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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송정동에 있었던 마을. ‘정사간’은 ‘정’과 ‘사간’으로 분석된다. 여기서 ‘정’은 ‘진주정씨(晉州鄭氏)’를 말한다. ‘사간(司諫)’은 ‘사간원(司諫院)의 종3품 벼슬로, 1466년(세조 12)에 지원사(知院事)를 고친 이름’이다. 이 곳은 조선 성종 때 대사간(大司諫: 정3품)을 지낸 정설(鄭泄)이 낙향한 마을로, ‘정설’과 ‘대사간’을 따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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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사직동 사뇌사지에서 출토된 유물. 1993년 10월 흥덕구 사직동 용화사에서 동쪽으로 100m 정도 떨어진 무심천변의 제방도로를 확장하기 위하여 전신주를 이설하던 중에 「사뇌사(思惱寺)」명 반자를 포함한 고려시대의 일괄 금속유물이 무더기로 발견되었다. 이들 유물들은 대형의 금동광배편을 위시하여 소종, 향로, 촛대, 숟가락, 금강령, 주자 등 다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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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사직동에 있는 고려시대 사찰 사뇌사의 터. 『조계진각국사어록(曹溪眞覺國師語錄)』에 "서원부사뇌사하안거(西原府思惱寺夏安居: 서원부 사뇌사에서 여름철 안거하였다)"라는 기록이 보여서 고려에 청주에 있던 대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유물이 발견된 곳은 대찰이 있을만한 곳이 아니어서 원 사지는 지금의 용화사 주변 지역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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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사천동에 있는 마을. ‘사뜸’은 ‘사’와 ‘뜸’으로 분석된다. ‘사’는 ‘새(間)’의 변화형, ‘사이(間)’에서의 ‘이’ 생략형, ‘삿[간(間)])’에서의 ‘ㅅ’ 탈락형 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 어느 것으로 보든 그 뜻은 같다. ‘뜸’은 ‘듬’의 변화형인 바, ‘冬非’, ‘冬音’, ‘頭無’, ‘渡迷’ 등의 형태로『삼국사기(三國史記)』, 『세종실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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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6부의 하나로 왕경과 소경에 있었던 행정구역의 명칭. 사량부(沙梁部)는 사훼부(沙喙部) 또는 사탁부(沙𠸌部·沙𣵠部) 등으로 쓰기도 한다. 여기서 량(梁), 탁(𠸌·𣵠), 훼(喙)는 모두 도(道) 또는 독(督)으로 읽혔으며, '돌'로 발음한다. 그 뜻은 아마도 도랑을 낀 지역, 즉 들판의 뜻으로 여겨진다. 사량부는 梁部(=喙部·𠸌部)에서 분화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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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 상당산성(上黨山城) 남문 부근에서 발견된 명문(銘文)이 있는 기와. 이 명문와(銘文瓦)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744(영조 20)년 상당산성(上黨山城) 승장(僧將)이던 영휴(靈休)의 『상당산성고금사적기(上黨山城古今事蹟記)』이다. 이 명문에 대한 해석으로 ‘지일(池馹)’을 인명으로 보아 사탁부 소속의 長 즉 우두머리가 되는 인물의 이름이 지일(池馹)이었거나 혹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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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상호간의 권리와 의무관계를 규율하는 법. 통치작용 중 입법 및 집행과 구별되는 사법은 형식적으로 파악하면 법원이 담당하는 작용이 되지만, 실질적으로 파악하면 ‘구체적인 법적 분쟁이 발생한 경우에 당사자로부터의 쟁송의 제기를 기다려 독립적 지위를 가진 기관이 제3자적 입장에서 무엇이 법인가를 판단하고 선언함으로써 법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헌법 제101조 제1항에서‘사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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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오동동에 있는 마을. ‘새비룡’은 ‘새’와 ‘비룡’으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으며, ‘비룡(飛龍)’은 비룡봉(飛龍峰)[76m] 기슭에 있는 마을에 붙여진 이름으로 파악된다. ‘새’의 의미는 분명하지 않은데, ‘새’를 사이(間)나 새로운(新)의 의미로 볼 수도 있다. 또한 ‘새’를 ‘사(沙)’의 변형으로 보는 견해를 따른다면, ‘새비룡’은 산(비룡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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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설치기준의 여러 조건을 갖추지 아니한 사립교육 기관. 충청북도 청주시에서 학원을 설립·운영하기 위해서는 법령이 규정한 시설과 설비를 갖추고 청주교육청에 등록하여야 한다. 2005년 3월말 기준으로 청주교육청에 등록되어 있는 학원의 수는 1,113곳이다. 분야별로 살펴보면 직업기술 분야 73개소, 국제실무 89개소, 인문·사회 14개소, 경영 실무 16개소, 예능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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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영운동에 있는 마을. ‘생이’는 ‘사양이’의 변화형이다. 전국적으로 ‘사양곡’과 ‘생골’이, ‘사양이’나 ‘사양리’와 ‘생이’가 함께 쓰이는 예가 많다. ‘사양이’는 ‘사양’과 접미사 ‘-이’로 분석된다. ‘사양’ 또는 ‘생이’는 지명에서 선행 요소로 많이 발견되니, ‘사양곡’·‘사양골’·‘사양날’·‘사양동’·‘사양리’·‘사양이’·‘사양재’·‘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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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청 공무원으로 구성된 사진동호회. 1966년 3월 25일 충청북도청에 근무하는 이종선과 정동수가 주축이 되어 충청북도청 공무원으로 이루어진 사진동호회이다. 사영회는 회원 상호간의 친목도모와 사진예술발전을 위해 설립되었으며, 1998년 충청북도 공무원 사우연합회로 변경되어 활동하고 있다. 1966년 4월 25일 충청북도청 회의실에서 창립사진전을 가진 것을 시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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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모충동 동북단 모충대교오거리에서 송절동 동부까지의 도로. 도로의 남쪽 끝이 사직동 남단이고, 북쪽 끝이 원래 제2운천교 부근이었으므로 각 지명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사운로라고 하였다. 북쪽은 제2순환도로에서 시작하여 남쪽은 모충대교오거리에서 무심서로와 합류한다. 폭은 20~25m이며, 길이는 4,480m이다. 도로의 동쪽에는 무심서로가 남북 방향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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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4월 19일을 전후하여 일어난 민주주의 혁명. 이승만(李承晩) 정권은 반일주의와 반공주의를 내세우면서 독재체제를 수립해갔지만, 이승만 정권의 반일주의는 일본에 대한 하나의 외교상의 정략에 이용되었을 뿐이며, 정계에서는 물론 문화, 교육계에서도 친일세력은 그대로 안존했다. 친일파 숙청의 실패로 이승만 정권 존립의 민족사적 명분은 무너졌고, 다만 자유민주주의 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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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사직동에 조성된 근린공원. 공원의 명칭과 행정구역명인 사직동(社稷洞)은 사직단(社稷壇)에서 따온 것이다. 사직단은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리던 곳으로서, 고려 공민왕(恭愍王)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경상북도 안동까지 갔다가 돌아가는 길에 청주에 이르러 지금의 사직산(社稷山)[87.4m] 기슭에 세워준 제단인데, 일제강점기 때 허물어져 지금은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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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사직동에 있는 공원. 고려 31대 공민왕(恭愍王)이 홍건적을 피하여 안동까지 피난을 갔다가 난을 평정한 뒤, 경상북도 상주를 거쳐 청주에 와 있을 때 이 산 기슭에 사직단을 둔 데서 유래하였다. 1943년부터 사직공원으로 불리어 오다가 2003년 12월에 서공원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서원구 사직동과 개신동의 경계에 있는 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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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사직동에 위치한, 조선시대의 사직단이 있었던 자리. 사직단은 천자(天子)나 제후(諸侯)가 토신(土神)인 사(社)와 곡신인 직(稷)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조선시대에는 한 해 농사의 풍년과 국태민안을 기원하기 위해 각 고을의 주, 군, 현에 사직단을 두었다. 청주의 사직단은 고려시대 공민왕(恭愍王)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청주에 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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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사직동에 있는 법정동. 이곳에 사직단이 있어서 사직동이 되었다. 동쪽에는 무심천(無心川)이 흐르는데, 북쪽에서 상당구와 흥덕구를 갈라 경계를 이루어 미호천(美湖川)으로 흘러들고 있다. 본래 청주군 서주내면(西州內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내수동(內水洞)을 합하여 사창리(司倉里)라 하고 사주면(四州面)에 편입,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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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사직2동에 있는 천주교 청주교구청 소속의 성당. 수동성당이 팽창되면서 청주 제 4의 성당 필요성이 대두됐다. 이에 청주교구는 청주시와 협의, 종합운동장 부지와 교환하는 조건으로 현지의 장소에 성당부지를 확보했다. 1974년 수동성당에서 분가하여 새 성당을 건립했다. 1974년 9월 28일 수동성당에서 분가하여 현 위치에 설립되었으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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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북문로2가 상당사거리와 흥덕구 복대동 죽천교 사이에 있는 도로. 흥덕구 복대동에 있는 산업단지육거리에서 충대사거리, 사창사거리, 시계탑오거리, 국보로사거리, 사직사거리, 청주대교 사거리를 거쳐 북문로2가에 있는 상당사거리를 연결하는 주요 간선도로이다. 서단에서는 산업단지육거리에서 서쪽으로 가로수길과 직선으로 이어지고, 북쪽으로는 공단1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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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사직동과 개신동의 경계를 이루는 산. 사직산(社稷山)[87.4m]의 명칭은 고려 제31대 공민왕(恭愍王)이 홍건적(紅巾賊)을 피하여 안동까지 피난을 갔다가 난을 평정한 후 상주를 거쳐 청주에 왔을 때 이 산의 동쪽 기슭에 사직단(社稷壇)을 둔 데서 유래한다. 사직단은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리던 곳으로서 지금의 사직단 공원 자리(충혼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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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사직동 267-12번지 일대에 있는 재래시장. 사직동은 사직단(社稷壇)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그 사직단이 있던 자리는 충혼탑 부근으로 이곳에 시장이 형성됨으로써 명칭도 자연히 사직시장으로 불리게 되었다. 사직시장에는 원래 남한제사가 있었다. 남한제사는 청주연초제조창과 더불어 우리고장의 대표적 향토기업이었다. 한창 번성을 누리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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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다스리는 사신(社神)과 곡식을 다스리는 직신(稷神)에게 지내는 제사. 중국 한(漢)나라 고조(高祖)가 “백성은 땅이 없으면 설 수 없고 곡식이 없으면 살 수 없다.”고 하여 도성 안에 사직을 모신 사직단(社稷壇)을 쌓고 제사를 지냄으로써 시작된 국행제이다. 그 뒤 여러 왕조에서 나라를 세우면 반드시 사직단을 세우고 제사하니 이로부터 사직이 ‘국가’라는 뜻으로도 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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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사직동에 위치하고 있는 공립 초등학교. 자신의 독특한 삶의 방식을 남과 다르게 가꿀 줄 아는 어린이, 기초·기본능력을 갖춰 생각이 깊고 창의력을 발휘하는 어린이, 다양한 교양교육을 토대로 자신의 미래를 개척하는 어린이, 우리문화의 이해 위에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어린이, 민주시민의식을 익혀 인간의 소중함을 알고 공동체 발전에 기여할 줄 아는 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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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의 필름에 빛을 반응시켜 빛의 농도에 따라 사물의 이미지를 영상화한 것. 사진(寫眞, Photography)의 어원 Photography라는 용어는 그리스어의 “빛” 이라는 phos와 “그린다”는 grapose의 합성어로 “빛으로 그린다”는 뜻이며, 우리나라에서의 사진(寫眞)이라는 용어는 일본에서 들여와 사용하고 있는데 사물을 “베낀다”, “박아낸다”, “찍어낸다”는 의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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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지역에서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든 단체. 사진동호회는 직업사진단체로서 1945년 충북사진조합(조합장:김동근)이 결성되었고, 1955년 사단법인 대한사진가연합회(1960년 대한영업사진사협회, 1973년 대한직업사진가협회, 1997년 대한프로사진가협회로 변경) 충북지부가 창립되었다. 청주의 아마추어 사진단체는 한국동란 이후 대한사진작가협회의 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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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에 있는 여성 사진동아리. 청주지역에 생활권을 두고 있는 여성들의 사진 모임으로 사진예술 및 자기발전을 도모하고 사진을 매체로 하여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는데 목적을 두고 설립되었다. 매년 1회 이상 회원 사진전을 개최하고 있으며 2004년에는 ‘보리’를 주제로 제12회 회원전을 가졌으며, 1999년부터 청주중학교, 청주고등학교, 충북대학교부속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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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사직동과 사창동에 있었던 조선시대 저장미를 보관하던 창고 조선시대 지방관청 소속의 저장미를 보관하는 창고가 있던 곳으로, 조선 후기의 지리지에는 청주목 소속의 창고는 동창(東倉)과 서창(西倉)이 읍성 안에 있었으며, 서쪽으로 미호천(美湖川) 연변에 신원창과 금성창이, 북쪽에 오근창, 동쪽 멀리 청천창, 남쪽 멀리 주안창이 있었다. 이들은 세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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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에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조선시대에 이곳에 사창(司倉)이 있었기 때문에 사창리라 하였다. 본래 청주군 서주내면(西州內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내수동(內水洞)을 병합하여 사창리라 명명하고 사주면(四州面)에 편입되었다. 1963년 청원군 사주면이 완전히 청주시에 편입될 때 사창리도 청주시에 편입되어 사직동, 사창동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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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사창동에 있는 천주교 청주교구 소속의 성당. 1980년대초 청주 서부지역에 주공아파트 1·2·3단지와 개신동에 삼익·한솔·송학 아파트 등이 들어섬에 따라 본당신설 필요성이 강력히 대두됐다. 이에 따라 1981년 사직동에서 분가한 본당이 설립됐다. 1981년 5월 본당건립 추진위원회가 발족된 가운데 그해 7월 창신 초등학교에서 첫 미사를 가졌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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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사창동 286-22번지[사직대로164번길 36] 일대에 있는 재래시장. 청주시 사창동 속칭 시계탑은 ‘사창말 고개’, ‘내수동 고개’로 불리던 곳이다. 1960년대 초반까지는 청원군(청원군 사창리)에 속하였다. 사창은 정부양곡을 보관하던 사창(社倉)에서 유래되었으나 오늘날 한자 표기는 사창(司倉)으로 쓰고 있으며 이 일대에 형성된 시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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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사창동에 있었던 사창(社倉) 자리. ‘사창(社倉)’은 조선시대에 각 고을의 환곡을 저장하여 두던 곳집(창고)으로서, ‘사창터‘는 이 사창이 있던 자리를 일컫는 이름이다. 1914년 일제 때 이 지역에 사창리(司倉里)라는 행정구역 명을 붙이면서 ‘사창’의 한자표기가 ‘司倉’으로 달라졌다. 사창 주변에는 ‘창말’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옛날 사창의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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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율량·사천동에 속하는 법정동. 이 지역에서 석기시대의 흙그릇, 흙저울추가 출토된 사실에 주목하여 질구지의 ‘질’을 질그릇을 만드는 흙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또 이곳에 비가 오기만 하면 땅이 질다고 하여 질구지 도는 진고지의 ‘질’과 ‘진’을 ‘질다’와 관련하여 해석하기도 한다. 지형적으로 점토가 많은 구릉지의 찰흙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라면 어느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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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사천동에 있었던 마을. 질구지는 사천동에서 중심이 되는 마을이다. 진고지, 사천(斜川)이라고도 한다. 질구지는 일단 질과 구지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다. 질은 길다(長)의 어간 길이 구개음화를 겪은 어형이다. 구지는 고지에서 변한 것인데 고지는 곶(곶)에 접미사 이가 결합된 어형이다. 곶은 육지이건 해안이건 특정 부분이 돌출하여 길게 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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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사천동에 있는 내. ‘비끼내’는 ‘비끼’와 ‘내’로 분석된다. ‘비끼-’는 동사 ‘비끼다’의 어간이다. ‘비끼다’는 ‘비스듬히 비치다’를 뜻한다. ‘내’는 신라어 ‘那’(나)·‘川理’(나리ㅎ)에서 기원한 것으로, 일찍부터 지명에 나타난다. 따라서 ‘비끼내’는 ‘비스듬히 흐르는 내’로 해석된다. ‘비끼내’는 지역에 따라서는 ‘빗내’·‘비스내’로도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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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사천동과 내덕동을 연결하는 다리. 1979년 충청북도에서 개통하였다. 총연장 27.5m, 교폭 25m이며, RC 슬라브 방식이다. 상당구 내덕동 안덕벌 쪽에서 내려오는 하천이 무심천(無心川)으로 흘러들고 있는데, 청주여자중학교 아래 쪽에 건설되어 있다. 이 다리를 지나는 도로는 17번국도로, 북쪽으로는 성모병원을 지나 오창 방향으로 향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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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율량·사천동에 속하는 법정동. 이 지역에서 석기시대의 흙그릇, 흙저울추가 출토된 사실에 주목하여 질구지의 ‘질’을 질그릇을 만드는 흙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또 이곳에 비가 오기만 하면 땅이 질다고 하여 질구지 도는 진고지의 ‘질’과 ‘진’을 ‘질다’와 관련하여 해석하기도 한다. 지형적으로 점토가 많은 구릉지의 찰흙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라면 어느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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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사천동에 있는 천주교 청주교구 소속의 성당. 1980년대 후반부터 청주 북부지역에 새 아파트단지가 조성됨에 따라 내덕동 주교좌성당의 교세가 급격히 증가했다. 이에 따라 청주교구는 내덕동 주교좌성당의 분당을 모색했다. 1991년 5월 김동일 신부를 초대주임으로 본당이 설립됐다. 김 신부는 그해 율량동에서 지하건물을 전세내 임시 성당으로 사용하다 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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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사천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유적. 질구지마을 뒤쪽편에 해당되는 이 구릉상에 풍화암반층을 파서 만든 파괴된 무덤이 조사되었다. 주변에 점판암 판석이 흩어져 있었고 1m쯤의 깊이로 판 구덩이 주위에서 간돌칼 1점·화살촉 8점이 수습되었다. 이 유물은 현재 청주대학교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수습유물의 성격·지형 조건 등으로 보아 이 일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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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사천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민주 시민으로서 예절과 질서를 익혀 이웃과 나라를 사랑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바른 생활 습관을 가진 어린이, 보건과 안전에 대한 기초 지식과 기능을 익혀 강인한 정신과 몸을 가진 어린이, 학습 방법에서 탐구하는 방법을 익혀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하고 창의적으로 처리하는 능력을 갖춘 어린이, 주인 의식과 자주적인 생활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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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금천동에 있는 마을. 사태밑은 꽃산 밑에 형성된 마을로. 새터밑, 새태밑, 사태, 새터라고도 한다. 사태밑은 사태와 밑으로 분석하여 이해할 수 있다. 사태밑의 사태는 새터의 변형으로 추정된다. 실제 이 지역을 새터라고도 하므로 사태와 새터의 관계는 부정할 수 없다. 새터는 새로 잡은 터(마을) 아니면 사이에 조성된 터(마을)로 해석해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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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금천동에 있는 마을. 사태밑은 꽃산 밑에 형성된 마을로. 새터밑, 새태밑, 사태, 새터라고도 한다. 사태밑은 사태와 밑으로 분석하여 이해할 수 있다. 사태밑의 사태는 새터의 변형으로 추정된다. 실제 이 지역을 새터라고도 하므로 사태와 새터의 관계는 부정할 수 없다. 새터는 새로 잡은 터(마을) 아니면 사이에 조성된 터(마을)로 해석해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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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촌락문서」에 보이는 통일신라시대의 촌. 「신라촌락문서」에는 4개의 촌명이 보이는데 그 중 그 이름이 확실한 것은 사해점촌(沙害漸村)과 살하지촌(薩下知村) 둘 뿐이다. 사해점촌의 마을의 규모는 둘레 5,725보(步)이고, 호구수는 11호(戶)에 147명이다. 가축으로는 말이 25마리, 소가 22마리이고, 논은 102결(結) 2부(負) 4속(束), 밭(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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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생활을 영위하는 인간의 조직화된 집단. 청주는 전통시대 이래 지방행정의 중심지로 많은 역사적 유산과 전통문화를 보유하고 있는 도시이다. 광복이후 시로 승격된 청주는 충청북도의 도청소재지로서 지방행정의 중심지이고, 전자산업 등 첨단산업의 발달로 우리나라의 주요 공업중심지 중 하나로 성장하고 있다. 또한 청주는 전통적으로 교육도시로 불릴 만큼 교육인구의 비중이 높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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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사창동에 있는 비영리 교육단체. 진취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누구나 경제적, 시대적인 이유로 교육에서 소외되지 않고 사회활동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능력과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사회교육을 담당하며 또한 땀흘려 일하는사람들이 인정받는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하고자 설립되었다. 1993년 2월 8일 박창훈 준비위원장을 선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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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사회적 욕구와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 사회복지가 우리나라에 소개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한국동란 후 전쟁고아나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원단체 및 기관들에 의한 시설보호 사업이나 고아원 사업이 있었을 뿐이다. 이 때문에 요즈음도 사회사업, 구호사업, 자원봉사, 사회복지 정책, 사회복지서비스 등의 개념을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 사회복지와의 관련성을 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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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방서동에 있는 청주한씨(淸州韓氏)의 정려각. 청주한씨 문중에서 배출한 한준(韓峻), 한사영(韓士英), 한성(韓鋮), 한해점(韓海漸) 등 4명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의 효행을 기려 세운 정려각이다. 상당구 용암동 방서사거리에서 보은 방향으로 약 150m 지점 길가의 좌측에 있다. 가로 약 6.13m의 장대석 기단위에 정면 2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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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의 표면이 주위의 땅보다 높이 솟은 부분. 산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지만 산의 개념은 고도 및 지역의 두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산이라고 할 때는 고도의 개념이 우선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주변 지형보다 높은 자연지형을 가리킨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높이보다는 평지나 구릉에 대한 상대적인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기복이 뚜렷하고 주위의 저평한 지역과 명백한 산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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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산남동에 있는 공립 고등학교. 덕성과 지성을 겸비한 지혜로운 사람으로 학생과 교사, 학부모 모두가 행복한 배움터를 만든다는 목표로 자긍심이 있는 사람, 사랑으로 가르치는 교사, 신뢰하고 참여하는 학부모와 함께 국제화 시대에 걸맞은 당당한 사람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2005년 9월 8일 고등학교 설립 인가를 받았으며, 2006년 8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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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산·미·분·장동에 속하는 법정동. 구룡산(九龍山)[163.6m]의 남쪽지역이라 산남이라고 하였다. 본래 청주군(淸州郡) 남주내면(南州內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산직리(山直里), 신곡리(新谷里), 탑동리(塔洞里), 분동리(粉洞里) 일부를 병합하여 산남리(山南里)라 명명하고 사주면(四州面)에 편입하였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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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산남동 상정말에 있는 고려시대 건물지로 추정되는 유적. 