둘레가 7백 91척, 수심 3척으로 기록되어 있다. 택지개발과 함께 현재 청주 한솔초등학교의 운동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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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에 있는 산. 『호서읍지(湖西邑誌)』에는 “청주 서쪽 5리에 수구(水口)에 사람들이 두 개의 산을 만들어 놓고 야양(爺孃)이라고 부른다”는 기록이 있다. 이로써 이 산이 오래 전부터 ‘야양산’으로 불려왔음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이름으로 불려지는 ‘아양산’은 ‘야양산’에서 변한 것이다. ‘아양’은 단독으로 쓰여 마을을 지시할 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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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시대 유적 유형을 분류하는데 한정하여 사용하는 말로 강가나 들판에 위치한 유적. 유적(遺蹟)은 과거 인간이나 인간집단의 행동이 이루어진 흔적이 남아 있는 공간적 단위로 유구(遺構), 유물(遺物)을 포함하는 일정한 공간을 의미한다. 따라서 유적은 공간적, 지리적 위치 및 자연환경, 출토유물의 시간적 위치, 문화적 전통, 유물군(遺物群)의 내용 및 성격 등 다양한 요소가 합쳐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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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가 양약을 조제하거나 파는 곳. 의료시장의 개방과 가상약국·가상병원 등 인터넷 상거래로 인하여 의료환경이 개방화, 정보화로 변화되고 있다. 또한 재택치료와 자가치료가 발달하고 원격진료, 의료비의 상승 등으로 의료체계도 변화되고 있다. 2000년 7월 의약분업이 실시되면서 약의 주도권이 의사에게 넘어가고 약국이 구조조정됨으로써 체인약국이 진출하게 되었다. 청주시의 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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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과 산성동에 있는 고개. ‘산성재’는 ‘산성’과 ‘재’로 분석된다. ‘산성’은 ‘청주 상당산성’을 가리키고, ‘재’는 ‘고개’를 뜻한다. 따라서 ‘산성재’는 ‘상당산성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해석된다. 이 고개는 달리 ‘산성고개’로도 불리는데, 이는 ‘산성재’에서 ‘재’가 같은 뜻인 ‘고개’로 바뀐 결과이다. 이 고개는 달리 ‘약수터고개’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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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에 있는 골짜기. ‘가운데골’은 ‘가운데’와 ‘골’로 분석된다. ‘가운데’는 ‘일정한 공간이나 사물의 안쪽 부분’을 뜻한다. ‘골’은 고구려어 ‘忽’(홀·골)과 신라어 ‘’에서 기원한 것으로, ‘골짜기’나 ‘마을’을 뜻한다. 물론 본 예는 ‘골짜기’를 뜻한다. 그렇다면 ‘가운데골’은 ‘가운데에 있는 골짜기’로 해석된다. 전국적으로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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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주동의 육거리시장 안의 가구점 골목의 옛 이름. ‘약전’은 약을 파는 가게라는 뜻으로 이 골목에는 한약방이 많았고 특히 ‘청주장’이 서는 2일과 7일에는 한약재 매매가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약전’이라는 명칭은 이로써 생겨난 것이고 약전이 특별히 골목 안에 형성되자 ‘약전골목’이라고 한 것이다. 1890년 지방의 발전책으로 청주약령시로 개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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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주동의 육거리시장 안의 가구점 골목의 옛 이름. ‘약전’은 약을 파는 가게라는 뜻으로 이 골목에는 한약방이 많았고 특히 ‘청주장’이 서는 2일과 7일에는 한약재 매매가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약전’이라는 명칭은 이로써 생겨난 것이고 약전이 특별히 골목 안에 형성되자 ‘약전골목’이라고 한 것이다. 1890년 지방의 발전책으로 청주약령시로 개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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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재 또는 중매로 만난 두 남녀가 혼인을 하기로 약속하는 것. 전통 혼례에서는 약혼이란 용어는 없다. 다만 양쪽 집안에서 혼인하기로 합의하게 되는 그 자체가 약혼의 의미가 된다. 신식 혹은 현대적 결혼식에 약혼식이 있다. 약혼은 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1973년에 만들어진 가정의례준칙에 의하면 “당사자들의 호적등본과 건강진단서를 첨부한 약혼서를 교환하되 약혼식은 따로 거행하지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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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탑동에 있는 고개. ‘구름다리고개’는 ‘구름다리’와 ‘고개’로 분석된다. ‘구름다리’는 ‘길 위로 공중 높이 놓은 다리’를 뜻하는 바, 전국적으로 매우 흔한 이름이다. 대부분 다리 이름으로 쓰이나, 마을 이름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따라서 ‘구름다리고개’는 ‘구름다리가 있는 고개’로 해석된다. 구름다리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이 고개는 달리 ‘양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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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에 있는 마을. 양지쪽에 있는 마을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25번 도로인 단재로에서 명암약수터로 가는 방향의 동부우회도로가 가까이 있어 교통은 편리하다. 신촌의 양지쪽 왼쪽에 있는 농촌마을로, 동부우회도로가 있어서 몇가구의 전원주택이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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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탑동에 있었던 마을. 양지쪽에 있는 마을로 ‘볕이 잘드는 곳’을 가르킨다. ‘말’은 ‘마을’의 뜻이다. 마을이 양지바른 쪽에 자리잡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양지말’, ‘양짓말’과 같은 의미라면 ‘음달말’, ‘음지말’, ‘음짓말’은 반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상당구 탑동과 금천동 사이를 남북으로 새내길이 지나고 있다. 지금의 현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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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시대 유적 유형을 분류하는데 한정하여 사용하는 말로 강가나 들판에 위치한 유적. 유적(遺蹟)은 과거 인간이나 인간집단의 행동이 이루어진 흔적이 남아 있는 공간적 단위로 유구(遺構), 유물(遺物)을 포함하는 일정한 공간을 의미한다. 따라서 유적은 공간적, 지리적 위치 및 자연환경, 출토유물의 시간적 위치, 문화적 전통, 유물군(遺物群)의 내용 및 성격 등 다양한 요소가 합쳐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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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관. 1728년 무신란(戊申亂) 당시 청주읍성의 비장(裨將)이었는데, 3월 15일 반군이 청주성에 침입하자 문을 열어 준 인물이다. 양덕부(梁德傅)는 이보다 앞선 1720년에 상당산성 앞문 축조 책임자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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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에 있는 산. 흥덕구 운천동 연당리와 신봉동 소생이 간의 고개길을 돌고개, 석령, 석령산고개 등의 이름으로 불리어진 고개가 있다. ‘석령산’의 이름은 돌이 많은 산이라는 의미에서 붙어진 이름이며, 양병산 장기봉 흥덕산이라고도 한다. ‘양병산’은 이 산에 양병사(梁兵使)의 묘가 있어서 붙어진 이름이다. ‘장기봉’은 장기(長基) 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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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산남동에 있는 구룡산(九龍山)[163.6m]의 골짜기. ‘양석골’은 구룡산(九龍山)[163.6m]에 있는 골짜기로서 ‘양소골’이라고도 한다. ‘양석골’의 ‘양석’은 ‘羊石’(양의 모양으로 조각해서 무덤 주위에 세운 돌)으로 추정되는데, 그 이유는 이 지역에 여러 모양의 상석(床石)이 묻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양석골’은 ‘양석(羊石)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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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주중동에 있는 마을. ‘양선이’를 ‘양선리’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여기서 ‘양선’은 ‘햇빛이 빨리 비치는 곳’이라는 의미의 ‘陽先’으로 추정된다. 또한, ‘양선’을 ‘양산(陽山)’의 변형으로서 ‘양지쪽에 있는 산’으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그리고 ‘양선이’를 ‘양촌’이라고도 하는데, 이를 한자로 쓰면 양지바른 곳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陽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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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주중동에 있는 마을. ‘양선이’를 ‘양선리’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여기서 ‘양선’은 ‘햇빛이 빨리 비치는 곳’이라는 의미의 ‘陽先’으로 추정된다. 또한, ‘양선’을 ‘양산(陽山)’의 변형으로서 ‘양지쪽에 있는 산’으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그리고 ‘양선이’를 ‘양촌’이라고도 하는데, 이를 한자로 쓰면 양지바른 곳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陽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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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산남동에 있는 구룡산(九龍山)[163.6m]의 골짜기. ‘양석골’은 구룡산(九龍山)[163.6m]에 있는 골짜기로서 ‘양소골’이라고도 한다. ‘양석골’의 ‘양석’은 ‘羊石’(양의 모양으로 조각해서 무덤 주위에 세운 돌)으로 추정되는데, 그 이유는 이 지역에 여러 모양의 상석(床石)이 묻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양석골’은 ‘양석(羊石)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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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효자. 백정의 신분으로 어머니를 잘 모시어 이름난 효자였다. 양수척(楊水尺)은 조선 세조~성종 년간에 상당구 운동동 비선거리에서 두 아우들과 함께 살았는데, 주위 사람들에게 많은 무뢰와 횡포를 저질렀을 뿐만 아니라 늙은 어머니에게도 공손치 못하였다. 이에 노모는 항상 이들 형제를 걱정하다 병을 얻어 눕게 되고, 마침내는 누운 채로 배변까지 하게 되었는데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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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운동동에 있는, 효자 양수척(楊水尺)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양수척은 조선 세조~성종 년간에 두 아우와 함께 청주에 살고 있었는데, 주위 사람들에게 많은 무뢰와 횡포를 저질렀을 뿐 아니라 늙은 어머니에게도 공손치 못하였다고 한다. 이에 노모는 항상 이들 형제들을 걱정하다 병이 들어 눕게 되고, 누운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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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에서 재앙을 막거나 물리치기 위하여 행하는 주술. 개인적 주술로 음식주술과 행위주술이 있다. 음식주술은 정월 보름 아침에 귀가 밝으라고 찬술을 먹는 ‘귀밝이술[耳明酒]’, 부스럼이 나지 말라고 딱딱한 과실을 깨물어 뱉는 ‘부름[腫果]’, 동짓날에 먹는 팥죽 등이 있다. 행위주술은 설날 아침 대문에 닭과 호랑이 그림을 붙이는 ‘세화(歲畵)’, 용(龍)·호(虎)를 써 붙이는 ‘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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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정부에서 1898년 이후 전국토지의 정확한 규모와 소재를 파악하여 그에 의해 합리적인 조세 부과와 예산편성을 가능하게 하고, 이를 통해 각종의 개혁 사업을 추진하여 근대화를 이루고자 한 사업. 대한제국 정부가 가장 많은 자금과 인력을 투자하여 수행한 것으로서 대한제국의 시책 중 가장 큰 업적이다. 양전사업을 시행한 주요 목적은 전정(田政)을 개혁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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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정부에서 1898년 이후 전국토지의 정확한 규모와 소재를 파악하여 그에 의해 합리적인 조세 부과와 예산편성을 가능하게 하고, 이를 통해 각종의 개혁 사업을 추진하여 근대화를 이루고자 한 사업. 대한제국 정부가 가장 많은 자금과 인력을 투자하여 수행한 것으로서 대한제국의 시책 중 가장 큰 업적이다. 양전사업을 시행한 주요 목적은 전정(田政)을 개혁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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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평촌동에 있는 마을. 양지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이 양지바른 곳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제2순환로와 목련공원길이 만나는 지북교차로 근처이며, 월운천의 평촌교 아래 무심천(無心川)이 만나는 지점에 있다. 월운천을 건너 음달말과는 마주하고 있다. 도시화가 안 되어 있어 주민들은 농업을 하고 있는데, 약간의 공업과 농업이 함께 이루어지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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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주중동에 있는 마을. ‘양선이’를 ‘양선리’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여기서 ‘양선’은 ‘햇빛이 빨리 비치는 곳’이라는 의미의 ‘陽先’으로 추정된다. 또한, ‘양선’을 ‘양산(陽山)’의 변형으로서 ‘양지쪽에 있는 산’으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그리고 ‘양선이’를 ‘양촌’이라고도 하는데, 이를 한자로 쓰면 양지바른 곳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陽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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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열녀. 본관은 하동(河東)이며, 남편은 양탁연(楊卓然)이다. 충청북도 청원군 옥산면 일대에 거주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부인은 선비 양탁연의 아내로 임진왜란 때 딸과 함께 산속으로 피난을 가다가 왜적에게 발견되었다. 왜적이 겁탈을 하려고 하자 화를 내어 욕을 하며 저항하다가 결국 딸과 함께 왜적의 칼에 죽임을 당하였다. 정절을 지키려다 목숨을 잃었음이 조정에 알려져 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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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신전동에 있는 마을. 일명, 양택이(陽宅-)라고도 한다. 양택은 풍수지리에서 마을이나 고을이 자리를 잡은 터를 말한다. 이 마을은 해가 떠서 질 때까지 햇볕이 잘 드는 지역이어서 붙어진 이름이라고 하고 있다. ‘양택이(陽宅-)’는 ‘양택’에 접미사 ‘-이’가 결함한 어형이다 이 지역일대는 낮은 구릉지로 형성되어 있으며, 구릉지의 계곡에는 석남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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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신전동에 있는 마을. 일명, 양택이(陽宅-)라고도 한다. 양택은 풍수지리에서 마을이나 고을이 자리를 잡은 터를 말한다. 이 마을은 해가 떠서 질 때까지 햇볕이 잘 드는 지역이어서 붙어진 이름이라고 하고 있다. ‘양택이(陽宅-)’는 ‘양택’에 접미사 ‘-이’가 결함한 어형이다 이 지역일대는 낮은 구릉지로 형성되어 있으며, 구릉지의 계곡에는 석남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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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주중동에 있는 마을. ‘양선이’를 ‘양선리’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여기서 ‘양선’은 ‘햇빛이 빨리 비치는 곳’이라는 의미의 ‘陽先’으로 추정된다. 또한, ‘양선’을 ‘양산(陽山)’의 변형으로서 ‘양지쪽에 있는 산’으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그리고 ‘양선이’를 ‘양촌’이라고도 하는데, 이를 한자로 쓰면 양지바른 곳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陽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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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주중동에 있는 마을. ‘양선이’를 ‘양선리’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여기서 ‘양선’은 ‘햇빛이 빨리 비치는 곳’이라는 의미의 ‘陽先’으로 추정된다. 또한, ‘양선’을 ‘양산(陽山)’의 변형으로서 ‘양지쪽에 있는 산’으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그리고 ‘양선이’를 ‘양촌’이라고도 하는데, 이를 한자로 쓰면 양지바른 곳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陽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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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신봉동에 있는 마을. ‘어당’은 전국적으로 매우 희귀한 지명이다. 본 예에 더하여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신계리에 ‘어당이’가 있을 뿐이다. 이는 ‘어당’에 접미사 ‘-이’가 붙어 만들어진 이름이다. 본 마을이 ‘어당’으로 불리는 이유는 과거 마을에 ‘어당(魚塘)’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당’은 ‘물고기가 노는 연못’을 뜻한다. 흥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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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 전문기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충청북도 지역 본부.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이웃을 사랑하는 정신을 바탕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어린이들에게 다양하고 전문적인 보살핌을 펼치어 그들이 참되고 아름답게 자라게 하고 그들의 가정과 지역사회의 구성원이 밝고 따뜻한 삶을 이루도록 지원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66년 7월 기독교아동복리회 청주분실로 충청북도 내 사업을 시작하였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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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소식이나 정보를 수용자에게 전달하여 여론을 형성하는 활동. 사회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새 소식이나 정보를 전달하고 공유하여 사회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커뮤니케이션 행위이다. 자신의 생각을 말이나 글 또는 기타의 방법으로 표현하거나 공표하는 것을 넓은 의미의 언론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가 발전하게 되자 개인의 힘으로는 복잡한 사회생활에 대처할 수 있는 소식이나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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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의 언론인 겸 문인. 1932년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에서 태어났으며, 2001년 10월 10일 숙환으로 사망했다. 1943년 청주사범학교에 입학하였고 1955년 서울대학교 문리대 정치학과를 졸업하였다. 1958년 청주문화원장에 취임하였고 1959년에는 청주여자고등학교 교사 1960년에는 전국 문총 충북지부장, 1962년에 한국예총 충북지부 결성과 함께 초대지부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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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신촌동에 있었던 물구덩이. ‘엉망구레’라고도 하는 데 이것은 ‘냉망구레’의 변형에 불과하다. ‘냉망구레’에서 ‘냉망’의 어원은 분명하지 않으나 ‘냉’은 ‘차다’는 의미로 추정되고, 따라서 ‘찬물’이 많아서 붙어진 이름으라고 해석된다. ‘구레’는 본래 물이 늘 괴어 있는 ‘구렁’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냉망구레‘는 찬물이 많이 나는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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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수요관리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재정지원기관 한국에너지공단의 충청북도지사. 에너지의 합리적인 이용과 효율향상을 위해 설립된 한국에너지공단은 불안정한 국제원유 가격과 날로 치열해지는 자원확보 경쟁, 그리고 각종 환경협약으로 세계 에너지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으며 이러한 환경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산업과 사회구조를 에너지 저소비형으로 전환시키고 에너지 수요관리정책을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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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송정동에 있는 LG그룹의 청주 생산공장. LG그룹은 지리적 이점과 우수한 양질의 노동력 그리고 청주 출신의 전문경영인으로서 LG그룹 창업공신인 박승찬 사장과 윤욱현 사장의 영향으로 청주지역을 주력업종의 생산기지로 택하여 생산공장을 설립하게 되었다. LG그룹은 1979년부터 연차적으로 청주산업단지 내에 ㈜럭키, 금성계전㈜, 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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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외남동에 있는 골짜기. ‘여나동’은 ‘여나’와 ‘동(洞)’으로 분석된다. ‘여나’는 ‘여내’의 변화형으로 추정된다. ‘여내’라는 지명은 전국 여러 군데에서 발견되는데, 지역에 따라서는 ‘여우내’와 함께 사용된다. 그런데 ‘여우내’에는 한자 지명 ‘건천(乾川)’이 대응되는 예도 있다. 따라서 ‘여우내’는 ‘여위다[乾]’와 관련하여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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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에 크게 기여한 독립운동가. 구한말 계몽운동을 펼치던 중 1905년 을사오조약을 강제 당하자, 이에 분개하여 자결을 기도, 그 여파로 오른쪽 눈을 실명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상해로 망명, 중국의 신해혁명에 참가하여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였다. 1912년 이후 동제사, 신한혁명당 등 각종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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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성 미술가의 미술전시. 여성미술제는 '여성과 평화'의 메시지를 담아내는 미술전으로 개최한다. 충청북도에서 활동하는 30여명의 여성미술작가회 회원들이 모여 '여성과 평화'라는 주제 하에 나름의 다양한 시각들을 제시하려 한다. 2000년 시작한 여성미술제는 무심갤러리 주관으로 기획되어 오다 2003 여성미술가협회가 조직되면서 여성미술주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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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를 받지 못하는 귀신에게 지내는 제사. 일찍이 중국에서 주인이 없어 제사를 받지 못하는 외로운 영혼이 사람들을 해친다고 하여 그 영혼을 위로하는 제사를 지냈는데, 특히 청(淸)나라 세조(世祖)가 주현(州縣)마다 주인 없는 영혼을 모신 여단(厲壇)을 세우고 매년 제사케 함으로써 널리 보급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조선시대에 이르러 1404년(태종 4)에 도성에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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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열녀 김씨(金氏)는 여이현의 부인으로 열행이 있어, 조정에 알려져 정려되었다. 현재 정려는 남아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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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를 받지 못하는 귀신에게 지내는 제사. 일찍이 중국에서 주인이 없어 제사를 받지 못하는 외로운 영혼이 사람들을 해친다고 하여 그 영혼을 위로하는 제사를 지냈는데, 특히 청(淸)나라 세조(世祖)가 주현(州縣)마다 주인 없는 영혼을 모신 여단(厲壇)을 세우고 매년 제사케 함으로써 널리 보급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조선시대에 이르러 1404년(태종 4)에 도성에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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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율량동의 율량천 일부인 율봉역 앞에 있는 개울. 역내는 ‘역’과 ‘내’가 결합된 어형이다. 여기서 역은 구체적으로 ‘율봉역'을 말한다. 율량동에서 골말, 중말, 상말, 양지말, 셋집매를 포함해서 율봉이라 하였으며, 양짓말과 중리로 돌아가는 길목에 있는 마을을 역말이라 하였다. 또한, 율봉은 역말, 율봉역이라고도 하였다. 율봉역 앞을 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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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사천동에 있는 내. ‘비끼내’는 ‘비끼’와 ‘내’로 분석된다. ‘비끼-’는 동사 ‘비끼다’의 어간이다. ‘비끼다’는 ‘비스듬히 비치다’를 뜻한다. ‘내’는 신라어 ‘那’(나)·‘川理’(나리ㅎ)에서 기원한 것으로, 일찍부터 지명에 나타난다. 따라서 ‘비끼내’는 ‘비스듬히 흐르는 내’로 해석된다. ‘비끼내’는 지역에 따라서는 ‘빗내’·‘비스내’로도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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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내덕동과 율량동 사이에 있는 다리. 청주~충주간 국도상의 율량천에 놓인 ‘율량교’는 ‘역내다리’라고도 한다. ‘역내다리’의 ‘역내’에서 ‘역’은 구체적으로 율봉역을 가리키고 ‘역내’는 율봉역 앞을 흐르는 내로 해석되고 ‘역내다리’는 바로 역내에 놓인 다리를 가리킨다. 충청북도에서 발주하고 삼성토건주식회사에서 시행하여 197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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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주성동에 있는 마을. ‘역대’의 어원은 분명하지 않으나 ‘역대(驛垈)’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보는 것은 ‘역대’라는 지명과 함께 ‘역터’(驛-)라는 지명을 쓰는 지역이 존재하고, 또 이 지역의 남쪽 인접한 곳에 ‘율봉역(栗峰驛)'이라는 역(驛)이 있었기 때문이다. ‘역대’라는 지명은 전국에서 그렇게 많이 발견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역대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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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충청북도 청주시의 역사. 선사시대의 청주지역이 어떠한 문화양상을 보이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지금까지 학술조사를 거친 곳이나 지표상의 채집된 유물을 통해 알려진 선사유적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청주시의 중앙부를 관통하여 흐르는 무심천(無心川)과 금강의 지류인 미호천(美湖川) 주변은 대단히 완만한 구릉성 산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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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문서의 전달과 관리의 왕래와 숙박 및 공물진상 등의 관물 수송을 담당한 곳. 역은 참(站)과 같은 뜻으로 사용하다가 1597년(선조 30) 통신만을 위주로 하는 파발을 두어서 변서(邊書)의 급한 전달을 임무로 하였던 곳이다. 신라 487년(소지왕 9) 우역(郵驛)을 설치하였고, 그 뒤 통일신라시대 이후 9주(州) 5소경(小京)이 설치되는 등 지방제도가 확립되고 중앙의 관리의 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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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외남동에 있는 마을. ‘역전(驛前)말’은 역 앞에 조성된 마을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역 앞의 마을은 ‘역전말’ 이외에 ‘역촌마을’, ‘역촌부락’, ‘역촌동’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물론 ‘역전(驛前)’으로 불리기도 하며, 전국에 ‘역전’이라는 마을은 대단히 많다. 이곳은 충북선 오근장역 앞에 조성되어 있으며, 예전에는 술집이 많이 모여 있어서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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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외남동에 있는 마을. ‘역전(驛前)말’은 역 앞에 조성된 마을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역 앞의 마을은 ‘역전말’ 이외에 ‘역촌마을’, ‘역촌부락’, ‘역촌동’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물론 ‘역전(驛前)’으로 불리기도 하며, 전국에 ‘역전’이라는 마을은 대단히 많다. 이곳은 충북선 오근장역 앞에 조성되어 있으며, 예전에는 술집이 많이 모여 있어서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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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모충동과 개신동 사이에 있는 고개 및 옛 마을. ‘배티’의 ‘배’는 이 고갯마루에 배나무들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티’는 고개의 뜻이므로, ‘배고개’라고도 불리웠다. 이현(梨峴)은 ‘배티’를 한자화한 지명이다. 또한 ‘배티’는 배티 밑에 있는 마을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리고 모충동 쪽 배티마을에는 곡산연씨(谷山延氏)가 많이 살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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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지역의 극적(劇的) 무대예술. 우리나라의 근대극의 개념은 최남선(崔南善)[1890~1957]과 김재철(金在喆)[1907~1933, 충북 괴산 출생] 등에 의해 정리되었다. 1902년 협율사, 1906년 원각사의 설치와 동경유학생들에 의해 1910년대에 일본으로부터 국내로 들여온 신파극의 도입과 1920년의 ‘극예술협회’와 본격적인 전문 극단 활동이라 할 수 있는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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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목(淸州牧)의 속현(屬縣). 『삼국사기(三國史記)』 권 제36 잡지 제5 지리3 웅주 에 신라 웅주(熊州) 연산군(燕山郡) 영현(領縣)의 하나였다고 한다. 본래 백제 때 두잉지현(豆仍只縣)으로 신라 경덕왕(景德王)이 연기현으로 고쳐 연산군에 속하게 하였다. 1018년(현종 9) 청주목(淸州牧)의 속현(屬縣)이 되었고, 1172년(명종 2) 감무(監務)를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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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에 있는 곽예(郭預)[1232~1286]의 묘. 곽예는 고려 고종(高宗) 때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좌승지 등 여러 관직을 거쳤으며, 충렬왕(忠烈王) 때 성절사로 원나라에 가는 도중에 죽었다. 시문에 능했으며 당대의 명필로도 이름이 높았다. 본래 충청북도 청원군 북이면 대율리에 있었는데, 1975년 국토개발지구로 지정됨에 따라 지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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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에 있었던 마을. ‘연당(蓮塘)’은 연못의 한자어이며, ‘연당못’이라고도 한다. 이것을 마을이름으로 쓰이기도 하는데, ‘연당’이라는 연못이 있는 마을을 그렇게 부르기도 한다. 이곳은 현재의 운천동 청주 흥덕사지(興德寺址) 고인쇄박물관 앞에 있던 마을로서 ‘연당리(蓮塘里)’라고도 한다. 그 마을에는 ‘연당’이라는 연못이 있었다. 연당 북쪽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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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에 있었던 마을. ‘연당(蓮塘)’은 연못의 한자어이며, ‘연당못’이라고도 한다. 이것을 마을이름으로 쓰이기도 하는데, ‘연당’이라는 연못이 있는 마을을 그렇게 부르기도 한다. 이곳은 현재의 운천동 청주 흥덕사지(興德寺址) 고인쇄박물관 앞에 있던 마을로서 ‘연당리(蓮塘里)’라고도 한다. 그 마을에는 ‘연당’이라는 연못이 있었다. 연당 북쪽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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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燕山郡)은 지금의 충청북도 청원군(淸原郡) 문의면(文義面)지역으로, 고려 이후 청주목(淸州牧)의 속현(屬縣). 『삼국사기(三國史記)』 권 제36 잡지 제5 지리3 웅주에 따르면, 본래 백제 때의 일모산군(一牟山郡)으로 경덕왕(景德王)이 연산군으로 고쳐 고려에도 그대로 쓴다고 하였다. 연산군의 영현(領縣)은 연기현(燕岐縣)[지금의 충청남도 연기군]과 매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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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8년에 일어난 무신란에 청주 상당산성에서 반란군을 토벌한 의병장. 본관은 곡산(谷山)이며, 자는 문거(文擧)이다. 아버지는 1693년 인현왕후(仁顯王后) 폐위의 부당성을 상소하여, 심한 국문을 받아 옥사한 감찰 연최적(延最績)이다. 1728년(영조 4)에 영조(英祖) 무신란이 일어나자 창의(倡義)하여 조지성(趙持誠), 조완담(趙完澹)의 부자를 시켜 의병 40여 인을 모아 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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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무신. 청주사람으로 청주령군(淸州領軍)의 장군이었던 견금(堅金)의 부장(副將)으로서 활동하였다. 견금 역시 청주사람으로 청주령군의 장군으로 있었는데, 태조(太祖)가 즉위한 후 “청주사람들은 변심하는 일이 많으니 제때에 방비하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가 생길 것이다” 생각하고 드디어 그 고을 사람 능달(能達), 문식(文植), 명길(明吉) 등을 보내 엿보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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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서촌동에 있는 마을. ‘안그미’는 1차적으로 ‘안’과 ‘그미’로 분석된다. ‘안’은 물론 ‘내(內)’의 뜻이다. ‘그미’는 다시 ‘그’와 ‘미’로 나뉜다. ‘그’는 ‘신(神)’의 뜻인 ‘’에서 기원한 것으로, ‘크다’나 ‘높다’를 뜻한다. 지명에서 ‘감’·‘검’·‘금’·‘가마’·‘가매’·‘고마’·‘가미’·‘가무’·‘개마’·‘개매’ 등으로 다양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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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곡산(谷山)이며, 자는 무경(茂卿), 호는 치당(痴堂)이다. 청주 출신으로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연택로(延宅老)이다. 할아버지는 연재희(延再熙), 증조할아버지는 연응복(延應福)이며, 어머니는 유장(柳莊)의 딸 문화유씨(文化柳氏)이다. 부인은 조양(趙暘)의 딸 평양조씨이다. 1682년(숙종 8)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에 배속되었다. 사헌부 감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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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모충동에 위치한, 연최적(延最績)의 충효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정려문. 연최적은 사헌부감찰로 재직 중 사직하였다가 다시 기용되었으나,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으로 파직되었다. 1693년에 인현왕후(仁顯王后) 폐위의 부당성과 화를 당한 서인(西人)들의 용서를 구하는 여섯 가지 항목의 상소를 올렸다가 일곱 번의 심한 고문을 받아 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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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서동 부모산 정상 부근에 있는 사찰. 현재의 연화사는 1928년 금강산 유점사에 주석하던 청암스님이 창건한 사찰이다. 그러나 1950년대 대웅전 중창불사를 하는 과정에서 ‘蓮月寺 重二斤 貨主○○’이라고 적힌 공양용 불구가 발견됨에 따라 옛 절터임을 알게 됐다. 2대 주지인 보안스님이 1955년부터 보안사에 주석하며 현재의 도량을 일궈냈다.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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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죽은 후 수절하거나 순절한 여인 또는 자신의 정절(貞節)을 지키다 죽은 여성으로서 그 행실이 국가나 사회적으로 공인된 여인. 전통적으로 열녀란 개가(改嫁)할 수 있는데도 개가하지 않은 여인을 의미했으나 시대에 따라 열녀에 대한 인식이 달랐다. 『삼국사기(三國史記)』를 통해 본 고대 열녀의 행실은 남편 또는 약혼한 남성과의 약속 이행, 훼절 거부, 복수, 종사 등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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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를 근거로 활동하는 우리음악과 서양음악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크로스오버 (Crossover), 퓨전(fusion:융합) 음악단체. 국악기와 서양악기의 어울림 속에서 대중적인 음악, 생활 속의 국악을 보급하고자 설립되었다. 창립 이후 당간음악제, 전주소리축제, 오장환문학제 등에서 초청공연을 가졌다. 2001년 9월, 창단 연주회와 충청북도청 초청 연주회를 가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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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의 충청북도을 대표하는 지역당. 열린우리당 충북도당은 충청북도 도민을 대상으로 열린우리당 설립목적과 정강정책을 기본으로 실천하여 정당의 지지를 넓히고, 열린우리당 소속의 지역정치인 활동을 지원하고 당원을 비롯한 지역주민의 의견을 수렴하여 중앙당의 정강정책결정 과정에 가교적 역할을 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2003년 11월 11일 민주당 탈당파, 한나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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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에서 창단하여 전국적으로 공연활동을 하고 있는 종합 연희단체. 우리의 전통 탈춤, 마당극, 풍물과 창작춤극을 결합한 공연활동으로 일반대중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공연예술을 지향하기 위해 1984년에 설립되었다. 1986년에 「창작춤판 춤으로 본 세상」, 1987년에 창작 춤판 「이 가슴 둥둥 북이되어」, 노래시극 「새날은 오리라」, 1988년에 창작춤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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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에 있는 바위. ‘행상바위’는 ‘행상’과 ‘바위’로 분석된다. ‘행상(行喪)’은 ‘상여(喪輿)’·‘영여(靈輿)’·‘온량거’로도 불리는데, ‘주검을 산소로 나르는 기구’이다. 세는 단위는 ‘틀’이다. ‘행상바위’는 위가 펑퍼짐하여 마치 행상의 지붕 휘장처럼 보이기에 붙은 이름이다. ‘행상바위’는 지역에 따라서는 ‘행상바우’·‘행상방구’·‘행상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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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주성동에 있는 마을. '염통자리’는 ‘염통’과 ‘자리’로 분석된다. ‘염통’은 ‘심장’ 즉, ‘순환기 계통의 중추 기관’을 뜻한다. ‘자리’는 ‘사람이나 물체가 차지하거나 어떤 일을 할 만한, 일정한 넓이의 공간이나 장소’를 가리킨다. 따라서 ‘염통자리’는 ‘심장부’를 가리키는 말이니, ‘중심이 되는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해석된다. 어떤 장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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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신성동에 있는 마을. ‘엽촌’은 ‘엽’과 ‘촌’으로 분석된다. 여기서 ‘촌(村)’은 ‘마을’이지만, ‘엽’의 뜻은 분명하지 않다. 전국적으로 ‘엽’이 선행 요소로 붙은 지명이 여럿 발견된다. 지역에 따라서는 ‘엽골’·‘엽동’이역골’과, ‘엽구산’이 ‘역구산’과, ‘엽굴운’이 ‘역구룬’과 함께 사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엽’은 ‘역’의 변화형으로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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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병장.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호는 기허당(騎虛堂)이다.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월암리에서 출생하였다. 충청남도 계룡산 갑사 청련암에서 수도할 때 선장(禪杖: 승려의 지팡이)으로 무예를 익혔는데 따를 자가 없을 정도로 출중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영규대사(靈圭大師)[?~1592]는 승려들의 창의(倡義)를 독려하였지만 따르지 않았다. 영규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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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에 있는 영규대사(靈圭大師)[?~1592]의 공적을 기리는 전적비. 임진왜란 때 육상 전투에서 최초의 승리를 거둔 청주성 전투에서 승군(僧軍)을 이끌었던 영규대사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1974년에 세운 전적비(戰蹟碑)이다. 청주시 내 중앙공원(中央公園) 동쪽 출입구 오른쪽 화단에 조헌(趙憲)[1544~1592] 전장기적비(戰場紀蹟碑) 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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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중앙동에 속하는 법정동. 옛날 청주성 북문 밖에 있어 주로 서민층이 무심천(無心川) 제방 주변에 취락을 형성하여 영원한 마을을 기원한다는 뜻에서 ‘영정(榮町)'이라고 하였다는 설이 있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청주군 북주내면의 북리(北里) 및 원리(院里) 각 일부를 분할하여 ‘영정(榮町)’이라 명명하고 청주면에 편입하였다. 1947년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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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영운동에 있는 마을. ‘영오리’는 ‘영오’와 ‘리’로 분석된다. 여기서 ‘리(里)’는 ‘마을’을 뜻하나, ‘영오’의 어원은 분명하지 않다. 과거 이 마을은 달리 ‘영운(潁雲)’ 또는 ‘영우리’로도 불렸다. 그렇다면 ‘영운’에서 ‘ㄴ’이 탈락하여 ‘영우’가 되었고, ‘영우’에서 ‘영오’로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최초의 어형 ‘영운(潁雲)’에서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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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영운동에 있는 마을. ‘영오리’는 ‘영오’와 ‘리’로 분석된다. 여기서 ‘리(里)’는 ‘마을’을 뜻하나, ‘영오’의 어원은 분명하지 않다. 과거 이 마을은 달리 ‘영운(潁雲)’ 또는 ‘영우리’로도 불렸다. 그렇다면 ‘영운’에서 ‘ㄴ’이 탈락하여 ‘영우’가 되었고, ‘영우’에서 ‘영오’로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최초의 어형 ‘영운(潁雲)’에서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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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영운동에 있는 마을. ‘영오리’는 ‘영오’와 ‘리’로 분석된다. 여기서 ‘리(里)’는 ‘마을’을 뜻하나, ‘영오’의 어원은 분명하지 않다. 과거 이 마을은 달리 ‘영운(潁雲)’ 또는 ‘영우리’로도 불렸다. 그렇다면 ‘영운’에서 ‘ㄴ’이 탈락하여 ‘영우’가 되었고, ‘영우’에서 ‘영오’로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최초의 어형 ‘영운(潁雲)’에서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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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영운동과 금천동에 걸쳐 있는 근린공원. 이곳에 영우리라는 옛 지명이 변하여 된 영운동의 이름이 공원이름이 되었다. 1976년 3월 27일에 최초 결정하여 1998년 8월 3일에 계획을 수립하였으나 현재는 미개발공원으로 되어 있다. 석교육거리에서 단재로를 따라 왼편으로 신라송림아파트와 정화아파트가 가까이 있는데, 뒤편에 있는 산이 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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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영운동과 용암동을 연결하는 다리. 1987년 대전지방 국도관리청에서 개통하였다. 총연장 27m, 교폭 35m이며, RC 슬라브 방식이다. 상당구 금천동과 용정동 그리고 영운동과 용암동의 경계를 형성하면서 무심천(無心川)으로 흘러드는 영운천(潁雲川)의 청운중학교 아래 쪽에 건설되었다. 영운교를 지나는 도로는 25번 국도로, 북쪽으로는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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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영운동에 있는 행정동이자 법정동. 본래 청주군(淸州郡) 동주내면(東州內面)에 속해 있던 지역이다. 예전에는 영우리 또는 영운(潁雲)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사양리(斜陽里), 산직리(山直里), 방동리(方東里), 방서리(方西里)의 일부를 합하여 영운리(潁雲里)라 명명하고 사주면(四州面)에 편입하였다가 1935년 청주면에 편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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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영운동에 있는 천주교 청주교구청 소속의 성당. 정진석 당시 주교는 청주교구 복음화 사업의 일환으로 2000년까지 교구내에 40개 성당이 세워지기를 강력히 희망했다. 이에따라 금천, 영운, 용암, 방서동, 청원군 남일, 가덕, 문의, 남이면을 관할하는 성당으로 영운동성당 건립 필요성이 제기됐다. 1987년 부지가 확보되자 초대주임 김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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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과 용정동에서 발원하여 무심천(無心川)으로 흘러드는 하천. 상당구 명암동 상봉재의 남서사면에서 발원하여 지형의 특징에 맞추어 남서쪽으로 흐르다가 용정저수지에 저수된 뒤 이정골마을 앞을 지나 계속 남서쪽으로 흐른다. 한편, 보살사가 있는 낙가산에서 발원한 물은 남서쪽으로 흘러 낙가동 소류지에 모여 용암동쪽으로 계속 남서류한다. 원봉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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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에 위치한, 송명휘(宋明輝)의 처 영일정씨의 효행을 기리는 정려각. 여산송씨(礪山宋氏) 송명휘의 부인 영일정씨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841년(헌종 7)에 세운 정려각이다. 흥덕구 강서사거리에서 청주가로수길을 따라 경부고속도로 청주 IC 방향으로 약 3.3㎞ 가량 가면 오른쪽에 수의동 강촌마을이 있는데, 정려각은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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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우암동에 있는, 충청병영의 영장을 지낸 정종현(鄭宗鉉)의 치적을 기리는 선정비. 조선 고종대에 충청병영의 영장을 지낸 정종현의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1864년(고종 1)에 세운 비석이다. 상당구 우암동 우암산 순환도로 삼일공원에서 청주대학교 쪽으로 가는길 비선거리 7기의 비석 중 왼쪽부터 여섯 번째에 있다. 높이 97㎝, 폭 43㎝,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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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한 학습과정에 따라 예능과 미술을 가르치는 사설교습소. 학원의 설립 및 운영의 등록은 해당 지역을 관할하는 교육장에게 제출하여야 한다. 2007년 11월 30일 기준 청주시 소재의 예능미술학원 수는 총 84곳으로 교육 분야는 미술, 서예 등이다. 등록연도별로 살펴보면 1990년 이전에 등록한 학원 수는 5곳, 1990년부터 1995년까지 등록한 예능미술학원이 16곳, 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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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한 학습과정에 따라 예능과 음악을 가르치는 사설교습소. 학원의 설립 및 운영의 등록은 해당 지역을 관할하는 교육장에게 제출하여야 한다. 2007년 11월 30일 기준 청주시 소재의 예능음악학원 수는 총 288곳으로 교육 분야는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플롯, 드럼, 기타, 베이스, 성악 등이다. 등록연도별로 살펴보면 1990년 이전에 등록한 학원 수는 22곳, 1990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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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적(美的) 작품을 형성시키는 인간의 창조 활동. 청주를 상징하는 우암산(牛岩山)[338m]이나 무심천(無心川)은 청주사람들의 기상을 담고 있으니까 누구나 사랑하는 곳이지만, 겨레의 얼이 깃든 역사와 문화의 터전은 청주사람들의 올곧은 충성심의 발로라고 말할 수 있다. 청주가 역사의 현장으로 삼국시대로부터 각축을 벌였던 지역이었고 내륙에 위치한 요충이었음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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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음악, 연극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작품을 창작하거나 표현하는 사람. 청주예술인들은 전통적으로 양반의 고장이라는 충청도 기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체면을 중시하고 예의를 존중하며, 가문과 씨족의 명예를 자랑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구전하는 설화와 열녀, 효부, 효자의 미담과 명현들의 시화가 많기도 하다. 고려 때의 문장가와 조선시대에 많은 시조작가들이 있었다. 그 외에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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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모충로에서 봉명동 청주예술의 전당까지로 흥덕로와 교차하는 도로. 예체로의 주변에는 청주실내체육관, 청주시 종합운동장, 청주야구장, 국민생활관, 청주시민회관, 예술의 전당 등 예술 및 체육과 관련된 시설이 많기 때문에 이 도로의 이름이 붙여졌다. 예체로는 모충동 주공아파트 2단지와 흥덕구 개신동 삼익아파트, 사직동 주공아파트 2단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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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의 언론인 겸 문인. 1932년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에서 태어났으며, 2001년 10월 10일 숙환으로 사망했다. 1943년 청주사범학교에 입학하였고 1955년 서울대학교 문리대 정치학과를 졸업하였다. 1958년 청주문화원장에 취임하였고 1959년에는 청주여자고등학교 교사 1960년에는 전국 문총 충북지부장, 1962년에 한국예총 충북지부 결성과 함께 초대지부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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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서문동의 오거리 부근에 있었던 마을. ‘오거리’는 청주읍성의 서문터를 중심으로 청주우체국, 중앙어린이 놀이터, 남주동시장, 서문동 채소전 골목, 그리고, 옛 고속버스터미널 방향 등, 도로가 다섯 방향으로 분기되어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서문동에 위치하고 있어 ‘서문동 오거리’라고도 부른다. ‘오거리’ 근처의 골목에 조성된 마을이어서 ‘오거리 골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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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청주 출신으로 아버지가 병이 들어 꿩고기, 물고기, 노루고기 등을 먹고 싶어 하자, 이것들을 모두 잡아다가 봉양하기를 극진하게 하였다. 향리 사람들은 하늘이 그 효도에 감탄하여 쉽게 구해진 것이라고 칭찬하였다. 부모상을 당하여서는 여막에서 삼년을 지내면서 예를 다하였는데, 이 일이 조정에까지 알려져 포상의 은전을 받았다. 1665년(효종 6)에 정려(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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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충청북도 청원군 미원장터의 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30일 같은 동리에 거주하는 박우동(朴雨東)과 독립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정하고 격문을 작성하여 각 동리에 돌리며 거사를 준비하였다. 4월 1일 거사 당일 청원군 미원장터에서 인근 주민 다수를 규합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날의 만세시위는 전날 격렬한 만세시위로 인해 대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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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숙박시설인 오근원이 있었던 자리. 상당구 오동동에 해당하는 곳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본래 오근부곡의 옛터를 오근원이라 한다 하였다. 오근부곡은 청주의 북쪽에 있으며, 동쪽으로는 청안현과 사십리 거리이고, 북쪽으로는 진천현과 삼십리, 서쪽으로는 목천현과 오십리, 남쪽으로는 청주와 삼십리 거리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옛날에 오근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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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외남동에 있는 충북선 철도구간 중의 역. 오일장이 열리던 오근장의 지명에서 따온 이름이다. 오근장역은 일제강점기 중앙철도회사가 착공하여 1923년 5월 1일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여 조치원역까지 열차운행이 개시됐다. 1924년 9월 1일 조선철도주식회사로 편입되었다. 청주 시내에서 6㎞ 북쪽에 있는 오근장역은 17세기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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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오동동에 있는 육교. 2002년 12월에 완공된 육교로, 총연장 260.3m, 폭 27.4m이며, 상하행 각각 3차선으로 되어 있다. 17번도로 공항로가 충북선 철로를 통과하기 위하여 세워진 자동차 도로를 위한 육교이다. 왕복 6선 도로가 철도를 통과하도록 아치형으로 만들어진 다리이다. 이 육교를 통하여 서울을 비롯하여 경기도,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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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오동동에 있었던 조선시대 저장미를 보관하던 창고. 조선 후기의 지리지에는 청주목 소속의 지방관청 소속의 창고로 동창(東倉)과 서창(西倉)이 읍성 안에 있었으며, 서쪽으로 미호천(美湖川) 연변에 신원창(薪院倉)과 금성창(金城倉)이, 북쪽에 북창인 오근창, 동쪽 멀리 청천창(靑川倉), 남쪽 멀리 주안창(周岸倉)이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청주목에서 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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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오동동에 있는 마을. ‘오남(梧南)’이 정북동(井北洞) ‘머긋대’(오동나무) 마을의 남쪽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추정은 오히려 그 마을의 동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잘못된 추정이다. 아마도 새비룡 지역을 일컫는 ‘오동(梧東)’ 마을의 남쪽에 있다고 해서 ‘오남(梧南)’으로 불린 것으로 추정된다. ‘오남’을 ‘안터’라 부르기도 한다. 이곳은 낮은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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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충신. 본관은 보성(寶城)이다. 청주 출신으로, 고려 고종 때 몽고군 격퇴에 공을 세워 보성군에 봉해진 오현필(吳賢弼)의 후손이다. 1636년(인조 14년)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장관(將官)으로서 용감하게 싸워 강도(江都) 남문(南門)에서 순절하였다. 후에 조정에서 포상의 은전을 내렸다. 고원군수를 지냈다. 1675년(숙종 1)에 정려(旌閭)되었다. 충청북도 청원군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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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효자. 청주 출신으로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어머니를 업고 피난하였다. 그 때 왜적에게 잡혀 포로가 되었을 때, 적이 그의 어머니를 칼로 해치려는 순간 어머니를 안고 엎드려 함께 목숨을 잃었던 효자였다. 그는 자식 없이 죽었기 때문에 조정에서 포상할 대상이 없어 향리인들이 안타까워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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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창의사(倡義使). 본관은 보성(寶城)이며, 자는 덕보(德甫), 호는 상당일민(上黨逸民)이다. 오덕명은 한성부서윤 오소(吳熽)의 손자이며, 호조참의에 증직된 오응창(吳應昌)의 아들이다. 생부는 호조참판에 증직된 오필창(吳必昌)이다. 어려서부터 지략이 뛰어나고 천성이 충효하여 정의감이 남달랐다. 과거에 낙방하자 30세 후에는 상당산(上黨山)[419m] 아래 집을 짓고 상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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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오근장동에 속하는 법정동. 오근원터와 유물산포지가 분포하는데, 오근원터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본래 오근부곡(梧根部曲)의 옛터를 오근원이라 한다 하였으며, 원이 있던 터의 옆에 조선 숙종 때 창고 14칸을 지어 북창(北倉)이라 하고, 원터에는 관(官)을 두어 사객이 왕래할 때 영접하고 환송하는 곳으로 이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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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오동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유물산포지. 상당구 오동동의 청주~진천을 잇는 17번국도와 미호천(美湖川) 충적지인 팔결들 사이에는 남동-북서로 뻗은 능선이 있으며, 이 능선의 북동향하는 경사면에 유적이 위치하고 있다. 능선 좌우에는 큰한대골과 작은 한대골의 좁은 골짜기를 이용한 논이 형성되어 있고, 맞은편 능선에 오동동동사무소가 있다.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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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성화동에 있는 마을. 오류골은 성화동 북동쪽의 긴밭재마을 남서쪽에 있는 마을로 고목이 된 버드나무 다섯 그루가 있는데, 이로 인하여 오류골이라 불리어졌다. 그러나 사실은 지형이 용 다섯 마리가 엎드려 있는 형국이라 하여 오룡동이라 명명되어 왔다 한다. 오룡의 발음 오류로 변하여 현재 오류동이라 부르고 있다. 오류는 토박이말로 ‘오릿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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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성화동에 있는 마을. 오류골은 성화동 북동쪽의 긴밭재마을 남서쪽에 있는 마을로 고목이 된 버드나무 다섯 그루가 있는데, 이로 인하여 오류골이라 불리어졌다. 그러나 사실은 지형이 용 다섯 마리가 엎드려 있는 형국이라 하여 오룡동이라 명명되어 왔다 한다. 오룡의 발음 오류로 변하여 현재 오류동이라 부르고 있다. 오류는 토박이말로 ‘오릿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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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성화동에 있는 마을. 오류골은 성화동 북동쪽의 긴밭재마을 남서쪽에 있는 마을로 고목이 된 버드나무 다섯 그루가 있는데, 이로 인하여 오류골이라 불리어졌다. 그러나 사실은 지형이 용 다섯 마리가 엎드려 있는 형국이라 하여 오룡동이라 명명되어 왔다 한다. 오룡의 발음 오류로 변하여 현재 오류동이라 부르고 있다. 오류는 토박이말로 ‘오릿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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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 중앙공원(中央公園) 내에 있는 은행나무. 중앙공원(中央公園) 내에 있는 은행나무인데, 압각수라는 이름은 잎의 모양이 오리류의 발가락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주장과 나무뿌리가 물오리의 발처럼 발가락 사이가 붙어 있어 생겼다는 주장이 있다. 그래서 이 나무를 오리발나무라고도 한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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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보성(寶城)이며, 한림(翰林)을 지낸 오윤(吳潤)의 아들이다. 지금의 청원군 현도면 달계리에 살았다. 1521년(중종 16)에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으로 진출하였다. 벼슬은 직제학(直提學)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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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효자. 본관은 보성(寶城)이며, 고려 고종(高宗) 때 몽고군 격퇴에 공을 세워 보성군에 봉해진 오현필(吳賢弼)의 후손이다. 아들이 효자로 이름 높은 오진택(吳振澤)이고, 손자 오정기(吳鼎基) 역시 효자로 칭송되었다. 청주 출신으로 효행이 뛰어났으며 학문 또한 고명(高明)하여 칭송이 높았다. 아들과 손자 모두가 효행으로 이름 높아 국가로부터 복호(復戶)의 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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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청주 출신으로 어머니의 병이 깊어지자 똥을 직접 맛을 보아가면서 병의 차도를 진단하였을 정도의 효자였다. 어머니가 생선이나 과일 등 먹고 싶다는 음식은 모두 구해다가 봉양하였다. 친기(親忌 : 부모의 제사)가 닥칠 무렵 키우던 개가 새끼 낳을 때가 되어 걱정하고 있었는데, 이틀 동안 사라졌던 개가 새끼를 낳아 물고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이웃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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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청주 출신으로 타고난 효성으로 이웃으로부터 칭송을 들었다. 가세가 빈한하여 밖에서 맛있는 음식을 접하면 반드시 집으로 갖고 와서 어버이에게 드렸고, 먼저 먹는 법이 없었다. 어버이가 병이 들었을 때는 침식을 폐하고 병간호에만 매달렸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어버이를 업고 태백산으로 들어가 음식이 있으면 먼저 어버이에게 드리고, 다음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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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지동동에 있었던 옛 마을. 이 지역은 예전에 고씨(高氏), 오씨(吳氏), 전씨, 정씨, 김씨(金氏) 등 5개의 성씨의 사람들이 모여 살던 마을이라서 붙어진 이름이다. 석남천 하류 부근의 석남천 지류에 위치하고 있어 곡저평야를 이루고 있다. 흥덕구의 북부지역으로서 중부고속도로의 서청주인터체인지가 있고, 그리고 흥덕로가 동서로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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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보성(寶城)이며, 지금의 청원군 낭성면 출신이다. 무과출신으로 벼슬은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를 지냈다. 수로(水路)로 중국에 사신으로 가다가 바다에서 죽었다. 이에 의관(衣冠)으로 장사지냈다. 청백리로 이름이 높았다. 후에 판서(判書)에 증직(贈職)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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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체육선수들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장학재단. 충청북도 체육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위하여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장학사업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90년 4월 3일 당시 청주지방검찰청에 재직 중인 정경식 검사장이 4천100만 원과 구 충북은행장이었던 황창익이 2천만 원을 출연하여 설립하였다. 충청북도에 있는 학교에 재학중인 학생으로서 기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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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보성(寶城)이며 자(字)는 회백(晦伯), 호(號)는 금암(琴巖)이다. 보성부원군(寶城府院君) 오천복(吳天福)의 9세손이며 생원(生員) 오행원(吳行遠)의 아들이다. 1633년(인조 11) 사마시(司馬試)에 급제하고, 1639년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전적(典籍:성균관의 정6품 또는 종8품 벼슬)·감찰(監察:사헌부의 정6품 벼슬)·예조좌랑(禮曹佐郞:정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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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보성(寶城)이다. 아버지는 대호군(大護軍) 오효원(吳孝元), 할아버지는 오인헌(吳仁憲), 증조할아버지는 오숙동(吳叔仝), 장인는 신경장(申景章)이며, 손자로는 오행건(吳行健)이 있다. 지금의 청원군 현도면 달계리에 살았다. 진사시를 거쳐 1511년(중종 6) 별시 문과에 을과 3등으로 급제하였다. 벼슬이 한림(翰林), 학록(學錄)에 이르렀으며 덕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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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청주 출신으로 조선시대 이름난 효자이다. 아버지가 병이 들어 꿩고기가 먹고 싶다 하자, 지성으로 이를 구하여 봉양하였다. 효행으로 이름 높아 조정에서 중추부사(中樞府事)란 관직을 내리고, 삼대(三代)를 추은(推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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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청주 출신으로 조선 중기에 효행으로 이름 높았다. 1700년(숙종 26)에 장례원(掌隷院) 별검(別檢)에 증직(贈職)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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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정상동과 정하동에 있는 들. ‘오주알’은 ‘오주’와 ‘알’로 분석된다. 이 들이 ‘오죽(머굿대)’ 아래에 있음을 고려하면, ‘오주’는 ‘오죽’의 변화형으로 추정할 수 있다. 전국적으로 ‘오주’는 ‘오주대’·‘오주리’·‘오주바우’·‘오주박’·‘오주암’ 등에서 발견된다. ‘알’ 또한 같은 이유에서 ‘아래’의 변화형으로 추정한다. 선행 요소 ‘알’이 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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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관. 본관은 보성(寶城)이며, 자는 근보(謹甫), 호는 추봉(楸峰)이다. 증호조판서(贈戶曹判書) 오도명(吳道明)의 아들이다. 1756년(영조 32)의 식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承文院) 정자(正字)가 되고, 1762년 숭릉 별검, 1764년 성균관 전적을 거쳐 이듬해 예조좌랑에 오르고, 1774년에 병조정랑이 되었으며, 사헌부 장령이 되어 돈령부의 잘못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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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보성(寶城)이며, 고려 고종(高宗) 때 몽고군 격퇴에 공을 세워 보성군에 봉해진 오현필(吳賢弼)의 후손이다. 효자로 칭송되었던 오진택(吳振澤)의 아들이고, 역시 효자로 이름 높던 오상건(吳尙健)의 손자이다. 청주 출신으로 효행으로 이름 높던 청원군의 보성오씨(寶城吳氏) 가문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효행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그가 죽은 후 나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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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정상동과 정하동에 있는 들. ‘오주알’은 ‘오주’와 ‘알’로 분석된다. 