한국토지공사 충북지사에서 계획한 청주 산남3지구 일원에 대한 택지 조성 공사에 따라 실시된 지표조사(1994년)에서 확인된 유적이지만, 2004년 택지개발과정에서 제외된 지역으로 발굴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구룡산(九龍山)[163.6m] 아래쪽 상정말마을의 뒷편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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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산남동 아랫탑골마을에 있었던 원삼국·고려·조선시대의 무덤, 건물지, 가마터 등의 유적. 한국토지공사 충북지사에서 계획한 청주 산남3지구 일원에 대한 택지 조성 공사에 따라 지표조사(1994년) 결과 실시된 발굴조사(2004년)이다. 조사결과 원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무덤, 구덩유구, 건물터 등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절터가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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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산남동에 있었던 원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 걸쳐 조영된 무덤 및 가마터 등의 유적. 한국토지공사 충북지사에서 추진한 청주 산남3지구 일원에 대한 택지조성공사를 위해 실시한 지표조사(1994년도) 결과를 바탕으로 발굴조사(2004년도)가 이루어졌다. 조사결과 원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무덤, 기와가마, 건물지, 구덩유구 등 다양한 유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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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개신동의 충북대학교박물관에 있는 석탑.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석탑이다. 흥덕구 산남동 속칭 원흥리 마을 뒤편(동쪽)에 있는 낮은 야산에 있었다. 당초부터 이곳에 있었던 것은 아닌 듯하다. 이웃마을(도 교육청 서쪽)의 이름이 탑곡(塔谷)인 점으로 보아 옛 절터(寺址)에서 옮겨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석탑이 위치한 곳이 택지개발 지구로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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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수곡동에 있는 복지시설. 사회복지욕구 서비스를 가진 모든 지역사회 주민을 대상으로 보호와 자립능력 배양을 위한 교육과 복지서비스 제공을 통해 가정기능 강화 및 주민상호간 연대감 조성을 통한 각종 지역사회 문제를 예방, 치료함으로써 저소득층의 삶을 향상 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91년 8월 2일 산남종합사회복지관과 탁아원이 개원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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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산남동에 있는 공립 중학교. 국가와 사회를 위해 일하며 남과 더불어 살아가는 민주 시민, 예절과 질서를 지키며 올바른 가치관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 다양한 정보 수집과 활용으로 지식 기반 사회에 필요한 사람, 스스로 탐구하고 노력하여 항상 새로움을 창조하는 사람, 체력을 단련하고 정서를 순화하여 심신이 건강한 사람, 창의적이고 스스로 미래를 개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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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산남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민주시민으로서 나라를 사랑하고 예의 바른 어린이, 진지하게 생각하고 슬기롭게 탐구하며 해결하는 어린이, 기초 교육을 토대로 새롭게 생각하는 창의적인 어린이, 강인한 정신력과 몸을 튼튼히 키워가는 어린이, 미래 지향적이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2007년 2월 9일 산남초등학교로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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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군 청주 읍내의 동쪽에 있었던 면. 청주 읍내에서 보았을 때, 산맥(청원군과 보은군의 경계에 있는 작은 산맥으로 추정) 안쪽에 있는 두 번째 면이므로 산내이면이라 하였는데, 1895년(고종 32) 산내이상면(동북쪽)과 산내이하면(서남쪽)으로 나누어졌다. 본래 산성(山城), 거죽(巨竹), 양지(陽地), 현암(玄巖), 차남(車南), 화문(華門), 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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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곡동에 있는 행정동이자 법정동. 산이 불쑥 나온 골짜기라는 뜻인 ‘숙골’이 변형된 것이라는 설과 물이 많은 골짜기라는 뜻인 ‘수(水)골’이 변형된 것이라는 설이 있다. 본래 청주군(淸州郡) 남주내면(南州內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산북리(山北里)라 명명하고 사주면(四州面)에 편입시켰다. 1963년에는 수곡동(秀谷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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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과 산성동에 있는 고개. ‘산성재’는 ‘산성’과 ‘재’로 분석된다. ‘산성’은 ‘청주 상당산성’을 가리키고, ‘재’는 ‘고개’를 뜻한다. 따라서 ‘산성재’는 ‘상당산성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해석된다. 이 고개는 달리 ‘산성고개’로도 불리는데, 이는 ‘산성재’에서 ‘재’가 같은 뜻인 ‘고개’로 바뀐 결과이다. 이 고개는 달리 ‘약수터고개’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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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에 속하는 법정동. 상당산성 안에 있다고 하여 산성이라 하였다. 산성동은 본래 청주군 산내이하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 정책에 따라 거죽리와 양자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산성리라 명명하고 현성면에 편입하였다. 1946년 청주군이 청주부와 청원군으로 나뉠 때 청원군에 소속하였으며, 198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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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명은 용담·명암·산성동 12통이고, 법정명은 산성동 산성마을이다. 산성동 산성 마을은 본래 청주군(淸州郡) 산내이하면(山內二下面)의 지역으로서 상당산성 안이 되므로 산성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거죽리와 양지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산성리라 해서 낭성면에 편입되었다. 그 후 1983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청주시에 편입되었다. 산성마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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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 마을은 산성이 있어 연일 끊이지 않고 등산객과 관광객이 찾아온다. 산성을 한 바퀴 도는 관광을 주로 많이 하고, 청주시내 소재 중·고등학교에서 산성으로 소풍을 온다. 우암산(牛岩山)[338m] 등산로는 여러 곳으로 나 있어 한 두 번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매일 등산하는 시민들이 많다. 상당산성 방문객 현황은 1월~2월초 평일 300~500여 명이다. 2월~7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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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교동초등학교와 낭성초등학교를 다녔으나 인구가 많아짐에 따라 갈산분교가 생기면서 갈산분교를 다녔다. 지금은 폐교되고 낭성과 시내로 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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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당산성(上黨山城) 상당산성은 삼국시대 백제의 상당현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추정하고 있다. 둘레가 4.2㎞, 높이 3~4m, 면적 54,700평의 거대한 포곡식 석축산성이다. 정확한 축성연대는 알 수 없으나『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김유신(金庾信)의 셋째 아들 원정공(元貞公)이 서원술성을 쌓았다는 기록과, 『상당산성고금사적기(上黨山城古今事蹟記)』에 김우진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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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마을은 60여 년 전까지 서문 왼쪽 산자락에 돌로 쌓은 산제당을 지어 음력 12월말에서 정월 초에 택일하여 산제를 올렸다. 산제당은 때집으로 때 한 장, 돌 한 장씩 포개 지은 움막이었다. 현재 산제당은 원래 위치에서 산 아래쪽으로 자리를 이동하였다. 예전에 동제를 올릴 때는 동네 집집마다 소염이 쌀을 걷거나 동네 기금으로 마련했다. 제물로는 통돼지와 떡을 동네 소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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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 마을 주민의 생활은 원주민과 이주민이 대별된다. 원주민은 대부분 농사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비해 이주민들은 대개 상업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현재 44가구 중 농사짓는 가구는 10여 가구쯤 된다. 산성 마을 입구에 자리 잡은 한옥마을은 원래 농토였는데 1980년대부터 터를 닦아 1992년부터 상가가 형성되어 대추술과 민속음식을 팔고 있다. 대추술은 1980년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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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산성 마을의 생계수단은 농사와 나무장사였다. 본업으로 논농사를 짓고 부업으로 나무장사를 해서 생계에 보탬을 했다. 나무를 해서 판 시장은 청주 내덕동 제조창 앞과 청주약국 앞, 무심천(無心川) 제방이다. 무심천(無心川)의 소전거리와, 남주동(南洲洞)의 피전골목, 피전거리, 나무전, 돗자리 전에 가서 나무를 팔았다. 그때 당시 시세가 나무 한 짐에 20원~30원 했다. 이 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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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맞이 산성 마을은 달맞이를 북장대에서 했다. 달집태우기를 하면서 보름날 저녁에 달보고 절을 하며 한 해 소원을 빌었다. 예전에는 마을 사람들이 달맞이 행사를 했지만 현재는 청주 시민이 상당산성에 와서 달맞이 행사를 벌인다. ◦ 쥐불놀이 산성 마을은 산촌이기 때문에 나무가 많았다. 특히 다른 산에는 나무가 없어 인절미를 굴려도 먼지하나 안 붙는다는 말이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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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동은 시의 최북동부에 있으며 동쪽은 청원군 낭성면 삼선리, 서쪽은 명암동, 남쪽은 용정동, 북쪽은 청원군 북일면 국동리에 접해 있다. 산촌마을인 산성마을은 상당산(上黨山)[419m] 정상에 있는 마을로 산정에 상당산성이 있고, 성내에는 산성마을과 일제시대 축성된 마을 앞 성내방죽이 있다. 성내 남쪽 골짜기에는 것대마을이 있다. 마을 중앙에는 청주 미원 간의 도로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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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산성 마을 뒷산 골짜기인 막골, 곰골, 참나무골, 북장대(겅거울), 옹기미에 호랑이가 나와서 해질녘에는 산에 올라가지 않았다고 한다. 호랑이가 산에서 내려와 어린애를 업고 가는 것을 콩밭을 매고 있던 아낙이 보고 소리 지르자 아이를 놓고 갔다. 호랑이가 동네 옆 냇가에 내려와 물을 마시다 사람이 지나가면 피해줬다. 옹기미에 굴이 있었는데 이 굴에서 호랑이가 산다는 소리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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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 마을은 각성받이 마을이기는 하나 워낙 산간벽촌이라 궂은일에는 합심하여 일을 치렀다. 동네에 초상이 나면 너나없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일을 도왔다. 동네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시절에는 상주가 동네 집집마다 등을 하나씩 사주는 미풍양속이 있었으나 동네에 전기가 들어오면서 사라졌다. 장례는 3일장, 5일장을 하나, 대개는 3일장이다. “중생일”이 끼면 5일장을 한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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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의 신석기시대에서 원삼국시대의 유물과 유구가 있는 유적지. 이 유적은 1995년 청주 상당산성 서장대 터를 발굴할 때에 청주 상당산성의 남문인 공남문 밖의 지역을 시굴조사 하였는데, 여기에서 여러 시대에 걸친 유물·유구가 조사되었다. 비록 시굴조사이기는 하나 이곳에서 유구로는 주거지와 원형의 화덕자리가, 유물로는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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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상당산성 남문 진입로 부근에서 조사된 조선시대의 기와가마. 조사된 유구는 기와가마 1기이다. 가마는 북동쪽에서 남서 방향으로 경사진 지형의 화강암 부식토층을 굴착하여 만든 반지하식 등요로서, 연소실과 소성실 사이에 는 낮은 단벽이 설치된 일반적인 구조이다. 가마의 전체 형태는 장타원형이며 소성실은 너비의 큰 변화없이 직선적으로 연도에 이어진다.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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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과 산성동에 있는 고개. ‘산성재’는 ‘산성’과 ‘재’로 분석된다. ‘산성’은 ‘청주 상당산성’을 가리키고, ‘재’는 ‘고개’를 뜻한다. 따라서 ‘산성재’는 ‘상당산성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해석된다. 이 고개는 달리 ‘산성고개’로도 불리는데, 이는 ‘산성재’에서 ‘재’가 같은 뜻인 ‘고개’로 바뀐 결과이다. 이 고개는 달리 ‘약수터고개’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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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담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전통 예절과 기본 질서를 지키는 바른 인성을 가진 어린이,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하고 사고하는 창의적인 어린이, 정보 활용 능력을 키워 미래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어린이, 실천 위주의 체험 활동으로 공동체 의식을 가진 어린이, 건전하고 다양한 체육 활동으로 몸과 마음이 튼튼한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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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명은 흥덕구 강서 1동 24통이고, 법정명은 청주시 흥덕구 비하동(飛下洞) 동양촌(東陽村)이다. 비하동은 시의 서부에 있으며, 동쪽은 복대동, 서쪽은 지동동, 남쪽은 강서동, 북쪽은 향정동과 접해 있다. 본래 청주군(淸州郡) 서강내일하면(西江內一下面) 지역으로 피아골, 피하골 또는 비하동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도동(道洞) 동양리(東陽里)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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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촌은 부모산(父母山)[232m]의 동쪽 산자락에 위치한 마을이다. 마을 앞으로 청주-조치원간 도로가 나 있으며, 마을을 서쪽으로 중부고속도로가 지나고 있다. 이전에는 일대가 모두 농경지였으나, 최근에 하복대지구가 개발되어 급속히 도시화되어 대규모 아파트단지와 상가가 들어서고 있다. 동양촌 북쪽 도로가에 아래사양재마을이 있고, 아래사양재 북서쪽 골짜기에는 윗사양재마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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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촌은 벼농사를 위주로 생계를 유지하던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었다. 일제시대에는 부업으로 동네 주민 전체가 인조진주를 생산하기도 하였다. 유리를 달구어 만든 인조진주를 마을의 중간 상인을 통해 조치원 장에 내다 팔아 소득을 올렸다고 한다. 전형적인 농촌 생활상을 보이던 동양촌은 청주의 도시화와 함께 급격히 변하였다. 그 주요인은 도로의 개설과 대단위 아파트단지의 유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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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춘무삼대창의사적비(朴春茂三代倡義事蹟碑)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청주성 탈환에 공을 세운 박춘무(朴春茂)[1544~1611], 이괄의 난·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킨 박동명(朴東命)[1576~1636] 및 손자 박홍규(朴弘遠) 3대의 공적을 기려 1992년 세운 비석이다. 동양촌마을 앞 원모단(遠慕壇)에서 북동쪽으로 100m 지점에 위치한다. 비제(碑題)는 ‘민양공화천당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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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촌의 서낭제는 동제가 아니라 개인 신앙이다. 서낭은 한갓골고개와 용골고개에 있었는데, 그 중 한갓골 서낭을 더 많이 위했다. 한갓골 서낭은 소나무 앞에 돌로 원형 탑을 쌓아 올린 형태로 개인이 고사를 지냈었다고 하며 현재 소멸되었다. 용골고개 서낭은 최근에 소멸되었는데, 10여 년 전만 해도 서낭에 왼새끼에 종이를 꼬아 꽂은 금줄이 쳐 있었다고 한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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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모두 조산원이나 산부인과에서 출산이 이뤄지지만 예전에는 산파를 불러 집에서 낳았다. 산모의 진통이 시작되면 산파는 방의 자리를 걷고, 미리 추려놓은 짚을 깔고 그 위에 재문지를 깔았다. 아이를 낳으면 탯줄은 산모와 아이 쪽으로 모두 한 뼘씩 남기고 잘랐다. 자른 탯줄과 분비물은 왕겨 속에 넣고 마당에서 삼불을 놓아 태웠는데 이 삼불은 사흘 정도 탔다. 삼불이 다 타 재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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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윷놀이는 정월대보름 전에 주로 행하던 대표적인 민속놀이로 실내 실외 어디서든 누구나 가능한 놀이이다. 윷은 주로 밤나무로 만들었고, 가시나무나 소나무로도 만들었다. 밤나무윷은 크기가 다른 윷에 비해 작아 한 손에 들어가 예전에 많이 사용했다고 하나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있다. 예전에는 동네에 초상이 났을 때 호상(好喪)인 경우 상가(喪家) 마당에서도 윷놀이를 했다. 어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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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에 기재된 전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본래 부모산은 아양산, 악양산(岳陽山) 등으로 불렸다. 임진왜란 때 박춘무(朴春茂)[1544~1611]가 복대에서 의병을 일으켜 청주성을 탈환하고 아양산 마저 탈환하여 그 곳에 머물고 있었다. 그러나 박춘무에게 패전했던 왜병이 아양산에는 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산 주위를 포위하고 보급로를 차단하자 그 안에 갇힌 의병들은 보름이 지나자 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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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촌의 교통은 일제시대에 개설되어 확장된 청주-조치원간 도로, 청주역으로 통하는 도로, 청주시 외곽도로 등과 접해 있어 편한 편이다. 동양촌은 전통적으로 주민의 대부분이 농업 위주의 1차 산업에 종사하고 있었으나 도로의 개통과 택지개발로 인한 도시화로 유입 인구가 증가하여 2, 3차 산업에 종사하는 주민이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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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군 청주 읍내의 북서쪽에 있었던 면. 본래 청주 읍내에서 보았을 때, 우암산(牛岩山)[338m] 및 상당산(上黨山)[419m] 바깥쪽에 있으므로 산외면이라 하였는데, 1895년(고종 32) 둘로 나누어 첫 번째 면을 산외일면, 두 번째 면을 산외이면이라 하였다. 본래 초정(椒井), 우산(牛山), 내대(內垈), 평산(平山), 인본(仁本), 저곡(楮谷), 매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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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에 있었던 마을. ‘산정’과 ‘말’로 분석된다. ‘산정’은 ‘山井’으로 산에 있는 우물로 해석된다. 전국에 ‘산정’이라는 지명이 많은데, 산우물이라는 속지명과 함께 쓰이기도 한다. ‘말’은 ‘마을’의 뜻이다. 산정말은 산에 우물이 있는 마을로 보면 된다. 운천공원 동쪽 아래에 해당되며, 사운로 서쪽에 있는 주택지역이다. 제1순환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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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원평동에 있는 산. ‘산제당거리’가 변음이 되어 ‘산지당거리’라고도 부르고 있다. ‘산제당거리’는 ‘산제당’과 ‘거리’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다. ‘산제당’은 ‘산신제를 지내는 신당’이다. ‘산신당’이 있는 거리가 ‘산제당거리’이다. 그런데 여기서의 ‘산제당거리’는 거리의 이름이 아니라 산 이름으로 쓰인 것이다. 거리의 이름이 산 이름으로 전용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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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원평동에 있는 산. ‘산제당거리’가 변음이 되어 ‘산지당거리’라고도 부르고 있다. ‘산제당거리’는 ‘산제당’과 ‘거리’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다. ‘산제당’은 ‘산신제를 지내는 신당’이다. ‘산신당’이 있는 거리가 ‘산제당거리’이다. 그런데 여기서의 ‘산제당거리’는 거리의 이름이 아니라 산 이름으로 쓰인 것이다. 거리의 이름이 산 이름으로 전용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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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에 있었던 마을. ‘산정’과 ‘말’로 분석된다. ‘산정’은 ‘山井’으로 산에 있는 우물로 해석된다. 전국에 ‘산정’이라는 지명이 많은데, 산우물이라는 속지명과 함께 쓰이기도 한다. ‘말’은 ‘마을’의 뜻이다. 산정말은 산에 우물이 있는 마을로 보면 된다. 운천공원 동쪽 아래에 해당되며, 사운로 서쪽에 있는 주택지역이다. 제1순환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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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를 둘러싼 삼국(고구려·백제·신라)의 각축장. 살수(薩水)는 『삼국사기(三國史記)』 권 제37잡지 제6 유명미상지분(有名未詳之分)에 보인다. 494년(신라 소지마립간 16, 고구려 문자왕 3, 백제 동성왕 16) 가을 7월에 신라 장군 실죽(實竹) 등이 고구려와 ‘살수(薩水)의 들판’에서 싸우다가 이기지 못하고 견아성(犬牙城)으로 물러났다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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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륙지방도시로서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는 청주시에는 수많은 옛 건조물이 유적으로 현존하면서 역사문화도시로서의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청주 정북동 토성과 청주 신봉동 고분군에서와 같이 옛 주거지 터가 현존하고 있다. 그리고 고려시대에 설축하였다고 하는 청주읍성터는 현재의 가로망 형태로 그대로 현존하고 있다. 우암산성, 당산토성과 우암산성을 거쳐 저 멀리 산성동의 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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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촌락문서」에 보이는 통일신라시대의 촌. 「신라촌락문서」에는 4개의 촌명이 보이는데 그 중 그 이름이 확실한 것은 사해점촌(沙害漸村)과 살하지촌(薩下知村) 둘 뿐이다. 살하지촌의 마을의 규모는 둘레 12,830보(步)로 4개 마을 중에 가장 크다. 호(戶)는 15호에 인구는 125명이고, 논은 63결 64부 9속, 밭은 119결 5부 8속이다. 가축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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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의 쉼터는 공원과 유원지로 나눌 수 있는데, 공원은 어린이공원, 근린공원, 도시자연공원, 묘지공원, 체육공원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주민의 생활과 가장 관련이 깊은 공원은 근린공원과 도시자연공원과 체육공원이다. 그 이유는 어린이공원의 경우 아파트나 단독주택 지구의 어린이 놀이터이고, 묘지공원은 망자의 매장을 목적으로 이용되기 때문이다. 한편 청주시의 유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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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를 중심으로 한 삼국간의 항쟁. 교통의 요충지인 청주를 빼앗기 위한 고구려, 백제, 신라간의 항쟁으로 청주지역을 최종적으로 획득한 신라는 삼국통일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427년(장수왕 15) 고구려의 평양 천도와 함께 남쪽으로의 진출을 강화하자, 백제와 신라는 동맹을 체결하여 고구려를 방어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475년 고구려 장수왕의 침입으로 백제는 개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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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에 있었던 충청병마절도영(忠淸兵馬節度營)의 건물. 조선시대 충청병마절도영에 세워졌던 건물이다. 병영의 군무를 수행하는데 있어 병영소속의 군관들이, ‘백성들에게 세 가지를 베풀어주라’는 뜻으로 건물의 명칭을 삼석당(三錫堂)이라 한 것으로 보인다. 영조(英祖)년간에 간행된 『여지도서(輿地圖書)』 공해(公廨), ‘삼석당, 십이간(十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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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지동동에 있었던 마을. 고씨(高氏), 이씨(李氏), 장씨(張氏) 등 세 개의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살던 마을이라서 붙어진 이름이다. 이전에는 굴다리 밑에 주막이 있었던 관계로 ‘주막거리’라고도 하였다. 석남천 하류에 위치하고 있어서 비교적 저평한 지형을 이루고 있다. 흥덕구의 북부지역으로서 중부고속도로 서청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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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낳고 기르는 것을 관장하는 가신(家神)인 삼신을 모시는 신앙. 옛날 청주시 흥덕구 개신동 삼신봉에 삼신당(三神堂)이 있어 그 곳을 찾아가 비손을 하거나 삼신굿을 하기도 하였으나, 삼신당이 없어지면서 삼신굿은 사라지고 지금은 우암산(牛岩山)[338m]이나 상당구 명암동에 있는 굿당을 찾아 삼신굿을 한다. 즉 삼신은 가신 중에서 주부가 가장 정성을 드리는 신앙의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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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명(命)과 복(福)을 주재하는 삼신의 내력을 푸는 무가(巫歌). 『가신풀이』는 가신의 근본을 설명하는 일종의 내력담(來歷譚)이다. 보통 인간의 명과 복을 관장하는 제석(帝釋), 가장의 안위를 관장하는 성주, 또는 성조(成造), 자손의 출생과 양육을 관장하는 삼신(三神) 등의 좌정 과정을 그리고 있다. 한문어투의 난해한 무경(巫經)보다 구어체 문장의 일반 무가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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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낳고 기르는 것을 관장하는 가신(家神)인 삼신을 모시는 신앙. 