이 들이 ‘오죽(머굿대)’ 아래에 있음을 고려하면, ‘오주’는 ‘오죽’의 변화형으로 추정할 수 있다. 전국적으로 ‘오주’는 ‘오주대’·‘오주리’·‘오주바우’·‘오주박’·‘오주암’ 등에서 발견된다. ‘알’ 또한 같은 이유에서 ‘아래’의 변화형으로 추정한다. 선행 요소 ‘알’이 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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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정북동에 있는 마을. ‘머굿대’는 ‘머구’와 ‘대’가 사이시옷을 매개로 결합된 어형이다. ‘머구’는 중세국어 ‘머귀’의 변화형이다. ‘머귀’는 ‘오동나무’를 뜻한다. 이 마을을 달리, ‘오죽(梧竹)’이나 ‘동죽(桐竹)’으로 부르는 사실이 ‘머구’가 ‘머귀’의 변화형임을 암시한다. 지명에서 ‘머귀’는 ‘머’·‘머구’·‘머구나무’·‘머구남’·‘머그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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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보성(寶城)이며, 고려 고종(高宗) 때 몽고군 격퇴에 공을 세워 보성군에 봉해진 오현필(吳賢弼)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효자로 이름 높은 오상건(吳尙健)이고, 아들 오정기(吳鼎基) 역시 효자로 칭송되었다. 청주 출신으로 효행이 뛰어나 하늘에서 나왔다고 여길 정도였고, 학문 또한 고명(高明)하여 칭송이 높았다. 아들과 손자 모두가 효행으로 이름 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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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보성(寶城)이며, 자는 여경(汝敬)이다. 통정대부(通政大夫) 오태좌(吳台佐)의 아들로 지금의 흥덕구 송절동에 살았다. 형으로 오행건(吳行健), 오행민(吳行敏), 오행간(吳行簡)이 있다. 1610년(광해군 2)에 사마시를 거쳐 진사가 되고, 그 해에 이어 식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이조정랑, 춘추관 기주관을 역임하고 송도소윤, 종묘서령을 역임하는 등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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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보성(寶城)이며, 자는 여강(汝强)이다. 지금의 흥덕구 송절동에 살았으며, 아버지는 오태좌(吳台佐)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오윤(吳潤)이다. 동생으로는 오행민(吳行敏)과 오행간(吳行簡)이 있다. 1609년(광해군 1)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1612년에 식년시 문과에 등제하여 강원도사를 지냈다.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상(喪)을 당했을 때에도 예의와 정성을 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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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부. 남편은 이실만(李實萬)이다. 관청의 노비였는데 19세에 이실만의 처가 되어 시아버지를 섬김에 효성을 다하고, 시어머니 제사도 지성으로 지냈다. 그 행실을 귀히 여겨 잡역에서 해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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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갱이(민물다슬기)를 이용하여 부추나 아욱과 함께 된장, 고추장, 고춧가루 등을 집안 전통에 따라 넣어 만든 국. 청주는 물과 산 등 도시가 깨끗하고 바다가 없어 민물 생선이 식재료로 많이 이용되었다. 깨끗한 물에서만 서식하는 올갱이는 청주 한 복판을 가로지르며 흐르는 무심천에서 올갱이가 많이 서식했으며, 근교인 대청댐, 화양동 등의 맑은 물에서도 다량의 올갱이가 잡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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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주성동에 있었던 샘. ‘질구샘’은 ‘질구’와 ‘샘’으로 분석된다. ‘질구’는 ‘질곶’에서, 다시 ‘질곶’은 ‘길곶’에서 변한 어형이다. ‘길곶’에서 ‘길-’은 ‘길다[長]’의 어간이다. ‘곶’은 『삼국사기(三國史記)』 고구려 지명에 ‘古次·串’(곶)으로 보이는데, 원래는 ‘입(口)’을 뜻했다. 그러나 현대 지명에서 ‘곶’·‘고지’·‘구지’·‘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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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내덕동과 율량동 사이의 찬샘이 있는 우암산(牛岩山)[338m] 골짜기. ‘찬샘’을 일명 ‘옻샘’이라고도 한다. 샘물이 아주 차서 ‘찬샘’이라 한 것이고 옻과 같은 피부병을 치료하는데 약효가 뛰어나서 ‘옻샘’이라고도 한다. ‘찬샘’의 부근을 ‘찬샘거리’라고 하는데 점차 지시영역이 넓어져 그 거리의 주변은 물론 샘이 있는 골짜기까지도 포괄하여 지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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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시 상당구 동편에 위치하는 청주의 진산이며 문화유적의 보고. 청주시의 동편에 위치하는 우암산(牛岩山)[338m]은 청주의 진산(鎭山)으로 청주시의 명암동, 내덕동, 우암동, 수동, 대성동, 문화동, 용암동에 걸쳐 있고 그 지맥이 탑동에까지 미치고 있으며, 해발 338m의 정상을 중심으로 남과 북 3좌의 연봉과 중앙초등학교 동쪽의 당산(唐山)에까지 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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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봉사단체 YASI의 청주시 지회. 사회봉사와 자아향상을 위하고 자신의 본분과 책임을 다하며 나아가 사회봉사에 대한 임무를 즐겨 실천하며, 협력을 도모하고 자아의 자질향상과 보다 나은 인격형성을 도모하여 사회속에서 화목과 질서를 확립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다. 1997년 2월 21일 설립된 YASI는 1998년 9월 1일 청주로 사무실을 이전하였고 12월 수원지회 설립,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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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초명은 자림(子琳)이다. 현종 때 상주국 개성현 개국백(上柱國 開城縣 開國伯)의 봉작과 수충창궐공신(輸忠創闕功臣) 칭호를 받으면서 왕씨로 성을 하사받았으며, 그의 부인 김씨(金氏)는 개성군부인(開城郡夫人)에 봉해졌다. 왕가도(王可道)의 딸들은 현종 때 원질귀비(元質貴妃)가 되었으며, 덕종 때는 현비(賢妃)로 책봉되어 상회 공주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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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에 있는 마을. ‘왕대골’은 ‘왕대’와 ‘골’로 분석된다. ‘왕대’는 다시 ‘왕’과 ‘대’로 나뉜다. ‘왕(王)-’은 접두사로, ‘아주 큼을 나타내는 말’이다. ‘왕개미’·‘왕거미’·‘왕게’·‘왕대포’·‘왕만두’·‘왕머루’·‘왕방울’·‘왕밤’·‘왕새우’ 등에 쓰인 ‘왕-’이 그것이다. 따라서 ‘왕대’는 실제 모양과는 관계 없이 ‘큰 대’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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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에 있는 마을. ‘왕대골’은 ‘왕대’와 ‘골’로 분석된다. ‘왕대’는 다시 ‘왕’과 ‘대’로 나뉜다. ‘왕(王)-’은 접두사로, ‘아주 큼을 나타내는 말’이다. ‘왕개미’·‘왕거미’·‘왕게’·‘왕대포’·‘왕만두’·‘왕머루’·‘왕방울’·‘왕밤’·‘왕새우’ 등에 쓰인 ‘왕-’이 그것이다. 따라서 ‘왕대’는 실제 모양과는 관계 없이 ‘큰 대’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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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에 있는 마을. ‘왕대골’은 ‘왕대’와 ‘골’로 분석된다. ‘왕대’는 다시 ‘왕’과 ‘대’로 나뉜다. ‘왕(王)-’은 접두사로, ‘아주 큼을 나타내는 말’이다. ‘왕개미’·‘왕거미’·‘왕게’·‘왕대포’·‘왕만두’·‘왕머루’·‘왕방울’·‘왕밤’·‘왕새우’ 등에 쓰인 ‘왕-’이 그것이다. 따라서 ‘왕대’는 실제 모양과는 관계 없이 ‘큰 대’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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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에 있는 마을. ‘왕대골’은 ‘왕대’와 ‘골’로 분석된다. ‘왕대’는 다시 ‘왕’과 ‘대’로 나뉜다. ‘왕(王)-’은 접두사로, ‘아주 큼을 나타내는 말’이다. ‘왕개미’·‘왕거미’·‘왕게’·‘왕대포’·‘왕만두’·‘왕머루’·‘왕방울’·‘왕밤’·‘왕새우’ 등에 쓰인 ‘왕-’이 그것이다. 따라서 ‘왕대’는 실제 모양과는 관계 없이 ‘큰 대’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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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화계동에 있는 마을. ‘왕암’은 ‘왕’과 ‘암’으로 분석된다. ‘왕’은 ‘왕(旺)’으로 표기되지만, 실제로는 ‘왕(王)’이다. ‘왕-’은 접두사로, ‘아주 큼을 나타내는 말’이다. ‘왕개미’·‘왕거미’·‘왕게’·‘왕대포’·‘왕만두’·‘왕머루’·‘왕방울’·‘왕밤’·‘왕새우’ 등에 쓰인 ‘왕-’이 그것이다. ‘암(岩)’은 ‘바위’이다. ‘바위’는 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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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화계동에 있는 마을. ‘왕암’은 ‘왕’과 ‘암’으로 분석된다. ‘왕’은 ‘왕(旺)’으로 표기되지만, 실제로는 ‘왕(王)’이다. ‘왕-’은 접두사로, ‘아주 큼을 나타내는 말’이다. ‘왕개미’·‘왕거미’·‘왕게’·‘왕대포’·‘왕만두’·‘왕머루’·‘왕방울’·‘왕밤’·‘왕새우’ 등에 쓰인 ‘왕-’이 그것이다. ‘암(岩)’은 ‘바위’이다. ‘바위’는 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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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화계동에 있는 산. 지명의 선행요소로서의 ‘왕’은 대체로 ‘큰’의 의미를 띠며, ‘재’는 ‘고개’의 뜻이다. 따라서 ‘왕재’는 ‘큰 고개’로 해석된다. 그런데, 여기서의 ‘왕재’는 ‘고개 이름이 아니라 산 이름’으로 쓰인것이다. 고개가 있는 산을 그 고개 이름을 다서 그렇게 부른것이다. 전국에 ‘왕재’라는 지명이 많은데, 대부분이 산 이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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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율량동과 주성동에 있는 골짜기. ‘왯골’은 ‘왜’와 ‘골’이 사이시옷을 매개로 결합된 어형이다. ‘왜’는 ‘기와’를 뜻하는 한자어 ‘와(瓦)’의 변화형이다. ‘골’은 고구려어 ‘忽’(홀·골)과 신라어 ‘’에서 기원한 것으로, ‘골짜기’나 ‘마을’을 뜻한다. 그렇다면 ‘왯골’은 ‘왓골’의 변화형으로, ‘기와의 골짜기’로 해석된다. 즉 이 골짜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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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외평동에 있었던 마을. ‘쇠내’는 외평동에 있던 마을로 ‘상촌(上村)’, ‘중촌(中村)’, ‘평촌(坪村)’ 지역을 아우르는 큰 마을 이었다. ‘금천(金川)’이라고도 한다. 본래 ‘쇠내’는 멀리 상당산성(上黨山城)에서 발원하여 팔결내로 흘러드는 하천이다. ‘쇠내’의 ‘쇠’는 ‘금(金)’, ‘내’는 ‘천(川)’의 뜻이다. 그러니 ‘쇠내’는 ‘금이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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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외평동에 있었던 마을. ‘쇠내’는 외평동에 있던 마을로 ‘상촌(上村)’, ‘중촌(中村)’, ‘평촌(坪村)’ 지역을 아우르는 큰 마을 이었다. ‘금천(金川)’이라고도 한다. 본래 ‘쇠내’는 멀리 상당산성(上黨山城)에서 발원하여 팔결내로 흘러드는 하천이다. ‘쇠내’의 ‘쇠’는 ‘금(金)’, ‘내’는 ‘천(川)’의 뜻이다. 그러니 ‘쇠내’는 ‘금이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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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오근장동에 속하는 법정동. ‘바깥쇠내’의 남쪽이 되므로 ‘외남’이라 한 것이다. ‘검등골’은 ‘금곡(金谷)’이라고도 하고 있는 데 마을주변에 금점(金店)이 있어 붙어진 이름이다. 주막거리는 일명 ‘역말’이라고도 하는 데 그것은 서남쪽에 오근장역이 있기 때문이다. ‘용성’은 ‘용구레’에 샘에서 용이 승천하였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 본래 청주군 북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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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서2동에 속하는 법정동. 예전에 도시화가 되기 전에 중심지역 이었던 외북리의 마을 지명을 따서 외북동이 되었다. 본래 청주군 서강내일상면(西江內一上面) 외송리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남촌리(南村里)와 왕암리(旺岩里) 일부를 병합하여 외북리(外北里)라 이름하고 강서면(江西面)에 편입, 1983년 2월 15일에 외북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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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두절(流頭節)을 기해 참외밭에서 풍년을 기원하는 세시의식. 일종의 기풍제(祈豊祭)로서 흔히 ‘외제’라고 한다. 기풍제는 크게 답제(畓祭)와 전제(田祭)로 나눌 수 있다. 전자로서 용신제(龍神祭), 농신제(農神祭), 논굿, 논고사, 유두고사, 유두제 등이 전승되고 있으며, 후자로서 외제, 수박제, 등이 전국적으로 광포하여 전승되고 있다. 참외가 영글 무렵에 참외밭에서 직접 국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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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정상동과 정하동에 있는 들. ‘오주알’은 ‘오주’와 ‘알’로 분석된다. 이 들이 ‘오죽(머굿대)’ 아래에 있음을 고려하면, ‘오주’는 ‘오죽’의 변화형으로 추정할 수 있다. 전국적으로 ‘오주’는 ‘오주대’·‘오주리’·‘오주바우’·‘오주박’·‘오주암’ 등에서 발견된다. ‘알’ 또한 같은 이유에서 ‘아래’의 변화형으로 추정한다. 선행 요소 ‘알’이 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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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송정동에 있었던 마을. ‘정사간’은 ‘정’과 ‘사간’으로 분석된다. 여기서 ‘정’은 ‘진주정씨(晉州鄭氏)’를 말한다. ‘사간(司諫)’은 ‘사간원(司諫院)의 종3품 벼슬로, 1466년(세조 12)에 지원사(知院事)를 고친 이름’이다. 이 곳은 조선 성종 때 대사간(大司諫: 정3품)을 지낸 정설(鄭泄)이 낙향한 마을로, ‘정설’과 ‘대사간’을 따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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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오근장동에 속하는 법정동. 외금리와 평리에서 한글자씩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 청주군 북강내일면(北江內一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외금리(外金里), 외하리(外下里), 수내리(藪內里), 외상리(外上里), 평리(坪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외평리라 하고 북일면(北一面)에 편입되었으며, 마을이 비행장 부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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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오근장동에 속하는 법정동. 바깥쇠내 아래쪽이 되므로 외하리가 되었다. 본래 청주군 북강내일면(北江內一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입상리(立上里) 일부, 북강외일하면(北江外一下面)의 탑동리(塔洞里) 일부를 병합하여 외하리라 하고 북일면(北一面)에 편입되었다. 마을이 비행장 부지로 되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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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외하동에 있는 골짜기. ‘요강골’은 외하에 있던 골짜기로, 옛날에 이곳에서 용이 승천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요강골’의 ‘요강’은 ‘요강(尿綱)’으로 추정된다. 아마도 골짜기의 모양이 ‘요강’처럼 작고 동그랗게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거나, ‘요강’처럼 깊어서 붙여진 이름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 요강골은 길면서 깊숙하고, 안으로 내가 흘렀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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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신봉동에 있는 사회복지시설. 장애인복지 재활시설인 요셉의집은 장애인들의 복지와 재활을 위해 설립되었다. 1954년 5월 15일 전쟁고아 27명으로 대성보육원을 설립하였다. 1963년 7월 1일 대성보육원에서 청주보육원으로 시설명칭을 변경하였고 1973년 2월 20일 목적사업변경(육아사업에서 정신지체인 수용시설)을 하고 1984년 2월 7일 청주보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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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신봉동에 있는 장애인 재활시설. 일반적인 고용이 어려운 중증 정신지체장애인을 중심으로 취업 및 보호작업 시설로의 전이를 위한 직업적응 훈련과 작업활동을 실시하고, 자립기반을 조성하기 위하여 작업활동 시설을 설치하고 운영함으로써 장애인의 자립·자활기반을 도모하고 사회통합을 이루고자 설립되었다. 1985년부터 충북재활원 생활관 소속의 보호작업장을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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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영운동과 청원군 남일면 경계에 있는 용개들의 지명 유래를 설명하는 지명 전설. 신라 말, 청주한씨(淸州韓氏) 시조 한란(韓蘭)[?~?]이 이곳에 정착을 했다. 한공은 이미 학문과 의술과 도술에 통달해 있었다. 혹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있으면 성심껏 가르쳐주었고, 혹 아픈 사람이 있으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돌보아 사람들은 한공을 친아버지처럼 믿고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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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분평동에 있는 들. ‘용개’와 ‘들’이 사이시옷을 매개로 연결된 어형이다. ‘용개’의 ‘용’은 ‘龍’, ‘개’는 ‘물이 드나드는 곳’을 가리킨다. 이렇게 보면 ‘용개’는 ‘용이 승천한 개’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전국에 ‘용개’라는 지명이 많이 있는데, 대부분이 개, 마을, 들의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분평동 주공아파트 7단지 남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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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평촌동에 있는 들. ‘용개들’은 ‘용개’와 ‘들’이 ‘ㅅ’을 매개로 결합된 어형이다. ‘용개’는 다시 ‘용’과 ‘개’로 나뉘는데, ‘용개’는 ‘용이 승천한 개’로 보면된다. ‘용개’는 지역에 따라 개, 들, 마을의 이름으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용개’ 근처에 있는 들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용개보’의 물을 이용하여 농사를 짓는 지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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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담·명암·산성에 속하는 법정동. 본래 청주군(淸州郡) 동주내면(東州內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용담리(龍潭里), 명암리(明岩里), 유정리(有亭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용담리(龍潭里)라 명명하고 사주면(四州面)에 편입하였다. 1963년 용담동(龍潭洞)으로 바꾸어 청주시에 편입하였다. 우암산(牛岩山)[338m] 남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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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담동에 있었던 고려시대 유물산포지. 한국토지공사 충북지사가 추진한 청주 용암2지구 택지개발사업지구에 대한 문화재 부존여부의 파악을 위해 1995년 국립청주박물관이 실시한 지표조사시 고려시대 경질토기편 등 약간의 유물이 채집되면서 용담동 유물산포지로 이름붙여졌다. 지표조사 결과를 토대로 1999년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서 시굴조사(택지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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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담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유적. 이 유적은 1992년 여름 용담초등학교 교정에서 하수도 공사 중 발견되었는데, 구덩이에서 파낸 흑색 부식토에서 청동기시대 민무늬토기편·석기·목재·씨앗·동물이빨 등이 수습되었다. 이러한 유물상으로 볼 때 이곳이 과거에는 완만한 계곡에 형성된 저습지 내지는 소택지이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용담’이란 지명과도 연관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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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담동에 있었던 고려시대 유물산포지. 한국토지공사 충북지사가 추진한 청주 용암2지구 택지개발사업지구에 대한 문화재 부존여부의 파악을 위해 1995년 국립청주박물관이 실시한 지표조사시 고려시대 경질토기편 등 약간의 유물이 채집되면서 용담동 유물산포지로 이름붙여졌다. 지표조사 결과를 토대로 1999년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서 시굴조사(택지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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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담동에 위치하고 있는 공립 초등학교. 건강하고 정직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용담 어린이를 육성하자는 취지아래 다섯 가지교육목표를 가지고 있다. 기초예절을 실천하는 도덕적 어린이, 기초기본 학력이 풍부한 실력있는 어린이, 합리적 사고로 탐구하는 과학적 어린이, 심신발달이 조화로운 건강한 어린이,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정서적 어린이가 그것이다. 197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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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월오동에 있는 아동양육시설 현양원 내의 용담초등학교 분교. 건강하고 정직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어린이를 육성하자는 취지 아래 기초 예절을 실천하는 도덕적 어린이, 기초 기본 학력이 풍부한 실력 있는 어린이, 합리적 사고로 탐구하는 과학적 어린이, 심신 발달이 조화로운 건강한 어린이,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정서적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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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 2가에 있었던 용두사에서 사용하였던 금구. 『여지도서(輿地圖書)』를 비롯한 조선 후기의 각종 지리지에 보살사(菩薩寺) 금구(錦口)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옛 경신(庚申) 8월에 고을 사람이 땅을 파다가 옛 종을 습득하였는데 ‘대안육년용두사금구(大安六年龍頭寺錦口)’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으며 그 형태가 기이하고 소리가 몇 리 밖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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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에 위치한 고려시대 사찰 용두사의 터. 청주시내의 중심지에 자리하고 있는 용두사지(龍頭寺址)는 국보 제41호인 철당간이 남아 있는 관계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용두사의 창건과 폐사에 대한 문헌기록이 없어 자세한 연혁은 알 수 없다. 단지 1천년 이상을 제자리에 서있는 철당간의 당간기가 있어 절 이름뿐만 아니라 고려 초기의 상황을 어느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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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에 있었던 용두사 터에 있는 철제 당간지주. 밑에서부터 세 번째 철통에 철당간을 만들게 된 내력이 양각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주성(鑄成) 기록에 의하면 이 철당간은 준풍(峻豊) 3년(고려 광종 13, 962)에 건립되었다. 이 당간은 당시 청주지역의 대표적인 호족(豪族)세력인 당대등(堂大等: 戶長) 김예종(金芮宗)의 원(願)에 의하여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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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에 있는 바위. 용바위는 용바위골에 자리한 바위이다. 용암동의 용암은 속지명 용바위에 대한 한자 지명이다. 용바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지명 전설이 전하여지고 있다. 아주 오래 전, 울창한 수목으로 뒤덮인 이곳 암벽 사이에 있는 돌방을 찾아온 사나이가 있었다. 그는 멀고 먼 북쪽 땅에서 영웅이 되기를 바라고 몸과 마음을 단련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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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에 속하는 행정동 및 법정동. ‘용바위’가 있어서 ‘용바위골’, ‘용박골’, 또는 ‘용암리’라고 하였다. ‘용바위’는 ‘용바위골’에 자리한 바위로서 용암동의 ‘용암’은 속지명 ‘용바위’에 대한 한자지명이다. ‘용바위’는 용이 승천한 바위여서 붙어진 이름으로 여기서는 마을 이름으로 전용된 사례가 된다. 본래 청주군 동주내면(東州內面)에 속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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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에 있는 마을. ‘용박골’은 ‘용박’과 ‘골’로 분석된다. ‘용박’은 다시 ‘용’과 ‘박’으로 나뉜다. ‘용(龍)’은 ‘몸은 거대한 뱀과 비슷하고 비늘로 덮여 있으며, 머리에는 두 개의 뿔과 귀가 있는, 상상의 동물’을 뜻한다. ‘박’은 ‘바위’의 변화형으로, 지명에서 ‘바우’·‘방우’·‘방구’·‘배’ 등으로도 나타난다. 따라서 ‘용박’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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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에 있는 마을. ‘용박골’은 ‘용박’과 ‘골’로 분석된다. ‘용박’은 다시 ‘용’과 ‘박’으로 나뉜다. ‘용(龍)’은 ‘몸은 거대한 뱀과 비슷하고 비늘로 덮여 있으며, 머리에는 두 개의 뿔과 귀가 있는, 상상의 동물’을 뜻한다. ‘박’은 ‘바위’의 변화형으로, 지명에서 ‘바우’·‘방우’·‘방구’·‘배’ 등으로도 나타난다. 따라서 ‘용박’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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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에 속하는 행정동 및 법정동. ‘용바위’가 있어서 ‘용바위골’, ‘용박골’, 또는 ‘용암리’라고 하였다. ‘용바위’는 ‘용바위골’에 자리한 바위로서 용암동의 ‘용암’은 속지명 ‘용바위’에 대한 한자지명이다. ‘용바위’는 용이 승천한 바위여서 붙어진 이름으로 여기서는 마을 이름으로 전용된 사례가 된다. 본래 청주군 동주내면(東州內面)에 속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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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내덕동에 있는 마을. ‘용사태’는 ‘용’과 ‘사태’로 분석된다. ‘용(龍)’이 지형을 지시할 때는 ‘우백호(右白虎)’와 짝이 되는 ‘좌청룡(左靑龍)’으로, ‘주산(主山)에서 갈라져 나간 왼쪽 산줄기’를 말한다. ‘사태’는 ‘사태’외에 ‘사태걸’·‘사태골’·‘사태동’·‘사태둔지’·‘사태동’·‘사태리’·‘사태말’·‘사태메기’·‘사태목’·‘사태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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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내덕동 안덕벌(안터벌) 북쪽에 있었던 마을. 전형적으로 청룡(靑龍)과 백호(白虎)의 지형을 갖춘 명당에 조성된 ‘용사태’는 사태마을이 왼 쪽 산줄기에 놓여 있어서 ‘청룡사태’라고 하다가 이것을 줄어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광명원’은 실명한 상이용사들을 위하여 국가에서 지어준 주택지로서 상이용사들이 새로운 광명을 찾도록 한다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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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내덕동에 있는 마을. ‘용사태’는 ‘용’과 ‘사태’로 분석된다. ‘용(龍)’이 지형을 지시할 때는 ‘우백호(右白虎)’와 짝이 되는 ‘좌청룡(左靑龍)’으로, ‘주산(主山)에서 갈라져 나간 왼쪽 산줄기’를 말한다. ‘사태’는 ‘사태’외에 ‘사태걸’·‘사태골’·‘사태동’·‘사태둔지’·‘사태동’·‘사태리’·‘사태말’·‘사태메기’·‘사태목’·‘사태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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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외남동에 있는 마을. ‘용성’은 검둥골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용성 구레에 샘이 있었는데 여기서 용이 승천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혹시 마을 앞의 산이 용의 형국을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 추정해 볼 수도 있다. 마을 앞의 산이 용처럼 아주 길게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전국에 ‘용성’이라는 지명이 대단히 많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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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암1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자기 주도적 학습의 강화로 스스로 생각하고 학습하는 어린이, 다양한 방과 후 학교 교육 활동과 잠재 능력의 계발을 통하여 취미와 소질을 가진 개성 있는 어린이, 기본 생활 습관의 강화로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어린이, 기초 체력과 보건 위생의 철저한 지도로 몸과 마음이 튼튼한 어린이, 기초 생활 질서 지도와 공동체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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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보름날 아침에 우물물을 뜨는 풍속. 정월 15일 새벽에 남보다 먼저 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 온다. 이런 행위를 보통 ‘용알 뜨기’라고 하는데, 청주에서는 ‘우물물 뜨기’라고 한다. 보름날 뜨는 물을 ‘용알 뜨기’라고 한 것은, 14일 밤에 천상에 있던 용이 지상에 내려와 우물에 알을 낳는다는 속신 때문으로 여겨진다. 이 물로 밥을 지어 먹으면 그 해 운수가 대통하고 농사가 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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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에 있는 근린공원. 상당구 용암동에 조성된 공원이라서 ‘용암공원’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 도시계획 재정비 공원결정으로 1967년 1월 16일에 8,000㎡의 용암공원 신설을 계획하였고 1976년 3월 27일에 8,000㎡의 근린공원을 계획하였으며 1985년 9월 30일에 8,000㎡의 근린공원을 계획하였다. 1992년에 용암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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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에 속하는 행정동 및 법정동. ‘용바위’가 있어서 ‘용바위골’, ‘용박골’, 또는 ‘용암리’라고 하였다. ‘용바위’는 ‘용바위골’에 자리한 바위로서 용암동의 ‘용암’은 속지명 ‘용바위’에 대한 한자지명이다. ‘용바위’는 용이 승천한 바위여서 붙어진 이름으로 여기서는 마을 이름으로 전용된 사례가 된다. 본래 청주군 동주내면(東州內面)에 속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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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에 있는 근린공원. 상당구 용암동에 조성된 공원이라서 ‘용암공원’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 도시계획 재정비 공원결정으로 1967년 1월 16일에 8,000㎡의 용암공원 신설을 계획하였고 1976년 3월 27일에 8,000㎡의 근린공원을 계획하였으며 1985년 9월 30일에 8,000㎡의 근린공원을 계획하였다. 1992년에 용암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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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에 있는 천주교 청주교구청 소속의 성당. 1994년 6월 영운동 본당에서 분리되어 방서동 225-2번지[1순환로 1204] 3층 건물 지하에 임시성당을 마련했다. 초대주임은 이범수 신부로 용암·용정·방서·지북·평촌·운동·월오동 및 남일·문의·가덕면을 관할구역을 성무활동을 시작했다. 용암동에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신자수가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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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에 있는 고려 및 조선 시대의 유물산포지. 용암동 유적은 충청북도 상당구 청주시 용암동에서 발견된 고려시대 및 조선시대 유적으로 크게 세 군데에서 발견되었다. 편의상 용암동 유적 ① ② ③으로 구분 명명된 유적은 대부분 토기 조각과 그릇 조각들로서 이곳이 예전에 집단 취락 지구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용암동 유적 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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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우암동에 있는 사찰. 청주대학교 구내 사범대학 건물 뒤에 있는 작은 절로 1946년 법응스님이 창건했지만 출토 유물의 성격 등으로 볼 때 그 연원이 통일신라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용암사 터에서 활발하게 불사가 이루어지던 고려시대의 사역은 지금의 용암사 경내뿐만 아니라 서쪽의 경상대학으로 통하는 도로와 주차장까지이며 이 주차장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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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내덕 2동 청주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통일 신라 시대의 석조 비로자나불좌상. 청주 용암사 석조 비로자나불좌상은 1951년 당시 주지스님이 꿈에 이 불상이 현몽(現夢)하여 당산(堂山)에서 비바람(風雨)에 시달리고 있으니 고향으로 보내달라고 애원하여 법수 2기와 함께 동공원(東公園)[현재 상당구 탑동에 있는 동부 배수지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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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암1동에 있는 사회복지시설. 용암종합사회복지관은 청주시가 한국선명회에 위탁하여 복지관을 운영하고 있는 사회복지시설이다. 청주시 용암동 지역에서 아동, 장애인, 노인, 청소년 등의 복지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 청주시가 한국선명회에 위탁하여 복지관을 운영하고 있다. 1994년 6월 한국선명회 충북·청주지회가 설립되고 11월 용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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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에 위치하고 있는 공립 중학교.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적 인성교육활동을 강화하여 건전한 가치관을 지닌 바람직한 민주시민을, 수월성을 추구하는 조화로운 학력제고로 지식기반사회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실력인을, 탐구 실험중심의 과학·정보화·직업 교육의 강화로 창의적인 사람을, 학생회 중심의 자치활동 강화 및 학부모·지역사회의 민주적 참여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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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에 위치하고 있는 공립 초등학교. 몸과 마음이 건강하며 개성을 추구하는 어린이, 새롭게 생각하며 창의적인 사고로 탐구하는 어린이, 폭넓은 교양을 바탕으로 적성과 소질을 계발하는 어린이, 전통문화를 알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어린이, 민주시민의식을 익혀 공동체 발전에 기여하는 어린이를 길러 바르고 슬기롭게 꿈을 키워가는 어린이를 육성한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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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암2동에서 개최되는 지역 축제. 용암한마음축제는 택지개발로 인해 조성된 신시가지와 농촌지역 간의 조화를 꾀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1996년 10월 제1회 행사를 개최하여 지역 축제로는 가장 먼저 시작하였다. 지역문화의 건전한 보급 및 지역 특성문화 프로그램의 창출을 통해 주민의 자긍심을 고취하고자 매년 축제를 열고 있다. 제1, 2회 행사는 용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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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서1동에 속하는 법정동. 동명의 유래는 마을 앞에 용이 승천하였다는 큰 우물이 있어 샘미마, 용정이라고 하였다. 강서동은 본래 청주군 서강내일하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14년에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 정책에 따라 중암리, 석담리, 봉산리, 호암리, 반송리 일부와 주봉리 일부를 병합하여 용정리라 명명하고 강서면에 편입하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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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암1동에 속하는 법정동. 본래 청주군(淸州郡) 사주내면(四州內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유정리(有亭里), 구곡리(九谷里), 용성리(龍城里), 구하리(九下里) 일부를 병합하여 용정리(龍亭里)라 명명하고 사주면(四州面)에 편입하였다. 용정(龍亭)은 용성(龍城)과 유정리(有亭里)에서 한 자씩 따서 만든 명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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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명은 상당구 용암1동 4통이고, 법정명은 상당구 용정동 이정골이다. 용정동은 본래 청주군 서주내면(西州內面)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유정리(有亭里), 구곡리(九谷里), 용성리(龍城里), 구하리(九下里) 일부를 병합하여 용성리와 유정리의 이름을 따서 용정리라 하고, 사주면(四州面)에 편입되었다가, 1963년 청주시에 편입되었다. 이정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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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항서원(莘巷書院) 이정골마을 뒷산 산자락에 서향(西向)으로 위치한 신항서원(莘巷書院)은 조선 선조 3년(1570) 창건되었다. 아산현감 경연(慶延)·문도공 동부승지 강수 박훈(朴薰)[1484~1540]·문간공 형조판서 충암(冲菴) 김정(金淨)[1486~1521]·문충공 대사헌 규암(圭庵) 송인수(宋麟壽)[1487~1547] 등 이 지방 출신 선현 4인을 모시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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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골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에 동제를 지낸다. 동제는 신격과 당의 위치에 따라 산신제와 장승제로 구분할 수 있다. 이정골에서는 천제당에서 먼저 지낸 다음 산제당, 그리고 장승의 순서로 지낸다. 제사 날짜는 보통 정월 열나흗날이나 보름날을 택하는데, 동네에 부정한 일이 생기면 당기거나 뒤로 미룬다. 제당은 천제당과 산제당 그리고 마을 앞 장승(석불입상) 등 총 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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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씨구나 좋다 어- 한 걸음 더 띱시다 띱시다 얼씨구 좋다 하나 더 띱시다 한번 더 띱시다 줄줄이 줄줄이 잘 잘 얼씨구나 좋다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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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산업은 논농사이며, 밭농사는 고추와 깨, 콩 등을 재배한다. 그 외 몇 가구가 근래에 과수(포도) 농사를 짓고 있다. 용암동이 택지로 개발되면서 마을 아래의 들판이 청주시 외곽도로로 편입되고, 김수녕양궁장 부지에 들판이 유입되어 마을 주민의 농토가 많이 줄어들어 경작량이 많이 줄었다. 교통편은 청주시 외곽도로가 개통되면서 조금 나아졌으나 대중교통편인 시내버스는 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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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골은 농촌 마을이다. 봄에서 가을까지 농사를 짓고, 겨울에는 마을 노인회관이나 집에서 쉬며 지낸다. 최근에 몇 집에서 과수 농사를 시작하였다. 이들은 겨울에도 틈틈이 과수원에서 내년 수확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대동계를 비롯한 마을 조직을 중심으로 마을이 운영되고 있다. 특히 마을에 상이 나면 주민들이 내일처럼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고 있다. 그리고 마을 총회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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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정동은 시의 동쪽에 위치하며, 동쪽은 월오동, 서쪽은 용담동, 남쪽은 용암동, 북쪽은 명암동과 접한다. 마을은 산의 큰 골짜기를 따라 길게 형성되었다. 마을 뒤로 매봉, 가니봉, 낙가산 등 높은 산이 둘러싸고 있다. 마을 가운데로 하천이 흐르고, 양쪽 산기슭을 따라 과수원과 밭이 있고, 마을 아래쪽으로 내려오면서 논이 넓게 펼쳐져 있다. 마을 어귀 구정고개 옆에 농업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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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꼭끼할매”가 치마에 돌을 가져가다가 그 자리에 콱 박았다는 이야기가 있어. 두 개를 가져갔었는데, 지금은 하나만 박혀 있어. (나머지 하나도) 아마 찾아보면 어디에 있을 거여. (제보자 : 이정진, 남, 1923년 생, 상당구 용정동 46) 금강산에서 일만이천 봉을 수집하는데 이것(선돌)을 가져가다가, 일만이천 봉을 다 쌓아서 완성했다는 소리를 듣고, 여기에 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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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정동에 있었던 신당. 용정동 이정골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동제를 지낸다. 동제는 천제당에서 먼저 제사를 올린 후 산제당으로 내려와 산신제를 지내고, 마지막으로 마을 앞에 있는 선돌에 장승제를 지낸다. 제일은 보통 정월 열 나흗날이거나 보름이 택일된다. 낙가산 중턱에 있는 천제단에서 천신제를 지내고, 50m 내려와 위치한 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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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분평동과 상당구 용암동을 연결하는 다리. 1997년 청주시청에서 개통하였다. 총연장 140m, 교폭 20m이며, Steel Box 거더교 방식이다. 본래 용평은 용머리 앞에 있는 마을이다. 옛날에 용이 하늘로 올라가서 붙여진 이름으로 설명하기도 하나, 이 마을이 용머리 앞에 있어서 생겨난 이름으로 볼 수도 있다. 용평이 용평(龍坪)이라면 본래는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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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 명암저수지 앞 우암산(牛岩山)[338m] 기슭에 있는 사찰. 1936년 법주사 수정암에서 건너온 비구니 보현(普賢) 스님이 창건한 ‘무량사’로 산문을 열었다. 1951년 수명스님에 의해 ‘용두사’로 절 이름을 바꿨으나 요사를 겸한 인법당에서 예불을 올리는 수준이었다. 1978년 현재 교단 용화불교의 교령인 자성존스님이 주석하면서 ‘미륵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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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사직동 무심천(無心川) 변에 있는 평지 사찰. 상량문에 따르면 고종(高宗)의 후궁인 순빈 엄씨의 꿈에 물에 잠겨 있는 미륵불이 나타나 구해주기를 청했는데, 청주군수 이희복도 비슷한 꿈을 꾸었다. 며칠 뒤 청주군수에게 꿈에 본 7체불을 자세히 조사해 보라는 엄비의 명이 내려왔다. 이에 무심천(無心川) 풀숲에서 묻혀있는 7구의 불상을 발견해 엄비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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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사직동의 용화사 미륵보전에 봉안되어 있는 7구의 불상. 용화사의 미륵보전 안에 봉안된 이 석불상군은 모두 7구의 석불로 미륵칠체불 또는 칠존미륵불로 불려지기도 하나 본래는 운천동·사직동 일대에 방치되어 있었던 석불들을 1902년(광무 6)에 용화사(龍華寺)를 창건하면서 옮기어 봉안한 것이다. 따라서 칠존불로 동시에 조성된 것은 아니며 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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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사직동 용화사 경내에 있는 석탑. 층급받침은 3단이나 각 단이 높고 넓은 것이 특징이다. 초층탑신석(初層塔身石)은 1매(一枚)로 조성되었다. 전면(前面)에는 우주(隅柱)가 없고 중심부에는 방형(方形)의 감실(龕室)이 마련되었으며 나머지 3면(面)에는 우주가 각출(刻出)되어 있다. 초층 지붕돌[옥개석(初層屋蓋石)]과 2층 탑신석(二層塔身石)은 1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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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사직동의 용화사 미륵보전에 봉안되어 있는 7구의 불상. 용화사의 미륵보전 안에 봉안된 이 석불상군은 모두 7구의 석불로 미륵칠체불 또는 칠존미륵불로 불려지기도 하나 본래는 운천동·사직동 일대에 방치되어 있었던 석불들을 1902년(광무 6)에 용화사(龍華寺)를 창건하면서 옮기어 봉안한 것이다. 따라서 칠존불로 동시에 조성된 것은 아니며 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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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사직동의 용화사 미륵보전에 봉안되어 있는 7구의 불상. 용화사의 미륵보전 안에 봉안된 이 석불상군은 모두 7구의 석불로 미륵칠체불 또는 칠존미륵불로 불려지기도 하나 본래는 운천동·사직동 일대에 방치되어 있었던 석불들을 1902년(광무 6)에 용화사(龍華寺)를 창건하면서 옮기어 봉안한 것이다. 따라서 칠존불로 동시에 조성된 것은 아니며 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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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 줄여서『직지』는 흥덕사에서 1377년에 금속활자로 간행한 책의 이름이다. 원 제목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이다. 이 책의 이름을 줄여서『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 『직지심체(直指心體)』, 『직지』 등으로 부르고 있다. 1972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주최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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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시 상당구 석교동의 육거리시장 내의 도로 지하에 매몰되어 있는 돌다리 남석교(南石橋)는 전국적으로도 유명한 재래시장인 육거리시장 내의 도로 지하에 매몰되어 있는 돌다리로서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조선시대 이전의 다리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석교이다. 옛 청주읍성의 중앙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성안길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무심천(無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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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내둔리에 위치한 시민단체. 사라진 밀농사를 되살림으로써 죽어가는 우리땅과 밥상을 살리는 생명운동, 농민과 소비자가 힘을 합쳐 보람과 이익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운동, 주름살 깊은 농촌과 비어 있는 들녘을 황금물결로 채워내는 고향살리기운동, 오염된 공기를 맑게 하고 생태계의 균형을 이뤄내는 환경보전운동, 우리 밥상을 우리 것으로 차리는 민족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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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화동에 위치한 근대에 건립된 주택. 청주시 상당구 대성동과 문화동의 경계가 되는 언덕 아래에 있으며 건립 당시 45도 경사의 물매 지붕을 갖고 있어, 청주지역의 어느 장소에서도 쉽게 눈에 띄는 뾰족 양철지붕이었다. 양식 및 일식 주택의 평면구성을 보이며, 지붕의 사면이 박공 형태로 이루어진 ‘+’자형 사모임 지붕으로 이루어진 주택건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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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보름날 아침에 우물물을 뜨는 풍속. 정월 15일 새벽에 남보다 먼저 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 온다. 이런 행위를 보통 ‘용알 뜨기’라고 하는데, 청주에서는 ‘우물물 뜨기’라고 한다. 보름날 뜨는 물을 ‘용알 뜨기’라고 한 것은, 14일 밤에 천상에 있던 용이 지상에 내려와 우물에 알을 낳는다는 속신 때문으로 여겨진다. 이 물로 밥을 지어 먹으면 그 해 운수가 대통하고 농사가 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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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시 상당구 동편에 위치하는 청주의 진산이며 문화유적의 보고. 청주시의 동편에 위치하는 우암산(牛岩山)[338m]은 청주의 진산(鎭山)으로 청주시의 명암동, 내덕동, 우암동, 수동, 대성동, 문화동, 용암동에 걸쳐 있고 그 지맥이 탑동에까지 미치고 있으며, 해발 338m의 정상을 중심으로 남과 북 3좌의 연봉과 중앙초등학교 동쪽의 당산(唐山)에까지 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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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우암동에 있는 한국기독교장로회에 속하는 교회. 1920년 5월 15일에 청주제일교회에 다니던 나정일이 청주군 사주면 외덕리의 집에서 예배를 보게 된 것이 시작이다. 1920년 5월 15일 나정일이 자신의 집에서 교인 몇 명이 모여 예배를 보다가 교세가 점차 증가함에 따라 자택을 증축하여 예배당으로 사용하였다. 2년 후에 함태영 목사와 선교사의 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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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에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덕벌 바깥쪽이 되므로 바깥덕벌 또는 외평동이라 불렸는데, 1935년 청주읍에 편입될 때 우암산(牛岩山)[338m]에서 이름을 따서 우암동이 되었다. 우암산(牛岩山)[338m]과 용암사(龍岩寺)에서 각각 한 글자씩 따서 우암동이라고 하였다는 설도 있다. 본래 청주군 북주내면(北州內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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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우암동의 동부경찰서 내에 있는 불상. 청원구 우암동 청주동부경찰서 내에 있는 이 불상은 원래의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청주경찰서가 상당구 북문로2가에 있을 당시부터 경찰서 내의 정원에 다른 괴석, 동자상과 함께 있었는데, 경찰서를 지금의 위치로 이전하면서 함께 옮겨졌다. 이 불상에 대한 문헌자료나 조사기록이 전혀 없어 원위치는 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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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원평동에 있는 사회복지법인. 우암복지재단은 재가노인복지시설로 노인복지와 지역사회복지사업을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이다. 산업화와 의술의 발전으로 평균수명이 연장됨으로써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였고 이에 따른 노인복지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에 노인복지사업과 지역사회복지사업을 수행하고 국민건강증진 및 치료상담, 교육사업 등을 통하여 사회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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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의 우암동, 내덕동, 대성동, 용담동, 명암동에 걸쳐 있는 산. 이 산은 삼국시대에는 백제 상당현의 치소로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고 신라 신문왕 9년(689)에는 우암토성을 축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산은 정상을 중심으로 북쪽과 남쪽의 3개 봉우리를 거쳐 남서방향으로 뻗어 내린 서쪽의 능선, 그리고 정상에서 동쪽으로 분기했다가 서쪽의 능선과 거의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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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의 우암동, 내덕동, 대성동, 용담동, 명암동에 걸쳐 있는 산. 이 산은 삼국시대에는 백제 상당현의 치소로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고 신라 신문왕 9년(689)에는 우암토성을 축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산은 정상을 중심으로 북쪽과 남쪽의 3개 봉우리를 거쳐 남서방향으로 뻗어 내린 서쪽의 능선, 그리고 정상에서 동쪽으로 분기했다가 서쪽의 능선과 거의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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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 동편에 위치한 우암산(牛岩山)[338m]에 얽힌 전설. 청주시 상당구에 해발 339m인 우암산(牛岩山)[338m]이 있다. 조선 선조 때 토정(土亭) 이지함(李之函)이 보은으로 가는 길에 충청남도 연기(燕岐)에서 아양산(지금의 부모산, 청원군 강서면과 비하리에 걸쳐 있는 산)에 올라 주변의 지형을 살피던 중 동쪽에 산세(山勢)가 예사롭지 않은 산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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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수동 우암산 기슭에 있는 국궁 전수 및 체험 시설. 우암정은 충북궁도협회가 운영하는 사정(射亭)이다. 사정이란 활을 쏘기 위해 세운 정자를 의미하는데 과거에는 여기에서 국왕이 사열을 받거나 활쏘기 시합을 하여 상을 주었다. 현대적인 의미의 사정은 사정을 중심으로 한 궁도 단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국궁의 전통을 잇고 심신을 수련함을 목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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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내덕동과 율량동 사이의 찬샘이 있는 우암산(牛岩山)[338m] 골짜기. ‘찬샘’을 일명 ‘옻샘’이라고도 한다. 샘물이 아주 차서 ‘찬샘’이라 한 것이고 옻과 같은 피부병을 치료하는데 약효가 뛰어나서 ‘옻샘’이라고도 한다. ‘찬샘’의 부근을 ‘찬샘거리’라고 하는데 점차 지시영역이 넓어져 그 거리의 주변은 물론 샘이 있는 골짜기까지도 포괄하여 지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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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우암동에 위치하고 있는 공립 초등학교. 바른생활습관을 익혀 민주시민의식을 갖춘 도덕인, 기초기본학습을 충실히 하여 탐구학습능력을 갖춘 창조인, 체력단련과 보건위생 생활을 하는 건강인, 절제생활의 실천으로 근검절약하는 생활태도를 갖춘 경제인, 투철한 국가관을 길러 이웃과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과 태도를 갖춘 세계인을 육성하여 예절바르고 슬기로우며 씩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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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업무를 담당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 소속하의 행정기관. 청주지역의 우편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청주우체국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 지역우정청산하 관할기관으로 우편사업 및 우체국 금융사업을 총괄하고 우편물(통상우편물, 소포우편물)을 접수, 배달하는 기본 우편업무를 제공하고 우체국 예금, 우편환, 우편대체 업무를 취급하는 장소이다. 우체국은 우편물의 접수,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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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정봉동에 있었던 옛 마을. ‘우터울’로 발음하기도 하고 ‘셋집매’라 부르기도 한다. ‘웃터울’은 ‘웃터골’의 변형이다. ‘웃터’는 위에 있는 ‘터’이고 ‘골’은 골짜기 또는 마을의 뜻으로 ‘웃터골’은 ‘웃터’가 있는 골짜기 또는 마을로 해석된다. ‘웃터굴’은 지역에 따라 ’웃터걸‘, ‘위텃굴’, ‘윗텃골’ 등으로도 나타난다. ‘셋집매’는 세 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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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운동동에 있는 경주이씨(慶州李氏)의 사우. 1871년(고종 8)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된 전라북도 남원의 어은사(漁隱祠)에서 모시던 월성군 이청(李亻菁)[1274~?]과 광주의 두암서원(斗岩書院)에 배향된 이감(李堪), 이흘(李忔)[1568~1630], 이필경(李必慶)[1667~?] 등 경주이씨 인물들을 제향하기 위하여 1944년에 경주이씨 국당공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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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운동동에 있는 경주이씨(慶州李氏)의 사우. 1871년(고종 8)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된 전라북도 남원의 어은사(漁隱祠)에서 모시던 월성군 이청(李亻菁)[1274~?]과 광주의 두암서원(斗岩書院)에 배향된 이감(李堪), 이흘(李忔)[1568~1630], 이필경(李必慶)[1667~?] 등 경주이씨 인물들을 제향하기 위하여 1944년에 경주이씨 국당공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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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암2동에 속하는 법정동.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남일하면(南一下面) 방동리(方東里), 방서리(方西里), 백운리(白雲里) 각 일부와 산내이하면(山內二下面)의 하월리(下月里) 일부를 병합하여 백운과 방동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운동리라고 명명하였다. 본래 청주군 남일하면에 속한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방동리, 방서리, 백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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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운동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유물이 출토된 유적지. 유물산포지에서 돌낫·숫돌·민무늬토기조각 등을 수습하였다. 흥덕구 운동동 운동초등학교와 부영아파트 사이에는 동-서로 정상부와 남사면에 짧게 남아 있는 능선이 있다. 유적은 운동초등학교 바로 뒤편의 능선 정상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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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운동동에 있는 공립 중학교. 창의력 신장과 조화로운 학력 제고를 위한 질 높은 교육,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는 건전한 인성을 기르는 인격 교육, 건강한 신체와 심미적 정서를 함양하는 교육, 자연을 사랑하며 자원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교육, 시대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창의적 교육을 통해 창의적 지식과 고운 품성이 조화된 학생 육성을 교육목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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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운동동에 위치하고 있는 공립 초등학교. 건전한 가치관을 확립하고 고장과 나라를 사랑하며 참되고 예절바른 어린이, 스스로 깨닫고 실천할 수 있으며, 근검, 절약하고 물자를 아끼는 어린이, 자기 주도적이고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며, 기초 기본 학습 능력을 충실히 하는 어린이, 스스로 탐구하며 새롭게 생각하고, 21세기를 주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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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가. 부인은 여류화가 박래현이다. 1913년 2월 28일 서울에서 출생하여, 7세에 장티프스로 청각을 잃고, 부모의 도움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2001년 1월 23일 충청북도 청원군 내수읍 형동리 ‘운보의집’에서 향년 86세에 숙환으로 죽었다. 승동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이당화숙(以堂畵塾)에서 김은호(金殷鎬)에게 그림을 배워 6개월만에 「판상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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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사직동에 있던 큰 샘 및 마을. ‘구루물’은 ‘구름물’이라고도 하며 한자로는 운천(雲泉)이라 한다. ‘구루물’이 ‘운천(雲泉)’으로 바뀌었다는 점에서 ‘구루’를 ‘구름’으로 보는 것이다. 또한 우리말에는 ‘구름’이라는 말을 ‘많다’는 의미의 수식어(예: 구름처럼 몰려드는 사람들)로 많이 쓰이기 때문에, ‘구루물’은 ‘물이 풍부한 샘’으로 해석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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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에 있는 근린공원. 운천동과 신봉동 사이에 있는 공원인데, 전체 면적으로 보면 운천동에 속한 지역이 더 넓고, 운천동이 더 먼저 개발되었기 때문에 운천동의 동명을 따서 운천공원이라 하였다. 이곳은 사유지이기 때문에 흥덕로에 면한 일부 지역만 개발이 이루어졌고, 공원 내부에는 간단한 체력단련 시설만 갖추어져 있다. 즉 아직 본격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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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의 운천동·신봉동에 속하는 법정동. 본래 청주군 서주내면(西州內面)의 지역으로서 큰 우물이 있으므로 구루물 또는 운천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산직리(山直里), 하봉리(下鳳里), 사창리(司倉里)의 각 일부와 북주내면(北州內面)의 외덕리(外德里) 일부를 병합하여 운천리라 해서 사주면(四州面)에 편입되었다가 1935년에 다시 청주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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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 무심천변에 위치한 절터. 문헌기록(文獻記錄)에 전혀 나타나지 않아 절 이름과 연혁은 알 수 없어 이 절터가 위치한 동명을 따서 ‘운천동사지(雲泉洞寺址)’라고 부르고 있다. 운천동사지(雲泉洞寺址)는 1970년에 이곳에 민가(民家)를 건축하던 중 청동으로 만든 범종(梵鐘) 안에 금동보살입상(金銅菩薩立像), 구양사명(句陽寺銘) 금고(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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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 속칭 산직말에 위치한 절터. 택지개발 전에는 마을의 민가(民家)에서 절터(寺址)의 유구(遺構)로 보이는 치석(治石)한 주초석(柱礎石)들이 있었다. 이곳은 1982년 3월 운천동 449번지에서 사적비(寺蹟碑)가 발견되면서 알려졌다. 청주 운천동 사적비(淸州雲泉洞寺蹟碑)라고 명명된 이 사적비는 원래의 위치에서 자주 옮겨진 상태로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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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 속칭 산직말에 있었던 사적비. 1982년 3월에 운천동의 속칭 산직말이라는 곳에서 발견된 신라시대(新羅時代) 비석이다. 이 비석(碑石)은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적비(寺蹟碑)이다. 이 비(碑)는 정방형(正方形)의 형태로 3면에 비문(碑文)이 새겨져 있다. 규모는 높이 92㎝, 너비 91㎝, 두께 15~20㎝이며 재질은 화강암(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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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에서 출토된 통일신라 시대의 범종. 무심천변 절터에서 1970년 민가의 담장을 쌓던 중에 동종, 금고, 향로, 금동보살입상 등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운천동출토 동종은 통일신라 시대의 일반적인 크기와 형태를 갖춘 범종으로서 문양조식이 없는 구연대(口緣帶)를 두르고 유곽(乳廓) 사이에는 당좌(撞座)가 표현되었다. 당좌는 내외의 2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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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봉명동 470-1번지 일대에 있는 재래시장. 위치는 봉명동이나 관습적으로 ‘운천동 시장’이라 부른다. 이는 운천동 농수산물시장의 파급효과로 해석된다. 운천동은 흥덕대교에서 신봉동 4거리에 이르는 동네인데 이와 이웃한 봉명동에서 시장이 개설되어 그냥 운천동 시장이라 칭한다. 1976년에 형성된 소 생활권 주택밀집 지역시장으로 농수산물시장과 간선도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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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에 위치하고 있는 공립 초등학교. 여섯 가지의 교육목표를 가지고 있다. ‘생활에 필요한 규칙과 질서를 지키고 예의바르며 서로 돕는 도덕적인 어린이를 기른다, 주인으로서 자립에 필요한 자질을 갖고 민주시민의식을 가진 나라와 이웃을 사랑하는 자주적 어린이를 기른다, 개인의 수준과 능력에 맞는 교육과정의 운영으로 자기 주도적 학습력이 높은 실력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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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모충동에 있는 일반계 사립고등학교. ‘신뢰 받는 학교, 즐거운 학교, 긍지가 넘치는 학교’라는 서원학원의 슬로건 아래 ‘자율, 근면, 정직’을 교훈으로 하여 “나라와 겨레를 사랑하는 위대한 한국인을 기른다(애국인), 국민정신 함양으로 선진 조국의 민주 시민을 기른다(민주인), 지·덕·체의 도야로 조화로운 생활인을 기른다(인격인), 자율적 탐구 학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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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모충동에 위치하고 있는 사립 중학교. ‘옳게 배우고 참 되게 행하는 패기 있고 성실한 학생’을 그리는 인간상으로 ‘나라를 사랑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충효인, 전인교육의 강화로 균형 있는 조화인, 과학기술을 익히고 기본 학력을 갖춘 창의적인 능력인, 정의와 질서를 사랑하고 이웃에 봉사하는 봉사인, 건전한 심신을 길러 강인한 의지력을 갖춘 건강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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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및 충청북도를 근간으로 전국적·국제적 활동을 하고 있는 풍물연희단체. 문화예술교육 활동 및 창작전통연희공연 개최하여, 국제교류 활동을 통한 우리의 전통문화의 계승과 보급을 목적으로 한다. 청소년 및 시민을 대상으로 우리문화교육을 폋리고 있다. 청소년 풍물 동아리를 지원하고 각종 창작전통연희공연을 기획, 개최하고 있으며, 국제 교류를 통해 우리의 전통 풍물 문화를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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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외북동에 있는 마을. ‘북리’라고도 한다. ‘북리’는 산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붙어진 이름이다. ‘웃골’은 위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지역의 사람들은 마을이 높은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서 붙어진 이름으로 이해하고 있다. ‘북리’의 동쪽에는 동리의 규모가 크다는 뜻에서 이름이 붙어진 '큰말‘이 있고 서쪽에는 규모가 작다는 ‘작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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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있는 마을. 창말은 산성동 성내 서편에 있는 마을로 웃말이라고도 한다. 웃말은 성안의 위쪽에 있는 마을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같은 성 안에 아랫말도 있다. 