옛날 청주시 흥덕구 개신동 삼신봉에 삼신당(三神堂)이 있어 그 곳을 찾아가 비손을 하거나 삼신굿을 하기도 하였으나, 삼신당이 없어지면서 삼신굿은 사라지고 지금은 우암산(牛岩山)[338m]이나 상당구 명암동에 있는 굿당을 찾아 삼신굿을 한다. 즉 삼신은 가신 중에서 주부가 가장 정성을 드리는 신앙의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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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에 있는 마을. 일명 ‘삼위’라고도 한다. ‘삼위’는 ‘샘 위’의 뜻이다. 마을이 샘 위쪽에 있어서 붙어진 이름이다. 그러나 지금은 샘이 있지 않다. 샘의 위쪽에 있는 마을은 마을을 지시하는 ‘뜸’을 첨가하여 ‘샘위뜸’이라고도 한다. 정상(井上)은 ‘샘 위’에 대한 한자지명이다. 흥덕구 수의동 동부 가마골 동쪽 끝에 있는 마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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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수동에 있는 공원.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충청북도 출신 의암(義菴) 손병희(孫秉熙)[1861~1922], 우당 권동진[1861~1947], 청암 권병덕(權秉悳)[1867~1944], 동오 신홍식(申洪植)[1872~1937], 은재 신석구(申錫九)[1875~1950], 청오 정춘수(鄭春洙) 등 여섯 명의 동상을 세워 선열들의 숭고한 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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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운동 당시 청주 일원에서 전개된 만세운동. 1919년 3월 1일 서울 등 주요 도시에서 비롯된 만세운동은 곧 전국적으로 파급되었다. 3·1운동의 전국 확산은 「독립선언서」의 배포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데, 충청도지방 「독립선언서」의 배포 책임자는 천도교 측의 인종익(印鍾益)이었다. 일제의 기록에 의하면 청주에서는 3월 2일 「독립선언서」 268매가 발견되어 관련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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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현암동에 있는 느티나무. 검배마을 뒷산에 있는 느티나무 두 그루와 마을회관 앞 느티나무 한 그루를 한 데 모아 세 그루, 즉 삼주(三株) 느티나무라 부른 데서 유래한다. 마을위로는 경부고속도로가 지나고 수의동의 청주가로수길에서 작은 도로인 수현동로를 따라오면 충북학생롤러스케이트 경기장이 있는 곳이다. 흥덕구 현암동 검배마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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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현암동에 있는 느티나무. 검배마을 뒷산에 있는 느티나무 두 그루와 마을회관 앞 느티나무 한 그루를 한 데 모아 세 그루, 즉 삼주(三株) 느티나무라 부른 데서 유래한다. 마을위로는 경부고속도로가 지나고 수의동의 청주가로수길에서 작은 도로인 수현동로를 따라오면 충북학생롤러스케이트 경기장이 있는 곳이다. 흥덕구 현암동 검배마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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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북문로2가 서남단에서 상당구 우암동의 북쪽까지 연결되는 남북방향의 도로. 도로명은 예전에 청주읍성 북문 안에 있었던 삼충사(三忠祠)[또는 표충사(表忠祠)]에서 유래되었다. 삼충사는 북문 안에 있었는데, 1939년 군수 이해용(李海用)이 수동으로 이전하였다. 동쪽은 사직로에서 시작하여 북쪽은 흥덕로에서 끝난다. 폭은 10m이며, 길이는 1420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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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수동에 있는 세 충신을 모시는 사당. 조선 영조 때의 충신인 이봉상(李鳳祥)[1676~1728], 남연년(南延年)[1653~1728], 홍림(洪霖)[1685~1728]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삼충사(三忠祠)라고도 부른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가 반란을 일으켜 청주성으로 침입하자 당시 충청도 병마절도사로 있던 이봉상을 비롯하여 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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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수동에 있는 삼충사의 사적비. 1731년(영조 7) 표충사(表忠祠)의 건립관련 내력을 기록한 비석이다. 상당구 수동의 표충사(表忠祠) 내 표충사(表忠祠) 본전(本殿) 오른쪽에 있다. 방형의 받침돌 위에 높이 246㎝, 폭 95㎝, 두께 38㎝의 오석(烏石)의 비신(碑身)을 세우고, 지붕돌[가첨석(加檐石)]을 얹었다. 전서(篆書)로 쓴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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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의 문신 이승소(李承召)[1422~1484]의 시문집. 1514년(중종 9) 간행본, 1535년 간행본 2종이 전해온다. 1535년 간행본은 이수동이 충청관찰사로 재직할 당시 청주목(淸州牧)에서 총 15권으로 편집한 목판본(木版本)으로 제9권부터 제15권까지의 2책이 전해오고 있으며,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첫째, 시(詩)에는 미인도(美人圖)·병풍화(屛風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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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력기원전후로부터 기원후 300년까지의 시기를 지칭하는 시대구분의 명칭. 한국고고학에서 사용되는 시대구분 명칭으로, 1970년대 초에 생겨났는데 초기철기시대에 뒤이은 시기를 말한다. 원삼국시대는 종래 고고학에서 김해(金海)시대, 웅천기(熊川期), 또는 초기철기시대 등으로 불려왔고, 역사학에서의 삼한시대, 군장국가, 성읍국가 등이 이에 해당되지만, 삼국시대의 원초기(原初期), 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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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남촌동에 있는 들. ‘삽다리’는 ‘삽’과 ‘다리’로 분석된다. ‘삽’은 ‘섶’의 변화형이다. ‘섶’은 ‘섶나무’의 준말로, ‘잎나무·물거리·풋나무 등의 총칭’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삽다리’와 ‘신교(薪橋)’가, ‘삽실’과 ‘섶실’·‘신곡(薪谷)’이 함께 쓰이고 있어 이런 추정을 뒷받침해 준다. ‘다리’는 ‘들’의 변화형이다. 지명에서 ‘들’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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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에 위치하고 있는 공립 일반계 고등학교. ‘미래를 주도할 정직하고 예의바르며 실력 있는 상당인’을 육성하기 위해 교육목표를 ‘도덕인, 건강인, 봉사인, 창조인, 자주인’으로 정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1996년 1월 11일 용암여자고등학교로 설립 인가되었으나, 10월 15일 상당고등학교로 교명을 확정하였다. 199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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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수동에 있는 근린공원. 청주의 중심부이자 상당구의 중심이 되므로 상당공원이라 하였다. 상당구 수동 280-18번지 일대에 있으며, 상당사거리 남동쪽에 있다. 상당로에 인접해 있기 때문에 접근성이 매우 뛰어나다. 그러나 자체의 주차공간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승용차를 이용할 때에는 주변의 유료 주차장을 이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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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미평동에 있는 대한예수교 장로회에 속하는 교회. 서남교회 창립 20주년 기념 교회로 개척하여, 1976년 4월 6일 민석기 장로의 집에서 시작되었다. 흥덕구 사직동에서 사창동으로 이전하여 예배를 보다가 1979년에 사창동 259-12의 땅에 예배당을 지어 입주하게 되었다. 1995년에 정삼수 목사가 부임한 이후, 주변지역의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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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동부에 위치한 구. 북서쪽은 청원군 오창면, 북동쪽은 청원군 내수읍, 동쪽은 청원군 낭성면, 동남쪽은 청원군 가덕면, 남쪽은 청원군 남일면, 서쪽은 흥덕구와 접하고 있다. 구청소재지는 상당구 우암동에 있다. 삼한시대에는 마한에 속하였고, 백제시대에는 상당현(上黨縣)[낭비성(娘臂城), 낭자곡(娘子谷)]이라 하였다. 통일신라시대에는 685년(신문왕 5) 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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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의 행정기관. 1989년 7월 1일 동부출장소가 설치되었고 당시 17개동을 관할하였다. 1995년 1월 1일에 상당구로 승격되었는데 1982년 2월 1일 과소행정동 통폐합으로 12개동을 관할하였다. 2000년 10월 1일 동기능을 전환하고 2003년 4월 1일 용암용정방서동 분동으로 13개 행정동 363통 1,712반을 관할하고 있다. 관할 행정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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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극단. 청주의 옛 이름인 상당현에서 이름을 따와 젊은 연극으로 충북연극의 발전에 일조하겠다는 목적으로 창립되었다. 창단공연으로 「아일랜드」(A. 후가드 작/ 박천하 연출)를 공연한 이래 1986년 「관객모독」(P. 한트게 작/ 박종갑(朴鍾甲) 연출)을 공연하여 소극장 공연으로 3,000명이상의 관객을 동원하였으며, 「울타리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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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내덕동 내덕칠거리와 석교동 석교육거리 사이에 있는 주간선도로. 상당구를 관통하는 주 도로이기 때문에 상당로가 되었다. 북쪽은 상당구 내덕동의 내덕칠거리에서 시작하여 남쪽은 석교동의 석교육거리에서 끝난다. 도로의 폭은 25m이며, 길이는 3,200m이다. 서쪽에는 중앙로 및 성안길, 동쪽에는 대성로가 평행하게 남북 방향으로 뻗어 있다.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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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에 있는 청주곽씨(淸州郭氏)의 인물을 제향하는 사당. 고려시대 청주곽씨의 곽원(郭元)[?~1029], 곽여(郭輿)[1058~1130], 곽예를 제향하기 위하여 1974년에 세운 사당이다. 설립 당시의 명칭은 청원사(淸原祠)였는데, 1996년에 지금의 이름으로 개칭되었다. 상당구 명암동 명암약수터 뒷길로 약 300m 가량 올라가면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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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있는 청주 상당산성의 주봉. 상당산(上黨山)[419m]이란 이름은 삼국시대에 청주가 백제의 상당현이었던 데서 비롯된 것이다. 상당산(上黨山)[419m] 서쪽과 남쪽은 급사면을 이루는데, 이 골짜기에 흐르는 물은 무심천(無心川)을 거쳐 금강으로 흘러들어간다. 반면 동쪽은 완만한 지형을 이루는데, 이 골짜기의 물은 미원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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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4년(영조 20) 청주 상당산성의 승장(僧將)인 영휴(靈休)가 청주 상당산성의 역사, 지리지형 등 전반적인 내용에 관해 기술한 책. 청주 상당산성의 승장이었던 영휴가 1744년 당시 청주 상당산성에 관한 종합적인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문답식(問答式)으로 기술한 책이다. 청주 상당산성의 승장 영휴가 청주 상당산성의 역사적 지리적 사실을 전하고자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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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에 위치하고 있는 공립 초등학교. 나라와 이웃을 사랑하고 예절과 질서를 지키는 어린이, 자기 주도적 학습력을 길러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어린이, 스스로 탐구하고 창의적으로 생활하는 어린이, 의지가 강하고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린이, 근검과 절약을 실천하고 협동 봉사하는 어린이를 길러 예절바르고 능력 있는 국제인을 육성한다. 199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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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있는 청주 상당산성의 주봉. 상당산(上黨山)[419m]이란 이름은 삼국시대에 청주가 백제의 상당현이었던 데서 비롯된 것이다. 상당산(上黨山)[419m] 서쪽과 남쪽은 급사면을 이루는데, 이 골짜기에 흐르는 물은 무심천(無心川)을 거쳐 금강으로 흘러들어간다. 반면 동쪽은 완만한 지형을 이루는데, 이 골짜기의 물은 미원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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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과 청원군 낭성면에 걸쳐 있는 산. ‘것대산(484.0m)’은 옛 문헌에 ‘거차대산(居次大山)’ 또는 ‘거질대산(居叱大山)’ 등으로 차자되어 나온다. 즉, ‘居次大’나 ‘居叱大’는 모두 ‘것대’로 재구성되어 불린 것이다. ‘거질대산’은 ‘거질대(居叱大)’의 ‘질(叱)’이 차자표기에서 ‘ㅅ’의 표기인 줄을 모르고 음으로 읽은 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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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율량동에 있는 마을. 율봉(栗峰)의 위쪽(상류쪽)에 있다고 하여 율상리(栗上里), 율상, 상리라 하였다. 율봉은 역말, 율봉역이라고도 하였는데, 공문서를 전달하고 공무로 출장을 다니던 관리들에게 말을 제공하던 역원이 있던 곳이다. 현재 율량밤골길이 있는 곳이 율봉이고, 그 동쪽의 중리안1길, 중리안2길이 있는 곳이 중리이며, 중리의 동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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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사천동에 있는 마을. 옛날에 발산사라는 절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나 실제 절이 있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발산이라는 한자 지명에는 ‘바라미’, ‘바리미’, ‘바래미’ 등과 같은 속지명(俗地名)이 대응되어 쓰이는 경우가 많다. 바리미, 바라미, 바래미의 후행요소인 ‘미’는 산(山)의 뜻이고 선행요소인 ‘바리’, ‘바라’, ‘바래’의 어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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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과 명암동 사이에 있는 고개. 상봉고개와 상봉재는 ‘상봉’과 ‘고개’ 및 ‘재’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상봉은 그 주변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의 산이라는 뜻으로 전국의 곳곳에 상봉의 산이나 고개가 흔하게 쓰인다. 명암동에는 ‘상봉’ 아래에 있는 산을 가리키는 ‘중봉’이 있다. ‘고개’와 ‘재’는 같은 의미이니 ‘상봉고개’ 및 ‘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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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있는 저수지. 산성고개를 넘자마자 좁은 차길로 우회전하면 좁은 골짜기가 나타나며, 골짜기를 따라 5분정도 차를 타고 가면 상봉소류지에 도착할 수 있다. 소류지 바로 위에는 것대산 봉화터가 있으며, 봉화터 바로 옆에는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소가 있어 그곳까지 승용차가 다닐 수 있도록 좁은 도로가 나 있다. 시내에서 명암약수터를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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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과 명암동 사이에 있는 고개. 상봉고개와 상봉재는 ‘상봉’과 ‘고개’ 및 ‘재’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상봉은 그 주변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의 산이라는 뜻으로 전국의 곳곳에 상봉의 산이나 고개가 흔하게 쓰인다. 명암동에는 ‘상봉’ 아래에 있는 산을 가리키는 ‘중봉’이 있다. ‘고개’와 ‘재’는 같은 의미이니 ‘상봉고개’ 및 ‘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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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서2동에 속하는 법정동. 방죽 위쪽에 새로 생긴 마을이어서 상신리라 하였다. 본래 청주군(淸州郡) 서강내일상면(西江內一上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원평리(院坪里) 일부를 병합하여 상신리(上新里)라 명명하고 강서면(江西面)에 편입되었다. 1983년 2월 15일 청원군 강서면 일원이 청주시에 편입될 때 상신리도 청주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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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을 취할 목적으로 생산자로부터 재화를 구입하여 ‘최종 소비자 또는 최종 소비자에게 판매할 자’에게 이를 판매하는 사업. 넓은 의미로 상업은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재화의 사회적 유통활동을 일컫는다. 즉, 생산자로부터 소비자에게 도달하는 재화의 사회적 유통에 관한 모든 활동, 생산 및 소비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여 그것들을 지도하는 활동, 가격을 형성하고 조정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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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월오동에 있는 마을. ‘상월’ 또는 ‘서운말’이라고도 한다. ‘상월’은 ‘上月 ’로 월오동 위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서원말’은 ‘서원이 있는 마을’로 해석된다. 마을에 ‘봉계서원(鳳溪書院)’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전국에는 ‘서원말’이라고 불리는 마을 이름이 많다 지역에 따라서는 ‘서원마’로 나타나기도 한다. ‘서원이 있는 마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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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대성동에 있는 마을. 향교말은 대성동의 청주향교 옆 주변에 있는 마을이다. 향교말은 ‘향교’에 ‘말’을 결합시킨 지명이다. 말이 마을을 가리키는 대표적 단어이기에 향교골보다 더 구체적인 명칭이다. 생겨골, 상저골, 생작골 또는 향교골, 행교말 이라고도 한다. 향교골은 향교와 골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청주향교 앞에 있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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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에 있었던 마을. ‘산정’과 ‘말’로 분석된다. ‘산정’은 ‘山井’으로 산에 있는 우물로 해석된다. 전국에 ‘산정’이라는 지명이 많은데, 산우물이라는 속지명과 함께 쓰이기도 한다. ‘말’은 ‘마을’의 뜻이다. 산정말은 산에 우물이 있는 마을로 보면 된다. 운천공원 동쪽 아래에 해당되며, 사운로 서쪽에 있는 주택지역이다. 제1순환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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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에 있었던 마을. ‘산정’과 ‘말’로 분석된다. ‘산정’은 ‘山井’으로 산에 있는 우물로 해석된다. 전국에 ‘산정’이라는 지명이 많은데, 산우물이라는 속지명과 함께 쓰이기도 한다. ‘말’은 ‘마을’의 뜻이다. 산정말은 산에 우물이 있는 마을로 보면 된다. 운천공원 동쪽 아래에 해당되며, 사운로 서쪽에 있는 주택지역이다. 제1순환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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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외평동에 있었던 마을. 이곳은 ‘쇠내’의 윗쪽에 있던 마을인데, ‘쇠내’를 기준으로 하여 위에 있기에 ‘상촌’(上村)이라 한다. ‘상촌’이라는 지명은 전국에 많이 분포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속지명 ‘윗말’, ‘윗마을’ 등과 함께 쓰이기도 한다. 17번도로의 공항로와 540번 도로가 만나는 지점의 상당산성에서 발원하여 미호천(美湖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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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신용금고법에 의해 설립된 서민, 영세상공인 및 중소기업을 위한 지역금융기관. 상호신용금고는 1972년 8·3 대통령 긴급명령에 따라 사금융을 양성화하기 위해 제정된 상호신용금고법에 의해 설립된 금융기관이다. 상호신용금고의 주된 업무는 예금업무와 대출업무이며, 주로 가계의 여유자금을 예금의 형태로 조달하여 해당 지역의 서민, 영세상공인 및 중소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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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신용금고법에 의해 설립된 서민, 영세상공인 및 중소기업을 위한 지역금융기관. 상호신용금고는 1972년 8·3 대통령 긴급명령에 따라 사금융을 양성화하기 위해 제정된 상호신용금고법에 의해 설립된 금융기관이다. 상호신용금고의 주된 업무는 예금업무와 대출업무이며, 주로 가계의 여유자금을 예금의 형태로 조달하여 해당 지역의 서민, 영세상공인 및 중소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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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에 있는 미래통합당의 지역당. 미래통합당의 충청북도지역을 대표하는 지역당 미래통합당 충북도당은 충청북도 도민을 대상으로 미래통합당의 설립목적과 정강정책을 기본으로 실천하여 정당의 지지를 넓히고, 미래통합당 소속의 지역정치인 활동을 지원하고, 당원을 비롯한 지역주민의 의견을 수렴하여 중앙당의 정강정책 결정과정에 가교적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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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내덕동에 있는 마을. 본래 이곳은 덤불이 무성한 숲이었다고 하는데, 한국전쟁 이후 주거지로 개발되면서 여기에 새로운 마을이 조성되자 새동네라고 하였다. 내덕동에도 새동네가 있고, 전국적으로 새동네라는 지명은 매우 흔하다. 북쪽에는 율량천이 흐르고, 제방을 따라 내북길이 개설되어 있으며, 동남단에는 제1순환로가 통과한다. 서남쪽에는 내새로, 북동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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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사천동에 있는 마을. ‘사뜸’은 ‘사’와 ‘뜸’으로 분석된다. ‘사’는 ‘새(間)’의 변화형, ‘사이(間)’에서의 ‘이’ 생략형, ‘삿[간(間)])’에서의 ‘ㅅ’ 탈락형 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 어느 것으로 보든 그 뜻은 같다. ‘뜸’은 ‘듬’의 변화형인 바, ‘冬非’, ‘冬音’, ‘頭無’, ‘渡迷’ 등의 형태로『삼국사기(三國史記)』, 『세종실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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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금고법’에 의해 설립·운영되는 신용협동조합. 새마을금고는 신용협동조합법이 제정되기 이전인 1963년 재건국민운동의 향토개발사업으로 시작되었는바, 우리 민족 고유의 협동수단인 품앗이, 두레, 계 및 향약 등에서 나타나는 상부상조정신과 근면, 자조, 협동을 기본이념으로 한 ‘잘살기 운동’으로 경상남도 의령군에서 설립된 정암마을금고와 하둔마을금고가 최초의 금고로 알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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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의 청주 신봉동 고분군에서 발견된 토기. 새발자국무늬토기는 청주 신봉동 고분군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되며, 전라도지역과 일본에서도 발견되어 고대 문화전파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 새발자국무늬토기는 두드린 토기의 겉면에 사선의 두드림무늬가 3방향으로 나있는 것으로 이 무늬가 마치 새의 발자국무늬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청주 신봉동 고분군에서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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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석곡동에 있는 마을. ‘새뱅이’는 ‘새방이’의 변화형이다. 즉 ‘새방이’가 ‘ㅣ’모음 역행동화에 의해 바뀐 어형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새방이’와 ‘새뱅이’가 함께 쓰이는 예도 있다. ‘새방이’는 ‘새방’과 접미사 ‘-이’로 분석되고, ‘새방’은 다시 ‘새’와 ‘방’으로 나뉜다. 여기서 ‘방(坊)’은 ‘동네’를 뜻하나, ‘새’는 몇 가지로 다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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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오동동에 있는 마을. ‘새비룡’은 ‘새’와 ‘비룡’으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으며, ‘비룡(飛龍)’은 비룡봉(飛龍峰)[76m] 기슭에 있는 마을에 붙여진 이름으로 파악된다. ‘새’의 의미는 분명하지 않은데, ‘새’를 사이(間)나 새로운(新)의 의미로 볼 수도 있다. 또한 ‘새’를 ‘사(沙)’의 변형으로 보는 견해를 따른다면, ‘새비룡’은 산(비룡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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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오동동에 있는 마을. ‘새비룡’은 ‘새’와 ‘비룡’으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으며, ‘비룡(飛龍)’은 비룡봉(飛龍峰)[76m] 기슭에 있는 마을에 붙여진 이름으로 파악된다. ‘새’의 의미는 분명하지 않은데, ‘새’를 사이(間)나 새로운(新)의 의미로 볼 수도 있다. 또한 ‘새’를 ‘사(沙)’의 변형으로 보는 견해를 따른다면, ‘새비룡’은 산(비룡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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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오동동에 있는 마을. ‘새비룡’은 ‘새’와 ‘비룡’으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으며, ‘비룡(飛龍)’은 비룡봉(飛龍峰)[76m] 기슭에 있는 마을에 붙여진 이름으로 파악된다. ‘새’의 의미는 분명하지 않은데, ‘새’를 사이(間)나 새로운(新)의 의미로 볼 수도 있다. 또한 ‘새’를 ‘사(沙)’의 변형으로 보는 견해를 따른다면, ‘새비룡’은 산(비룡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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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내덕동에 있는 근린공원. 이곳에 있는 골짜기 이름이 새적굴(새적골·새절골)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새절골은 ‘(골짜기) 사이에 있는 절골(절이 있는 골짜기)’ 또는 ‘새로운 절이 있는 골짜기’ 등으로 풀이된다. 이 새절골이 새적골로 변하고, 다시 새적굴로 변한 것으로 추정된다. 동남쪽에 있는 우암산(牛岩山)[338m]으로부터 뻗어 내려온 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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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에 위치한 종합일간신문. 2005년 8월 15일 50여명의 직원으로 출발한 새충청일보사는 충북지역의 안정적인 보급망을 기반으로 2006년 1월 대전·충남 지역에 주재기자 파견 및 보급망을 구축하고 개혁언론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새충청일보사의 창간 뿌리는 충청일보사에서 비롯됐다. 새충청일보사 창사 맴버들은 충청일보사에서 근무하던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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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금천동에 있는 마을. 사태밑은 꽃산 밑에 형성된 마을로. 새터밑, 새태밑, 사태, 새터라고도 한다. 사태밑은 사태와 밑으로 분석하여 이해할 수 있다. 사태밑의 사태는 새터의 변형으로 추정된다. 실제 이 지역을 새터라고도 하므로 사태와 새터의 관계는 부정할 수 없다. 