아랫말은 성안의 아래쪽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창말의 창은 창(倉)을 의미한다. 창은 곳집(곳간으로 지은 집)을 뜻하고, 말은 마을의 뜻이다. 그러므로 창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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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사창동에 있었던 마을. ‘웃말’은 ‘웃’과 ‘말’로 구분된다. 지명에서 자연물이 아닌 위치로 나타내는 말이 선행요소나 후행요소로 쓰인 예가 많다. 예를 들면 앞, 뒤, 위, 아래 등이다. 따라서 ‘웃말’은 ‘위쪽에 있는 마을’로 보면 된다. 내수동길 위쪽에 있는 마을로, 제1순환로를 따라 사직로와 만나는 사천교사거리 방향으로 가다가 사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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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있는 마을. 일명 ‘창말’이라고도 한다. ‘웃말’은 성안의 위쪽에 있는 마을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창말’의 ‘창’은 ‘倉’이다. ‘창’은 ‘곶집’을 뜻하고, ‘말’은 ‘마을’의 뜻이다. 그러니 ‘창말’은 ‘창이 있는 마을’로 해석된다. ‘창말’은 청주 상당산성의 ‘창’이 있던 마을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전국에 ‘창말’이라는 지명이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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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정봉동에 있었던 옛 마을. ‘우터울’로 발음하기도 하고 ‘셋집매’라 부르기도 한다. ‘웃터울’은 ‘웃터골’의 변형이다. ‘웃터’는 위에 있는 ‘터’이고 ‘골’은 골짜기 또는 마을의 뜻으로 ‘웃터골’은 ‘웃터’가 있는 골짜기 또는 마을로 해석된다. ‘웃터굴’은 지역에 따라 ’웃터걸‘, ‘위텃굴’, ‘윗텃골’ 등으로도 나타난다. ‘셋집매’는 세 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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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원주(原州)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을 거쳐 조산만호, 부령부사, 종성부사 등 북쪽 변방에서 재직하며 오랑캐를 격파하는데 공이 컸다. 1592년(선조 25) 경상우수사가 되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퇴하였다. 흩어진 군사를 모으고 전열을 수습하여 원병인 이순신(李舜臣)의 전라좌수군과 연합하여 옥포(玉浦), 당포(唐浦) 등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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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성화동에 있는 마을. 본래 마을로 그저 ‘농촌’이라고도 한다. 원농촌(原農村)의 ‘원’을 ‘원(元)’으로 쓰고 있으나, 이 마을이 농촌들의 본래 마을이라는 점에서 보면 ‘원(原)’으로 써야 할 것이다. 원농촌(原農村)은 농촌동의 원 마을로 1990년 4월 1일 농촌동이 성화동으로 바뀌었다. 본래 청주군 남주내면(南州內面)의 지역으로서 저산성 산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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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성화동에 있는 신당. 흥덕구 성화동 원농촌(原農村)마을 입구에 잡석을 쌓은 2m 20㎝ 높이, 10m 둘레의 돌탑과 100년이 안 된 소나무로 이루어진 신당이다. 현재 위치에서 길 건너 있던 서낭이 1984년 수자원공사의 수로관이 묻히면서 현재 원농촌(原農村)마을 입구로 옮겨 자리 잡았다. 원래는 지금의 돌탑보다 약 50㎝ 정도 더 높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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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두절(流頭節)을 기해 참외밭에서 풍년을 기원하는 세시의식. 일종의 기풍제(祈豊祭)로서 흔히 ‘외제’라고 한다. 기풍제는 크게 답제(畓祭)와 전제(田祭)로 나눌 수 있다. 전자로서 용신제(龍神祭), 농신제(農神祭), 논굿, 논고사, 유두고사, 유두제 등이 전승되고 있으며, 후자로서 외제, 수박제, 등이 전국적으로 광포하여 전승되고 있다. 참외가 영글 무렵에 참외밭에서 직접 국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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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분평동에 있었던 마을. ‘원마루’의 ‘원(院)’은 고려 및 조선시대에 역(驛)과 역(驛) 사이에 두어 출장 관리들이 유숙하던 여관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청주성 남쪽 6리에 ‘인제원(仁濟院)’이 있었다는 기록이 나오는 것을 보면, ‘원마루’의 ‘원’은 ‘인제원’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원마루’의 ‘마루’는 높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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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분평동 1315번지[원마루로14번길 2] 일대에 있는 재래시장. 분평동을 ‘원마루’라고 부르는 것은 고려, 조선시대에 이곳에 원(院)이 있었기 때문이다. 원은 관리들이 지방출장시 묵었던 관영 여관이다. 광혜원(廣惠院), 미원(米院) 등 지명에 원(院)자가 들어가는 곳은 모두 원이 있던 곳으로 이러한 연유로 시장명칭이 유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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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분평동에서 개최되는 지역 축제. 원마루축제는 도농복합주거형태인 산미분장동의 독특한 주거 특성에 따라,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는 화합의 장 마련이라는 대주제로 축제를 진행하고 있다. 2000년 10월에 제1회 행사를 개최하였으며 지역 문화공동체 창출 및 지역주민 화합, 경로효친 사상 함양, 도·농 화합을 위해 주민자치위원회 주관으로 원마루축제추진위원회에서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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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비하동에 위치한, 순천박씨(順天朴氏) 문중(門中)에서 배출한 관료(官僚)들을 제향하는 사우(祠宇). 신라~조선시대까지 순천박씨 문중(門中)에서 배출한 8명의 관료(官僚)를 제향(祭享)하기 위해서 세운 제단(祭壇)이다. 위패비(位牌碑)는 오른쪽부터 “新羅江南大君朴公彦智之壇(신라강남대군박공언지지단: 신라강남대군 박언지(朴彦智)의 단)”, “高麗三重大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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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에 있는 산과 마을. 원봉은 산 또는 마을 이름으로 볼 수 있다. 먼저 원봉을 용암동에 있는 산으로 보는 경우이다. 지금의 용암2지구에 해당한다. 원봉(圓峰)으로 추정된다. 산봉우리가 둥근 모양을 하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이산에는 빨간 황토흙이 많은데, 예전에 이 흙을 이용하여 옹기를 구웠다고 한다. 전국에는 원봉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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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에 있는 공원. 원봉공원은 근린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면적은 340,419.1㎡이다. 1990년부터 공원 조성을 계획하여 1995년 5월 31일에 준공되었다. 뒤로는 높은 낙가산이 자리잡고 있으며, 이 산지의 산록이 아래쪽까지 펼쳐져 있고, 시내 가까이에 와서는 원봉이 구릉으로 남아 있다. 바로 이 원봉의 주위에 원봉마을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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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에 위치하고 있는 공립 중학교. 전통문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사람, 건전한 가치관과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여 예절을 존중하는 사람, 체력을 단련하고 정서를 순화하여 심신이 건강한 사람, 다양한 체험과 특기를 바탕으로 미래를 개척하는 사람을 길러 스스로 배우고 더불어 생활하는 참된 학생을 육성한다. 1995년 3월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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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에 위치하고 있는 공립 초등학교. 자신의 소질과 특기를 남과 다르게 가꿀 줄 아는 어린이, 기초기능을 갖추어 생각이 깊고 창의적인 생활을 하는 어린이, 다양한 학습경험을 토대로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는 어린이, 우리고장의 특수성을 알고 지역발전에 공헌하는 어린이, 민주시민의식을 익혀 공동체 발전에 기여할 줄 아는 어린이를 길러 참되고 슬기롭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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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신불 일원상(法身佛 一圓相)을 궁극적 진리로 하여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에 의해 창설된 종교단체. 원불교 교조인 소태산 박중빈[1891~1943]은 1916년 26세에 큰 깨달음을 얻은 후 저축조합과 간척사업으로 경제적 기초를 닦으며 일원상 진리를 종지로 한 「사은사요(四恩四要)」의 신앙문과 「삼학팔조(三學八條)」의 실천문을 마련하였다. 1924년에는 불법연구회를 창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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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탑동에 있는 원불교 신도들의 교당. 일제강점기에 일본 불교의 사찰로 건축되어 사용되다가 광복 후 군부대의 사무실로 사용되었다. 1970년 3월 청주 원불교로 개칭하였고 1971년 6월 11일 초대 이재경 교무가 부임하였고 1973년 9월 3일 국방부로부터 여러 건물과 부지를 매입하여 현 위치에 이사하였다. 1974년 5월 20일 마루를 깔고 천장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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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력기원전후로부터 기원후 300년까지의 시기를 지칭하는 시대구분의 명칭. 한국고고학에서 사용되는 시대구분 명칭으로, 1970년대 초에 생겨났는데 초기철기시대에 뒤이은 시기를 말한다. 원삼국시대는 종래 고고학에서 김해(金海)시대, 웅천기(熊川期), 또는 초기철기시대 등으로 불려왔고, 역사학에서의 삼한시대, 군장국가, 성읍국가 등이 이에 해당되지만, 삼국시대의 원초기(原初期), 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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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송절동에 있는 마을. ‘원송절’의 ‘원’은 원(原)을 말한다. ‘송절’의 원래 마을이라서 붙어진 이름이다. ‘송절’은 ‘속절’이 변한 것이다. ‘속절’의 ‘속’은 ‘내(內)’의 뜻이며 ‘절’은 ‘사(寺)’의 뜻이다. ‘속절’은 안쪽에 있는 절로 해석되어 골짜기의 깊은 곳에 절이 있어서 붙어진 이름이다. ‘솔절’은 ‘송절(松節)’로 쓰고 있으나 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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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내곡동에 있는 들. ‘원안기슭가지’는 1차적으로 ‘원안’과 ‘기슭가지’로 분석된다. ‘원안’이나 ‘언안’은 전국에서 발견되는데, 대부분 ‘둑 안’이란 뜻을 가진다. 지역에 따라서는 ‘원안’이나 ‘언안’이 ‘언내(堰內)’와 함께 사용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둑 안’을 뜻하는 ‘원안’은 ‘언안’의 변화형으로 볼 수 있다. 원래 ‘언(堰)’은 ‘보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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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분평동에 있었던 마을. ‘원마루’의 ‘원(院)’은 고려 및 조선시대에 역(驛)과 역(驛) 사이에 두어 출장 관리들이 유숙하던 여관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청주성 남쪽 6리에 ‘인제원(仁濟院)’이 있었다는 기록이 나오는 것을 보면, ‘원마루’의 ‘원’은 ‘인제원’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원마루’의 ‘마루’는 높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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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서2동에 속하는 법정동. 신원들(新院-)이 있어서 원들 또는 원평(院坪)이라 하였다. 본래 청주군(淸州郡) 서강내일상면(西江內一上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문암리(文岩里) 일부 및 서주내면(西州內面)의 원평리(院坪里)를 합쳐 원평리(院坪里)라 명명하고 강서면(江西面)에 편입되었다. 1983년 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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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원평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유물이 출토된 유적지. 흥덕구 원평동 벌독정이와 큰독정이마을 중간쯤에 남동-북서방향으로 뻗은 능선이 있으며, 남서향으로 완만하게 경사진 능선 사면부분은 개간하여 밭으로 경작되고 있다. 이 밭 일대가 유물산포지이다. 이 유물산포지에서는 그릇모양을 알 수 없는 적은 양의 민무늬토기 조각들이 발견되었다. 민무늬토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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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분평동에 위치하고 있는 공립 중학교. ‘밝은 마음으로 바르게 행동하는 원평인’을 그리는 인간상으로, ‘나라와 이웃을 사랑하는 공동체 의식을 지닌 자주인, 효경생활을 실천하며 봉사정신을 지닌 도덕인, 소질과 적성을 계발하여 탐구능력을 지닌 창조인, 학력을 신장하여 21세기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실력인, 심신을 단련하여 건전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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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분평동에 위치하고 있는 공립초등학교. 자신의 소질과 특기를 남과 다르게 가꿀 줄 아는 어린이, 기초기능을 갖추어 생각이 깊고 창의적인 생활을 하는 어린이, 다양한 학습경험을 토대로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는 어린이, 우리고장의 특수성을 알고 지역발전에 공헌하는 어린이, 민주시민의식을 익혀 공동체 발전에 기여할 줄 아는 어린이를 길러 정직하고 튼튼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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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산남동에 있는 마을. 원현리(元峴里)의 ‘원현(元峴)’은 큰 고개라는 뜻이다. 이 마을 너머로 구룡산(九龍山)[163.6m]의 한 줄기인 큰 고개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이 마을은 흔히 ‘원흥이’라고 불리운다. 구릉성 산지인 구룡산(九龍山)[163.6m] 일대에는 구룡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동쪽 계곡에는 원흥이 방죽과 산남 방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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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산남동에 있는 방죽. ‘원흥이 방죽’의 ‘원흥이’는 산남동에 있는 마을 이름으로서 원현리(元峴里)라고도 한다. 그런데 원흥(元興)의 어원은 알 수가 없다. 일설에 의하면 조선 중기 영조 때 사도세자를 죽이는데 주동적인 역할을 하고 고을 원(員: 한성 판윤)을 지낸 광산김씨 대감이 낙향하여 살았다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도 하고, 원(元)씨가 세운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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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화계동에 있는 마을. ‘말골’, ‘큰말’이라고도 한다. 요즘은 주로 ‘화계’ 또는 ‘큰말’이라고 하고 ‘말골’이라는 지명은 잘 쓰이지 않는다. ‘원화계’의 ‘원(元)’은 원래의 마을을 지시할 때에는 그 마을 이름 앞에 붙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말골’은 ‘말’은 ‘큰’의 뜻이며 ‘골’은 골짜기의 뜻이다, ‘말골’은 큰 골짜기로 해석된다. 이 골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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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산남동에 있는 마을. 원현리(元峴里)의 ‘원현(元峴)’은 큰 고개라는 뜻이다. 이 마을 너머로 구룡산(九龍山)[163.6m]의 한 줄기인 큰 고개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이 마을은 흔히 ‘원흥이’라고 불리운다. 구릉성 산지인 구룡산(九龍山)[163.6m] 일대에는 구룡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동쪽 계곡에는 원흥이 방죽과 산남 방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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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산남동에 있는 방죽. ‘원흥이 방죽’의 ‘원흥이’는 산남동에 있는 마을 이름으로서 원현리(元峴里)라고도 한다. 그런데 원흥(元興)의 어원은 알 수가 없다. 일설에 의하면 조선 중기 영조 때 사도세자를 죽이는데 주동적인 역할을 하고 고을 원(員: 한성 판윤)을 지낸 광산김씨 대감이 낙향하여 살았다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도 하고, 원(元)씨가 세운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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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산남동 원흥이방죽에 있는 생태공원. 두꺼비생태공원은 전국 최초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 안에 조성된 생태공원이다. 33만 9,600여 평에 아파트 4,900여 가구가 들어선 산남3지구 택지개발지역 내 원흥이방죽 주변에 조성되었다. 두꺼비생태공원은 시민들의 힘으로 조성했다는 데 의의가 있으며, 2003년 당시 개발과 보존의 논란 속에서 상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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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운동동에 있는 마을. ‘다리골’은 ‘월골(月-)’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다리어 골’의 ‘다리’를 천체의 ‘달’, 즉 ‘月’로 보고 한자로 바꾼 지명이다. ‘다리골’을 ‘월골’로 바꾸어 놓고 이 마을의 지형이 반달 같아서 생겨난 이름으로 설명한다. 그런데 ‘다리골’의 ‘다리’는 ‘달’(月)과는 무관하고 ‘山’을 뜻하는 ‘달’과 관련되는 것으로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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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신봉동에 있는 마을. 지역민들은 ‘월구리’를 ‘월굴(月窟)’과 접미사 ‘-이’의 결합형으로 본다. 즉 무심천(無心川)이 맑아 달이 뜨면 물빛이 굴 속까지 비친 데서 붙은 이름으로 본다. 그러나 ‘월구리’는 ‘달구리’에서 왔을 가능성도 있다. ‘달구리’는 ‘달’과 ‘구리’로 분석된다. 고구려의 옛 지명 중에 ‘德(덕)’ 또는 ‘達(달)’이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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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의 기독교 구호단체 월드비전의 충청북도 지부 월드비젼은 세계복지기구로 충청북도 청주에서는 1994년에 설립되었으며 월드비전 소명헌장에 따라 인간의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정의를 구현하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구호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1994년 6월 충청북도 청주지회가 창립되었으며, 1995년 2월 용암종합사회복지관을 청주시로부터 위탁운영을 맡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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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의 천도를 기원하는 무가(巫歌)로서 해원풀이(解寃--)의 일종. 무속은 여느 고등종교와 달리 현실에서의 복락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만큼 우리의 전통적 삶이 녹록하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현실의 벽에 의한 좌절, 그리고 그것을 기정사실로 용납하려 하지 않는 미련, 이 사이에서 누구나 크고 작은 한이 맺히게 마련이다. 그런데 해원풀이를 통해 이승의 삶에서 맺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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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봉명동에 조성된 근린공원. 월명공원은 낮은 구릉인 월명산(月明山)[119m] 일대에 조성된 공원이다. 월명산(月明山)[119m]은 산 정산에서 남쪽으로 긴 능선을 형성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능선의 중간 허리에 동서방향으로 도로가 지나면서 공원을 둘로 나누고 있다. 산의 서쪽 기슭에는 월명마을이 있었으나, 지금은 청주산업단지가 둘러싸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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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월오동에 있는 다리. 1993년에 준공되었으며, 공법은 RC슬라브, 중력식이고, 총연장 22.2m, 폭은 4.4m이다. 25번 도로 단재로에서 월운천을 따라 올라오면 2.5㎞ 지점에 위치하는 다리이다. 이 다리는 월오동 골짜기로 가는 도로에서 하니말로 들어가는 월운천 위에 놓여 있는 다리이다. 다리의 규모는 매우 작아 다리의 길이가 짧고 교폭이 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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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암2동에 속하는 법정동. 원래 다리실 또는 월오리(月午里)라 하던 곳이었다. 본래 청주군 산내이하면(山內二下面)에 속한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상월리(上月里), 중월리(中月里) 및 남일상면(南一上面)의 월오리(月午里)와 남일하면(南一下面)의 백운리(白雲里)를 병합하여 월오리(月午里)라 명명하고 남일면(南一面)에 편입되었다.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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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월오동에 있는 느티나무. 상당구 월오동의 월오천 다리를 지나면 마을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이 느티나무는 수령이 350년 이상이고 높이 20m, 나무둘레가 7.6m의 거목으로 수형이 울창하다. 그러나 마을 한가운데는 사람들의 왕래가 잦고 자동차의 소통이 너무 많아 앞으로 각별한 관심이 요망된다. 특히, 이 느티나무 보호수는 성장이 울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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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월오동에 있는 청주시 상당보건소 산하의 보건의료기관.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월오동은 청주 월오지구로 2,532,242㎡이 택지개발 예정지구로 지정돼 본격 개발될 예정이다. 이 지구에는 월오동을 비롯하여 청주시 상당구의 용암동·운동동·용정동·방서동·지북동·평촌동 등 7개 동이 포함되며 대한주택공사를 시행자로 2013년까지 임대 8,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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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월오동에 있는 하천. 월오동과 운동동을 지나가는 하천으로 ‘월오’의 ‘월(月)’과 ‘운동’의 ‘운(雲)자를 따서 만든 지명이다. 상당구 산성동 상봉산과 상봉재를 분수령으로 발원한 월운천은 여러 갈래로 남동류하다가 한 곳으로 집수된다. 이 하천은 선도산을 동쪽으로 하고 남류하면서 말구리재까지 깊고 험한 골짜기를 이룬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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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孔子)를 시조(始祖)로 하며 성리학, 주자학의 정신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상의 변천사, 인물, 유적 모두를 포괄하는 용어. 유교가 우리나라에서 불교에 대항하는 새로운 이념의 철학사상으로 부흥되는 것은 고려 귀족사회의 모순이 첨예화되는 13세기 후반부터이다. 지방 중소지주출신의 관료, 유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개혁집단은 위화도회군 이후 조선 태조(太祖)를 도와 조선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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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지역에 산재한 유교 관련 유적과 유물. 성리학이 수용된 고려 말 이후 현재까지의 유교 관련 유적과 유물을 통해 호서 사림의 역사적 배경과 지역의 역사적 정체성과 인적 구성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 지배층인 양반의 제례(祭禮)와 강학(講學)과 관련된 유적과 유물은 단순한 문화유산에 그치는 것이 아닌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지역에 분포하는 유교 유적·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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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문화(文化)이다. 유흥원(柳興源)의 아들로, 할아버지는 유응명(柳應溟), 증조할아버지는 유운거(柳雲擧), 외할아버지는 노건흠(盧健欽)이다. 청주에 거주하였으며 유학(幼學)으로 1819년(순조 19)에 식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벼슬은 참의(參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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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인 유네스코(UNESCO)가 세계 기록유산 보호에 공헌한 개인 또는 단체를 대상으로 2년마다 주는 상. 시상 후보는 유네스코(UNESCO) 회원국 정부(자국 유네스코(UNESCO) 국가위원회와 협의), 정부간 기구(IGOs), 유네스코와 공식 관계를 맺고 있는 국제 비정부기구(INGOs)가 추천한다. 수상자는 국제심사위원단의 추천을 받아 유네스코(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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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문화(文化)이다. 타고난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웠으며 부모를 극진히 봉양하여 고을 사람들이 모두 감탄하였다. 이러한 효행으로 현종(顯宗) 때 복호(復戶)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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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두절(流頭節)에 새로 난 과일이나 농산물을 조상에게 먼저 올리는 세시의식. 유두절에는 햇밀가루로 국수와 떡을 마련하고 새로 익은 참외와 수박으로 유두차례(流頭茶禮)를 올린다. 피, 기장, 조, 벼 등을 종묘에 천신(薦新)하기도 하는데, 이를 ‘유두천신(流頭薦新)’이라고 한다. 이렇게 새 곡식이나 새 과일이 생산되면 조상에게 먼저 예를 올린 후에 먹었다. 한편 유두절에 선비들은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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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두절(流頭節)에 새로 난 과일이나 농산물을 조상에게 먼저 올리는 세시의식. 유두절에는 햇밀가루로 국수와 떡을 마련하고 새로 익은 참외와 수박으로 유두차례(流頭茶禮)를 올린다. 피, 기장, 조, 벼 등을 종묘에 천신(薦新)하기도 하는데, 이를 ‘유두천신(流頭薦新)’이라고 한다. 이렇게 새 곡식이나 새 과일이 생산되면 조상에게 먼저 예를 올린 후에 먹었다. 한편 유두절에 선비들은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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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儒學)의 도를 닦는 학자. 청주에서는 1570년(선조 3)에 신항서원이 호서에서 두 번째로 세워질 정도로 사림들이 자리잡혀 갔고 임진왜란 때 청주읍성의 수복에도 크게 공헌하였다. 유림(儒林)은 유학의 도(道)를 닦는 학자로써 흔히, 사림(士林)을 일컫는다. 사림이란 용어는 고려말(高麗末)·조선초(朝鮮初)의 시기에도 간혹 쓰였으나, 중종조 무오사화 이후 사화가 거듭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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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언론인·독립운동가·문인.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호는 일편단생(一片丹生), 단생(丹生) 혹은 단재(丹齋)이다. 1880년 12월 8일 충청남도 대덕군(大德郡) 산내면(지금의 대전광역시 중구 어남동)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필명은 금협산인(錦頰山人), 무애생(無涯生), 열혈생(熱血生), 한놈, 검심(劍心), 적심(赤心), 연시몽인(燕市夢人) 등이다. 조선시대 신숙주(申淑舟)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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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자는 덕초, 호는 청매당이다. 사인(舍人) 유자빈(柳自濱)의 증손이며, 상의원 별제 유임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썼으며, 지조가 고결하였다. 선조 때 영릉참봉이 되었다. 광해군 때에 참봉(參奉)에 음제(蔭除)되었다가 폐모론(廢母論)이 일자 벼슬을 버리고 충청북도 청원군으로 내려와 살았다. 효행이 뛰어났었다. 인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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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시장은 고유의 전통시장으로 정기시, 상설시, 노점상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시대에 따라 그 정의가 바뀌어져 왔는데, 산업자원부가 발간한 자료에 의하면 일정구역 안의 건물 또는 지하도에 설치된 다수의 점포시설에서 도·소매업자 및 용역업자가 상시 또는 정기적으로 모여 상품을 매매하거나 용역을 제공하는 장소로서 근대적인 유통기능이 취약하여 경영 현대화 및 정보화를 필요로 하거나 건물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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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에 있는 마을. 일명, ‘유성기’라고도 하나 ‘유성지’가 더욱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다. ‘유성지’는 ‘유성기’의 변형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마을에 유씨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살아서 붙어진 이름으로 설명하나 신빙성이 없다. ‘유성기’의 ‘유성 ’의 어원은 잘 드려나지 않으나 ‘유성(柳城)’이 아닐까 추정된다. 이렇게 추정하는 것은 이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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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에 있는 마을. 일명, ‘유성기’라고도 하나 ‘유성지’가 더욱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다. ‘유성지’는 ‘유성기’의 변형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마을에 유씨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살아서 붙어진 이름으로 설명하나 신빙성이 없다. ‘유성기’의 ‘유성 ’의 어원은 잘 드려나지 않으나 ‘유성(柳城)’이 아닐까 추정된다. 이렇게 추정하는 것은 이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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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문신·예술가. 초명은 인(仁)이다. 어려서 과거에 합격하여 청근(淸謹)으로써 이름이 높았다. 기거사인(起居舍人)을 거쳐 청주목사가 되었는데,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이 공경하였다. 1087년(선종 4)에 예빈소경으로 있으면서 고주사(告奏使)가 되어 요나라에 다녀왔고, 1093년에는 공부시랑으로 사은부사(謝恩府使)가 되어 송나라에 가서 『책부원귀(冊府元龜)』를 얻어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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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세조 때 청주의 선비. 본관은 서산(瑞山)으로 대제학 저정(樗亭) 유백유(柳伯濡)의 아들이다. 부인은 보령현감의 딸 현풍곽씨(玄風郭氏)이다. 생원시에 합격한 뒤 단종이 폐위되자 세상일을 버리고 청주 무동에 은거하여 도학연마에 진력하였다. 세조(世祖)가 여러 번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광해군(光海君) 때에 관원을 보내어 그가 살던 청주의 무동에 찾았다. 그곳에 무과나무가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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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정동에 있는 마을. 이정골은 용정동 서쪽에 있는 마을로 유정골(有亭골), 유정리(有亭里)라고도 한다. 유정골과 유정리의 유정은 유정(有亭)으로 이해된다. 마을에 실제 느티나무 정자가 있으므로 유정이라는 이름이 근거가 있는 셈이다. 유정골은 마을에 느티나무 정자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유정리(有亭里)는 골을 리로 한자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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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골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에 동제를 지낸다. 동제는 신격과 당의 위치에 따라 산신제와 장승제로 구분할 수 있다. 이정골에서는 천제당에서 먼저 지낸 다음 산제당, 그리고 장승의 순서로 지낸다. 제사 날짜는 보통 정월 열나흗날이나 보름날을 택하는데, 동네에 부정한 일이 생기면 당기거나 뒤로 미룬다. 제당은 천제당과 산제당 그리고 마을 앞 장승(석불입상) 등 총 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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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꼭끼할매”가 치마에 돌을 가져가다가 그 자리에 콱 박았다는 이야기가 있어. 두 개를 가져갔었는데, 지금은 하나만 박혀 있어. (나머지 하나도) 아마 찾아보면 어디에 있을 거여. (제보자 : 이정진, 남, 1923년 생, 상당구 용정동 46) 금강산에서 일만이천 봉을 수집하는데 이것(선돌)을 가져가다가, 일만이천 봉을 다 쌓아서 완성했다는 소리를 듣고, 여기에 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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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명은 상당구 용암1동 4통이고, 법정명은 상당구 용정동 이정골이다. 