새터는 새로 잡은 터(마을) 아니면 사이에 조성된 터(마을)로 해석해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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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서촌동 새터마을에 위치한 삼국시대 유물산포지. 이 유적은 국립청주박물관에서 중원문화의 성격을 규명하고자 학술조사 활동의 일환으로 실시한 미호천(美湖川)유역의 지표조사 결과 확인된 유적이다. 뚜렷한 유구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문살무늬가 두드림[타날] 된 삼국시대토기편이 출토되었다. 청주시의 서쪽에 위치한 새터마을 맞은편의 낮은 구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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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금천동에 있는 마을. 사태밑은 꽃산 밑에 형성된 마을로. 새터밑, 새태밑, 사태, 새터라고도 한다. 사태밑은 사태와 밑으로 분석하여 이해할 수 있다. 사태밑의 사태는 새터의 변형으로 추정된다. 실제 이 지역을 새터라고도 하므로 사태와 새터의 관계는 부정할 수 없다. 새터는 새로 잡은 터(마을) 아니면 사이에 조성된 터(마을)로 해석해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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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사천동에 위치하고 있는 공립 초등학교. 자기 주도적 학습의 강화로 스스로 생각하고 탐구하는 어린이, 나와 우리를 함께 가꾸는 도덕적인 품성을 지닌 어린이, 폭 넓은 학습 경험을 토대로 스스로 미래를 개척하는 어린이, 심신의 조화로운 발달로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린이, 안전생활 규범을 배우고 익혀 실천하는 어린이를 길러 슬기롭고 정직하며 튼튼한 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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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에서 매년 새해 첫날 열리는 새해맞이 행사. 새해맞이희망축제는 한 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맞이하여 충청북도 도민의 건강과 행복, 도정 발전을 기원하고 도민에게 희망을 주는 화합의 한마당을 마련하기 위해 매년 12월 31일 청주예술의전당 천년각에서 개최하는 새해맞이 행사이다. 충청북도에서 주최하고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충청북도연합회에서 주관하는 행사로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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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서1동에 속하는 법정동. 동명의 유래는 마을 앞에 용이 승천하였다는 큰 우물이 있어 샘미마, 용정이라고 하였다. 강서동은 본래 청주군 서강내일하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14년에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 정책에 따라 중암리, 석담리, 봉산리, 호암리, 반송리 일부와 주봉리 일부를 병합하여 용정리라 명명하고 강서면에 편입하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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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에 있는 마을. 일명 ‘삼위’라고도 한다. ‘삼위’는 ‘샘 위’의 뜻이다. 마을이 샘 위쪽에 있어서 붙어진 이름이다. 그러나 지금은 샘이 있지 않다. 샘의 위쪽에 있는 마을은 마을을 지시하는 ‘뜸’을 첨가하여 ‘샘위뜸’이라고도 한다. 정상(井上)은 ‘샘 위’에 대한 한자지명이다. 흥덕구 수의동 동부 가마골 동쪽 끝에 있는 마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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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에 있는 마을. 일명 ‘삼위’라고도 한다. ‘삼위’는 ‘샘 위’의 뜻이다. 마을이 샘 위쪽에 있어서 붙어진 이름이다. 그러나 지금은 샘이 있지 않다. 샘의 위쪽에 있는 마을은 마을을 지시하는 ‘뜸’을 첨가하여 ‘샘위뜸’이라고도 한다. 정상(井上)은 ‘샘 위’에 대한 한자지명이다. 흥덕구 수의동 동부 가마골 동쪽 끝에 있는 마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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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산남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자신과 이웃을 존중하고 협동하는 어린이, 심신이 건강하고 조화로운 어린이, 개성을 추구하는 자율적인 어린이, 창의적인 사고로 탐구하는 어린이, 꿈을 가꾸고 생각을 키워가는 행복한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2007년 2월 9일에 샛별초등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았다. 2007년 3월 1일 18학급으로 개교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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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대성동에 있는 마을. 향교말은 대성동의 청주향교 옆 주변에 있는 마을이다. 향교말은 ‘향교’에 ‘말’을 결합시킨 지명이다. 말이 마을을 가리키는 대표적 단어이기에 향교골보다 더 구체적인 명칭이다. 생겨골, 상저골, 생작골 또는 향교골, 행교말 이라고도 한다. 향교골은 향교와 골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청주향교 앞에 있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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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영운동에 있는 마을. ‘생이’는 ‘사양이’의 변화형이다. 전국적으로 ‘사양곡’과 ‘생골’이, ‘사양이’나 ‘사양리’와 ‘생이’가 함께 쓰이는 예가 많다. ‘사양이’는 ‘사양’과 접미사 ‘-이’로 분석된다. ‘사양’ 또는 ‘생이’는 지명에서 선행 요소로 많이 발견되니, ‘사양곡’·‘사양골’·‘사양날’·‘사양동’·‘사양리’·‘사양이’·‘사양재’·‘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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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대성동에 있는 마을. 향교말은 대성동의 청주향교 옆 주변에 있는 마을이다. 향교말은 ‘향교’에 ‘말’을 결합시킨 지명이다. 말이 마을을 가리키는 대표적 단어이기에 향교골보다 더 구체적인 명칭이다. 생겨골, 상저골, 생작골 또는 향교골, 행교말 이라고도 한다. 향교골은 향교와 골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청주향교 앞에 있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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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외평동에 있던 들. ‘생치마루’는 1차적으로 ‘생치’와 ‘마루’로 분석된다. ‘생치’는 다시 ‘생’과 ‘치(峙)’로 나뉜다. ‘생’은 ‘사양(斜陽)’의 변화형으로, ‘해질 무렵 비스듬히 비치는 햇볕’을 뜻한다. ‘치’는 ‘티’와 함께 지명의 후행 요소로 자주 사용되는데, 그 뜻은 ‘고개’이다. ‘마루’는 ‘높다’를 뜻하는 백제어 ‘毛良’(모랑)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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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외평동에 있던 들. ‘생치마루’는 1차적으로 ‘생치’와 ‘마루’로 분석된다. ‘생치’는 다시 ‘생’과 ‘치(峙)’로 나뉜다. ‘생’은 ‘사양(斜陽)’의 변화형으로, ‘해질 무렵 비스듬히 비치는 햇볕’을 뜻한다. ‘치’는 ‘티’와 함께 지명의 후행 요소로 자주 사용되는데, 그 뜻은 ‘고개’이다. ‘마루’는 ‘높다’를 뜻하는 백제어 ‘毛良’(모랑)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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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사직동에 있는 생태교육연구소. 지역주민들과 함께 지역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갖고 우리 주변의 환경에 대한 소중함을 인식하고 지켜나가는 활동을 전개한다. 이와 함께 삶의 터전으로부터 시작하는 건강하고 순수한 시민운동으로 청주를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진 쾌적한 생태도시로 가꾸어 나가고 사람과 사람들이 더불어 사는 지역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을 목표로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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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에 위치하고 있는 공립 중학교. ‘21세기를 주도할 실력 있고 진취적이며 당당한 사람’을 육성하기 위하여, ‘예절을 존중하고 질서를 잘 지키는 도덕적인 사람, 탐구능력과 세계화 대응력을 갖춘 창의적인 사람, 개성을 신장하고 소질을 계발하여 실력 있는 사람, 국가관과 공동체 의식이 투철한 자주적인 사람, 튼튼한 몸과 강인한 의지력을 갖춘 건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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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린이, 바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어린이, 자기 주도적으로 실천하는 어린이, 새로운 것을 찾아 탐구하는 어린이, 바르고 건강하며 슬기로운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2001년 12월 1일 서경초등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았다. 2004년 3월 1일 23학급으로 개교하였으며, 초대 김홍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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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죽림동에 있는 골짜기와 마을. ‘서고노골’은 ‘석기능골’의 변화형으로 추정된다. ‘서고노골’이 ‘석기동(石基洞)’으로도 불리기 때문이다. ‘석기능골’은 ‘석기’와 ‘능골’로 분석되는데, ‘석기(石基)’는 ‘돌이 많은 터’를 뜻한다. ‘능골’은 ‘능’과 ‘골’로 나뉘는데, 대부분 ‘능(陵)’과 관련된 유래담을 지니고 있다. ‘골’은 고구려어 ‘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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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사직동에 있는 공원. 고려 31대 공민왕(恭愍王)이 홍건적을 피하여 안동까지 피난을 갔다가 난을 평정한 뒤, 경상북도 상주를 거쳐 청주에 와 있을 때 이 산 기슭에 사직단을 둔 데서 유래하였다. 1943년부터 사직공원으로 불리어 오다가 2003년 12월에 서공원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서원구 사직동과 개신동의 경계에 있는 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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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 독립운동가. 일제 강점기 청주지역에서 활동한 항일 독립운동가이자 지방유지이다. 본관은 달성(達城)이며, 호는 양초(兩草)로 학유공(學諭公) 서도(徐渡)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3·1운동 때 지방 책임자로 활약한 서상갑(徐相甲)이며, 어머니는 반남박씨(潘南朴氏)이다. 부인은 파평윤씨(坡平尹氏)로 슬하에 1남을 두었다. 족보상에 나타난 서광준[1910~1944]의 이름은 서병준(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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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정봉동에 있는 서광준[1910~1944] 지사의 송덕비. 독립운동가이며 지방유지로 활동한 서광준의 공적을 기려 1992년 1월 28일에 세운 추모비이다. 청주시 흥덕구 정봉동에 있다. 높이 151㎝, 폭 55㎝, 두께 23㎝의 오석(烏石)의 비신(碑身)을 세우고, 두 마리의 용이 다투는 듯한 형상의 이수(螭首)를 얹었다. 비의 제목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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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율량동의 서기사(瑞氣寺)에 있는 석조약사여래좌상의 광배. 조성 시기는 대략 고려 중기 이전으로 추정되며 크기는 전체높이(全高) 78㎝, 중간 폭(中幅) 61㎝, 아래 폭(下幅) 55.1㎝, 두광 지름(頭光經) 26.4㎝이다.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을 화염(火炎)으로 다시 둘러싸도록 한 배 모양의 광배(舟形光背)로서 융기선(隆起線)으로 내외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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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율량동의 서기사(瑞氣寺)에 있는 불상. 결가부좌(結跏趺坐)하여 정면(正面) 직시(直視)한 약사여래좌상(藥師如來坐像)으로 나발(螺髮)의 머리에 낮은 육계(肉髻)가 놓여 있다. 그리고 이마에는 백호(白毫)를 표현하였다. 눈은 정면을 바라보고 있으며, 양볼에는 살이 쪄 있어 원만한 상을 이루었다. 입은 굳게 다물었으며, 양쪽 귀는 길게 늘어져 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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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율량동 서운사 자리에 있었던 사찰. 조선 후기의 지리지에는 현재의 서운사 자리에 서기암(瑞氣菴)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輿地圖書)』청주목 방리조에는 서기암(瑞氣菴)이 관문의 북쪽 13리에 있으며 편호는 12호에 남자 16명이 살고 있었던 것으로 되어 있으며,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 사찰조에는 고을 북쪽 10리 율봉역(栗峰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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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율량동 서운사 자리에 있었던 사찰. 조선 후기의 지리지에는 현재의 서운사 자리에 서기암(瑞氣菴)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輿地圖書)』청주목 방리조에는 서기암(瑞氣菴)이 관문의 북쪽 13리에 있으며 편호는 12호에 남자 16명이 살고 있었던 것으로 되어 있으며,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 사찰조에는 고을 북쪽 10리 율봉역(栗峰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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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개신동에 있는 대한예수교 장로회에 속하는 교회. 충북노회가 분열한 뒤 교세 확장을 위하여 청주선교부와 승동교회(이대영 목사)의 도움을 받아 교회를 개척하였다. 청주선교부는 세광학원 교목으로 있던 박종렬 목사를 개척교회 목사로 임명하여 교회 개척을 후원하였다. 예배장소를 마련하기 위하여 일제시대강점기 때 요정으로 사용되던 서문동의 태평관(太平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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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화동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당집. 조선시대에 고을 백성들의 안녕을 위하여 성황신을 모셨던 당집이다. 조선조에 들어와서 중앙집권화의 한 방식으로 산천(山川), 성황(城隍), 풍운(風雲), 뇌우(雷雨) 등 여러 명칭으로 부르던 민간신앙의 단(壇)들을 하나의 성황사(城隍祠)로 통합하여 주·부·군·현의 행정 단위마다 하나씩 설치하여 지방관으로 하여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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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우암동에 있던 골짜기. ‘서답골’은 ‘서답’과 ‘골’로 분석된다. ‘서답’은 ‘세답(洗踏)’의 변화형인 바, ‘세답’은 ‘빨래’에 대한 한자어이다. 방언에 따라서는 ‘빨래터’를 ‘서답갠’이나 ‘서답나덜’로도 부른다. ‘서답’은 지명에서 선행 요소로 자주 쓰였으니, ‘서답거릿보’·‘서답구미’·‘서답나드리’·‘서답내’·‘서답둠벙’·‘서답들’·‘서답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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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 사립 교육기관으로서, 향촌사회에 생활근거를 두고 면(面)·동(洞)·이(里)를 기본 단위로 하여 설립한 초등 교육기관. 서당은 보통 마을마다 건립되어 기초적인 수준의 동몽교육을 담당하였고, 대개 18세기 후반이후에 일반화된 것이었다. 그러나 16세기 사림파의 등장과 함께 사족가문의 자제교육을 위한 서당도 적지 않았다. 이들 사림들이 건립한 서당은 사숙(私塾), 또는 독서당(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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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봉명동 799~801번지 부근에 있었던 조선시대 수리시설. 현재의 봉명동 799~801번지 부근에 있었던 수리시설로 『청주읍지(淸州邑誌)』에는 주치(州治)에서 서(西)로 5리 떨어진 곳에 있고, 주위가 552척이며 수심이 2척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봉명동 사거리 남동쪽 기슭의 봉명파크장 주변에 있었으며, ‘소댕이방죽’이라 불FL다가 1983년 주변이 택지 지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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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주지역의 효자. 본관은 이천(利川)으로 양경공(良景公) 서유조(徐愈早)의 후손이다. 청원군 문의면 도원리 출신이며, 아버지는 서봉남(徐奉南)이고, 할아버지는 서복만(徐福萬)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서응년(徐應年)이다.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부모님 공양에 최선을 다하였다. 병환중인 아버지가 추운 겨울에 잉어가 먹고 싶다고 하자 저수지에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였는데, 무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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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사직동과 상당구 서문동을 연결하는 다리. 1981년 다시 개통하였다. 총연장 153m, 교폭 8m, R.C T-Beam 방식이다. 서문다리는 무심천(無心川)에 놓여 있는 다리 중의 하나이다. 청주읍성(淸州邑城)의 서문(西門) 밖에 놓여 있는 다리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서문교(西門橋), 청주교(淸州橋)라고도 한다. 청주대교(淸州大橋)가 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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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성안동에 속하는 법정동. 본래 북주내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청주군 북주내면의 서리(西里) 및 원리(院里) 각 일부를 분할하여 성서정(城西町)이라 하고 청주군 북주내면의 서리를 분할하여 서정(西町)이라 하였다. 1947년 일본식 동명을 바꾸는 과정에서 이 둘을 묶어 청주읍성의 ‘서문’을 따서 서문동이라 명명하였다. 199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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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서문동의 오거리 부근에 있었던 마을. ‘오거리’는 청주읍성의 서문터를 중심으로 청주우체국, 중앙어린이 놀이터, 남주동시장, 서문동 채소전 골목, 그리고, 옛 고속버스터미널 방향 등, 도로가 다섯 방향으로 분기되어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서문동에 위치하고 있어 ‘서문동 오거리’라고도 부른다. ‘오거리’ 근처의 골목에 조성된 마을이어서 ‘오거리 골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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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북문로1가 동단, 충청북도청 서문에서 시작하여 서문동 서단, 서문교까지 연결되는 동서 방향의 소로. 도로명은 서문을 동서로 관통하기 때문에 서문로라 하였다. 동쪽은 상당로에서 시작하여 서쪽은 무심동로에서 끝난다. 폭은 8~16m이며, 길이는 500m이다. 북쪽에는 사직로, 남쪽에는 율곡로가 동서 방향으로 나란히 뻗어 있다. 중간에서는 철당간길,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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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봉명동에 있는 기독교 대한성결교회에 속하는 교회. 성결교회 본부에서 성결교회 불모지인 청주에 교회를 개척하기 위하여 1929년 3월에 김승만 목사를 청주에 파송했다. 김승만 목사는 이미 이곳에서 전도활동을 하고 있던 박기래와 함께 그의 집에서 1929년 4월 28일 오전에 성인 38명, 오후에 어린이 40여명이 모여 첫 예배를 보게 되었는데, 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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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서문동 일대에 있는 재래시장. 청주 서문시장은 청주읍성의 서문(西門)밖에 있다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원래 청주읍성의 서문 이름은 ‘청추문(淸秋門)’인데 일본식 방위 명칭으로 그냥 ‘서문’이라 통칭되었다. 서문시장은 1964년 개설되었다. 당시 청주시외버스터미널(그 때에는 그냥 ‘주차장’이나 ‘차부’라 불렀다)이 맞은편에 있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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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서문동과 흥덕구 사직동을 연결하는 사직로가 통과하는 무심천(無心川)에 놓여 있었던 철교. 1920년 중앙철도회사가 충북선을 착공하여 동년 1월 1일 조치원~청주간의 열차를 운행하였다. 이 다리는 서문동 무심천(無心川) 위에 놓은 철교로서 1920년 11월 1일에 완공되었다. 1920년에는 제1차 세계대전 중의 호경기는 사라지고 전후 공황이 발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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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우암동에 있는 장학재단. 지역 및 국가 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양성을 위하여 장학 사업 등을 펼치기 위해 설립되었다. 장학금 지급 및 학술연구 지원사업 등을 펼치고 있으며, 장학금은 가정 형편이 어렵고 품행이 단정하며 학업성적이 우수하고 타 장학금의 수혜를 받지 않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지급한다. 2011년 3월 현재 재단법인 서암장학재단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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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 독립운동가. 일제 강점기 청주지역에서 활동한 항일 독립운동가이자 지방유지이다. 본관은 달성(達城)이며, 호는 양초(兩草)로 학유공(學諭公) 서도(徐渡)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3·1운동 때 지방 책임자로 활약한 서상갑(徐相甲)이며, 어머니는 반남박씨(潘南朴氏)이다. 부인은 파평윤씨(坡平尹氏)로 슬하에 1남을 두었다. 족보상에 나타난 서광준[1910~1944]의 이름은 서병준(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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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개신동 개신오거리에서 현암동 시계까지 연결되는 도로. 청주시 서쪽을 향하여 뻗어 있으므로 서부도로라 하였다. 동쪽은 제1순환로에서 시작하여 서쪽은 현암동 시계를 지나 청원군 강내면으로 연결된다. 폭은 10~25m이며, 길이는 8,700m이다. 충북대학교병원 앞 개신오거리에서 모충로 및 제1순환로와 연결되고, KBS청주방송국 동편에서 신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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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에 있는 사회복지시설. 대한YWCA연합회가 운영법인이고 청주YWCA가 운영주체인 서부종합사회복지관은 기독교정신을 바탕으로 정의, 평화, 창조질서의 보전을 이루며 희망복지 세상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일하고 있다. 주민들로부터 요청되는 제반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인간화 및 복된 삶을 추구하는 지역사회복지 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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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이나 상품의 유통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노무·편의 따위를 제공하는 업종. 일반적으로 용역(service)이라 함은 타인을 위하여 하는 봉사활동을 뜻하며 경제학에서도 토지·자본·노동이라는 각 생산요소나 정부 등이 재(財)를 생산하거나 또는 직접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봉사활동을 가리킨다. 이에 따라 재화를 생산하는 사업을 제조업, 용역을 만들어 내는 사업을 서비스업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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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에 속하는 법정동. 그림바위라는 바위가 있어서 그림바위, 화암이라고 불러왔고, 화암 오행민(吳行敏), 행간(行簡), 행건(行健) 삼 형제가 이 바위에서 글을 읽었다고 해서 서암, 문암으로 불러왔다. 문암동은 본래 청주군 서강내일상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 정책에 따라 서주내면의 문암리를 병합하여 문암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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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글씨를 조형 예술의 관점에서 이르는 말. 청주는 지리적으로 내륙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유사 이래 존재한 각 왕조의 서풍과 서체를 다양하고 고르게 수용할 수 있는 지정학적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 결과 서예문화의 산물을 보다 능동적으로 창출해내는 충족요건이 되었다. 특히, 용두사지(龍頭寺址)철당간의 명문(銘文)과 흥덕사에서 주자(鑄字)된 직지(直指)는 청주의 서예금석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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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성안동에 속하는 법정동. 1947년에 일본식 동명을 우리말 동명으로 고칠 때, 도하정과 욱정1정목을 통합하여 서운동이라 하였다. 이 지역은 옛 청주읍성의 남문 밖에 해당된다. 본래 청주군 동주내면(東州內面)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문외리(門外里) 일부와 북주내면(北州內面) 동리(東里) 일부를 병합하여 욱정1정목(旭町一丁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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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서운동에 있는 천주교 청주교구청 소속의 성당. 1932년 감곡성당에서 분리되어 현 북문로 교구청 자리에 청주 첫 번째 본당으로 선교의 터전을 잡았다. 이후 1962년 북문로에서 이전하여 지금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서운동 90-1번지[대성로 41]로 옮겨와 새 성당과 사제관을 축성했다. 지금의 위치에서 1966년 수동본당이, 1974년 사직2동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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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서운동에 있는 서운동성당의 건물. 1886년 10월부터 창호원 본당(현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소속이었다가 1920년 9월부터 고마리 본당(현 감곡)관할이 되었고, 1932년 10월 청주본당으로 승격되어 ‘청주본당’ 또는 ‘북문로본당’으로 불리었다. 이후 1962년 3월 12일 성당대지를 매입하여 현 소재지로 이사하고 북문로 청주본당에서 서운동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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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월오동에 있는 마을. ‘상월’ 또는 ‘서운말’이라고도 한다. ‘상월’은 ‘上月 ’로 월오동 위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서원말’은 ‘서원이 있는 마을’로 해석된다. 마을에 ‘봉계서원(鳳溪書院)’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전국에는 ‘서원말’이라고 불리는 마을 이름이 많다 지역에 따라서는 ‘서원마’로 나타나기도 한다. ‘서원이 있는 마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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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율량동 서운사 자리에 있었던 사찰. 조선 후기의 지리지에는 현재의 서운사 자리에 서기암(瑞氣菴)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輿地圖書)』청주목 방리조에는 서기암(瑞氣菴)이 관문의 북쪽 13리에 있으며 편호는 12호에 남자 16명이 살고 있었던 것으로 되어 있으며,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 사찰조에는 고을 북쪽 10리 율봉역(栗峰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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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5년(신문왕 5) 충청북도 청주 지방에 설치된 신라시대 5소경(五小京)의 하나 신라는 삼국통일 후 전국을 9주(州)와 5소경(小京)으로 재조직하였다. 전국을 9주로 나누고, 주 밑에 군(郡)·현(縣)을 두었으며, 주에는 총관(摠官:후에 都督으로 개칭), 군에는 군수(郡守), 현에는 현령(縣令)을 두었다. 또한 수도 경주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는 소경을 두었다. 소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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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에 있는 공립 일반계 고등학교. 「참된 마음으로 조화롭게 미래를 여는 창의적이고 진취적인 서원인」을 그리는 인간상으로 ‘창의력과 문제 해결력을 신장시켜 미래를 개척하는 진취적이고 창의적인 사람, 민주적인 시민의식을 함양하여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민주적인 사람, 인간을 존중하고 예절과 질서를 실천하는 도덕적으로 올바른 사람, 기초 학력을 신장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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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월오동에 있는 다리. 마을에 ‘봉계서원’이라는 서원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 ‘서원말’ 또는 ‘서운골’이다. 한편 이곳의 골짜기를 ‘서원골’이라고 하며, 이곳에 놓인 다리를 ‘서원교’라고 하였다. 25번 도로인 단재로에서 월운천을 올라가면 상류부에 속하는 서원말에 있는 다리이다. 말구리재와 낙가산 사이의 골짜기에 서원말이 있고 월운천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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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모충동에 있는 사립 종합대학교. 진리, 정의, 사랑의 정신으로 국가와 인류의 번영에 공헌한다는 교육이념 아래 창의성과 민주정신을 바탕으로 미래사회를 선도하고 지역과 인류발전에 기여할 인재육성을 교육목적으로 하고 있다. 교육목표는 첫째, 진리를 탐구하는 미래지향적 신지식인 육성(지식정보화 시대를 선도할 창의적 인재육성, 전문적 능력을 갖춘 실용적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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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월오동에 있는 마을. ‘상월’ 또는 ‘서운말’이라고도 한다. ‘상월’은 ‘上月 ’로 월오동 위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서원말’은 ‘서원이 있는 마을’로 해석된다. 마을에 ‘봉계서원(鳳溪書院)’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전국에는 ‘서원말’이라고 불리는 마을 이름이 많다 지역에 따라서는 ‘서원마’로 나타나기도 한다. ‘서원이 있는 마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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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우암동에 있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에 속하는 교회. 한국도자기 창업주이며, 서문교회 시무장로인 김종호가 지교회로서 청주북부교회라는 이름으로 1968년 3월 3일에 설립되었다. 초기 초대교역자인 김명은 전도사와 안순만 집사 등 10여명이 셋집에서 예배를 보다가 1970년 김종호 장로가 우암동 324번지에 대지 50여 평을 구입하여 성전을 지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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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5년(신문왕 5) 충청북도 청주 지방에 설치된 신라시대 5소경(五小京)의 하나 신라는 삼국통일 후 전국을 9주(州)와 5소경(小京)으로 재조직하였다. 전국을 9주로 나누고, 주 밑에 군(郡)·현(縣)을 두었으며, 주에는 총관(摠官:후에 都督으로 개칭), 군에는 군수(郡守), 현에는 현령(縣令)을 두었다. 또한 수도 경주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는 소경을 두었다. 소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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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에 위치하고 있는 공립 중학교. 다양한 문화적 가치를 존중하면서 자신의 개성을 추구하는 사람, 자신의 적성과 소질을 계발하여 진로를 개척하는 창의적인 사람, 부지런히 배우고 실천하여 미래사회를 이끌어 갈 실력 있는 사람, 바른생활 습관 형성으로 정의롭고 가치 있는 삶을 사는 사람, 자신의 몸과 환경을 깨끗이 하여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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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에 위치하고 있는 공립 초등학교. 자신의 독특한 소질을 찾아 남과 다르게 키우고 가꿀 줄 아는 어린이, 지식정보화 사회의 기본적 자질과 능력을 갖춘 건강하고 창의적인 어린이, 진취적 사고와 과학적 탐구자세로 자신의 미래를 꿈꾸며 개척하는 어린이, 우리문화에 대한 사랑과 이해 위에서 나날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어린이, 올바른 민주시민의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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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의 여덟 군데의 명승지.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 청주의 형승(形勝)은 동남쪽에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고, 땅이 넓고, 인구가 조밀하며, 물이 공(功)자처럼 돌고, 현사(懸寺)가 강에 닿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서원팔경이라 하여 1경은 상당귀운(上黨歸雲: 상당산성에 둘러싸인 구름), 2경은 금천어화(金川漁火: 무심천(無心川) 고기 잡는 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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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모충동에 있는 학교법인. 서원학원의 교육이념은 2012년 3월 27일 부임한 손용기 이사장이 합리적 혁신, 사랑과 행복, 최선의 노력으로 제정하여 현재까지 내려오고 있다. 1954년 7월 22일 설립자 강기용(康基用)[1917~1978]에 의해 재단법인 신라학원이 설립인가되어 초대 이사장에는 정현모가 취임하였다. 1954년 9월 1일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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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1년(선조 4) 율곡(栗谷) 이이(李珥)[1536~1584]가 청주목사로 부임하여 제정한 향약. 향규 또는 향약계라고도 한다. 사족들의 향촌자치와 이를 통해 하층민 통제를 위한 것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숭유배불정책에 의하여 유교적 예절과 풍속을 향촌사회에 보급하여 도덕적 질서를 확립하고 미풍양속을 진작시키며 각종 재난(災難)을 당했을 때 상부상조하기 위한 규약이다. 중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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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지역의 역사와 문화유적을 연구하고 답사하기 위해 결성된 민간학술단체. 서원향토문화연구회는 1987년에 조직된 비영리 법인단체로서 청주의 향토문화를 조사, 발굴, 연구를 통하여 청주의 역사적 정체성을 확립하고 독특한 문화적 특성을 조명함으로써 애향심을 고양하고 민족문화의 선양 발전에 기여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87년 설립 이후, 이종춘(청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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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조선 후기 헌종(憲宗) 때 청주목사를 지낸 문신이다. 서유민은 1821년(순조 21) 천릉도감(遷陵都監)의 감조관(監造官)으로 임명되었고, 1836년(헌종 2) 안주목사(安州牧使)에 제수되었다. 1838년에는 안산군수(安山郡守)에 제수되었고, 이어 청주목사(淸州牧使)에 제수되었다. 청주목사로 재직중인 1840년 서유민은 세금을 제대로 징수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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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개신동에 있는 서원대학교 음악학과 동문과 교수로 구성된 연주단체. 클래식음악의 대중화와 청소년들의 정서함양, 연주자 개인의 기량증대와 신인연주자 육성, 청주지역의 문화인프라 구축에 일조하며 지역문화발전에 기여하고자 창립되었다. 대학졸업 후 순수연주활동의 기회가 없어진 전문인력 들에게 무대를 제공하고 클래식, 특히 피아노분야의 대중화에 기여하기 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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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개신동에 있는 서원대학교 음악학과 동문과 교수로 구성된 연주단체. 클래식음악의 대중화와 청소년들의 정서함양, 연주자 개인의 기량증대와 신인연주자 육성, 청주지역의 문화인프라 구축에 일조하며 지역문화발전에 기여하고자 창립되었다. 대학졸업 후 순수연주활동의 기회가 없어진 전문인력 들에게 무대를 제공하고 클래식, 특히 피아노분야의 대중화에 기여하기 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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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산성의 서쪽에 있는 군사시설로 지휘관이 올라가서 명령하던 곳. 청주시의 인구증가와 국내외 관광객의 증가로 상당산성을 찾는 관광객이 대폭 증가하여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여 1995년부터 상당산성 발굴조사가 시작되었다. 발굴조사지역은 산성동 산 28-1[성내로124번길 14] 임야에 속한 지역으로 서장대 터와 산성동 175번지, 산성동 177번지, 산성동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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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향정동과 비하동을 연결하는 다리. 1980년 개통한 다리로 총연장 45m, 폭 30m이며, 상행선, 하행선 각각 3차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청주교(西淸州橋)는 청주의 서쪽에 있는 교량이라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중부고속도로의 서청주 IC와 청주시를 연결하는 다리로서 석남천 위에 놓여있다. 서청주사거리의 바로 옆에 위치한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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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흥덕구 송정동 솔밭공원 서쪽에 있었던 충북선 정봉역과 청주역 사이의 간이정차역. 일제강점기인 1921년 중앙철도회사가 경부선 조치원역에서 청주역간 충북선 철로공사를 준공하면서 송정역으로 개통되었다가 1956년 6월 29일 청주의 서쪽에 위치한다 하여 서청주역으로 역명이 바뀌었다. 1968년에는 청주 도심의 철도구간의 외곽 이설에 따라 역사가 폐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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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복대1동에 있는 우편체신기관.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와 충청북도 청원군 남이면을 비롯한 청주 서부 지역의 우편물을 접수·배달하는 기본 우편 업무와 우체국 예금, 우편환, 우편 대체 업무를 수행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898년 2월 25일 청주우체지사로 업무를 개시하고 1900년 7월 25일 청주우체사로 승격한 후 1907년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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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외하동에 있는 마을. 이곳은 서씨(徐氏)가 많이 살던 곳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지금도 이 마을에는 달성서씨(達城徐氏)가 많이 살고 있다. 물론 ‘서촌’을 ‘서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의 서촌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듯하다. 전국에서는 ‘서촌’이라는 마을 이름이 많은데, 대부분 ‘서쪽에 있는 마을’로 이해한다. 서촌은 외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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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신성동과 평동, 서촌동 사이에 있는 다리. 일명, 석남천교(石南川橋)라고도 하는 다리로 흥덕구의 평동, 남천동, 신성동, 향정동 지역의 사람들이 정봉동과 서촌동 사람들과 쉽게 왕래를 할 수 있도록 건설된 다리이다. 이 다리는 서촌철교보다 더 일찍 건설되어 다리의 폭은 좁으나 통행하는 사람과 차량은 많았다. 충북선 청주역의 동북쪽에 위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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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서1동에 속하는 법정동. 마을이 동서(東西)로 나뉘어 있는데 이곳이 서쪽에 해당되어 서촌(西村)이라 하였다. 본래 청주군(淸州郡) 서강내일하면(西江內一下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동촌리(東村里), 내거리(內巨里), 신흥리(新興里), 신기리(新基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서촌리(西村里)라 명명하고 강서면(江西面)에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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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서촌동 새터마을에 위치한 삼국시대 유물산포지. 이 유적은 국립청주박물관에서 중원문화의 성격을 규명하고자 학술조사 활동의 일환으로 실시한 미호천(美湖川)유역의 지표조사 결과 확인된 유적이다. 뚜렷한 유구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문살무늬가 두드림[타날] 된 삼국시대토기편이 출토되었다. 청주시의 서쪽에 위치한 새터마을 맞은편의 낮은 구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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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서촌동에 위치한 조선시대의 유물산포지. 이 유적은 충북대학교박물관과 청주시가 청주시의 『문화유적 분포지도 -청주시-』제작을 위해 1998년도에 실시한 지표조사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뚜렷한 유구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조선시대 백자편이 수습되었다. 청주시의 서쪽 외곽에 있는 서청주IC에서 청주역 방면으로 약 1.5㎞ 정도 떨어진 해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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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서촌동에 위치한 고대의 유물산포지. 이 유적은 청주시의 『문화유적 분포지도 -청주시-』제작을 위해 1998년도에 충북대학교박물관에서 실시한 지표조사에서 확인되었다. 뚜렷하게 나타난 유구의 흔적은 없으나, 고려시대의 토기편과 조선시대 자기편이 출토되었다. 청주시의 서쪽 외곽에 있는 청주역으로부터 남쪽으로 1.2㎞ 정도 떨어진 해발 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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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서촌동에 위치한 청동기시대 주거지. 이 유적은 청주시의 『문화유적 분포지도 -청주시-』제작을 위해 1998년도에 충북대학교박물관과 청주시가 공동으로 실시한 지표조사에서 확인되었다. 주거지는 능선의 정상부를 개간한 밭의 단면에서 발견되었는데, 화덕자리와 숯층이 확인되었고 민무늬토기편과 망치돌이 출토되었다. 청주시의 서쪽 외곽에 있는 서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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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서촌동에 위치한 조선시대 유물산포지. 충북대학교박물관과 청주시가 청주시의 『문화유적 분포지도 -청주시-』제작을 위해 1998년도에 실시한 지표조사 결과 확인된 유물산포지이다. 백자편과 도기편이 출토되었는데, 같은 구릉 내인 서촌동유적⑤에서 청동기시대의 주거지가 확인되어 선사시대 유구도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청주시의 서쪽 외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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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서촌동에 위치한 유물산포지. 이 유적은 충북대학교박물관과 청주시가 청주시의 『문화유적 분포지도 -청주시-』제작을 위해 1998년도에 실시한 지표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유적이다. 유구의 흔적이 뚜렷하게 발견되지는 않았으나, 구릉사면에서 고려시대 토기편과 조선시대 자기편이 출토되었다. 청주시의 외곽에 있는 청주역과 그미방죽 사이의 낮은 구릉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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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서촌동과 평동에 있는 석남천을 가로지르는 충북선 철교. 서촌이라는 이름은 가운데 농경지를 사이에 두고 마을이 동서 양쪽으로 갈려 있어 그 동쪽에 있는 마을을 동촌이라 부르고 그 서쪽에 있는 마을을 서촌이라 부르게 된 데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서촌에서 약 500m 정도 제천 방향으로 가면 흥덕구 강서동 쪽에서 흘러들어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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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서촌동에 위치하고 있는 공립 초등학교. 바르게 생각하고 더불어 생활하는 창의적인 어린이를 인간상으로 하여 도덕인, 자주인, 창조인, 조화인, 건강인을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러한 목표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인성교육, 창의성 교육, 전문성 신장, 학교경영책임제, 업무의 정보화를 꾀하고 있다. 1958년 8월 28일 강서국민학교 서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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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에서 활동하는 사진동호회. 1995년 12월 1일 서원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칼라사진반(강사:김운기, 허정호)을 수료한 원생으로 구성된 모임으로 사진의 연구와 작품발표를 통해 사진의 저변확대와 사진영상 발전을 위해 설립된 사진동호회이다. 1996년 12월 청주문화원에서 창립사진전을 가진 것을 시작으로 매년 회원사진전시회를 개최하여 2004년 11월에 9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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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인의 친목·권익단체 한국서예협회의 충청북도 지회.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인 서예술의 저변 확대는 물론 공모전을 통한 작가들의 등용문 역할을 함으로서 지역 서예문화 발전에 기여하고자 한다. 공모전으로는 충청북도 서예대전과 전국단재서예대전, 학생서예대전을 개최하고 있다. 중국 섬서성과 서예교류전을 가진바 있고 각종 학술 행사 및 세미나를 열고 있다. 가훈 써주기 운동을 펼치고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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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서1동에 속하는 법정동. 석곡(石谷)은 돌이 많은 골짜기라는 뜻으로, 속지명은 ‘돌골’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석곡동을 흘러 지나가는 석남천 상류에는 청원군 석실리(石室里)가 위치하고 있다. 본래 청주군(淸州郡) 남차이면(南次二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중석곡(中石谷), 하석곡(下石谷), 공례리(公禮里), 북리(北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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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시 상당구 석교동의 육거리시장 내의 도로 지하에 매몰되어 있는 돌다리 남석교(南石橋)는 전국적으로도 유명한 재래시장인 육거리시장 내의 도로 지하에 매몰되어 있는 돌다리로서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조선시대 이전의 다리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석교이다. 옛 청주읍성의 중앙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성안길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무심천(無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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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성안동에 속하는 법정동. 이 동의 명칭은 청주읍성 남문 밖 무심천(無心川) 위에 놓여있던 돌다리[石橋 또는 남석교(南石橋)]에서 따온 것이다. 그 석교는 현재 석교육거리에서 청남교에 이르는 도로 밑에 매몰되어 있다. 그러니 석교동은 ‘남석교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본래 청주군(淸州郡) 동주내면(東州內面) 문외리(門外里)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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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석교동에 있는 청과물 재래시장. 석교동은 우리나라 최고(最古) 최대의 돌다리인 남석교(南石橋)에서 유래한다. 석교동 청과물시장의 이름은 여기서 비롯된다. ‘석교동 청과물시장’ 또는 동(洞)을 생략하고 ‘석교청과물시장’을 혼용한다. 현지 상인들은 통칭 ‘석교청과물시장’이라 부른다. 육거리재래시장의 확장된 형태로 1999년에 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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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석교동에 있는 도로. 석교로는 행정동으로는 성안동, 법정동으로는 석교동에 속하며, 기점과 종점이 모두 석교동에 위치하고 있는 도로로서, 그 길이는 약 374m이다. 도로의 분류 체계로 볼 때, 도로법상으로는 시도이며, 도로규모별로는 작은 길이다. 석교로(石橋路)의 명칭은 석교동(石橋洞)과 마찬가지로 청주읍성 남문 밖 무심천(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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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석교동에 위치하고 있는 공립 초등학교. 새학교 문화창조를 위해 국가, 사회가 요청하는 시대성을 반영하여 세계화, 정보화를 주도할 건강하고 자주적이며 창의적이고 도덕적인 한국인을 육성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교육목표를 설정하였다. 더불어 살아가는 어린이, 부지런히 탐구하는 어린이, 신나게 활동하는 어린이, 스스로 가꾸는 어린이를 길러 바르고 튼튼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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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죽림동에 있는 골짜기와 마을. ‘서고노골’은 ‘석기능골’의 변화형으로 추정된다. ‘서고노골’이 ‘석기동(石基洞)’으로도 불리기 때문이다. ‘석기능골’은 ‘석기’와 ‘능골’로 분석되는데, ‘석기(石基)’는 ‘돌이 많은 터’를 뜻한다. ‘능골’은 ‘능’과 ‘골’로 나뉘는데, 대부분 ‘능(陵)’과 관련된 유래담을 지니고 있다. ‘골’은 고구려어 ‘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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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원군 남이면 척북리 팔봉산에서 발원하여 청주시 흥덕구의 비하동, 지동동, 평리동, 서촌동 앞을 지나 흥덕구 정봉동에서 미호천(美湖川)으로 흘러드는 하천. 일명 망천(網川)이라고도 한다. 막히지 않고 ‘마구 흘러가는 내’여서 ‘막내’라 하다가 ‘망내’가 된 것으로 설명하기도 하나 ‘망내’의 유래는 알기 어렵다. ‘망내’라는 하천 이름도 그리 흔하지 않다. ‘망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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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신성동과 평동, 서촌동 사이에 있는 다리. 일명, 석남천교(石南川橋)라고도 하는 다리로 흥덕구의 평동, 남천동, 신성동, 향정동 지역의 사람들이 정봉동과 서촌동 사람들과 쉽게 왕래를 할 수 있도록 건설된 다리이다. 이 다리는 서촌철교보다 더 일찍 건설되어 다리의 폭은 좁으나 통행하는 사람과 차량은 많았다. 충북선 청주역의 동북쪽에 위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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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에 있는 고개. ‘돌고개’는 ‘돌’과 ‘고개’로 분석된다. ‘돌고개’는 전국적으로 매우 흔하게 발견되는 지명으로, 한자 지명 ‘석현(石峴)’과 함께 쓰여 대부분 ‘돌[석(石)]’과 관련된다. ‘고개’는 일찍이 고구려와 백제 지명에 쓰인 예를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 발견할 수 있다. 현대 지명에서는 ‘고개’·‘오개’·‘재’·‘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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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에 있는 고개. ‘돌고개’는 ‘돌’과 ‘고개’로 분석된다. ‘돌고개’는 전국적으로 매우 흔하게 발견되는 지명으로, 한자 지명 ‘석현(石峴)’과 함께 쓰여 대부분 ‘돌[석(石)]’과 관련된다. ‘고개’는 일찍이 고구려와 백제 지명에 쓰인 예를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 발견할 수 있다. 현대 지명에서는 ‘고개’·‘오개’·‘재’·‘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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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事蹟)을 기념하기위해 세우는 돌. 비(碑)는 보통 비석 혹은 석비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 까지 석비가 그 숫자를 셀 수 없을 만큼 전국 곳곳에 많이 남아있다. 석비는 묘비와 탑비·능묘비 외에도 비문의 내용이 알려주는 역사적 사료로서의 금석문의 가치나 서체가 보여주는 서예사적 가치, 그리고 석비의 양식의 변천을 통해 미술사적 가치를 함께 보여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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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을 저장하기 위해 만든 창고인 석빙고가 있었던 자리. 석빙고는 조선시대 고을마다 있었던 공용의 얼음 창고로, 겨울철에 얼음을 떠서 저장하였다가 여름 더위 때 사용하기 때문에 얼음이 녹지 않게 하기 위하여 지하에 설치하였다. 냉매(冷媒)는 주로 소금과 겨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록에 의하면 얼음을 채취하여 저장하는 일은 신라 때부터 있었으나 당시에 축조된 빙고는 현재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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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석소동의 옛 지명. ‘돌쇠’는 ‘돌’과 ‘쇠’로 분석된다. 여기서 ‘돌’은 ‘돌[석(石)]’이나 ‘돌다[회(回)]’의 어간 ‘돌-’과 관련된다. ‘쇠’는 그 어원을 정확히 말하기 어려우나, 한자 이름 ‘석소(石所)’로 볼 때 ‘소’와 관련될 가능성이 있다. ‘소’는 중세국어에서 ‘소ㅎ’으로 보이는데, ‘물이 깊은 못’을 뜻한다. 이상을 정리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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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서1동에 속하는 법정동. 석소동의 지명은 ‘돌세’, 또는 ‘돌쇠’에서 유래되었다. 돌이 많은 지역이어서 ‘돌세’, ‘돌쇠’, 또는 석소(石所)라 했다고 한다. 본래 청주군 서강내이하면(西江內二下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월송리(月松里) 일부를 병합하여 석소리(石所里)라 명명하고 강내면(江內面)에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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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석소동에 있는 구석기시대의 유적. 경부고속도로 확장공사의 일환으로 건설되는 청주IC 확장건설계획으로 긴급 구제발굴 된 석소동유적은 충북대학교 박물관팀이 1992년 1월부터 40일간 발굴하였다. 석소동유적은 층위가 상당부분 깎이어 나가고 심하게 교란되어 선사시대의 유구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뗀석기와 간석기를 수습하였다. 