용정동은 본래 청주군 서주내면(西州內面)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유정리(有亭里), 구곡리(九谷里), 용성리(龍城里), 구하리(九下里) 일부를 병합하여 용성리와 유정리의 이름을 따서 용정리라 하고, 사주면(四州面)에 편입되었다가, 1963년 청주시에 편입되었다. 이정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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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정동은 시의 동쪽에 위치하며, 동쪽은 월오동, 서쪽은 용담동, 남쪽은 용암동, 북쪽은 명암동과 접한다. 마을은 산의 큰 골짜기를 따라 길게 형성되었다. 마을 뒤로 매봉, 가니봉, 낙가산 등 높은 산이 둘러싸고 있다. 마을 가운데로 하천이 흐르고, 양쪽 산기슭을 따라 과수원과 밭이 있고, 마을 아래쪽으로 내려오면서 논이 넓게 펼쳐져 있다. 마을 어귀 구정고개 옆에 농업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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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씨구나 좋다 어- 한 걸음 더 띱시다 띱시다 얼씨구 좋다 하나 더 띱시다 한번 더 띱시다 줄줄이 줄줄이 잘 잘 얼씨구나 좋다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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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산업은 논농사이며, 밭농사는 고추와 깨, 콩 등을 재배한다. 그 외 몇 가구가 근래에 과수(포도) 농사를 짓고 있다. 용암동이 택지로 개발되면서 마을 아래의 들판이 청주시 외곽도로로 편입되고, 김수녕양궁장 부지에 들판이 유입되어 마을 주민의 농토가 많이 줄어들어 경작량이 많이 줄었다. 교통편은 청주시 외곽도로가 개통되면서 조금 나아졌으나 대중교통편인 시내버스는 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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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골은 농촌 마을이다. 봄에서 가을까지 농사를 짓고, 겨울에는 마을 노인회관이나 집에서 쉬며 지낸다. 최근에 몇 집에서 과수 농사를 시작하였다. 이들은 겨울에도 틈틈이 과수원에서 내년 수확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대동계를 비롯한 마을 조직을 중심으로 마을이 운영되고 있다. 특히 마을에 상이 나면 주민들이 내일처럼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고 있다. 그리고 마을 총회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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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항서원(莘巷書院) 이정골마을 뒷산 산자락에 서향(西向)으로 위치한 신항서원(莘巷書院)은 조선 선조 3년(1570) 창건되었다. 아산현감 경연(慶延)·문도공 동부승지 강수 박훈(朴薰)[1484~1540]·문간공 형조판서 충암(冲菴) 김정(金淨)[1486~1521]·문충공 대사헌 규암(圭庵) 송인수(宋麟壽)[1487~1547] 등 이 지방 출신 선현 4인을 모시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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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정동에 있는 마을. 이정골은 용정동 서쪽에 있는 마을로 유정골(有亭골), 유정리(有亭里)라고도 한다. 유정골과 유정리의 유정은 유정(有亭)으로 이해된다. 마을에 실제 느티나무 정자가 있으므로 유정이라는 이름이 근거가 있는 셈이다. 유정골은 마을에 느티나무 정자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유정리(有亭里)는 골을 리로 한자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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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정동에 있는 서원. 호서지방에서 보은의 상현서원(象賢書院)에 이어 두 번째로 건립된 서원으로, 1570년(선조 3)에 청주목 서주내면 유정리 안말마을(현 청주시 상당구 용정동 120번지[이정골로 115-8])에 건립되었다. 신항서원의 창건당시의 이름은 서원이 위치한 마을이름을 따라 유정서원(有定書院)이라 하였다가 1660년 사액을 받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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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의병장.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에 창의(倡義)하여 의병장으로 그의 아들 유정기(柳挺箕), 유정두(柳挺斗)와 사교(士校) 김두강(金斗江) 등 의병을 거느리고 안성 죽산에서 패주하는 적도(賊徒) 유해(柳海)를 사로잡아 토벌에 공을 세워 녹훈(錄勳)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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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화 및 서비스가 생산자에서부터 최종소비자에 이르기까지 여러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활동. 유통산업발전법 제2조에 따르면 ‘유통산업’이라 함은 농·임·축·수산물 및 공산품의 도매·소매·보관·포장 및 이와 관련된 정보·용역의 제공 등을 목적으로 하여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각종 상품을 도·소매하는 것을 주로 하는 산업으로써 동 법에 명시적인 근거규정은 없으나 대체로 통계청에서 고시한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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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의관.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자는 일숙(一叔), 호는 만취당(晩翠堂)이다. 고려 때 상장군 진강부원군 유정의 후손이고, 청매당 유명원(柳命元)의 아들이다. 나이 일곱 살에 어머니의 병으로 의약을 알기위하여 힘써 노력하여 마침내 의리를 스스로 터득하여 그 신기함을 세상에 알리었다. 그의 의술이 널리 알려져 사족(士族)으로 어의(御醫)가 되었다. 인조대에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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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학자.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자는 치운(致雲)이며, 호는 숙옹(塾翁)이다. 아버지는 유지정(柳之程)이며, 어머니는 연일정씨(延日鄭氏)로 선략장군(宣略將軍) 이로(利老)의 딸이다. 평생을 고향인 문산(文山)[현 충청북도 문의(文義)]에서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 전념하였다. 이괄(李适)의 난과 병자호란과 같은 난국에 처하였을 때, 국가를 보위하려 하였으나 제대로 뜻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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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자는 원로(元老), 호는 몽암(蒙菴)이다. 아버지는 예조참의 유인귀(柳仁貴)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로 현감 이장생(李長生)의 딸이다. 1501년(연산군 7년) 진사(進士)가 되고, 1516년(중종 11년)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藝文官檢閱)이 되고, 이듬해 병조좌랑(兵曹佐郞)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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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주동에 있는 남주동시장의 옛 이름. ‘새장터’는 남주내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다. 같은 구역 안에 있던 ‘장터’에서 이전하여 새로운 ‘장터’가 조성되자 그 지역을 ‘새장터’라고 한 것이다. ‘새장터’가 생기자 이전하기 전의 ‘장터’는 자연스럽게 ‘구장터’가 되었다. 구장터는 석교정에 있었으나 1906년 대홍수로 없어졌다. ‘구장터’ 대신에 남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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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석교동 및 남문로1가(南門路一街) 일대에 있는 재래시장. 1950년 이후에 형성된 청주의 대표적 재래시장이다. 상설시장이며 일부에서는 5일장의 흔적인 2일, 7일장이 서고 있다. 시장의 역사는 남주동시장에 비해 짧으나 상권은 이를 앞지르고 있다. 육거리시장은 구 석교동 파출소 일대에서 북진하여 청주시의 간선도로를 따라 발전해 왔다. 주로 남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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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달에 맞추어 부모님의 수의(壽衣)를 미리 마련해놓는 풍속. 윤달은 음력 일 년 열두 달 이외에 한 달이 더 불어난 어느 달을 말한다. 윤달이 들어 있는 해를 윤년(閏年)이라고 하며, 보통 3년만에 한 해씩 윤달을 둔다. 윤달은 정상적인 달이 아니라는 생각에서 흔히 ‘공달·덤달·여벌달’이라고도 한다. 이 때를 이용하여 유다른 일들을 치른다. “윤달에는 송장을 거꾸로 세워도 털이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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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판서 윤찬(尹贊)의 증손이다. 부모를 섬기는데 지극히 효도하고, 부모의 상을 당하여 여막(廬幕)에서 지낼 때, 까치 두 마리와 까마귀 두 마리가, 3년을 두고 같이 울었다. 그 나무를 효자나무(孝子樹)라 하고 명정(命旌)되었다. 충청북도 청원군 북이면 내추리에 그의 효자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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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자는 이원(而遠), 호는 사정(思亭)이다. 직장 윤영(尹瑛)의 아들이다. 1624년(인조 2)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628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을 역임하고, 정언, 지평, 병조좌랑, 교리가 되었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공양이 남달랐다. 1634년 인조가 그의 친어버이를 숭봉하려 하자 양사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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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에서 활동한 교육자.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호는 자하(紫霞)이다.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화양동에서 태어났다. 청주고등보통학교와 경성제대 법과를 졸업하였다. 1938년부터 괴산군청 등에 재직하였다. 해방 후에는 교육계에 뜻을 두어 청주고등학교, 공주교육대학교 등 여러 학교에서 교장을 지냈다. 그 후 청주교육대학에서 1963년 7월부터 1964년 3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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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충청북도 청원군 미원장터의 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30일 오후 2시경 청원군 미원장터에서 신성휴(申聖休) 등과 같이 군중 1천여 명을 규합하여 독립만세시위를 주동하였다. 이 때 출동한 일본 헌병이 주도자를 연행해가자 그는 시위군중들과 함께 헌병주재소로 몰려가 연행된 동지의 석방을 요구하며 주재소에 투석을 하는 등 격렬히 항의하였다. 이때 그는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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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충청북도 청원군 미원장터의 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30일 오후 2시경 청원군 미원장터에서 신성휴(申聖休) 등과 같이 군중 1천여 명을 규합하여 독립만세시위를 주동하였다. 이 때 출동한 일본 헌병이 주도자를 연행해가자 그는 시위군중들과 함께 헌병주재소로 몰려가 연행된 동지의 석방을 요구하며 주재소에 투석을 하는 등 격렬히 항의하였다. 이때 그는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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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무신. 태봉 때 청주에서 군인으로 활동하였다. 청주는 토지가 비옥하고 호걸이 많아 이들이 사변을 일으킬까 궁예(弓裔)는 항시 두려워하였다. 그래서 장차 청주 사람을 모조리 섬멸해 버릴 목적으로 군인으로 있던 윤전과 애견(愛堅) 그리고 80여 명의 무고한 사람들을 포박한 채로 잡아오게 하였다. 태조(太祖)가 즉위한 후 이들이 무고하게 죽게 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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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자는 유일(幼一), 호는 창주(滄洲)이다. 좌의정 윤개(尹漑)의 증손이며, 도승지 윤담무(尹覃茂)의 아들이다. 1603년(선조 36)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광해군 1년 증광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615년 서원현감이 되었고, 1617년(광해군 9) 병조좌랑과 정랑을 거쳐 사은사(謝恩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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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광복군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김학규 지대장이 이끄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산하 한국광복군 제3지대에 편입되어 남경지구(南京地區)에서 초모활동과 군사훈련 등의 활동을 하였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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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坪)이고, 자는 정춘(靜春)이며, 호는 장주(長洲)·천상(川上)이다. 영의정 윤두수(尹斗壽)의 아들이다. 1589(선조 22)에 진사가 되고, 1594년 별시문과에 문과로 급제하여 사관(史官)이 되었다가 1596년 병조좌랑을 거쳐 이듬해 병조정랑이 되고 이어 사서·장령·필선·사간 등을 거쳐, 전라도와 경상도 관찰사로 나가 치적(治積)을 올렸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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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화동에서 서문동 사이에 있는 도로. ‘율곡(栗谷) 이이(李珥)[1536~1584]’는 조선 선조 때 청주목사로 재임하면서 선정을 베풀었다. 그가 청주목사를 떠날 때 직접 소나무를 심은 사실을 기념하여 1886년(고종 23)에 세운 ‘표석’이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북문로1가 171-3번지[상당로69번길 38]의 청원군청 정문의 왼쪽 화단에 ‘율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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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내덕동과 율량동 사이에 있는 다리. 청주~충주간 국도상의 율량천에 놓인 ‘율량교’는 ‘역내다리’라고도 한다. ‘역내다리’의 ‘역내’에서 ‘역’은 구체적으로 율봉역을 가리키고 ‘역내’는 율봉역 앞을 흐르는 내로 해석되고 ‘역내다리’는 바로 역내에 놓인 다리를 가리킨다. 충청북도에서 발주하고 삼성토건주식회사에서 시행하여 197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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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율량사천동에 속하는 법정동. 본래 청주군 북주내면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율봉’과 ‘양지촌’의 이름 한자씩을 따서 ‘율량리’라고 하였다. 처음에는 청원군 사주면에 편입되어 있다가 1963년 1월 ‘율량동’으로 바꾸어 청주시에 편입하였다. 편입 당시에는 내덕율량사천동의 연합동으로 관할하여 오다가 1979년 1월에 율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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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구 율량동에 위치한, 구석기시대의 뗀석기가 발굴된 유적지. 청주 중원관광호텔 및 종합문화쇼핑센터 건립부지 내 문화유적 지표조사를 통해 확인된 유적으로 2003년 10월 8일부터 실시하였고, 발굴조사를 통하여 얻어진 성과에 대한 학술적 검토 및 향후 유적의 처리방안 논의를 위한 지도위원회의를 2003년 11월 23일 개최하였다. 지도위원회의에서 검토·제시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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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율량동에 있는 신당 터. 산신제를 올리던 산제당이었다. 상당구 율량동 율상리 상당산성 서쪽 사면 중턱에 있다. 율상리에서 동제를 올리지 않게 된 후 보암사에서 산신제를 올린다. 자연암벽 밑에 3~4평 정도를 평지로 다듬어 앞면에 축대로 단을 쌓았다. 현재는 폐허가 되어 흔적을 찾기 어렵고, 주변에 기와조각이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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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율량동에 있는 신당. 잡귀를 막아주는 수목신당으로, 음력 정월 열 나흗날 제를 올렸다. 생기복덕에 맞추어 제주를 선정해 금기를 지키고, 제수를 정성껏 마련하여 제를 올렸으나 지금는 올리지 않고 마을 쉼터로 사용되고 있다. 벚나무, 참나무의 수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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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율량동에 있는 선돌[입석(立石)] 선돌은 지석묘(支石墓, 고인돌)과 함께 청동기시대부터 이루어진 거석(巨石)기념물이며, 역사시대에 들어와서는 신앙의 대상물로 종교적 기능과 문화적 기능을 복합적으로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선돌은 세워진 양상에 따라 선돌 단독으로 세워진 것, 선돌이 짝을 이루며 세워진 것, 선돌과 돌탑 등 복합형태로 있는 것 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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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주중동에 위치하고 있는 공립 중학교. 자기 주도적인 학습능력 신장으로 창의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실력인, 창의성 교육을 통한 잠재능력 계발로 정보산업사회에 경쟁력을 지닌 창조인,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참된 인간성 함양으로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민주인, 심신을 연마하고 취미와 소질 계발로 조화롭게 성장하는 건강인, 다양한 체험활동을 통한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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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율량동의 율량천 일부인 율봉역 앞에 있는 개울. 역내는 ‘역’과 ‘내’가 결합된 어형이다. 여기서 역은 구체적으로 ‘율봉역'을 말한다. 율량동에서 골말, 중말, 상말, 양지말, 셋집매를 포함해서 율봉이라 하였으며, 양짓말과 중리로 돌아가는 길목에 있는 마을을 역말이라 하였다. 또한, 율봉은 역말, 율봉역이라고도 하였다. 율봉역 앞을 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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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율량동에 위치하고 있는 공립 초등학교. 자신의 독특한 생활을 가꾸고 즐기는 어린이, 기초·기본능력을 갖춘 창의성 있는 어린이, 자신의 미래를 꿈꾸며 개척하는 어린이, 우리문화를 사랑하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어린이, 민주적 방법으로 공동체 발전을 위해 참여하는 어린이를 길러 바르고 슬기로우며 건강한 어린이를 육성한다. 1991년 3월 1일 율량국민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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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에서 조선시대의 교통·통신기관인 역참(驛站)을 관장하던 관리. 역참은 국가의 명령과 공문서의 전달 변경의 중요한 군사정보, 그리고 사신왕래에 따른 영송과 접대를 위하여 마련된 교통·통신기관의 하나로 우역(郵驛)이라고도 한다. 역참은 군사·외교 외에 중앙집권을 유지하기위한 행정적 측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역참의 운영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역로의 조직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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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신봉동 대성중학교 앞 무심동로에서 상당구 율량동 동부우회도로 사이에 있는 도로. 이 도로가 통과하는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율량동 395번지에 조선시대 역참(驛站)인 율봉역이 위치하였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율봉로는 길이는 3.2㎞이고, 도로의 폭은 2차선으로 좌우 인도를 포함하여 15m이다. 무심동로를 기점으로 하는 이 도로는 향군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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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율량동에 있었던 조선시대 교통기관. 역의 기능은 지방통치를 위한 공문서의 전달, 관품 세공의 수송 및 관원사행에 대한 마필의 공급과 숙식제공, 변방군정의 보고 등을 담당하였다. 율량도는 조선시대 41개의 역도의 하나로 조선시대의 역로에서 보면 주요간선의 중간에 해당하는 분로(分路)였다. 이를테면 서울에서 경상도 성주에 이르는 길을 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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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율량동에 있는 마을. 율봉(栗峰)의 위쪽(상류쪽)에 있다고 하여 율상리(栗上里), 율상, 상리라 하였다. 율봉은 역말, 율봉역이라고도 하였는데, 공문서를 전달하고 공무로 출장을 다니던 관리들에게 말을 제공하던 역원이 있던 곳이다. 현재 율량밤골길이 있는 곳이 율봉이고, 그 동쪽의 중리안1길, 중리안2길이 있는 곳이 중리이며, 중리의 동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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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율량동에 있는 마을. 율봉(栗峰)의 위쪽(상류쪽)에 있다고 하여 율상리(栗上里), 율상, 상리라 하였다. 율봉은 역말, 율봉역이라고도 하였는데, 공문서를 전달하고 공무로 출장을 다니던 관리들에게 말을 제공하던 역원이 있던 곳이다. 현재 율량밤골길이 있는 곳이 율봉이고, 그 동쪽의 중리안1길, 중리안2길이 있는 곳이 중리이며, 중리의 동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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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율량동에 있는 신당 터. 산신제를 올리던 산제당이었다. 상당구 율량동 율상리 상당산성 서쪽 사면 중턱에 있다. 율상리에서 동제를 올리지 않게 된 후 보암사에서 산신제를 올린다. 자연암벽 밑에 3~4평 정도를 평지로 다듬어 앞면에 축대로 단을 쌓았다. 현재는 폐허가 되어 흔적을 찾기 어렵고, 주변에 기와조각이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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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율량동에 있는 마을. 율봉역이 있었던 ‘율봉’과 중리 윗쪽에 있는 ‘율상리’의 중간에 있는 마을에서 유래되었다. 상당산(上黨山)[419m]의 서사면과 서사면 아래의 구릉지에 위치하고 있어 동부는 산록사면, 서부는 구릉지를 이루고 있다. ‘중리’ 앞에는 디딜방아처럼 하나에서 두 군데로 갈라져 Y자 형상을 하고 있는 ‘방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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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율량동에 있는 마을. 율봉역이 있었던 ‘율봉’과 중리 윗쪽에 있는 ‘율상리’의 중간에 있는 마을에서 유래되었다. 상당산(上黨山)[419m]의 서사면과 서사면 아래의 구릉지에 위치하고 있어 동부는 산록사면, 서부는 구릉지를 이루고 있다. ‘중리’ 앞에는 디딜방아처럼 하나에서 두 군데로 갈라져 Y자 형상을 하고 있는 ‘방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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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내덕동에 있는 고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이후의 여러 지리지에서는 ‘율현(栗峴)’으로 나오고 있다. 그리하여 일명 ‘율량고개(栗陽峙)’라고도 한다. 그런데 ‘밤고개’에 얽힌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조선 영조(英祖) 때 조원의(趙元宜)라는 유생이 충청도 회인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왕은 호송하는 금부도사에게 유배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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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향정동에 있는 마을. ‘원향정’, ‘으능정이’, ‘향정(香亭)’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은행정이’는 ‘은행정(銀杏亭)’에 접미사 ‘-이’가 결합한 어형이다. ‘은행정(銀杏亭)’은 은행정(銀杏亭)으로 은행나무 정자라는 뜻이다. 전국에 ‘은행정(銀杏亭)’이라는 마을이름이 대단히 많다. 대부분이 은행나무가 있어서 붙어진 정자 이름이다. ‘으능정이’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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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우암동에 있는, 대학생을 지원하는 장학재단. 지조견실, 학력우수, 체질 건강한 청년을 양성하기 위하여 학자금이 부족한 사람에게 학자금을 지급하여 학업의욕을 고취시키고 국가 유공의 인재를 양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대학생을 대상으로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으며 2005년에 국공립대학은 매학기 1백만원, 사립대학은 1백2십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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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의 예금을 맡고 그것을 기업, 개인에 대부해주거나 어음할인을 하여 이윤을 얻는 금융기관. 2003년 말 현재 시중은행은 조흥은행[2006년 신한은행과 합병], 국민은행, 제일은행[2005년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에 인수], 신한은행, 한미은행[2004년 씨티은행에 인수], 외환은행[2015년 하나은행과 합병], 하나은행, 우리은행 등 8개이고, 지방은행은 대구은행, 부산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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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석교육거리와 남주동시장 사이에 있는 도로. 상당구 남주동시장 내의 제일교회 부근의 옛 지명이 ‘은행나루 거리’라고 한 데서 붙어진 도로 이름이다. 1995년까지도 석교동 육거리에서 남주동(南洲洞)으로 통하는 중요한 도로였으나 남주동시장이 확대되고 복잡하여 남주동시장 내의 도로의 기능은 점차 쇠퇴하였다. 그리하여 2004년 청주시 발행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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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석교육거리와 남주동시장 사이에 있는 도로. 상당구 남주동시장 내의 제일교회 부근의 옛 지명이 ‘은행나루 거리’라고 한 데서 붙어진 도로 이름이다. 1995년까지도 석교동 육거리에서 남주동(南洲洞)으로 통하는 중요한 도로였으나 남주동시장이 확대되고 복잡하여 남주동시장 내의 도로의 기능은 점차 쇠퇴하였다. 그리하여 2004년 청주시 발행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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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향정동에 있는 마을. ‘원향정’, ‘으능정이’, ‘향정(香亭)’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은행정이’는 ‘은행정(銀杏亭)’에 접미사 ‘-이’가 결합한 어형이다. ‘은행정(銀杏亭)’은 은행정(銀杏亭)으로 은행나무 정자라는 뜻이다. 전국에 ‘은행정(銀杏亭)’이라는 마을이름이 대단히 많다. 대부분이 은행나무가 있어서 붙어진 정자 이름이다. ‘으능정이’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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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주중동에 위치한 지체장애 어린이 재활을 위한 사회복지시설. 1991년 1월 15일 4명의 원생을 중심으로 개원하였다.1995년 5월 청주로 이전하였으며 2002년 은혜의집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1993년 6월 서울시민봉사상을 수상했으며 1997년 12월 31일 문화체육부 장관상(청소년 선도상)을 받았다.1999년 6월 1일 청주시 모범시민상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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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금천동에 있었던 마을. ‘음달말’은 ‘음달에 자리한 마을’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음지말’은 ‘음짓말’과 같은 의미이며, 양달말, 양지말, 양짓말과는 정반대의 의미이다. 상당구 수영로가 지나는 곳이다. 상당구 금천동의 효성아파트, 삼일아파트, 진흥아파트 지역이 해당되는데, 예전의 모습을 찾을 수 없이 많이 변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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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에 있는 마을. 음달말은 음달에 자리한 마을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음지말, 음짓말과 같은 의미이며, 양달말, 양지말, 양짓말과는 정반대의 의미이다. 이곳 음달말은 음지쪽에 조성된 마을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동부우회도로가 지나는 곳으로 용암동 신촌의 음지쪽에서 마을로 돌아가는 방향 오른쪽에 있어서 접근이 용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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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에서 사람들에게 음식을 판매하거나 제공하는 서비스 및 시설. 한국표준산업분류표상의 음식점업이란 ‘접객시설을 갖춘 구내에서 또는 특정장소에서 소비할 수 있도록 조리된 음식품 또는 직접 조리한 음식품을 제공, 조달하는 산업활동’이라고 정의하고 있으며 각종 음식점, 직접소비용 음식물을 출장조리 또는 조달활동과 독립적인 식당차의 운영활동 등이 포함된다. 이에 한국표준산업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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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시간 예술. 우리나라 3대 악성 하면 거문고를 창제한 고구려의 왕산악(王山岳)과 가야금을 제작한 신라의 우륵(于勒)[500?~562?], 조선의 박연(朴堧)[1378~1458]을 든다. 그 중 우륵과 박연은 충북 출신 음악가이다. 청주 지역의 음악은 이 위대한 전통음악의 얼을 계승, 보존하는 반석위에서 발전해 나가고 있다. 한국 최초의 서양음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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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평촌동에 있는 마을. 볕이 들지 않는 음지에 마을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제2순환로가 만나는 지북교차로 근처이며, 월운천의 평촌교 아래 무심천(無心川)이 만나는 지점에 있다. 월운천을 건너 양지말과는 마주하고 있다. 아직은 도시화가 되지 않는 지역이어서 대분의 주민은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데, 약간의 공업과 농업이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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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에 있었던 충청병마절도영(忠淸兵馬節度營)의 건물. 조선 중기 무렵 충청병마절도영의 중영(中營)에 세워졌던 건물로 목사(牧使) 최상정(崔尙鼎)이 개축하였다. 병영의 군무를 수행하는데 있어, 병영소속의 군관들이 청렴결백하게 업무를 집행해야한다는 뜻을 담아 건물의 명칭을 읍청당(挹淸堂)이라 한 것으로 보인다. 윤동형(尹東衡)[1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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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산남동에 있는 방죽. ‘원흥이 방죽’의 ‘원흥이’는 산남동에 있는 마을 이름으로서 원현리(元峴里)라고도 한다. 그런데 원흥(元興)의 어원은 알 수가 없다. 일설에 의하면 조선 중기 영조 때 사도세자를 죽이는데 주동적인 역할을 하고 고을 원(員: 한성 판윤)을 지낸 광산김씨 대감이 낙향하여 살았다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도 하고, 원(元)씨가 세운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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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대성동 청주향교에 있는 홍재희(洪在羲)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선정비. 조선 고종 대에 충청병사(忠淸兵使)를 지낸 홍재희의 유학진흥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선정비이다. 비의 뒷면에 건립경위가 새겨져 있는데, 건립 시기는 “光緖十四年戊子二月日(광서14년 무자 이월일)” 즉 1888년(고종 25) 2월이고, 세운 이는 “本校西齋生立(본교서재생입)”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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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비하동에 있는 의병장 박홍원(朴弘遠)[1606~?]의 비석. 1993년에 박홍원의 후손인 박화순(朴樺淳) 등이 이괄의 난을 진압하는데 공헌한 박홍원의 충절과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박홍원의 본관은 순천(順天)이며, 자는 상거(象巨)이고, 아버지는 박동명(朴東命)[1576~1636], 할아버지는 박춘무(朴春茂)[1544~161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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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에 있는 한봉수(韓鳳洙)[1883~1972]의 송공비. 근대의 의병장이자 독립운동가인 한봉수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1967년에 세운 사적비이다. 청주시내 중심가에 있는 중앙공원(中央公園) 북쪽 출입구의 오른쪽 화단에 남향으로 위치하고 있다. 높이 191㎝ 폭 69㎝ 두께 39㎝의 오석(烏石)의 비신(碑身)을 세우고, 그 위에 두 마리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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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걸치거나 입혀져 신체를 보호하고 장식하는 의류 및 장신구 등을 주요 요소로 하는 인류의 생활. 현대 한국인의 의생활은 크게 한복과 양복 양식으로 대별할 수 있다. 한국의 전통복식인 한복은 삼국시대부터 저고리와 바지, 치마, 포, 관모, 신발 및 각종 장신구 등을 갖추었다. 한복은 시대 변화에 따라 그 길이가 짧아지거나 길어지고 품이 넓어지거나 좁아지는 등의 세부적인 변화는 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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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내덕칠거리에서 주성동의 시계사이에 있는 도로. 독립운동가인 의암 손병희(孫秉熙)[1861~1922]의 출신지인 청원군 북이면으로 연결되는 도로로 손병희의 독립 정신을 후세에 깊이 전승하기 위하여 아호를 따서 그 이름을 지었다. 상당구 내덕동 내덕칠거리에서 율량천을 지나 율량택지개발사업지구와 제2순환로와 동부우회도로가 만나는 주성사거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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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조선초의 공신.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낙천(樂天)이며, 호는 청허당(淸虛堂)이다. 이공승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이정(李挺)이며, 형은 청천백(淸川伯) 이거인(李居仁)이다. 아들로는 이백경(李伯卿), 이백관(李伯寬), 이백신(李伯臣), 이백강(李伯剛), 이백현(李伯儇)이 있다. 1393년(태조 2) 우산기상시(右散騎常侍), 1397년 평안남도 병마절제사(兵馬節制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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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문신으로 등과하여 벼슬이 관찰에 이르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본도(本道), 즉 충청도의 도중군(道中軍)으로 군사를 이끌고 검천(險川)싸움에서 고군분투하였는데 전세가 불리하게 됨에 따라 노비를 보내어 부모에게 고하고 용감히 싸워 전사하였다. 전사한 뒤 1637년에 병조참의(兵曹參議)로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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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신평(新平)이다. 1570년(선조 3)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임진왜란 때 선조(宣祖)를 호종(扈從)하여 의병장에 특명되고, 충주목사에 제수되었다. 품계는 가선대부(종2품)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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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자는 직부(直夫)이며, 호는 백강(白江)·봉암(鳳巖)이다. 목사 이수록(李綏祿)의 아들이다. 1601년(선조 34)에 사마시를 거쳐 1609년(광해군 1) 증광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1611년 검열, 1617년에는 충원현감을 지냈다. 광해군(光海君)의 실정이 심해지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취임하고, 이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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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의병장. 본관은 고성(高城)이며, 자는 무숙(茂叔), 호는 한죽당(寒竹堂)으로 천성이 효성스럽고 학문이 박식하였다. 이인좌(李麟佐)의 난에 의병을 일으켜 이붕해(李鵬海), 민진완(閔鎭緩), 변관하(卞觀下) 등 의병장과 청주 인근 산하에서 군사를 수습하여 인솔하고 청주읍성(淸州邑城) 남문밖에 이르니 이미 창의사(倡義使) 박민웅(朴敏雄)이 적의 두목을 처참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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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달부(達夫)이며, 호는 추월재(秋月齋)이다. 태조 때 공신 이희능(李希能)의 6대손이자 이겸의(李謙宜)의 5세손이다. 이공승의 아들은 이춘로(李椿老)와 이계장(李桂長)이 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글을 잘 지었고 인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직한림(直翰林)을 거쳐 우정언(右正言)을 지냈다. 1148년(의종 2)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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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주도하였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1907년 신민회(新民會)에 가입하여 활동하였고, 1911년 봄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 기지건설운동에 주력하였다. 그는 경학사(耕學社)의 조직에 참여했고 일시 신흥학교의 교장을 지내기도 하였다. 또한 이른바 무오독립선언 때에는 39인의 대표 중 1인으로 참가하여 서명하였다. 1919년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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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자휘(子輝), 호는 희암(希菴)이다. 지금의 상당구 주성동 출신으로 의정부 좌참찬(議政府左參贊)을 지낸 이홍연(李弘淵)의 아들이다. 할아버지는 이덕수(李德洙), 증조할아버지 이준(李浚), 외할아버지 김상(金尙), 장인은 김광찬(金光燦)이다. 형으로 이흥직(李興稷), 이기직(李基稷)이 있다. 1650년(효종 1)에 생원시에 합격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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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현암동에 있는 마을. 일명 ‘이교리(泥橋里)’라고도 한다. ‘진다리’는 ‘고라기’ 쪽의 고갯길이 아주 멀어서 널판지 다리를 놓아 다녔기 때문에 생겨난 이름이라 하나 이것은 다리와 무관하여 잘못된 것이다. ‘진다리’는 ‘진들’로서 ‘진’은 ‘길다’의 의미가 있고 ‘들’은 평야의 뜻이므로 ‘진들’은 길고 넓은 들로 해석된다. 실제로 ‘진다리’ 앞에 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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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공제(公濟)이며, 아명은 이재(李載)이다. 아버지는 이유적(李攸績)으로 예부시랑(禮部侍郞)의 관직을 지냈다. 청주 사람으로 선종 때 소부주부(少府主簿)가 되어 왕의 명령으로 송나라에 보내는 표문(表文)을 교정하였다. 그런데 송나라 연호를 써야 할 데다 그만 요(遼)의 대안(大安) 연호를 써서 송이 그 표문을 돌려보내 왔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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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청주시장을 지낸 행정가. 1949년 8월 15일부터 1951년 10월 15일까지 약 2년 2개월간 초대 청주시장을 역임하였으며 본적은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당리이다. 가족은 5남 1녀를 두었고 단양군수 등을 역임한 이종혁이 둘째 아들이고, 청주대학교 2대 총장과 전주대학교 총장을 지낸 이종익(李鍾翊) 박사가 셋째 아들이다. 지방의회에서 선출된 초대시장 이규석은 194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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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해(靑海)이며, 자는 창여(暢如)이다. 아버지는 이유민(李裕民)이다. 1721년(경종 1) 식년시 문과에 합격하여 도사를 거쳐 승지를 지냈다. 어려서부터 효도가 지극하였고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감찰어사(監察御使)가 되었다. 영조 때에는 지평을 거쳐 승지를 지냈다. 연일현감 때에 어사가 그의 직분을 다하는 것을 칭찬하였다. 그리고 어버이을 효성스럽게 섬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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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의 문신. 대한제국 시기 예산군수(禮山郡守)를 지낸 뒤 영궁(英宮) 건축의 소임을 맡아 감동관(監董官)으로 청주에 내려와 활동하였다. 이때 그는 당시의 청주군수인 이한응(李漢膺)과 함께 청주지역의 농업발전에 힘써 백성들의 생활에 큰 도움을 주었다. 이러한 그의 애민위국(愛民爲國) 활동에 감복한 청주의 사음(舍音)인 전주사(前主事) 김형식(金衡植)과 도감관(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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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관.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무신란을 주도하여 청주성을 장악한 이인좌(李麟佐)의 동생이다. 무신란이 일어나 반군이 청주를 장악 할 때 가담한 인물이다. 반군은 청주성 장악 이후 신천영(申天永)과 이기좌(李麒佐)에게 청주를 지키게 하고 증평 청안, 천안 목천, 진천을 지나 안성과 죽산으로 향했다. 그러나 반군은 안성, 죽산의 전투에서 패배하여 궤멸되었고, 이 소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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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열녀. 남편은 이대윤(李大潤)이다. 진사 이대윤의 처 현풍곽씨(玄風郭氏)는 8세 때에 손가락을 자른 피로 아버지의 병환을 낫게 한 일이 있었다. 출가하여 효도로서 시부모를 섬기고 공경으로 남편을 받들었다. 갑자기 남편이 몸져 눕자 정성껏 간호하였으나 세상을 버리자 청상으로 보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시외가로 피난하여 외조부모 묘소를 성묘하던 도중 왜병을 만났다. 왜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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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사로(師魯), 소자(小字)는 여숙(汝淑), 호는 이유당(怡愉堂)이다. 영의정 이유청(李惟淸)의 후손이며 이도(李濤)의 아들로 일족인 현감 이준(李浚)에게 입양되었다.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으로 선대로부터 청주 북일면 상당산(上黨山)[419m] 아래에 우거(寓居)하였다. 1606년(선조 39) 진사(進士)가 되고 1608년 별시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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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군 출신의 실업인이며 언론인, 교육사업가. 호는 문헌이며, 충청북도 청원군 가덕면 노현리에서 이예승(李禮承)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하고, 제2고보(지금의 서울 경복고등학교)를 거쳐 경성제대 법문학부를 졸업했다. 1946년 30대의 청년으로 일신산업주식회사를 설립하고, 1950년에 남한제사주식회사 사장에 취임하였다. 국회의원 선거에 나서 청원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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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백춘(伯春)이다. 청주군 북강내이면(현, 청원군 북이면 일대) 출신으로 추정된다. 아버지는 이집중(李集中), 할아버지는 호조좌랑(戶曹佐郞)을 지낸 이호원(李浩源), 어머니는 청풍김씨(淸風金氏)로 경기수사(京畿水使)를 지낸 김형로(金亨魯)의 딸이다. 부인은 창녕성씨(昌寧成氏) 성석윤(成錫胤)의 딸이다. 동생으로 이진영(李震榮)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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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순필(舜弼)이다. 지금의 상당구 주성동 출신으로 목사 이성연(李聖淵)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예조좌랑 이천(李蕆)의 딸이다. 1639년(인조 17)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여 문음(門蔭)으로 입사(入仕), 재랑(齋郞)·빙고별검(氷庫別檢)과 공조·호조 좌랑을 거쳐, 외직으로 나가 옥과현감과 김화현감을 역임하면서 어진 정치를 베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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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역학자(易學者), 악인(樂人).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극흠(克欽), 호는 서계(西溪)이다. 고려 말 문신 이제현(李齊賢)의 후손이다. 1588년(선조 21)에 진사가 되고 1597년 학행으로 추천되어 희릉참봉(禧陵參奉)이 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독서에 전념하다가 왕자(師父)가 되고 이어서 형조좌랑·의성현령을 지냈다. 광해군(光海君) 때 혼란한 정계를 피하여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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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1728년(영조 4)에 일어난 무신란에 가담한 인물이다. 경기도 양성 출신이며, 본명은 이호이다. 무신란이 일어나자 양성에서 군사 2초(哨)를 모아 3월 15일 청주성 점령에 가담했다. 반군은 안성과 죽산 전투에서 관군에게 패하고 관련인물은 모두 처형되었는데, 이만은 경상북도 칠곡의 처가에서 체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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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자는 춘장(春長)이며, 호는 설해(雪海)이다. 임영대군(臨瀛大君)의 후손으로 이견철(李堅鐵)의 아들이다. 1635년(인조 13) 알성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곧 문한관을 거쳐 감찰이 되어 1636년 동지사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644년 사헌부 장령이 되어 기성군(杞成君) 유백(兪伯)의 비행을 공격하다 왕의 노여움을 사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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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이고, 자는 백춘(伯春)이며, 호는 이우당(二憂堂)이다. 아버지는 이형(李泂)이며, 어머니는 최대년(崔大年)의 딸이다. 1678년(숙종 4)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검열·정언 등을 역임하고, 1689년에 지평(持平)이 되어 송시열(宋時烈), 윤증(尹拯)의 시비를 분별할 것을 상소하자 왕이 가납하였으며, 홍문록(弘文錄)에도 올랐다. 이어서 정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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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이며, 충북지사를 역임한 행정가. 호는 가동(可東). 본관은 한산(韓山)으로 고려 말의 학자 인재공 이종학(李種學)의 19대손이다. 인재공은 목은(牧隱) 선생의 둘째 아들이니, 그는 명문의 후예로 청원군 오창면 백현리에서 태어나, 성장하였다. 15세까지 소학, 사서 등 한문을 수학하고, 그 후 신학문에 접하여 사립 보성중학을 거쳐 경성의학전문학교를 나왔다. 전문학교를 마친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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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이며, 자는 창기(昌期), 호는 잠와(潛窩)·진사재(進思齋)이다. 아버지는 청주목사와 병마절도사를 지낸 이제신(李濟臣)이며, 어머니는 목천상씨(木川尙氏)로 상붕남(尙鵬南)의 딸이다. 1601년(선조 34) 생원시에 합격하고, 이어 1603년에 문과정시(文科庭試)에서 장원으로 급제, 성균관전적에 임명되었으며, 1604년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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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의 문신. 청주목사로 재직할 때에 선정을 베풀었다. 그는 특히 재물의 씀씀이를 절약하였는데, 백미 20섬, 현미 70섬, 좁쌀 80섬, 메밀 30섬, 베 1천 필을 얻어 그것을 밑천으로 이식을 취하여 이 고을의 의재(義財)를 마련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이색의 기록이 있다. 이러한 내용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청주목 명환조」에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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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에서 성장한 정치인. 1940년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법학과를 입학하여 이듬해인 1941년에 중퇴하였다. 30여 년 야당 외길을 걸으며 6선에 국회부의장을 지낸 정계의 거목(巨木)이었다. 김영삼(金泳三), 김대중(金大中), 두 김씨(金氏)와 같은 세(勢)를 누리지는 못하였지만 1980년대 중반 정치 암흑기에 제1야당 당수로서 정계의 핵으로 활약했다. 해방직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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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의병장.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1685년 청주 남면에서 출생하였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청주 근처에서 김진희(金晉熙), 박종귀(朴宗龜), 이도명(李道命) 등과 창의(倡義)하여 의병장으로 훈공(勳功)을 세웠다. 난을 평정한 뒤 포상에서 빠졌으나, 1887년(고종 24)에 감찰(監察)에 증직(贈職)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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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관. 1728년(영조 4)에 일어난 무신란에 가담한 인물이다. 양성에서 모집된 인물로 무신란이 일어나 청주성을 점령할 때 이인좌(李麟佐) 군의 중군(中軍)으로 선봉(先鋒)이 되어 병영에 들어갔다. 병영에 들어간 후 이인좌의 명으로 충청병사 이봉상(李鳳祥)[1676~1728]을 죽였다. 반군이 서울을 향하여 증평 청안, 천안 목천, 진천을 거쳐 북상하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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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경주이며, 자는 무경(茂卿)이고, 청주군 북강내이면(현, 청원군 북이면 일대) 출신이다. 아버지는 호조참의(戶曹參議)로 추증된 이석규(李錫圭), 어머니는 연안김씨이다. 할아버지는 경상우병사(慶尙右兵使)를 지낸 이순곤(李順坤)이다. 부인은 고령신씨(高靈申氏)와 안동김씨(安東金氏)가 있다. 이배원(李培源)은 조선 후기 청주지역의 대표적인 무관 집안인 경주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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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평장사(平章事) 이공승(李公升)의 4대 후손이다. 아들은 이자심(李資深)이다. 충렬왕 때에 과거에 급제하여 남경 사록(南京司錄)에 임명되었다가 여러 관직을 거쳐 우정언(右正言), 지내지(知內旨)를 역임하였다. 외직(外職)인 공주부사(公州副使)에 부임하여서는 농사와 양잠을 장려하여 백성들의 살림을 풍요롭게 하였으며, 다시 우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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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중국에서 항일투쟁을 한 독립운동가. 함경남도 신흥군 신흥면 279번지에서 1914년 6월 25일 과수원을 경영하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1927년 신흥군 신흥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1930년 신흥공민농업학교를 졸업했다. 1939년부터 3년간 중국 산시성(陝西省) 태원시(太原市)에 있는 산시성립 원예시험장에서 연수를 받았다. 신흥공민농업학교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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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충청북도 청원군 미원장터의 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순국한 독립운동가. 1919년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날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한봉수(韓鳳洙)[1883~1972]로부터 고향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부탁받았다. 이에 그는 동지들과 상의하여 3월 30일 미원장터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기로 결정하고, 인근지역 주민들에게 참가를 종용하는 등 계획을 추진하였다.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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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충청북도 청원군 미원장터의 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순국한 독립운동가. 1919년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날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한봉수(韓鳳洙)[1883~1972]로부터 고향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부탁받았다. 이에 그는 동지들과 상의하여 3월 30일 미원장터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기로 결정하고, 인근지역 주민들에게 참가를 종용하는 등 계획을 추진하였다.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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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이중(頤仲)으로 아버지는 이창수(李昌壽)이다. 1762년(영조 38)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766년에 문과 정시(庭試)에 병과 8등으로 합격하였다. 이인좌(李麟佐)의 난으로 1731년에 청주목이 서원현으로 강등되고 서원현감으로 도임하여 근민헌(近民軒)을 창건하였는데, 이 근민헌은 후일 철종 말에 목사 이덕수(李德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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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덕수(德水)이며, 자는 의숙(儀叔)이다. 이순신(李舜臣)의 5대손이다. 1702년(숙종 28) 무과에 급제하였고, 경종의 재위 중에 포도대장·훈련원 도정·삼도수군통제사·총융사·한성부우윤 등을 역임하였다. 1725년(영조 1) 형조참판으로서 훈련·금위대장을 겸임하였다. 이때 이광좌(李光佐)·조태억(趙泰億) 등의 죄상을 논박하였다가, 정미환국(丁未換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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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에서 포교되고 있는 신흥종교. 기존 기독교 교단 교회의 집사였던 하석자는 이 지역 외에는 특별한 영향력을 발휘하지 않고 있다. 하석자는 1986년의 영생교 집회를 다녀온 뒤 청주 지역에 이불교를 창시하였다고 전해진다. 이불교의 교주 하석자는 60대 여성으로 신자들이 성경과 찬송가를 가져오면, 모든 사람이 이불을 펴놓은 속으로 들어가서 예배를 드린다. 특히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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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의병장.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고려 말의 명현(明賢)인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의 13대손이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그의 종제(從弟) 이사해(李思海), 당질(堂姪) 이중저(李重著), 향인(鄕人) 김양구(金陽龜) 등을 이끌어 청주 근처 산하에서 수백 인을 모아 창의하여, 청주성의 동문을 치고 창의사(倡義使) 박민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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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진동아리. 이브이포토의 E.V는 사진용어인 ‘Exposure Value(노출지수, 노출치의 약자)’의 약자로 1992년 9월 8일 청주시에 거주하고 있는 중견 사진인들로 구성된 모임으로 ‘창조적인 사진예술의 지향’을 목표로 사진의 대중화와 발전을 위해 설립된 사진동호회이다. 1993년 가을 제1회 창립전을 시작으로 매년 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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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전의(全義)이며, 효정공(孝靖公) 이정간(李貞幹)의 아들이다. 기량이 준매(俊邁)하여 일찍이 무과에 올라 조수와 영암군수를 지냈다. 단종이 세조(世祖)에게 왕위를 찬탈당하자 벼슬을 버리고 연풍의 백운산에 숨어 살았다. 뒤에 충청북도 청원군 오창면으로 옮겨 살았으며 행정(杏亭)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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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에서 활동한 문화예술인, 음악인.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서 출생하였다. 1940년대부터 충청북도에서 음악활동을 시작하여 1949년 문교부에서 주최한 전국 남녀고등학교 음악발표대회가 개최되었는데, 이때 청주사범 관악대가 참가하여 좋은 반응을 받았다. 그 이후 충청북도 음악협회 지부장, 충북예총 지부장 등을 역임하였다. 청주교육대학교 교수로 재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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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의 서예가. 충청북도 청원군 문의에서 태어나 청주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시암 배길기 선생의 사사와 함께 서예교사 양성소를 거쳐 중등교사로서 교직에 종사하며, 서예를 통한 후학 양성에 전념하다가 평교사로서 정년퇴임한 후 74세로 생을 마치셨다.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작가를 지냈으며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을 역임하고, 대한민국서예전람회 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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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학자.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여인(汝人), 호는 어당(峿堂)이다. 이연주(李演周)의 아들로, 어머니는 윤씨(尹氏)이다. 1820년(순조 20) 회인(懷仁)에서 출생하였는데, 1871년(고종 8) 청주 강외면 연제리에 이사하여 1882년에 우거지(寓居地) 연제리에서 죽었다. 1855년(철종 6) 선공감가감역(繕工監假監役)이 되었고, 임술민란 뒤 「응지삼정소(應旨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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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회를 조직하여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리농업학교 재학 중인 1943년에 동교생 장지환(張志煥) 등을 동지로 규합하여 항일결사 화랑회(花郞會)를 조직하고, 대표로 활약하였다고 한다. 화랑회는 일제 식민지 통치에 대한 항거를 목적으로 한 행동결사로서 무력봉기를 계획하였다. 이들의 행동방략은 우선 총기 및 폭약 등을 탈취하여 무장을 갖춘 후 주재소 및 경찰서를 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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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대표의 수장으로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천도교 교주. 1897년 해월 최시형(崔時亨)의 뒤를 이어 동학의 제3대 교주가 된 그는 동학의 재건에 노력하였다. 그러나 여의치 않자 일본으로 망명하여 교세의 재건에 힘쓰는 한편, 국내의 인재들을 일본으로 유학할 수 있도록 주선하였다. 1905년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교도들을 지휘하여 갑진개화운동(甲辰開化運動)이라는 신생활운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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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주성동에 있는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의 영정을 봉안한 사당과 부속 강당. 목은영당(牧隱影堂)은 이색의 학덕과 청주에서의 유서를 기리기 위하여 후손인 한산이씨 이붕해(李鵬海)와 그의 종형 이조해(李朝海)가 주도하여 1714년(숙종 40)에 청주목 산외일면 주성리(현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주성동 60번지)에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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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이서우[1633~1709]의 본관은 우계(羽溪)이고, 자는 윤보(潤甫)이며, 호는 송곡(松谷)이다. 이경항(李慶恒)의 아들이다. 1651년(효종 2) 생원시를 거쳐 1660년(현종 1)에 성균관 유생으로 과제(課製)에 1등하여 바로 전시(殿試)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고, 그해의 증광시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1675년(숙종 1)에 문장에 재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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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중원(仲遠)이다.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의 후손으로 생원 이덕유(李德游)의 아들이다. 광해군(光海君)이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죽이고, 인목대비(仁穆大妃)를 서궁(西宮)에 유폐하는 등 인륜을 문란하게 하는 난정(亂政)이 벌어지자, 벼슬길을 단념하였다. 그 뒤 외숙 김류(金瑬)가 도모하는 인조반정에 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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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출신의 의료인. 청주중학교을 거쳐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를 졸업했다.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병리학교실에서 2년 남짓 연구하고, 1941년 청주 상당치과의원을 개업했다. 1947년에 사재를 털어 고향에 한국 최초의 보건소를 설립, 운영했고, 토지개혁 이전인 1948년에 1백섬 지기의 땅을 소작인들에게 시가의 반값에 주었다. 한국동란 때는 북한군에 납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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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청주 지방의 항일투쟁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일찍이 애국계몽운동에 참가하여 1904년에 청주에 청남학교(淸南學校)를 설립하고 교육구국운동을 전개하였다. 1909년 안희제(安熙濟)·김동삼(金東三) 등 80여 명의 동지들과 함께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하는 신민회(新民會) 계열의 비밀 청년단체인 대동청년당(大東靑年黨)을 창립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3·1운동 후 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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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의병장.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성수(聖叟)이고, 밀성군(密城君)의 후예이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청주 인근의 친지를 모아 70여인을 얻었다. 종질(從姪) 이태지(李泰之)를 부관(副官)으로 삼고, 당질(堂姪) 이원지(李元之), 이형지(李亨之) 형제를 종사관(從事官)으로 삼고, 삼종(三從) 이희명(李希命)과 이종인(李宗人), 이민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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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정주(貞州)이며, 자는 거실(居實)로 정주이씨의 시조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다방(茶房), 내시 등의 벼슬에 이어, 1217년(고종 4)에는 정융분도원사 조충(趙冲)의 막하로 있다가 그의 천거로 대영서승(大盈暑丞)이 되고, 백령도의 진장이 되어 처음으로 향교를 창설하여 제자를 교육하였다. 임기를 마치고 신호위 녹사에 올라 도병마사를 겸하고, 뒤에 우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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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문신, 학자.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미숙(美淑), 호는 농계(聾溪)·취몽헌(醉夢軒)이다. 관찰사 이동직(李東稷)의 아들이며, 이색(李穡)[1328~1396]의 후손이다. 1660년(현종 1)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1669년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예문관의 벼슬을 거쳐 정언·지평을 역임하고 1681년(숙종 7)응교를 거쳐 경상도관찰사로 특진된 뒤 승지·대사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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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중후(仲厚)이고, 청주 남일면 고은치(현, 청원군 남일면 고은리)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호조참판으로 추증된 이인형(李寅馨)이고, 할아버지는 좌승지로 추증된 이경회(李慶會)이며, 증조할아버지는 풍천부사를 지낸 이시득(李時得)이다. 어머니는 순흥안씨로 진사 안여지(安汝止)의 딸이다. 부인으로는 김위(金煒)의 딸인 연안김씨 부인과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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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이원의 고손이다. 이발(李渤)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경윤(李憬胤)이고, 아버지는 진사 이대건(李大建)이며, 어머니는 안동김씨 김도(金燾)의 딸이다. 판서를 역임한 이시발(李時發)의 아우이다. 청주 출신으로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생활을 하였다. 여러 무관직을 거쳐 산계(散階)가 정3품 당상관인 통정대부(通政大夫)에까지 올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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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양구(養久), 호는 벽오(碧梧)·후영어은(後潁漁隱)이다. 아버지는 진사 이대건(李大建)이며, 어머니는 안동김씨(安東金氏)로 김도(金燾)의 딸이다. 1589년(선조 22)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등용되었으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청주로 내려와서 어머니를 산골짜기에 피신시키고 의병장 박춘무(朴春茂)[154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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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열녀. 동래부사 천곡(泉谷) 송상현(宋象賢)[1551~1592]의 첩이다. 동래부사였던 송상현을 따라가 부산에 있으면서 1592년 왜적 침입의 소문이 일자 송상현이 한양으로 피신을 시켰다. 그 후 동래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통곡하면서 송상현을 따라 죽겠다며 동래로 돌아왔다 종 만개(萬介)·금춘(今春)과 더불어 왜적에게 포로가 되었으며 이후 일본으로 보내져 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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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세종 때 생원시에 합격한 후 1432년(세종 14) 식년시(式年試)에 동진사(同進士) 1등으로 급제하였다. 집현전 교리로 재직 하던 1445년에는 세자의 명을 받아 양전(量田)을 시험하는 공을 세웠고, 1450년(문종 1) 경기도 광주판관(判官)으로 있을 때에 국법을 어긴 승려 설정(雪正)과 도명(道明)을 체포하는 일 때문에 군사를 내어 몹시 놀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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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열녀. 