그 가운데 구석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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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에 있는 산. 흥덕구 운천동 연당리와 신봉동 소생이 간의 고개길을 돌고개, 석령, 석령산고개 등의 이름으로 불리어진 고개가 있다. ‘석령산’의 이름은 돌이 많은 산이라는 의미에서 붙어진 이름이며, 양병산 장기봉 흥덕산이라고도 한다. ‘양병산’은 이 산에 양병사(梁兵使)의 묘가 있어서 붙어진 이름이다. ‘장기봉’은 장기(長基) 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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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원평동에 있는 마을. ‘독장이’, ‘석정(石井)'이라고도 한다. ‘독정이’는 ‘독정’과 접미사 ‘-이’로 분석된다. ‘독정’의 ‘독’은 돌(石)의 방언이며 ‘정’은 한자의 ‘井’이다. 그러니 ‘독정’은 ‘돌 우물’로 해석된다. 실제로 ‘안독정이’에는 바닥이 바위인 샘이 있었다. 바윗돌에서 물이 나와 그 샘을 ‘독정’이라 한 것이며 여기에 접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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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명은 청주시 상당구 오근장동 8통이고, 법정명은 청주시 상당구 정상동 돌꼬지이다. 정상동은 본래 청주군(淸州郡) 북강내일면(北江內一面)에 속해 있던 지역이다. 1914년 일제(日帝)가 행정 구역을 통폐합하면서 봉정리(鳳亭里)와 서강내일상면(西江內一上面)의 정북리(井北里) 일부를 병합하여 정상리(井上里)라 명명하고 북일면(北一面)에 편입하였다. 정상리(井上里)는 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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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동 돌꼬지마을은 들판에 위치한 마을이다. 마을 앞 들판은 농지정리가 잘 되어 경작하기 편하게 되어 있고, 마을 앞으로 무심천(無心川)이 흐르고, 북쪽으로청주 정북동 토성이 자리 잡고 있고, 마을 입구에 낮은 야산이 위치한다. 이 산에 돌꼬지의 유래가 된 하얀 돌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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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에 편입된 동이지만 마을의 형태는 농촌의 형태를 띠고 있다. 따라서 생활의 흐름도 농사일에 맞춰 진행된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농사 준비해서 가을걷이로 마무리한다. 특별히 특용작물을 재배하지도 않기 때문에 겨울에는 한가로이 쉬면서 지낸다. 동네에 인구밀집도가 높지 않기 때문에 상권이 형성되지 않아 생필품을 살 수 있는 가게가 없어 하루에 한 번 정도 들어오는 이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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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후 근대 교육을 받기 시작한 세대는 청주대성학교와 북일초등학교를 다녔다. 북일초등학교는 인근 학생들이 모두 다녀서 한 때 학생수가 2,000여 명이나 되어 오후반이 개설될 정도였다. 그러나 현재는 주민이 줄어들어 학생수가 100여 명 정도라서 폐교된다는 말이 있다. 현재 돌꼬지마을 아이들은 새터초등학교를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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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꼬지[石花] 마을에는 용출수인 우물이 마을 입구에 있다. 이 우물로 인해 정상동, 정하동, 정북동이라는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할 정도로 인근에서는 유명한 우물이다. 실제로 농업용수가 개발되기 전까지 이 물은 농업용수로, 식수로도 쓰여 주민들의 생활을 유지시켜 주는 우물이었다. 이런 고마운 우물에 동네 주민들은 샘제(용왕제)를 지낸다. 돌꼬지 동제는 세 군데서 지냈다.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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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마을에서 출산은 이뤄지고 있지 않다. 출산을 할 연령대의 주민도 없을 뿐만 아니라 출산 풍속이 바뀌어 조산원이나 산부인과에서 출산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을 제보자들은 모두 자신의 집에서 출산을 했다. 산모가 진통을 시작하면 방에 미리 추려 놓은 짚을 깔거나 회푸대 종이를 깔아 삼자리를 마련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산파가 탯줄을 자르는데, 아이의 배꼽에서 넉넉하게 한 뼘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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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정월 내 띄우던 연을 날려버리는 날이다. 연줄에 솜방망이를 달아 솜방망이에 불을 피워 띄우면 어느 정도 날아가다가 대추나무에 걸린다. 이를 보고 “대추나무 연 걸린 듯하다”라고 했다. 정월대보름에는 열 나흗날 농사 떡(고사떡)을 해놓는다. 돌꼬지마을 정월고사는 동제를 지낸 다음 날부터 지낼 수 있다. 산제가 열사흘이면, 열 나흗날 떡을 해서 고사를 올린다. 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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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리 저거리 닷거리 / 천두 만두 저만두 쫙 벌려 소양강 / 오리진치 살어육 자장 자장 자장 자장 우리 애기 잘두 잔다 검둥개도 잘두 잔다 흰둥이도 잘두 잔다 자장자장 자장 자장 앞집 강아지 잘두 잔다 (아이를 눕히거나 무릎에 올려 앉고 ) 엄마 손은 약손이고 네 배는 똥배 썩 나려 가그라 떨크덩 떨크덩 찧는 방아 언제나 다 찧고 밤마실 가냐 시어머니 시집살이 할제는 좋기두(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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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꼬지마을 교통은 편한 편은 아니다. 대중교통편인 시내버스는 하루 몇 번 운행되지 않는데 이는 대부분 시내버스 종착점이 밑에 마을인 정하동이기 때문이다. 마을 앞까지 오는 시내버스 첫차는 여섯 시에 있고, 막차는 열한시에 있다 일제시대 때는 마을에 국철이 개통되었고, 청주역이 생기면서 1980년대 철도 복선공사로 인해 마을 앞 도로를 넓힐 수 없어 1차선 도로가 현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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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정상동에 있는 마을. ‘돌꼬지’는 정상동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일명 ‘석화(石花)’라고도 한다. 일설에 의하면 마을에 꽃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나 이를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 ‘돌꼬지’는 ‘돌고지’의 된소리 어형이다. ‘돌고지’는 ‘돌곶’으로 더 소급해 올라간다. ‘돌곶’에 접미사 ‘-이’가 결합된 어형이 ‘돌고지’이다. 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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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중에서 주권자를 대신해서 국가의 일, 국회의 일, 자치단체의 일을 수행할 공직자를 법적, 제도적으로 보장된 원칙 하에서 선출하는 민주적 방법. 선거권을 가진 사람이 공직에 임할 사람을 투표에 의하여 선정하는 정치적 행위로 여기에는 대통령선거, 국회의원선거, 광역단체장선거, 기초단체장선거, 광역의회의원선거, 기초의회의원 선거가 있다. 대통령선거는 5년마다 실시되고 나머지 선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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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을 선출하는 단위로써 전국을 지역적으로 구분한 구역을 의미. 선거인수에 따라 선거구가 조정되며 대의원 선출의 단위는 통상 지역적으로 분활된다. 전국 규모의 선거가 일으키는 각종 폐해를 줄이고 선거 시행과 투표 점검을 쉽게 하기 위하여 국가는 지역선거구를 설정한다. 선거구의 종류로는 국회의원선거구, 광역의회의원선거구, 기초자치단체의원선거구가 있다. 선거구를 확정할 때에는 몇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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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월오동 서원말 동쪽에 있는 산. 일명, 선두산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선도산의 모음 교체형이다. 선도산은 한자로 선도산(仙到山)[547.2m]이라고 쓰고 있다. 그러나 선도산의 ‘선도’는 ‘우뚝 서 있는 큰 바위’를 뜻하는 ‘선돌’일 가능성이 높다. 이산 정상에 선도할아버지바위와 선도할머니바위가 우뚝 서 있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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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대보름에 선도산 산신에게 올리는 산신제. 정월대보름날 아침 10시경부터 선도산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제를 올린다. 이때 이 두 산신을 상징하는 것은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지하대장군(地下大將軍) 두 기의 장승이다. 동네 주민 중 깨끗한 한 가구를 제주로 선정하여 제를 준비산다. 제주로 선정되면 금연, 금색, 금주하고 목욕재계하여 제수를 마련한다. 제수는 삼색실과, 돼지머리,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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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대보름에 선도산 산신에게 올리는 산신제. 정월대보름날 아침 10시경부터 선도산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제를 올린다. 이때 이 두 산신을 상징하는 것은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지하대장군(地下大將軍) 두 기의 장승이다. 동네 주민 중 깨끗한 한 가구를 제주로 선정하여 제를 준비산다. 제주로 선정되면 금연, 금색, 금주하고 목욕재계하여 제수를 마련한다. 제수는 삼색실과, 돼지머리,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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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정동 이정골 앞 냇가에 있는 석상. 전설에는 중이 이 선돌을 지고 가다가 떨어뜨렸다고 전하고 있다. 선돌의 ‘선’은 ‘서다(立)의 관형사형으로 쓰인 것이고 ’돌‘은 ’석(石)‘의 뜻이라 선돌은 ’서 있는 돌‘이라는 뜻이다. 상당구 용정동 이정골을 흐르는 영운천(潁雲川) 변에 있다. 본래 2기의 장승이 있었는데, 하나는 언제 없어 졌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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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월오동 서원말 동쪽에 있는 산. 일명, 선두산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선도산의 모음 교체형이다. 선도산은 한자로 선도산(仙到山)[547.2m]이라고 쓰고 있다. 그러나 선도산의 ‘선도’는 ‘우뚝 서 있는 큰 바위’를 뜻하는 ‘선돌’일 가능성이 높다. 이산 정상에 선도할아버지바위와 선도할머니바위가 우뚝 서 있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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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는 문헌사료(文獻史料)가 존재하지 않는 시대, 즉 문헌사료에 의하여 씌어진 역사에서 취급하는 시대 이전 시기의 유물유적. 보통 이 용어 속에는 고고학에서 다루는 석기시대, 청동기시대로 생각되고 있으나, 현존하고 해독이 가능한 문헌사료가 나타나는 시대는 지역에 따라 다르고 또 그 시대의 문화 사회 경제의 발전단계도 각양각색이니만큼, 이 용어의 개념은 상당히 막연하게 쓰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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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초 청주 출신의 호족. 왕건(王建)이 쿠데타를 일으켜 궁예(弓裔)를 몰아내자 청주인 가운데 이에 반발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두령 파진찬의 지위에 있던 진선(陳瑄)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선장(宣長)은 진선의 아우로서 함께 반란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잡혀 죽음을 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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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설화에는 신화, 전설 민담이 있는데 지역적인 특색을 보여주는 것은 전설이다. 신화는 민족적이고 민담은 세계적이다. 청주지역의 전설은 구삼국시대부터 접경지여서 축성전설(오뉘힘내기 유형)이 많음이 특징이다. 그리고 전설은 한문을 좀 아는, 소위 유식한 사람들이 구연하는데, 풍수지리, 열녀, 효자, 충신, 위인들에 대한 것으로 한자어를 즐겨 사용한다.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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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서1동에 속하는 법정동. ‘신전동(薪田洞)’은 ‘섶밭’을 한자로 바꾼 이름이다. ‘섶밭’은 ‘섶’과 ‘밭’으로 분석된다. ‘섶’은 ‘섶나무’의 준말로, ‘잎나무, 물거리, 풋나무 등의 총칭’이다. 따라서 ‘섶밭’은 '섶나무가 무성한 밭'으로 해석된다. 과거 이 곳은 섶밭이었다. 이 섶밭에 마을이 생기자 밭 이름으로 마을 이름을 삼은 것이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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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에 크게 기여한 독립운동가. 구한말 계몽운동을 펼치던 중 1905년 을사오조약을 강제 당하자, 이에 분개하여 자결을 기도, 그 여파로 오른쪽 눈을 실명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상해로 망명, 중국의 신해혁명에 참가하여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였다. 1912년 이후 동제사, 신한혁명당 등 각종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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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사천동에 있는 사회복지시설. 서울성가소비녀회에서 성가모자원을 운영하게 되었고 성가마을로 명칭을 변경하였으며 여성복지시설로써 모자보호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성가마을은 모자복지법에 의해 생활이 어려운 모자가정의 생활안정과 자립기틀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자녀들의 정서 안정과 올바른 심성을 길러주기 위한 사회복지 서비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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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있는 마을. 이 산성 안쪽에 자리한 마을이어서 성내 또는 성안이라 한 것이다. 마을을 뜻하는 말 또는 골을 붙여 성안말, 성안골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성내(城內)는 성안의 안을 한자 내로 바꾼 지명이다. 전국에는 성안 또는 성내라는 지명이 대단히 많다. 대부분 두 지명이 함께 쓰인다. 성안과 같은 뜻으로 자안이라는 지명도 있다. 자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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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있는 방죽. 청주 상당산성(上黨山城) 안쪽에 있는 방죽인데, 성안에 있는 방죽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 작은 저수지가 있었으나, 산성의 아래쪽에 있는 농경지에 물을 공급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현재의 저수지는 본래의 수문이 홍수로 인하여 없어진 후 1943년에 만들어졌다. 이곳의 물은 상당구 낭성면을 통하여 달천(達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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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회에서 신자들이 종교 전례에 참여하기 위하여 모이는 교회당(敎會堂). 성당은 건물이라는 물적인 기능과 함께 신자들의 정신적 기능을 구체화한 장소이다. 건물다운 건물로서의 국내 최초의 성당은 1892년에 세워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약현성당(藥峴聖堂)이며, 이어 명동성당, 인천답동성당, 평양관후리성당, 대구 계산동성당, 전라북도의 화산성당 등이뒤를 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한양(韓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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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성화동에 있는 한국기독교장로회에 속하는 교회. 1908년 3월에 김기철이 예수를 믿고 청원군 사주면 농촌리 오리골에 교회를 설립하였다. 초창기 청주선교부 민노아(閔老雅, F.S. Miller) 목사의 신앙지도를 받아 왔으며, 그 뒤 여러 조사 및 목사가 시무하여 왔다. 현 성동교회(聖洞敎會)는 처음에 오리골에 있었기 때문에 오리동교회라 하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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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송(宋)나라 때에 웅절(熊節)이 편찬하고, 웅강대(熊剛大)가 주해한 책으로 청주목에서 1488년(성종 19)에 목판으로 간행. 권말의 간기에 의하면, “홍치원년무신계춘일 승훈랑행청주교수김효정근발(弘治元年戊申季春日 承訓郞行淸州敎授金孝貞謹跋)”이라 하여 1488년 3월에 청주목에서 간행된 목판본이다. 그런데 이 책은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1444년(세종 26) 8월 「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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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국(金正國)이 『성리대전(性理大全)』을 요약하여 1538년(중종 33)에 금성목활자(錦城木活字)로 간행한 책. 조선 중기의 문신(文臣) 김정국이 『성리대전(性理大全)』을 요약하여 4권으로 편집한 후, 그 당시 나주 관청에 보관해 있던 금성목활자(錦城木活字)를 기본으로 하고 부족한 활자를 새로 보충하여 『성리대전서절요(性理大全書節要)』 400부를 간행하였다. 권말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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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청주교구 산하의 말기암환자를 호스피스 봉사 전문 시설. 죽음을 앞둔 말기암환자가 남은 여생동안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하고 신체적, 정서적, 사회적, 영적인 돌봄을 통해 삶의 마지막 순간을 평안하게 맞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호스피스활동은 1815년 아일랜드 더블린의 채리티수녀원 수녀들이 거리에서 죽어가는 가난한 환자들을 수녀원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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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에 찾아가 드리는 제사. 묘제는 묘에 제사를 드리는 것을 모두 지칭한다. 먼저 장례 기간에 올리는 묘제가 있다.. 묘의 봉분을 만든 뒤 처음으로 묘제를 올린다. 영좌를 묘 앞에 모시고 간단한 음식을 차려 놓고 술잔을 올린다. 축문을 읽은 뒤 두 번 절을 한다. 그리고 소상과 대상 때도 묘제를 올리며, 탈상을 했을 때도 묘제를 올렸다. 청주지역에서는 지금 소상 대상이 없고 탈상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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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서동에 있는 천주교 청주교구 소속의 성당. 1993년 5월 복대동 성당에서 신자 600명이 분가하여 나오며 만들어졌다. 초대 주임 서정혁 신부가 흥덕구 강서동 대림아파트 2동에서 첫 미사를 올렸다. 1994년 8월 현 위치에 146평 규모 조립식 건물을 짓고 본격 활동에 들어갔다. 1995년 성전건립위원회를 결성하여 2000년 5월 현재의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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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송절동 남단에서 성화동 서부까지 연결되는 도로. 도로 북단의 봉명동과 남단의 성화동 동명에서 각각 한 글자씩 딴 것이다. 북쪽은 제2순환로에서 시작하여 남쪽은 서부도로에서 끝난다. (서부도로에서 제2순환로까지의 구간은 2005년 5월 현재 건설 중임.) 폭은 20~35m이며, 길이는 6,230m이다. 서 쪽에는 구룡로, 동쪽에는 제1순환로가 엇비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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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사천동에 있는 노인복지시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하느님의 사랑으로 보살피고 따뜻이 보호하며 치료하기 위해 무료로 노인요양시설을 설립하게 되었다. 1946년 천주교회 청주교구에서 ‘육아원’으로 발족하였으며 1966년 8월 정원 26명의 양로원으로 사업을 변경하였다. 1974년 4월 정원 80명의 신축 양옥 3층 건물을 완공하였고 1997년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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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있는 마을. 이 산성 안쪽에 자리한 마을이어서 성내 또는 성안이라 한 것이다. 마을을 뜻하는 말 또는 골을 붙여 성안말, 성안골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성내(城內)는 성안의 안을 한자 내로 바꾼 지명이다. 전국에는 성안 또는 성내라는 지명이 대단히 많다. 대부분 두 지명이 함께 쓰인다. 성안과 같은 뜻으로 자안이라는 지명도 있다. 자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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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있는 마을. 이 산성 안쪽에 자리한 마을이어서 성내 또는 성안이라 한 것이다. 마을을 뜻하는 말 또는 골을 붙여 성안말, 성안골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성내(城內)는 성안의 안을 한자 내로 바꾼 지명이다. 전국에는 성안 또는 성내라는 지명이 대단히 많다. 대부분 두 지명이 함께 쓰인다. 성안과 같은 뜻으로 자안이라는 지명도 있다. 자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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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북문로1가 사직로에서 석교동 청남로 사이에 있는 도로. 청주읍성(淸州邑城)의 안에 있는 큰 길이라는 의미에서 유래하였다. 과거에는 청주읍성 안의 남문과 북문을 가로지르는 중심축이었으며 개화기 이후 이 길을 따라 주요 관청과 은행, 상점들이 밀집하여 충북 광역행정과 금융의 중핵기능과 함께 도심상업지구로 발전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붙여진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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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에서 매년 열리는 지역 축제. 성안길연합번영회와 충청일보 주관으로 1995년부터 시작하여 매년 5월에 개최되고 있다. 2005년 행사부터 성안길연합번영회와 청주상공회의소·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충북지회 청주지부·청주문화사랑모임이 공동으로 주최하고 있다. 행사는 크게 전체적인 공동 행사와 각 주최자들이 주관하는 특별 행사로 꾸며진다. 주요 행사가 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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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있는 방죽. 청주 상당산성(上黨山城) 안쪽에 있는 방죽인데, 성안에 있는 방죽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 작은 저수지가 있었으나, 산성의 아래쪽에 있는 농경지에 물을 공급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현재의 저수지는 본래의 수문이 홍수로 인하여 없어진 후 1943년에 만들어졌다. 이곳의 물은 상당구 낭성면을 통하여 달천(達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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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지키는 가신(家神)인 성주를 모시는 신앙형태. 가옥의 안전을 위하여 새로 집을 짓거나 이사를 하면 반드시 성주를 모시는데, 이를 ‘성주받이’라고 한다. 성주받이는 원래 좋은 날을 잡아 삼일 전에 대문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깔아 부정을 막고 무당을 불러 ‘성주받이굿’을 한 뒤 성주를 모신다. 청주에서는 드물게 단지에 쌀을 담아 성주단지를 모시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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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지키는 가신(家神)인 성주를 모시는 신앙형태. 가옥의 안전을 위하여 새로 집을 짓거나 이사를 하면 반드시 성주를 모시는데, 이를 ‘성주받이’라고 한다. 성주받이는 원래 좋은 날을 잡아 삼일 전에 대문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깔아 부정을 막고 무당을 불러 ‘성주받이굿’을 한 뒤 성주를 모신다. 청주에서는 드물게 단지에 쌀을 담아 성주단지를 모시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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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성화·개신·죽림동에 속하는 법정동. 저산성 산지에 위치하고 있어 농사가 주산업이 되어 농촌동이 되었다. 본래 청주군 남주내면(南州內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가서리(駕西里) 및 서강내 일상면(西江內一上面)의 농촌리(農村里) 일부를 병합하여 농촌리라 하고 사주면(四州面)에 편입되었다. 1963년에 농촌동으로 변경되어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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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성화동에 있는 신당. 흥덕구 성화동 원농촌(原農村)마을 입구에 잡석을 쌓은 2m 20㎝ 높이, 10m 둘레의 돌탑과 100년이 안 된 소나무로 이루어진 신당이다. 현재 위치에서 길 건너 있던 서낭이 1984년 수자원공사의 수로관이 묻히면서 현재 원농촌(原農村)마을 입구로 옮겨 자리 잡았다. 원래는 지금의 돌탑보다 약 50㎝ 정도 더 높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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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성화동의 원농촌(原農村) 동민들이 마을을 수호하는 탑신(塔神)에게 올리는 제사. 원농촌(原農村)의 마을로 들어가는 산모퉁이 암석 앞에 잡석을 원추모양으로 쌓은 돌탑을 마을을 수호하는 탑신으로 삼아 동민들이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신앙행위를 말한다. 옛날에는 돌탑이 마을의 신이고 돌탑이 있는 탑거리는 신성한 지역으로 항상 청결하게 다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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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성화동의 절터에서 출토된 금동 불상. 흥덕구 성화동(옛 농촌동)에서 발견되어 국립청주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불상이다. 수인(手印)은 시무외(施無畏)·여원인(與願印)을 짓고 있는 금동여래입상(金銅如來立像)으로, 전체적으로 풍만하고 당당한 자세를 보인다. 머리 부분이 몸에 비해 크게 조각되었다. 나발(螺髮) 위에 둥그렇게 생긴 육계(肉髻)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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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현암동에 있는 아동복지시설. 부모의 사망, 이혼, 가족의 해체 등으로 인하여 보호와 보살핌이 필요한 아동들에게 안락하게 살 수 있게 보금자리를 마련해주고 사랑과 정성으로 건전한 사회의 일꾼이 될 수 있도록 양육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52년 3월 10일 성화원을 창설하였고, 1952년 6월 10일 충청북도지사 시설인가를 받았다. 195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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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성화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자신과 이웃을 존중하고 바른 인성은 가진 어린이, 창의적으로 사고하고 탐구하는 어린이, 미래 정보화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어린이,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하고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어린이, 심신이 건강하고 조화로운 어린이, 밝고 슬기로우며 창의적인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2004년 9월 24일 성화초등학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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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화동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당집. 조선시대에 고을 백성들의 안녕을 위하여 성황신을 모셨던 당집이다. 조선조에 들어와서 중앙집권화의 한 방식으로 산천(山川), 성황(城隍), 풍운(風雲), 뇌우(雷雨) 등 여러 명칭으로 부르던 민간신앙의 단(壇)들을 하나의 성황사(城隍祠)로 통합하여 주·부·군·현의 행정 단위마다 하나씩 설치하여 지방관으로 하여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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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화동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당집. 조선시대에 고을 백성들의 안녕을 위하여 성황신을 모셨던 당집이다. 조선조에 들어와서 중앙집권화의 한 방식으로 산천(山川), 성황(城隍), 풍운(風雲), 뇌우(雷雨) 등 여러 명칭으로 부르던 민간신앙의 단(壇)들을 하나의 성황사(城隍祠)로 통합하여 주·부·군·현의 행정 단위마다 하나씩 설치하여 지방관으로 하여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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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서1동에 속하는 법정동. ‘신전동(薪田洞)’은 ‘섶밭’을 한자로 바꾼 이름이다. ‘섶밭’은 ‘섶’과 ‘밭’으로 분석된다. ‘섶’은 ‘섶나무’의 준말로, ‘잎나무, 물거리, 풋나무 등의 총칭’이다. 따라서 ‘섶밭’은 '섶나무가 무성한 밭'으로 해석된다. 과거 이 곳은 섶밭이었다. 이 섶밭에 마을이 생기자 밭 이름으로 마을 이름을 삼은 것이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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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의 연구 및 교육과 홍보, 국제교류 등의 사업을 지원할 목적으로 설립된 비영리 사단법인. 2000년 국제인쇄출판박람회 개최를 비롯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 청주 흥덕사지(興德寺址)에서 주조된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2001년), 유네스코와 청주시가 공동 주최하는 직지상 제정(2005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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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와 청원군 일원에서 개최되는 국제적 태권도축제 1998년 ‘98 충청대학장컵 세계청소년 태권도 문화관광축제 -세계청소년태권도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함으로써 한국스포츠의 위상을 드높혔으며 2004년 ‘We're one thru Taekwondo’라는 슬로건아래 세계인들과 함께하는 태권도의 열린 장으로 발돋움하였다. 제7회 대회부터 해외대회를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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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미평동에 있는 일반계 사립고등학교. 대한민국 교육의 근본이념이자 기독 정신을 바탕으로 중등교육을 실시하며, 품성을 도야하여 교회와 사회에 유익한 중견인물을 육성함을 목적으로 개교한 기독교 학교이다. ‘애국인, 실력인, 과학인, 생활인, 민주인, 신앙인’을 육성하는 것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47년 8월 30일 학교설립 기성회가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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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미평동에 위치하고 있는 사립 중학교. 수월성에 기초한 학력제고, 창의력을 키우는 교실문화 실현, 자율적 교육공동체 강화, 쾌적한 교육환경 조성, 기독교정신을 실천하는 인성교육 함양을 바탕으로 하여 진리를 탐구하며 사랑과 봉사를 실천하는 사람을 육성한다. 1947년 8월 30일 세광중학교 설립 기성회를 조직한 후, 1949년 2월 15일 한국기독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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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장로회 충북노회가 설립한 기독교계 학교법인. 기독정신을 바탕으로 중등교육을 실시하며, 품성을 도야하여 교회와 사회에 유익한 중견인물을 육성하고자 설립되었다. 세광학원은 1949년 9월 충청북도지역에 기독교계 중등학교를 세우고자 하는 기독교인들의 열망을 담고 출발하였다. 일찍이 일제강점기 하에 청남학교라는 초등학교를 운영한 바 있던 청주제일교회는 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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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일정한 시기에 되풀이하는 주기전승의 의례적인 생활 풍속. 청주에서 과거에 행해졌거나 현재까지도 전승되고 있는 세시풍속을 개략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월의 세시풍속은 정월 보름과 관련된 행사가 많다. 정월 보름의 행사는 13일 낟가릿대 [화간(禾竿)]를 세웠다가 14일 아침에 철거하여 ‘벼가 몇 천 석’, ‘조가 몇 천석’ 하며 자기 마음대로 허칭하던 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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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제7대 임금 세조(世祖)가 1464년 온양온천의 행궁으로 가는 도중에 청주목에 머무른 사건. 조선왕조 제7대 임금 세조가 즉위 10년(1464) 봄에 종기를 치료하고자 온양온천의 행궁으로 가는 도중에 청주목의 초수리(椒水里)[현 충청북도 청원군 내수읍 초정리]와 청주목에 6일간 머무른 사건이다. 1464년 2월 21일부터 2월 26일까지 6일간 행해진 세조의 청주 행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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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제4대 임금 세종(世宗)이 안질(눈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1444년 청주목 초수리에 행차하여 머문 사건. 조선왕조 제4대 국왕 세종은 안질(눈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1444년(세종 26) 봄과 가을 두 차례 청주목의 초수리(椒水里)[현 충청북도 청원군 내수읍 초정리]에 행차하여 약 4개월간 머물렀다. 이 기간에 세종의 눈병은 일정한 치료 효과를 보아 초수 행차의 건의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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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정봉동에 있었던 옛 마을. ‘우터울’로 발음하기도 하고 ‘셋집매’라 부르기도 한다. ‘웃터울’은 ‘웃터골’의 변형이다. ‘웃터’는 위에 있는 ‘터’이고 ‘골’은 골짜기 또는 마을의 뜻으로 ‘웃터골’은 ‘웃터’가 있는 골짜기 또는 마을로 해석된다. ‘웃터굴’은 지역에 따라 ’웃터걸‘, ‘위텃굴’, ‘윗텃골’ 등으로도 나타난다. ‘셋집매’는 세 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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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에 먹는 음식. 세찬은 준비하는 집안 형편에 따라 그 종류와 양은 각각 다르지만, 세찬 중에서 어느 집이나 빼놓지 않는 것은 흰떡이다. 떡국과 함께 세찬으로 빠질 수 없는 것이 술인데, 설에 준비하는 술을 특별히 세주(歲酒)라 한다. 도시에서는 대개 정종을 준비하고 농촌지역에서는 아직도 설에 집에서 동동주를 담가 먹는 집이 있다. 이 밖에 만두, 다식, 약과, 식혜, 수정과 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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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송절동에 있는 마을. ‘무터골’은 ‘물터골’의 변형이다. ‘물터골’은 ‘물터’와 ‘골’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물터’ 는 ‘물이 많이 나는 자리’로 해석된다. 이 '물터’가 있는 골짜기가 ‘물터골’이며 이로부터 ‘ㄹ'이 탈락하여 ‘무터골’이 된 것이다. ‘무터골’은 지역에 따라 ‘무테골’로도 나타난다. ‘무터골’은 본래 골짜기 이름이나 여기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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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중요한 지역에 두었던 지방 특별 행정구역. 신라의 소경제 채용은 고구려의 3경제(三京制)의 설치와 운용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고, 그 직접적인 설치 계기는 6세기 초에 걸쳐 진행된 일련의 체제정비와 수도의 도시계획 일환으로 추진되었다. 즉 지증왕(智證王, 500~514)대에 지방 행정조직인 주와 군제가 실시되고, 중앙과 변경지역에 이르는 관도와 우역이 정비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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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봉명동 799~801번지 부근에 있었던 조선시대 수리시설. 현재의 봉명동 799~801번지 부근에 있었던 수리시설로 『청주읍지(淸州邑誌)』에는 주치(州治)에서 서(西)로 5리 떨어진 곳에 있고, 주위가 552척이며 수심이 2척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봉명동 사거리 남동쪽 기슭의 봉명파크장 주변에 있었으며, ‘소댕이방죽’이라 불FL다가 1983년 주변이 택지 지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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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내곡동에 있는 마을. ‘소래울’은 내곡동을 가르키고 있는 말 인데 ‘안골’ 또는 ‘내곡’이라고도 한다. ‘소래울’은 ‘소래’와 ‘울’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는데, ‘소래’라는 지명은 들, 마을, 산 등의 이름으로 널리 쓰이는 지명이다. ‘소래’에 대해서는 ‘소라처럼 생겨서 붙어진 이름’, ‘소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 ‘지형이 좁아서 붙여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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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화재를 진압하고 재난 및 응급구호 활동을 하는 기관. 화재를 예방·경계하거나 진압하고 화재, 재난·재해 그 밖의 위급한 상황에서의 구조 및 구급활동 등을 통하여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을 보호함으로써 공공의 안녕질서 유지와 복리를 증진하는 서비스 및 공공재이다. 청주시의 화재, 재난, 구조를 위해 충청북도 소방본부 산하 청주서부소방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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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신봉동에 있는 마을. ‘소상’은 전국적으로 세 개가 발견된다. 그리고 ‘소상’이 붙은 ‘소상개’·‘소상곡’·‘소상골’·‘소상교’·‘소상굴’·‘소상동’·‘소상리’도 발견된다. 그러나 어느 것도 어원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지 않는다. 다만 본 마을이 과거 뽕나무밭이었다는 전언을 믿는다면, ‘소상’의 ‘상’은 ‘뽕나무[상(桑)]’일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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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신봉동에 있는 마을. ‘소상’은 전국적으로 세 개가 발견된다. 그리고 ‘소상’이 붙은 ‘소상개’·‘소상곡’·‘소상골’·‘소상교’·‘소상굴’·‘소상동’·‘소상리’도 발견된다. 그러나 어느 것도 어원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지 않는다. 다만 본 마을이 과거 뽕나무밭이었다는 전언을 믿는다면, ‘소상’의 ‘상’은 ‘뽕나무[상(桑)]’일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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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시 상당구 동편에 위치하는 청주의 진산이며 문화유적의 보고. 청주시의 동편에 위치하는 우암산(牛岩山)[338m]은 청주의 진산(鎭山)으로 청주시의 명암동, 내덕동, 우암동, 수동, 대성동, 문화동, 용암동에 걸쳐 있고 그 지맥이 탑동에까지 미치고 있으며, 해발 338m의 정상을 중심으로 남과 북 3좌의 연봉과 중앙초등학교 동쪽의 당산(唐山)에까지 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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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신전동에 있는 마을. ‘희여터’, ‘호여테’, ‘흐여티’, ‘향교골’, ‘행겨골’, ‘행저골’이라고도 한다. ‘소정’의 ‘정’은 정(亭)인 관계로 ‘소’의 정체는 분명하지 않다. ‘소’는 ‘소나무’의 변형일 가능성이 있는 데 그렇다면 ‘소정’은 ‘솔정’의 변형이며 ‘솔정’ 즉, 소나무 정자로 해석된다. 마을에 소나무가 있어서 붙어진 이름으로 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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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 오랜 생활 과정에서 얻어진 경험과 지혜를 간결하고도 비유적으로 형상적인 언어 형식으로 표현한 구비단문의 한 형태. 속담은 표현과 기능에 따라 격언(格言)과 이언(俚諺)으로 나눌 수 있다. 격언은 사회·역사적인 경험이 정식화된 것으로서 실천적인 규범 형태를 취하고 있다. 격언은 그 자체로서 완전한 문장을 이루고 있으며 대개 교훈적인 내용을 주제로 삼고 있다. 격언은 서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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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에 있는 운송회사. 속리산고속은 1967년 4월 4일 충청북도 청주에서 창립되었으며 전국 고속버스운송조합에 가입된 10개사 중 충청북도를 대표하는 유일의 고속버스회사였으나 2008년 금호고속에 인수되었다. 속리산고속은 1967년 4월 4일 설립되어 1974년 3월 16일 서문동 157-14[사직대로 346]에 터미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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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대표의 수장으로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천도교 교주. 1897년 해월 최시형(崔時亨)의 뒤를 이어 동학의 제3대 교주가 된 그는 동학의 재건에 노력하였다. 그러나 여의치 않자 일본으로 망명하여 교세의 재건에 힘쓰는 한편, 국내의 인재들을 일본으로 유학할 수 있도록 주선하였다. 1905년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교도들을 지휘하여 갑진개화운동(甲辰開化運動)이라는 신생활운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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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무인정권 초기의 무신. 경대승(慶大升)의 족형으로 경대승이 정권을 장악하였을 때 크게 활약하였다. 손석은 자신의 부친이 수령으로서 탐학을 일삼아 오광척이 탄핵하자, 이후 오광척을 원수로 여기고 있었다. 경대승이 정중부 일당을 제거하자, 경대승을 꾀어 오광척을 죽이고 아울러 장군 김광영 등을 잡아 죽였다. 1179년(명종 9)에 장군으로서 금나라에 가서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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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청주 출신의 향리이자 효자. 청주의 향리로서 백성으로부터 조금도 재물을 취하지 않았다. 1378년(우왕 4) 왜구가 고을에 침입하자 어린 아들딸들이 옷을 붙잡고 울부짖었으나 그는 돌아보지 않고 바로 집으로 달려가 모친을 업고 도망하여 숨어서 화를 면하였다. 이 일에 대해 마을 사람들이 탄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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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세기에 해당하는 고분유적에서 주로 출토된 손잡이잔 모양의 토기. 손잡이잔은 바리(鉢) 혹은 컵 모양의 토기에 손잡이가 한쪽 혹은 양쪽에 부착된 토기로, 청주 신봉동 고분군에서 많은 양이 출토되었다. 신봉동 출토 손잡이잔은 형태와 여러 특징 등이 다른 지역과는 다르게 신봉동 특유의 모습을 하고 있어 ‘신봉동배(新鳳洞杯)’라고도 한다. 청주지역에서 손잡이잔이 출토된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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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열녀. 손혁(孫赫) 처 박씨(朴氏)는 4년 시묘(侍墓)와 20년 이상 남편의 제사를 게을리 하지 않은 열녀로 조선 성종 때 정려되었다. 손혁의 처 박씨는 남편이 죽자 무덤 옆에 여막(廬幕)을 짓고 3년을 슬퍼하더니 다시 1년을 지낸 뒤에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몸소 제사 지내기를 20여 년 동안 조금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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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지역에서 활동하였던 연극인. 청주고등학교를 거쳐 1977년 2월 충북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였다. 충청북도 증평군 형석중학교 등에서 국어교사로 재직하였다. 1973년 시민극장과 충북대학교 극예술연구회를 통하여 연극에 입문하여 청주를 근거로 왕성하게 활동한 연극배우였다. 1973년 시민극장에 입단하여 제5회 전국소인극경연대회에 「옹고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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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문암동에 있는 들. ‘솔밑들’은 1차적으로 ‘솔밑’과 ‘들’로 분석된다. ‘솔밑’은 다시 ‘솔’과 ‘밑’으로 나뉘는데, ‘솔’은 ‘소나무’를 뜻한다. 따라서 ‘솔밑’은 ‘소나무 아래’로, ‘솔밑들’은 ‘소나무가 우거진 산 밑에 있는 들’로 해석된다. ‘솔밑들’은 달리 ‘솔미’라고도 불리는데, 이때에도 ‘솔’은 ‘소나무’를 뜻한다. 그러나 ‘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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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송절동에 있는 산. ‘솔’과 ‘미’로 나누어 볼수 있다. ‘솔’은 ‘소나무’ 또는 ‘솔다’의 어간, 아니면 ‘솥’[鼎]의 변형일 가능성이 있다. ‘미’는 산(山)의 뜻이다. 솔은 소나무로 보면 솔미는 소나무가 많은 산으로 해석된다. 전국에 ‘솔미’라는 지명은 많이 있는데, 대부분이 ‘작고 좁은 산’으로 보면된다. 그리고 ‘솔’을 ‘솥’의 변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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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정동에 있는 산. ‘솔’을 ‘소나무’, ‘미’를 ‘산’으로 보고 ‘솔미’를 ‘소나무가 많은 산’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솔’은 ‘솔다’의 어간 아니면 ‘솥’의 변형일 가능성도 있다. ‘솔다’의 어간으로 보면 ‘솔미’는 ‘좁고 작은산’, ‘솔’의 변형으로 보면 ‘솔미’는 ‘솥처럼 생긴 산’으로 보면 된다. 중고개에서 재떨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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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문암동에 있는 들. ‘솔밑들’은 1차적으로 ‘솔밑’과 ‘들’로 분석된다. ‘솔밑’은 다시 ‘솔’과 ‘밑’으로 나뉘는데, ‘솔’은 ‘소나무’를 뜻한다. 따라서 ‘솔밑’은 ‘소나무 아래’로, ‘솔밑들’은 ‘소나무가 우거진 산 밑에 있는 들’로 해석된다. ‘솔밑들’은 달리 ‘솔미’라고도 불리는데, 이때에도 ‘솔’은 ‘소나무’를 뜻한다. 그러나 ‘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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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송정동에 조성된 근린공원. 솔밭공원이라는 명칭은 공원 부지의 대부분을 소나무 숲이 뒤덮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공원은 흥덕로와 공단로의 끝이 만나는 교차로(솔밭공원 사거리)에 위치하며, 송정동 산8-4이다. 서청주 IC에서는 동쪽으로 1.5㎞ 떨어져 있다. 공원 옆길 건너에는 청주산업단지 관리공단이 있다. 1988년에 준공된 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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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은진(恩津)이며, 청주 출신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송환복(宋煥復), 할아버지는 송헌규(宋憲圭), 아버지는 송흠시(宋欽時)이며, 외할아버지는 이헌명(李憲明)이다. 1845년(헌종 11) 별시(別試) 병과(丙科)에 6인(人)으로 합격하였다. 1845년 대과 합격 후 가주서(假注書), 1848년 정언(正言), 1850년(철종 1) 교리(校理)·수찬(修撰),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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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내곡동에 있는 서원. 서원은 당시 사립학교에 해당되는 곳으로 이름 있는 사람이나 동네 유지들이 모여 인근에 있는 학동을 모아 학문을 가르치던 곳으로, 당시 국공립에 해당하는 향교와 비슷하다. 향교는 오래된 그 고을의 중심지에 세워졌으나 향교는 이름 있는 분이나 유지들이 학교를 가지 못하는 학동을 위하여 설립한 사립학교이다. 흥덕구 내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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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학자. 본관(本貫)은 은진(恩津)이며, 자(字)는 군식(君式), 호(號)는 안소당(安素堂)이다. 청주 출신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안악군수(安岳郡守)를 지낸 송세훈(宋世勛), 할아버지는 부호군(副護軍) 송남수(宋柟壽)이다. 아버지는 사헌부(司憲府) 장령(掌令)을 지내고 승정원(承政院) 도승지(都承旨)에 증직된 송희진(宋希進)이다. 어머니는 동래정씨(東萊鄭氏)이다.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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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송정동에 있었던 마을. ‘좌귀(坐貴)’는 예전에 귀인이 좌정하였던 곳이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되나 그 유래는 알기 어렵다. 다른 지역에서는 ‘좌기골’, ‘좌기동’에서 보듯 ‘좌기’가 더 우세하게 쓰이나 ‘좌기’의 유래 역시 알기 어렵다. ‘주아게’는 ‘좌귀’의 변형된 명칭이다. 이 마을 이름에는 ‘송귀’라는 별칭도 있는데, 이는 소나무가 많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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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문신. 본관은 여산(礪山)이며, 청주 출신으로 충렬공(忠烈公) 천곡(泉谷) 송상현(宋象賢)[1551~1592]의 손자(孫子)이며, 청주지역 여산송씨(礪山宋氏) 입향조인 송인급(宋仁及)의 아들이다. 문음(門蔭)으로 벼슬에 나아가 찰방(察訪)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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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은진(恩津)이며, 자는 근술(近述), 호는 입재(立齋)·남곡(南谷)이다. 청주 출신으로 송시열(宋時烈)의 8대손이며, 송흠학(宋欽學)의 아들로 송흠락(宋欽樂)에게 입양되었다. 증조할아버지는 송환세(宋煥世), 할아버지는 송택규(宋宅圭), 외할아버지는 이낙배(李樂培)이다. 시호는 문헌(文獻)으로 청주에 거주하였다. 1848년(헌종 14) 증광시(增廣試) 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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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本貫)은 은진(恩津)이며, 자(字)는 성백(誠伯), 호는 문도재(聞道齋)이다. 청주 출신으로 청주 입향조(入鄕祖)인 참봉(參奉) 송세량(宋世良)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증찬성(贈贊成) 송응기(宋應期)이다. 할아버지는 증이조참의(贈吏曹參議) 송방조(宋邦祚)로 송시열(宋時烈)의 부친인 송갑조(宋甲祚)와 형제이며, 아버지는 송시염(宋時琰)이다. 1659년(효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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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은진(恩津)이며, 청주(淸州)에 거주하였다. 증조할아버지는 송낙원(宋洛源), 할아버지는 송명상(宋明相), 아버지는 송환옥(宋煥玉)이다. 1816년(순조 16) 별시(別試) 병과(丙科) 14인으로 급제하였다. 1821년 정언(正言)·장령(掌令), 1827년 이조좌랑(吏曹佐郞)·지평(持平), 1828년 경기도사(京畿都事)를 지냈다. 1831년 지평으로 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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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은진(恩津)이며, 자는 중겸(仲兼)으로 청주에 거주하였다. 증조할아버지는 효행으로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증직된 송재은(宋載殷)이며, 할아버지는 송도정(宋道鼎)이다. 아버지는 송일렴(宋一濂)이며, 어머니는 하동정씨(河東鄭氏)로 정언(正言) 정최행(鄭㝡行)의 딸이다. 부인은 청풍김씨(淸風金氏)로 참의(參議) 김종언(金鍾彦)의 딸이다. 1837년(헌종 3)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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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은진(恩津)으로 자는 영숙(永叔)이며, 호는 습정(習靜)이다. 송방조는 의빈도부사 응기(應期)의 아들이다. 1590년(선조 23)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충청도 영동에 피난하여 현감 한명윤(韓明胤)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였다. 1606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권지정자(權知正字)·박사를 지내고, 전적이 되어 영남지방의 향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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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여산(礪山)으로 자는 성구(聖求)이며, 호는 서곽(西郭)이다. 송상인(宋象仁)은 현감 송복흥(宋復興)의 아들이며, 천곡(泉谷) 송상현(宋象賢)[1551~1592]의 아우이다. 1605년(선조 38)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성균관학유·예문관검열을 거쳐 함경도북평사(咸鏡道北評事)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 형조좌랑이 되었다. 1612년 (광해군 4) 김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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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여산(礪山)이고, 자는 덕구(德求)이며, 호는 천곡(泉谷)이다. 아버지는 평강, 용안 등의 현감을 지낸 송복흥(宋復興)이고, 할아버지는 송전(宋琠)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송승은(宋承殷)이다. 부인은 성주이씨(星州李氏)로 기묘명현인 묵재 이문건(李文健)의 손녀이다. 어려서부터 남달리 재주가 뛰어나 10여세에 경사(經史)에 통달하였다. 15세에 승보시(陞補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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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에 있는 천곡(泉谷) 송상현(宋象賢)[1551~1592]의 신도비. 임진왜란 때 동래부사로 순국한 송상현의 신도비이다. 흥덕구 수의동의 강촌마을 묘소 아래 진입로 왼편에 있으며, 1984년에 충청북도 기념물 제66호로 지정되어 있다. 높이 280㎝, 폭 90㎝, 두께 26㎝의 비신(碑身)을 세우고 이수(螭首)를 얹었으며, 198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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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에 있는 천곡(泉谷) 송상현(宋象賢)[1551~1592], 한금섬(韓金蟾), 이소사(李召史)의 정려문. 임진왜란 때 순절한 동래부사 송상현과 그의 두 소실이었던 한금섬과 이소사의 정절을 함께 기려 세운 정려문이다. 본래는 1595년(선조 28) 송상현만 정려되었으나, 1704년(숙종 30)에 두 소실이 정려됨에 따라 함께 모시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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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은진(恩津)이며, 자는 자수(子綏)이고, 거주지는 청주였다. 아버지는 송응경(宋應慶)이고, 할아버지는 규암(圭庵) 송인수(宋麟壽)[1487~1547]이다. 생부는 송응기(宋應期)이며, 아들로 송시혁(宋時爀)이 있다. 음사(蔭仕)로 관직에 나가 선공감역(繕工監役)과 여러 관직을 거쳐 지례현감(知禮縣監)을 지냈다. 임진왜란 때에는 선전관(宣傳官)으로 활동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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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대학자. 송시열(宋時烈)의 자(字)는 영보(英甫)이고 호(號)는 우암(尤庵), 우재(尤齋), 화양동주(華陽洞主)이며, 시호(諡號)는 문정(文正)이다. 