청주 출신으로 사인(士人) 이영시(李榮時)의 처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군이 청주에 당도하였을 때 피난하던 중 왜적에게 잡혀 손이 묶인 채 말에 태워져 끌려가고 있었다. 이 때 하씨(河氏)가 몰래 뛰어내려 왜적에게 항거하다가 무참히 살육을 당하였다. 이 일이 조정에 알려져 정려(旌閭)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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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의 머리카락 또는 수염을 깎거나 다듬는 등의 방법으로 손님의 용모를 단정하게 하는 영업을 하는 장소. 과거 18세기 유럽에서는 이용이 의료기술자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현재 이용실을 상징하는 빨간색과 파란색이 혼합된 회전기구는 정맥과 동맥을 형상화한 것으로 전하며, 아름다움에 치중한 미용과는 달리 손님의 머리와 몸을 깨끗하게 하는 위생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1962년도에는 10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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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충청북도 청원군 미원장터의 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30일 오후 1시경 충청북도 청원군 미원장터에서 이수란(李水蘭)·신경구(申敬求) 등 동지들과 같이 1천 여 명의 시위군중의 선두에 서서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 때 일본 헌병이 출동하여 신경구 등 동지를 연행해 가자 그는 군중들을 인솔하여 주재소로 달려가 투석전을 전개하며 격렬하게 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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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충청북도 청원군 미원장터의 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30일 오후 1시경 충청북도 청원군 미원장터에서 이수란(李水蘭)·신경구(申敬求) 등 동지들과 같이 1천 여 명의 시위군중의 선두에 서서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 때 일본 헌병이 출동하여 신경구 등 동지를 연행해 가자 그는 군중들을 인솔하여 주재소로 달려가 투석전을 전개하며 격렬하게 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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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주성동에 있었던 정자터. ‘이유당터’는 이유당(怡愉堂)이 있던 자리로 ‘이유당(怡愉堂)’은 청주 북쪽 10리되는 백화산 아래에 있었다. 참의(參議) 이덕수(李德洙)가 세웠다. 이유당(怡愉堂)이 세운 정자 이름이 ‘이유당(怡愉堂)’이다. 청원군 내수읍 구성리의 동쪽에 있는 주성동의 백화산 아래에 당이 있던 자리로 율량동과 주중동 사이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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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함평(咸平)이며, 자는 덕중(德仲)이다. 아버지는 이준상(李寯相)이며, 어머니는 김이명(金以鳴)의 딸 강릉(江陵)김씨이다. 할아버지는 이지성(李之星)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이초기(李楚奇)이다. 부인은 한경(韓熲)의 딸 청주(淸州)한씨이다. 1723년(경종 3) 성균관에서 수업할 당시 임금이 친히 황감(黃柑)을 하사하고 시사(試士)한 자리에서 수석으로 뽑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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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1728년(영조 4)에 일어난 무신란에 가담한 인물이다. 무신란 때 청주 점령의 가담인물로, 양성에서 모여 청주로 와 이인좌(李麟佐) 군의 분용도위(奮勇都尉)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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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1728년(영조 4)에 일어난 무신란에 가담한 인물이다. 무신란 때 청주 점령의 가담인물로, 양성에서 모여 청주로 와 이인좌(李麟佐) 군의 분용도위(奮勇都尉)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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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학자, 정치가. 본관은 덕수(德水)이며, 자는 숙헌(叔獻), 호는 율곡(栗谷)·석두(石頭) 스님·우재(愚齋)이다. 강원도 강릉 출생으로, 아버지는 증 좌찬성 이원수(李元秀)이며, 어머니는 신명화(申命和)의 딸 평산신씨(平山申氏) 사임당이다. 부인은 노경린(盧慶麟)의 딸 곡산(谷山)노씨이다. 어려서 어머니 신사임당에게 학문을 익히고, 1564년(명종 19)에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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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북문로1가에 있는 율곡(栗谷) 이이(李珥)[1536~1584]의 식송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 조선 중기 기호학파의 종장(宗長)이며, 정치가인 율곡(栗谷) 이이가 청주목사의 임기를 마치고 떠날 때 직접 소나무를 심은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1886년(고종 3)에 세운 표석이다. 소나무는 1946년에 고사하고 지금은 이 비석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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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주지역의 유생.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서휘(瑞輝)이고, 거주지는 청주이다. 아버지는 승의랑(承義郞) 증좌승지 이경회(李慶會)이고, 조부는 풍천도호부사를 지낸 이시득(李時得)이다. 형으로 이인량(李寅亮)과 이인형(李寅馨)이 있다. 부인은 초계정씨이다. 1654년(효종 5) 식년 진사시(進士試)에 급제하였으나 관직에 뜻을 두지 않고 청주에서 은거하며 경학 연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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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본명은 이현좌(李玄佐)이다. 청주 송면 출신으로 전라감사 이운징(李雲徵)의 손자이며, 윤휴(尹鑴)의 손서(孫壻)이다. 동생은 이기좌(李麒佐)이다. 당색이 과격한 소론이었던 그는 영조(英祖)의 즉위로 소론이 정계에서 배제되자 정희량(鄭希亮), 이유익(李有翼), 심유현(沈維賢), 박필현(朴弼顯), 한세홍(韓世弘) 등 소론 과격파와 갑술환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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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1728년(영조 4)에 일어난 무신란에 가담한 인물이다. 무신란 때 청주 점령의 가담인물로, 양성에서 모여 청주로 와 이인좌(李麟佐) 군의 분용도위(奮勇都尉)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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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주지역의 유생.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문원(聞遠)이고, 거주지는 청주이다. 부친은 승의랑(承義郞) 증좌승지 이경회(李慶會)이고, 조부는 풍천도호부사를 지낸 이시득(李時得)이다. 형으로 이인량(李寅亮)이 있고, 동생으로 신항서원의 사액을 청한 이인빈(李寅賓)과 이인정(李寅貞)이 있다. 부인은 순흥안씨이며, 경상우병사와 함경도 북병사를 지낸 이순곤(李順坤)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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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정동에 있는 마을. 이정골은 용정동 서쪽에 있는 마을로 유정골(有亭골), 유정리(有亭里)라고도 한다. 유정골과 유정리의 유정은 유정(有亭)으로 이해된다. 마을에 실제 느티나무 정자가 있으므로 유정이라는 이름이 근거가 있는 셈이다. 유정골은 마을에 느티나무 정자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유정리(有亭里)는 골을 리로 한자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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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용암동 경계에 있는 고개에 얽힌 전설. 조선 중기 광해군 때 한양에서 호조참판을 지낸 이참판이 청주 고을로 내려와 살았다. 이참판의 외동딸 운선(雲仙)은 자기 집 하인인 상백(相百)이 비범함을 알고, 연정을 품었다. 그러나 그녀는 신분의 차이 때문에 말을 하지 못하고 마음을 태우다가 상사병이 나서 자리에 눕게 되었다. 사정을 모르는 이참판은 의원을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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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정동에 위치한, 마을을 지키는 선돌 장승의 성격을 띤 불상. 문헌기록에는 나타나지 않으나 불상의 복부 하단에 ‘순치구년십일월십육일입(順治九年十一月十六日立)’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1652년(효종 3)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상당구 용정동 이정골마을 입구의 논 한가운데 서 있다. 방형석주와 같은 화강암의 상단부에 두상을 조각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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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정동의 재떨이마을에서 이정골로 넘어가는 고개. 전설에 따르면 옛 중들이 넘어 다니던 고개를 뜻한다고 하나 그러면 한자로 구승치(舊僧峙)라고 표기해야 하지만 지명을 전설에 기초하여 해석할 수는 없다고 본다. 따라서 구중고개의 ‘구중’은 한자로 ‘九重’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구중은 어떤 대상이 겹겹이 이어진 모습을 나타낼 때 쓰이는 것처럼 고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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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이며, 자는 몽응(夢應), 호는 청강(淸江)이다. 이시보(李時珤)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공달(李公達)이고, 아버지는 병마사 이문성(李文誠)이며, 어머니는 부령도호부사 우예손(禹禮孫)의 딸 능달(能達)이다. 영의정 상진(尙震)의 손자사위이다. 부인은 상붕남(尙鵬南)의 딸 목천(木川)상씨이다. 7세 때 시를 지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으며, 남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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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에 위치하고 있는 전주이씨 종중 소유의 지석(자기판) 이제열 지석은 1987년 충남 청양군 낙지리에 있는 산소를 사초(莎草)하다가 묘 앞에서 사각형의 이색적인 옹기를 발견하여 파내면서 수습되었다. 다른 명칭으로 숭정 갑오년명 이제열 지석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이제열 지석의 주인공인 이제열(李齊說)[1635~1712]은 조선 숙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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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며 교육자. 국운이 기울어가던 한말. 함경남도 안변군 배화면 수여리 5번지에서 태어나 만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길림성(吉林省)에서 세운 제일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민족교육의 필요성을 절감, 신창학교와 길흥고등소학교 등을 설립, 육영사업에 투신하였다. 길림성 한교동향회(韓僑同鄕會) 상무 간사에 1929년 2월 임명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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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을 전개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지원활동을 벌인 독립운동가. 경술국치를 통분히 여긴 그는 스승 김제환(金濟煥)과 함께 일제에 항거하다가 1913년 일경에 피체되어 고초를 겪었다. 그 후 독립운동의 방안을 모색하던 그는 1920년 2월 서울에서 김광제(金光濟) 등과 더불어 조선노동대회(朝鮮勞動大會)를 조직하여 노동운동에 참여하였다. 이 해 5월에는 김영만(金榮萬) 등 89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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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1932년 10월 8일에 청주에서 태어났다. 주성초등학교, 청주공업고등학교(현 청주기계공업고등학교), 청주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1965년 결혼을 하였으며, 충청북도청에 취직하여 회계, 감사직에 주로 근무하면서 청렴결백하여 맡은바 업무를 훌륭하게 처리한 공로로 대통령으로부터 표창, 훈장을 받았고, 1996년에 사무관으로 퇴직하였다. 일찍이 사진에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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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이며, 자는 위로(渭老)이다. 아버지는 광주부윤을 지낸 이회(李禬)이고, 어머니는 이경인(李敬仁)의 딸 전주(全州)이씨이다. 할아버지는 함경감사 이창정(李昌庭), 증조할아버지는 한림(翰林) 이주(李澍)이며, 부인은 최동주(崔東柱)의 딸 강릉(江陵)최씨이다. 1673년(현종 14) 생원시에 합격하기 전에 이미 음직(蔭職:과거를 치지지 않고 조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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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 등 항일투쟁을 벌인 독립운동가. 1918년 동지들과 같이 독립사상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청년구락부(靑年俱樂部)를 조직하고 기관지로『신청년(新靑年)』을 발간하였다. 1920년 3월 17일에는 『신조선(新朝鮮)』잡지의 기자로서 이달(李達) 등과 같이 3·1운동 1주년을 맞이하여 동지를 규합하여 시위운동을 결행할 것과 일본 제국의회에 「독립청원서」를 제출하기로 계획을 추진하려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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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청주에서 거주하던 인물로 무신란이 일어나 이인좌(李麟佐)를 중심으로 한 반군이 3월 15일 청주성을 점령할 때 가담하였다. 점령 이후 이인좌는 자신을 대원수(大元帥)라고 자칭하고 여러 부하에게 직위를 주어 반군을 편성했는데, 이때 이지경(李之璟)은 진천수령이 되었다. 이지경은 청주성 점령 이후 이인좌 등과 함께 반군을 이끌고 안성·죽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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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부.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선비 이지동(李之董)의 부인이자, 효행으로 복호된 김정삼(金鼎三)의 손녀이다. 효부 안동김씨는 남편이 일찍 죽자 함께 죽을 것을 맹세하였다. 그러나 두 눈이 먼 시어머니가 병으로 누워 있어 차마 남편을 따라 죽지 못하고 6년동안 간호하였다. 안동김씨는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시어머니와 나란히 누워 머리의 이가 자기 머리로 옮겨오게 하고,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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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이며, 자는 덕수(德廋)·항승(恒承)·대수(大廋)이고, 호는 성헌(醒軒)이다. 이조판서 이광정(李光庭)의 후손으로, 이만선(李萬善)의 아들이며 이만원(李萬元)의 조카이다. 정랑 이만성(李萬成)에게 입양되었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여당이라는 무고를 당하여 친국을 받았으나 논리정연하게 논변하여 영조(英祖)로부터 재주를 인정받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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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완산(完山)이며, 1592년 임진왜란 때 호서백(湖西伯)과 더불어 3년간이나 청주성을 지킨 현감 이흥종(李興宗)의 동생이다. 관직이 판관(判官)에 이르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 이흥종과 더불어 창의하여 왜적을 물리치는 데 많은 공을 세웠다. 그의 형 이흥종은 충의위(忠義衛) 신분으로 시골의 군사를 모아 적을 많이 사살하였고, 북문(北門)을 뚫을 때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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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중국에서 항일투쟁을 한 독립운동가. 함경남도 신흥군 신흥면 279번지에서 1914년 6월 25일 과수원을 경영하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1927년 신흥군 신흥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1930년 신흥공민농업학교를 졸업했다. 1939년부터 3년간 중국 산시성(陝西省) 태원시(太原市)에 있는 산시성립 원예시험장에서 연수를 받았다. 신흥공민농업학교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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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이고, 자는 정숙(靜叔)이며, 호는 눌재(訥齋)이다.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이덕사(李德泗)의 아들이고, 이덕수(李德洙)의 조카이다. 이색(李穡)[1328~1396]의 후손이다. 1642년(인조 20)진사로 정시문과(庭試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여 정자(正字), 검열(檢閱)을 거쳐 이듬해 대교(待敎)가 되고, 1646년 설서, 정언, 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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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의 문신. 대한제국 시기 청주군수(淸州郡守)를 지냈다. 청주군수로 재직하면서 그는 백성들의 구습을 타파하고 새로운 규범을 정착시켰으며, 공평무사하게 일처리를 하며 농업 장려에 적극적이었다. 이러한 그의 선정(善政)에 감복한 청주의 사음(舍音)인 전주사(前主事) 김형식(金衡植)과 도감관(都監官) 나성희(羅聖凞), 김영주(金英柱) 등이 1901년에 선정비를 세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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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익산(益山)이며, 상서좌복야 한림학사 승지 이주(李湊)의 아들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진주사록이 되고, 상서도사로 직사관을 겸하였으며, 뒤에 지홍주사(知洪州使)가 되었다. 원종(元宗) 때 삼별초의 난이 일어나자 포로가 되어 반란군의 선법(選法)을 맡았다가 김방경(金方慶)에게 붙잡혔으나 김방경의 아버지 이인의 제자였다 하여 죽음을 면하였다. 그 후 청주목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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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모충동과 개신동 사이에 있는 고개 및 옛 마을. ‘배티’의 ‘배’는 이 고갯마루에 배나무들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티’는 고개의 뜻이므로, ‘배고개’라고도 불리웠다. 이현(梨峴)은 ‘배티’를 한자화한 지명이다. 또한 ‘배티’는 배티 밑에 있는 마을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리고 모충동 쪽 배티마을에는 곡산연씨(谷山延氏)가 많이 살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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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본명은 이현좌(李玄佐)이다. 청주 송면 출신으로 전라감사 이운징(李雲徵)의 손자이며, 윤휴(尹鑴)의 손서(孫壻)이다. 동생은 이기좌(李麒佐)이다. 당색이 과격한 소론이었던 그는 영조(英祖)의 즉위로 소론이 정계에서 배제되자 정희량(鄭希亮), 이유익(李有翼), 심유현(沈維賢), 박필현(朴弼顯), 한세홍(韓世弘) 등 소론 과격파와 갑술환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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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1728년(영조 4)에 일어난 무신란에 가담한 인물이다. 경기도 양성 출신이며, 본명은 이호이다. 무신란이 일어나자 양성에서 군사 2초(哨)를 모아 3월 15일 청주성 점령에 가담했다. 반군은 안성과 죽산 전투에서 관군에게 패하고 관련인물은 모두 처형되었는데, 이만은 경상북도 칠곡의 처가에서 체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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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경주이며, 자는 성경(盛卿)이고, 청주군 북강내이면(현, 청원군 북이면 일대) 출신이다. 아버지는 호조참의(戶曹參議)로 추증된 이석규(李錫圭), 어머니는 연안김씨이다. 할아버지는 경상우병사(慶尙右兵使)를 지낸 이순곤(李順坤)이다. 부인은 파평윤씨(坡平尹氏) 윤섬(尹暹)의 딸이고, 형은 삭주부사(朔州府使)를 지낸 이배원(李培源)이다. 이호원(李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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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본관은 안정(安定)이며, 효행으로 정려를 받은 나운걸(羅云傑)의 딸이자, 진사(進士)를 지낸 경주이씨(慶州李氏) 이혼(李渾)의 부인이다. 나씨는 어렸을때부터 성품이 정숙하였는데, 나이 22세가 되자 경주이씨 문중의 이혼과 혼인하였다. 효성으로 시부모를 봉양하고, 남편을 따랐는데, 남편의 등에 등창이 나서 목숨이 위태롭게 되었다. 이에 나씨가 칼로 그 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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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정백(靜伯)·이정(而靜)), 호는 삼죽(三竹)이다. 아버지는 대사간 이덕수(李德洙)이며, 어머니는 조씨(趙氏)이다. 1624년(인조 2) 생원시에 합격하고, 1636년 의금부도사로 임명되었으나 사퇴하였다. 뒤에 세마(洗馬)를 거쳐 시직(侍直)으로 병자호란을 만나 왕세자를 모시고 남한산성에 호종하였다. 이듬해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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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전의(全義)이며, 조선 개국당시 원종공신으로 봉해진 이구직(李丘直)의 증손이다. 효정공(孝靖公) 이정간(李貞幹)의 손자이고, 전군수 이사혜(李士惠)의 아들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출사하였으며, 판관(判官)으로 있다가 정처를 소박하고 창기를 사랑했다는 죄로 탄핵을 받았다. 세조가 즉위할 때 원종3등 공신에 녹공되었고, 그 후 여러 관직을 거쳐 1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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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봉~고려 초의 무신. 일찍이 궁예(弓裔)를 섬겨 은밀한 일을 탐지해 바치는 것으로 신임을 얻음으로써 무관에 등용되었다. 궁예 말년에 이르러 웅주(熊州)를 습격해 빼앗았으므로 그대로 그곳을 지키게 하였는데, 태조(太祖) 왕건(王建)이 즉위한 소식을 듣고 몰래 해치려는 마음을 품고 부르지도 않았는데도 스스로 떠나오니, 그 수하의 병사들이 대부분이 도망해 버리게 되어 웅주는 다시 후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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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자안(子安)이다. 상당구 주성동 출신으로 주된 거주지는 서울이었다. 아버지는 통훈대부 사복시정을 지낸 이홍연(李弘淵)이고, 할아버지는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자 신항서원(莘巷書院)의 원장을 지낸 이덕수(李德洙)이다.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이며, 부인은 나주임씨이다. 동생으로 이기직(李基稷)과 이광직(李光稷)이 있다. 16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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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집단의 계수로서 정치적, 경제적으로 구획된 일정한 지역내에 있는 주민의 총체. 인구는 몇 가지의 특성에 의해 구별되는데, 경험적 또는 객관적으로 집단을 구별하는 특성으로는 지리적, 인종적, 국적, 자연적 성격 또는 사회적 성격을 손꼽을 수 있다. 세계인구, 한국인구, 여자인구, 노동인구 등이 이 정의에 따른 것이다. 인구에 대한 또 다른 정의를 보면 인구란 어떤 특정한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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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계획과 보건복지를 위해 설립된 인구보건복지협회의 충청북도 및 세종특별자치시 지회. 가족계획, 모자보건, 청소년 성교육 등 생식보건사업 및 가족보건복지사업에 관한 조사, 연구, 교육 및 홍보를 지원, 추진하여 가족의 건강과 복지증진을 이룩함으로써 국민생활수준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고 나아가서는 전국민에게 문화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건전하고 행복한 가정생활을 영위케 함을 목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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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계획과 보건복지를 위해 설립된 인구보건복지협회에 소속된 의료기관. 모자보건, 청소년 성교육 등 생식보건사업 및 가족보건복지사업에 관한 조사, 연구, 교육 및 홍보를 지원 추진하여 가족의 건강과 복지증진을 이룩함으로써 국민생활수준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고 나아가서는 전국민에게 문화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건전하고 행복한 가정생활을 영위하게 함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6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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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표상의 인문적 여러 요소를 분석대상으로 지역의 의의를 일반적으로 고찰·연구하는 학문 분야. 인문지리의 아버지는 칼 리터(Carl Ritter)[1779~1859]로, 그는 지리학을 경험과학으로 규정하면서, 공간적 관점에서 지역을 총체적으로 연구하며 현상들간의 상호관련성을 객관적으로 규명하는 것으로 정의를 내렸다. 특히 리터는 지역현상을 파악하는데 역사의식을 고취하며, 자연·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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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숙박시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인제원은 청주성 남쪽 6리에 있다.’라고 되어있고, 『청주읍지(淸州邑誌)』에는 ‘고을남쪽 6리에 있다. 16개의 원(院)이 옛날에 있었다. 옛터의 옆에 창(倉)을 세우고 객사를 두었다. 지금은 모두 폐하고 다만 신원(薪阮), 오근(吳根)이 사성(使星)을 보내고 맞는 장소이다.’고 한다. 현재 흥덕구 분평동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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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육과 고등교육의 중간 단계에 위치하는 학제상의 과정 또는 학교 형태. 중등교육에 속하는 학교에는 학령의 차이에 따라 일반적으로 구분하는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있다. 이 가운데 고등학교는 전문 직업으로 진출하느냐, 고등교육으로 진출을 준비하느냐에 따라 일반계 고등학교와 실업계 고등학교로 나눌 수 있고, 또 적령기에 미취학한 자와 성인들의 교육 기회를 확대하거나 학생들의 특별한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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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탑동에 있는 사립 일반계 고등학교.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자”라는 생활목표와 함께 ‘신앙인, 애국인, 봉사인, 창조인, 문화인, 보건인’을 육성하려는 학교교육 목표를 제시하면서 ‘교실수업 도약으로 희망찬 충북교육 구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1966년 8월 31일에 탑동 195-7 일대의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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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탑동에 위치하고 있는 사립 중학교. 그리스도정신을 생활화하여 품격을 함양하는 기독인, 나라와 겨레를 사랑하고 세계화·국제화의 추세에 따른 개방화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애국인, 기초교육을 충실히 하여 학력을 제고하고 창의적인 사고와 부단한 탐구로 21세기를 대비하는 실력인, 따뜻한 협동정신으로 이웃을 돕고 서로 사랑하는 생활 습성을 가지 봉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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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절을 지켜 정려된 무녀(巫女). 남편은 재인(才人)인 강선재(姜善才)이고, 아버지는 효자로 이름난 정상명(鄭尙命)이다. 거주지는 청주(淸州)이다. 성품이 효성스러워 출가하기 전 아버지가 피부병에 걸려 종기가 나서 앓을 때 입으로 아버지의 고름을 빨아 고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재인인 강선재에게 출가하였는데, 남편이 죽자 항상 몸에 칼을 지니고 불의의 일을 막으려 하였으므로 누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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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 등 항일투쟁을 벌인 독립운동가. 1918년 동지들과 같이 독립사상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청년구락부(靑年俱樂部)를 조직하고 기관지로『신청년(新靑年)』을 발간하였다. 1920년 3월 17일에는 『신조선(新朝鮮)』잡지의 기자로서 이달(李達) 등과 같이 3·1운동 1주년을 맞이하여 동지를 규합하여 시위운동을 결행할 것과 일본 제국의회에 「독립청원서」를 제출하기로 계획을 추진하려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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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우암동에 있는 열녀 임소사의 정려각. 나용석(羅龍錫)이 동학농민전쟁을 진압하다 순절하자 남편을 따라 죽은 임소사의 절행을 기리기 위하여 1904년에 세운 정려각이다. 상당구 우암동 청주대학교 정문 오른쪽에 ㈜한국도자기 소유의 주차장이 있는데, 주차장 안의 임시건물 뒤편에 있다. 정려각은 돌과 시멘트를 배합하여 쌓은 약 1.5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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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선조 31)까지 2차에 걸쳐서 조선(朝鮮)에 침입한 왜군(倭軍)과의 전쟁. 1592년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쳐서 조선(朝鮮)에 침입한 왜군(倭軍)과의 전쟁이다. 1차 침입이 임진년에 일어났으므로 임진왜란(壬辰倭亂)이라 부르며, 2차 침입은 정유년에 일어나 정유재란(丁酉再亂)이라 일컫는데 일반적으로 임진왜란이라면 정유재란까지 포함해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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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문신. 918년(태조 원년) 순군리(徇軍吏)를 지냈다. 청주사람으로서 918년(태조 원년)에 순군리(徇軍吏)로 근무하였다. 이때 같은 고향사람인 청주의 배총규(裵悤規), 계천(季川)의 강길(康吉), 아차귀(阿次貴), 매곡(昧谷)의 경종(景琮)과 함께 반역을 꾀하고 청주로 돌아가려 하였다. 이것을 복지겸(卜智謙)이 먼저 알고 밀고하므로 태조(太祖)가 사람을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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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청주지역의 유지. 본관은 부안(扶安)이며, 자는 기범(箕範), 호는 한은(翰隱)으로 전서공파(典書公派)의 인물이다. 아버지는 임재천(林在天), 생부는 장예원경(掌隷院卿)에 증직된 임순상(林舜相)이다. 어머니는 성주배씨(星州裵氏), 생모는 경주김씨이다. 세 명의 부인을 얻어 슬하에 4남 2녀를 두었다. 1902년 관직에 나아가 내부주사(內部主事)를 지냈으며, 1910년에는 중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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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외평동에 있는 임항조(林恒祚)와 채세환(蔡世煥)의 공적을 기념하는 비석. 1926년의 홍수 복구사업에 공헌한 임항조와 채세환의 공적을 기념하기 위해 1930년에 세운 공적비이다. 상당구 외평동 마을 입구의 청주에서 청주공항으로 가는 국도 변 오른쪽에 있다. 사각형의 화강암 받침돌 위에, 높이 123㎝, 폭 47㎝, 두께 18㎝의 비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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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인물. 청주사람으로 궁예(弓裔)에 의해 통치되던 태봉 때 같은 고을 사람인 아지태(阿志泰)에 의하여 신방(辛方), 관서(寬舒)) 등과 함께 참소를 당하였다. 그러나 이 사건을 고려 태조(太祖)가 심리하여 그 흑백을 분간하여 판결을 내려주어 여러 사람들이 태조를 따르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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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 날 대문이나 들보, 기둥, 천장 등에 써 붙이는 글귀. 입춘에는 입춘이 드는 시간을 따져서 대문이나 대들보, 기둥, 천장 등에 좋은 글귀를 써서 붙이고 입춘을 송축하는데, 이것을 입춘첩(立春帖) 또는 춘첩자(春帖子), 춘축(春祝)이라고 한다. 고려시대에 입춘 날에는 관리들에게 1일 휴가를 주었고, 입춘 하례를 행하였으며, 왕이 신하에게 춘번자(春幡子)를 나누어 주었고, 문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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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화동에 있었던 못. 연못에 잉어가 많이 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또는 무심천(無心川)의 홍수 때 무심천(無心川)으로부터 잉어가 많이 올라와 사는 논이라 하여 잉어배미라고도 한다. 이곳은 무심천(無心川)이 만들어 놓은 범람원과 우암산(牛岩山)[338m]이 접하는 곳으로 배후습지에 해당하는 곳이다. 따라서 무심천변의 자연제방과 멀리 떨어져서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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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화동에 있었던 못. 연못에 잉어가 많이 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또는 무심천(無心川)의 홍수 때 무심천(無心川)으로부터 잉어가 많이 올라와 사는 논이라 하여 잉어배미라고도 한다. 이곳은 무심천(無心川)이 만들어 놓은 범람원과 우암산(牛岩山)[338m]이 접하는 곳으로 배후습지에 해당하는 곳이다. 따라서 무심천변의 자연제방과 멀리 떨어져서 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