본관(本貫)은 은진(恩津)으로 아버지는 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 송갑조(宋甲祚), 어머니는 선산곽씨(善山郭氏)이다. 송시열은 1607년(선조 40) 그의 외가가 있는 충북 옥천군 이원면 구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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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화동에 있는 송시열(宋時烈)의 불천위(不遷位)를 모신 사당.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유학자이며 노론의 영수인 송시열의 불천위(不遷位)를 모신 사당이다. 불천위란 큰 공훈이 있다고 국가가 인정한 인물의 신위(神位)로 4대 봉사(奉祀)가 지나도 신주를 땅에 묻지 않고 사당에서 영구히 제사를 지내는 것이 허락된 신위를 가리키는 말이며, 이 불천위를 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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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청주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 본관은 여산(礪山)이며, 호는 춘계(春溪)이다. 충청북도 청원군 강내면 부탄리에서 1865년 송수일(宋秀一)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성격이 강직하고 비범한 재주를 보여 장차 큰 인물이 될 것이라고 칭찬이 자자하였다. 스스로도 성현의 덕행으로 부모님을 편안히 모시고, 친상에는 3년을 하루같이 추모하였다. 형제간에 우애가 돈독하였으며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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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여산(礪山)이며, 자(字)는 택지(擇之)이다. 시조 송유익(宋惟翊)의 17세손으로 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순절한 동래부사 천곡(泉谷) 송상현(宋象賢)[1551~1592]이다. 할아버지는 송복흥(宋復興), 증조할아버지는 송전(宋㙉), 외할아버지는 이온(李熅)이다. 동생으로 송효급(宋孝及)이 있으며, 아들로는 연원도 찰방(察訪)을 지낸 송근(宋根)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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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은진(恩津)이며, 자는 미수(眉叟), 태수(台叟), 호는 규암(圭庵)이다.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송계사(宋繼祀)의 고손이며, 정랑 송순년(宋順年)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부사(府使) 송여해(宋汝諧)이고, 아버지는 건원릉참봉(健元陵參奉) 송세량(宋世良)이다. 어머니는 유승양(柳承陽)의 딸이며, 부인은 권박(權博)의 딸이다. 1521년(중종 16) 별시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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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대학자. 송시열(宋時烈)의 자(字)는 영보(英甫)이고 호(號)는 우암(尤庵), 우재(尤齋), 화양동주(華陽洞主)이며, 시호(諡號)는 문정(文正)이다. 본관(本貫)은 은진(恩津)으로 아버지는 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 송갑조(宋甲祚), 어머니는 선산곽씨(善山郭氏)이다. 송시열은 1607년(선조 40) 그의 외가가 있는 충북 옥천군 이원면 구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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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서2동에 속하는 법정동. 원래 골짜기 안(속)에 절이 있어서 ‘속절’이라 하였는데, 이것이 변하여 ‘송절’이 되었다고 한다. 본래 청주군(淸州郡) 서주내면(西州內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신정리(新定里), 화계리(花溪里) 및 서강내일상면(西江內一上面)의 화계리(花溪里) 일부를 병합하여 송절리(松節里)라 명명하고 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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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송절동에서 발굴된 원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매장·생활유적. 송절동 유적은 중부지역에서 확인된 원삼국시대의 대표적인 고분유적 중의 하나이다. 1989년 4월 청주공업단지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유적의 존재가 처음 확인된 후, 이곳에 대한 발굴조사는 1992년 11월~12월, 1993년 9월~11월의 두 차례에 걸쳐 충북대학교 박물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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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송절동에 위치한 고려시대 사찰의 터. 이 절터에 대한 문헌기록이 전혀 없어 사찰의 명칭은 물론 창건 및 폐사시기를 알 수 없으며, 단지 주변에서 발견되는 유물을 통하여 대략 고려시대에 작은 절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청주도축장에서 남쪽으로 통하는 덤박골고개에서 남쪽으로 약 200m 지점으로 신봉동과 송절동 사이에 형성된 야산의 북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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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송절동에 있었던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유적. 이 유적은 중원문화의 성격과 문화상 규명 작업의 일환으로 국립청주박물관이 실시한 미호천(美湖川) 유역에 대한 지표조사를 통해 처음 확인되었으며, 이후 청주시에서 추진한 관내 국도대체우회도로(송절동-율량동) 건설공사와 관련하여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 의해 1999년 시·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지표조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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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송절동에 있는 공립 중학교. 예의와 질서의 생활화로 자유와 책임을 존중하는 민주적인 사람,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을 신장시켜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 다양한 체험 활동과 과학적이고 합리적은 사고로 학문을 익혀 스스로 탐구하는 사람, 심신을 연마하고 정서를 순화하여 조화로운 인격을 가진 건강한 사람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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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봉명2동·송정동에 속하는 법정동. 마을에 소나무 정자가 있어서 송정(松亭)이라 하였다. 본래 청주군(淸州郡) 서주내면(西州內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좌귀리(坐貴里), 외중리(外中里)와 서강내일상면(西江內一上面) 송정리(松亭里), 왕암리(旺岩里), 복대리(福臺里)의 각 일부 및 남주내면(南州內面) 송정리(松亭里)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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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송정동에 있는 팽나무. 수령은 약 300년 정도이고, 높이는 15m, 흉고둘레 3.5m 정도이다. 흥덕구 송정동의 봉정사거리에서 서청주인터체인지로 가는 길에 있으며, 원풍섬유의 뒤쪽에 해당된다. 수관이 수려하여 정자목으로 산업단지에서 공동관리하고 있는 나무이다. 흥덕로와 우성모직 사이의 언덕에 높이 솟아 있는 나무이고 그 주변에는 개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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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흥덕구 송정동 솔밭공원 서쪽에 있었던 충북선 정봉역과 청주역 사이의 간이정차역. 일제강점기인 1921년 중앙철도회사가 경부선 조치원역에서 청주역간 충북선 철로공사를 준공하면서 송정역으로 개통되었다가 1956년 6월 29일 청주의 서쪽에 위치한다 하여 서청주역으로 역명이 바뀌었다. 1968년에는 청주 도심의 철도구간의 외곽 이설에 따라 역사가 폐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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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은진(恩津)이며, 자는 성양(聖養)이고, 거주지는 문의(文義)였다.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를 지낸 송득규(宋得圭)이고, 할아버지는 송휘보(宋輝普)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송주상(宋周相), 외할아버지는 이규형(李奎衡)이다. 부인은 한산이씨(韓山李氏)로 청주 신항서원(莘巷書院)의 원장을 지낸 이지연(李志淵)의 딸이다. 1816년(순조 16)에 식년문과(式年文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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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은진(恩津)이며, 자는 맹겸(孟謙)이고, 거주지는 청주였다. 아버지는 송철규(宋徹圭), 할아버지는 송휘보(宋輝普), 증조할아버지는 송주상(宋周相), 외할아버지는 김이정(金履禎)이다. 1843년(헌종 9) 식년문과(式年文科)의 병과(丙科) 21위로 급제하였고, 철종 초에 사헌부지평, 사간원 정언, 수찬, 홍문관 교리 등을 지냈다. 1856년(철종 7) 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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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정동에 있는 고개. ‘쇠태고개’는 ‘쇠태’와 ‘고개’로 분석된다. ‘쇠태’ 또는 ‘쇠탯’은 ‘쇠태고개’ 외에 ‘쇠태동’, ‘쇠태배기’, ‘쇠탯골’에서도 발견되는데, 대부분 ‘솟대’와 관련된 유래담을 지니고 있다. 특히 ‘쇠태배기’는 ‘솟대배기’와 함께 쓰이고 있어 주목된다. 그렇다면 ‘솟대’가 ‘ㅣ’모음 역행동화에 의해 ‘쇳대’가 되고, ‘쇳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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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 용암동, 금천동, 탑동을 흐르는 개울에서 금을 발견하였다는 전설. 조선 후기 철종 때 한 나그네가 걸어서 한양을 가고 있었다. 청원의 쌀안[米院]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에 부지런히 걸어서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무렵 청주성 남문 밖 합수머리에 당도하였다. 개울에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르는 것을 보고 신을 벗고 발을 담갔다.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고 있으니 며칠 동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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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외평동에 있었던 마을. ‘쇠내’는 외평동에 있었던 마을로 ‘상촌(上村)’, ‘중촌(中村)’, ‘평촌(坪村)’ 지역을 아우르는 큰 마을 이었다. 일명 ‘금천(金川)’이라고도 한다. 본래 ‘쇠내’는 멀리 상당산성(上黨山城)에서 발원하여 팔결내로 흘러드는 하천이다. ‘쇠내’의 ‘쇠’는 ‘金’, ‘내’는 ‘川 ’의 뜻이다. 그러니 ‘쇠내’는 ‘금이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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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의 상당산성에서 발원하여 금천동을 지나 무심천(無心川)으로 흘러드는 하천. 쇠내개울, 금천(金川), 명암천(明岩川)이라고도 한다. 쇠내개울은 ‘금이 나는 내’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지역은 지금도 금과 관련된 지명전설이 전해내려 오고 있다. 일제강점기까지도 쇠내개울의 상류에 금광이 있었으며, 내에서 사금을 채취하였고 한다. 또한, 장마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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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금천동에서 개최되는 지역 축제.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금천동은 1990년대 중반까지도 도시기반 시설이 매우 낙후되었으나 1990년대 후반 용암2지구 택지개발사업 등으로 새롭게 변모하면서 기존 지역과 신개발 지역으로 양분되기 시작하였다. 지역 간의 갈등을 없애고 화합을 이루기 위하여 쇠내골사람들행복축제를 개최하였으며 이러한 노력이 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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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금천동에 있었던 들. ‘쇠냇들’은 ‘쇠내’와 ‘들’이 사이시옷을 매개로 결합된 어형이다. ‘쇠내’는 상당산성에서 발원하여 금천동을 지나 무심천(無心川)으로 합류하는 하천으로, ‘쇠내개울’·‘금천(金川)’·‘명암천(明岩川)’으로도 불린다. ‘쇠내’는 ‘쇠’와 ‘내’로 나뉘는데, 여기서 ‘쇠’는 두 가지로 다르게 설명할 수 있다. 첫째는 ‘금(金)’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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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금천동에 있었던 들. ‘쇠냇들’은 ‘쇠내’와 ‘들’이 사이시옷을 매개로 결합된 어형이다. ‘쇠내’는 상당산성에서 발원하여 금천동을 지나 무심천(無心川)으로 합류하는 하천으로, ‘쇠내개울’·‘금천(金川)’·‘명암천(明岩川)’으로도 불린다. ‘쇠내’는 ‘쇠’와 ‘내’로 나뉘는데, 여기서 ‘쇠’는 두 가지로 다르게 설명할 수 있다. 첫째는 ‘금(金)’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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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금천동에 있었던 들. ‘쇠냇들’은 ‘쇠내’와 ‘들’이 사이시옷을 매개로 결합된 어형이다. ‘쇠내’는 상당산성에서 발원하여 금천동을 지나 무심천(無心川)으로 합류하는 하천으로, ‘쇠내개울’·‘금천(金川)’·‘명암천(明岩川)’으로도 불린다. ‘쇠내’는 ‘쇠’와 ‘내’로 나뉘는데, 여기서 ‘쇠’는 두 가지로 다르게 설명할 수 있다. 첫째는 ‘금(金)’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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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정동에 있는 고개. ‘쇠태고개’는 ‘쇠태’와 ‘고개’로 분석된다. ‘쇠태’ 또는 ‘쇠탯’은 ‘쇠태고개’ 외에 ‘쇠태동’, ‘쇠태배기’, ‘쇠탯골’에서도 발견되는데, 대부분 ‘솟대’와 관련된 유래담을 지니고 있다. 특히 ‘쇠태배기’는 ‘솟대배기’와 함께 쓰이고 있어 주목된다. 그렇다면 ‘솟대’가 ‘ㅣ’모음 역행동화에 의해 ‘쇳대’가 되고, ‘쇳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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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곡동에 있는 행정동이자 법정동. 산이 불쑥 나온 골짜기라는 뜻인 ‘숙골’이 변형된 것이라는 설과 물이 많은 골짜기라는 뜻인 ‘수(水)골’이 변형된 것이라는 설이 있다. 본래 청주군(淸州郡) 남주내면(南州內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산북리(山北里)라 명명하고 사주면(四州面)에 편입시켰다. 1963년에는 수곡동(秀谷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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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수곡동에 있는 공원. 무심천(無心川)은 범람원이 발달하여 홍수 피해가 자주 발생하고 곳곳에 자연제방을 만들어냈다. 무심천(無心川) 정비사업으로 시행된 직강화 사업으로 무심천(無心川) 수곡동 구간의 활주사면을 그대로 둔치로 유지시켜 제방을 쌓았는데, 그 둔치에 조성한 공원이다. 수곡1동 주민자치위원회가 1999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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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곡동에 있는 행정동이자 법정동. 산이 불쑥 나온 골짜기라는 뜻인 ‘숙골’이 변형된 것이라는 설과 물이 많은 골짜기라는 뜻인 ‘수(水)골’이 변형된 것이라는 설이 있다. 본래 청주군(淸州郡) 남주내면(南州內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산북리(山北里)라 명명하고 사주면(四州面)에 편입시켰다. 1963년에는 수곡동(秀谷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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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곡동에 위치한 천주교 청주교구 소속의 성당. 바르톨로메오성당으로 불리기도 한다. 수곡동성당은 1983년 5월 1일 서운동 예수성심본당에서 분가하여 1986년 9월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곡동 37-2[청남로2040번길 78]의 대지에 성당 준공 및 축성식을 거행함으로서 세워졌다. 수곡동성당은 수곡동 지역의 천주교 신자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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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수곡동 853번지[수곡로58번길 7-1] 일대에 있는 재래시장. 수곡동은 간선도로변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농사를 짓던 변두리 지역이었다. 이곳의 숙골방죽은 전답에 물을 대던 저수지였는데 도시개발로 메워지고 그 자리에 산남초등학교가 들어서면서 택가가 형성되었고 이로 인해 시장이 자연스럽게 이루어 졌다. 수곡동(秀谷洞)은 ‘숙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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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수곡동에 위치하고 있는 공립 중학교. ‘올바른 가치관과 국가관 및 공동체 의식이 투철한 자주인, 정직, 성실한 자세로 예절과 질서를 존중하며 협동, 봉사하는 도덕인, 면학풍토를 조성하여 기초학력의 신장과 스스로 배우고 익힐 수 있는 실력인, 과학적 사고력과 창의력을 배양하여 미래의 정보화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창조인, 쾌적한 환경에서 신체를 단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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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수곡동에 위치하고 있는 공립 초등학교. 예절과 질서를 지키고 이웃과 나라를 사랑하며 바르게 행동하는 도덕적 어린이, 다양한 체험활동을 통해 창의적 사고능력이 있는 창조적 어린이, 자기주도적 학습으로 지·덕·체·예·기의 기틀을 갖춘 실력있는 어린이, 몸이 건강하며 환경을 깨끗이 하는 환경친화적인 건강한 어린이, 근검절약 생활과 자제력으로 자기 분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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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곡2동에서 개최되는 지역 축제. 수곡한마음축제는 빈부격차 없는 살기 좋은 마을 건설을 위해 남녀노소가 함께하는 화합의 축제라는 주제로 2001년 10월 제1회 행사를 개최하였다. 산남종합사회복지관과 수곡2동 직능단체 주관으로, 수곡한마음축제추진위원회에서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매년 새로운 슬로건으로 행사의 내용을 알리는데, 제2회 축제는 ‘아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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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곡동에 있었던 마을. ‘수근바위말’은 ‘수근바위’가 있는 마을을 가리킨다. ‘수근바위’의 ‘수근’은 ‘숙다(앞으로 기울어지다)’라는 동사의 활용형으로 ‘수근바위’는 ‘앞으로 숙인 바위’로 해석된다. 바위가 남자의 성기처럼 앞으로 숙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수근바위’는 수곡동의 청주지방법원 청사 북쪽 뒤편(모충동 128-19)에 있는 바위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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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수동 우암산(牛岩山)[338m]에 있는 사찰. 대한불교수도원은 불상 대좌와 파손된 불상이 여러 점 확인되는 등 옛 사찰의 흔적이 뚜렷한 자리에 1952년 용화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된 절이다. 청주시 흥덕구 사직동에 같은 이름의 사찰이 있어 신 용화사(新 龍華寺)라는 이름으로 불려오다 1974년 창건주인 벽산스님이 대한불교수도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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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중앙동에 속하는 법정동. 본래 청주군 북주내면(北州內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청주향교의 서쪽에 있어서 교서(校西)라 불렸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원리(院里) 일부와 동주내면(東州內面)의 교동리(校洞里) 일부를 묶어 교서리(校西里)라 명명하고 이를 청주면에 편입하였다. 1920년 교서리를 일본식 지명인 수정(壽町)으로 바꾸고 광복 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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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수동에 있는 천주교 청주교구청 소속의 성당. 청주본당(현재 서운동성당)에서 분리되어 1964년 9월 설립됐다. 내덕동 주교좌본당에 이어 청주 세번째 성당에 해당한다. 1965년 지금의 자리에 성당을 짓기 시작, 1966년 8월 축복식을 가졌다. 이후 1967년 한국순교복자회가 설치됐고, 그해 5월 유치원이 개원됐다. 1971년 유치원 설립 정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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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수동에 있는 수동성당의 건물. 1964년 9월 6일 서운동성당에서 분리되어 수동 본당을 설립하였으며, 서운동본당과 내덕2동본당에 이어 청주에서 3번째로 설립된 성당이다. 1965년 9월 26일 수동성당의 신축공사를 착수하여 1966년 8월 15일 성당 157평과 사제관 77평 및 강당 140평을 건립하였다. 이후 1985년 5월 교육관(150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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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월오동에 있는 골짜기. ‘수루네미골’은 ‘수루네미’와 ‘골’로 분석된다. ‘수루네미’는 다시 ‘수루’와 ‘네미’로 나뉜다. ‘수루’는 ‘술[峰]’과 관련된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고구려·백제 지명에는 ‘述’(술), ‘述尒’(수리), ‘首泥’(수니) 등이 보이는데, 이는 ‘봉우리’를 뜻한다. 현대 지명에 보이는 ‘수’, ‘수레’, ‘수루’,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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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주성동에 있었던 고개. ‘수름’과 ‘재’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다. 수름의 뜻을 밝히면 되지만 그 어원이 분명하지 않아 이 고개의 유래를 밝히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수름’에 대한 몇 가지의 어원설을 전하고자 한다. 첫째는 술(酒)과 관련하여 이해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음식과 술을 팔고 숙소까지 제공하던 주막이 있었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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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주성동의 수름재 동쪽의 강당말 뒤에 있는 산. ‘백화산(伯華山)’은 큰 빛이 나는 산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해석은 이 산이 돌과 모래로 이루어진 산이라는 데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백화산(白花山)'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은 산림이 우거져 푸른빛을 띠고 있지만 예전에는 흰 바위와 모래가 그대로 드러나 하얀 색을 띠고 있었다고 한다. 산이 하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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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주성동에 있었던 고개. ‘수름’과 ‘재’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다. 수름의 뜻을 밝히면 되지만 그 어원이 분명하지 않아 이 고개의 유래를 밝히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수름’에 대한 몇 가지의 어원설을 전하고자 한다. 첫째는 술(酒)과 관련하여 이해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음식과 술을 팔고 숙소까지 제공하던 주막이 있었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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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우암동에 있었던 들. ‘수반들’은 ‘숲안들’의 변화형이다. 즉 ‘숲안들’이 미파화에 의해 ‘숩안들’이 되고, 이것이 소리나는 대로 표기되어 ‘수반들’이 된 것이다. 여기서 ‘숲’은 ‘북숲’을 말한다. 북숲은 용화사와 청주농업고등학교 사이에 있던 숲으로, 풍수지리적인 관점에서 인위적으로 조성되었던 숲이다. 또한 ‘안’은 ‘내(內)’의 뜻이니, '수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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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보살계법 범망경보살계본 합본(受菩薩戒法 梵網經菩薩戒本 合本)』 종이 앞·뒷면에 모두 인쇄되어 있는 등 인쇄상태 및 인쇄조건, 그리고 발문의 내용 등으로 보아 1306년 이후에 고려인들에 의해 원나라에서 판각하여 원나라 종이로 찍어낸 판본으로 추정된다. 후진의 구마라습(鳩摩羅什)이 번역한 『범망경노사나불설보살심지계품(梵網經盧舍那佛說普薩心地戒品)』 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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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석소동에서 수의동으로 가는 길에 있는 다리. 일명 수석교(守石橋)라고도 하는데 이는 수석천(守石川)에 놓인 다리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수석천(守石川)은 수의동과 석소동의 사이를 흐르는 하천으로 수의동의 ‘수’와 석소동의 ‘석’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석소동은 돌이 많은 지역이어서 ‘돌쇠’, ‘돌세’ 또는 석소(石所)라고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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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과 석소동 사이를 흐르는 하천. 이 하천은 수의동의 ‘수’와 석소동의 ‘석’이 합성되어 만들어진 이름이다. 청주시의 서부 지역은 화강암이 오랜 동안 심층풍화를 받아 이루어진 구릉지들이 산재해 있다. 이 구릉지들은 주변에 큰 하천이 있으면 무심천(無心川) 주변에서 보듯이 풍화층을 하천이 침식하여 다른 곳으로 운반하여 낮은 곳에다 쌓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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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섣달 그믐날 밤에 집안 곳곳에 등촉을 밝혀놓고 밤을 새우는 풍속. 수세(守歲)는 도교에서 12월 경신일(庚申日)에 잠을 자지 않고 밤을 지켜야 복을 받는다는 소위 경신수세(庚申守歲)의 유속(遺俗)이다. 그래서 섣달그믐에 윷놀이, 옛날이야기, 얘기책 읽기 등 흥미 있는 놀이로 밤을 새웠다. 잡귀의 출입으로 인해 새로운 한 해에 닥칠 수 있는 액운의 방비는 물론 새로운 한 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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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물과 현상을 비유적으로 표현하여 그것을 알아맞히게 하는 구비문학의 한 형태. 수수께끼를 이르는 말로는 ‘슈지’, ‘슈지겻기’ 등이 있었다. 이 고어들은 수수께끼가 ‘슈지’와 ‘겻기’의 합성어로 이루어져 있으며, ‘슈지’와 ‘겻기’가 그 음이 변하여 고착된 것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여기서 ‘수수’는 숨은 것이며 ‘께끼’는 겨루기를 의미한 것으로 수수께끼란 ‘숨은 것을 찾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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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우암동에 있었던 들. ‘수반들’은 ‘숲안들’의 변화형이다. 즉 ‘숲안들’이 미파화에 의해 ‘숩안들’이 되고, 이것이 소리나는 대로 표기되어 ‘수반들’이 된 것이다. 여기서 ‘숲’은 ‘북숲’을 말한다. 북숲은 용화사와 청주농업고등학교 사이에 있던 숲으로, 풍수지리적인 관점에서 인위적으로 조성되었던 숲이다. 또한 ‘안’은 ‘내(內)’의 뜻이니, '수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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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영운동과 흥덕구 수곡동을 잇는 다리. 수곡동의 ‘수’와 영운동의 ‘영’을 따서 수영교라고 명명하였으며 다리의 길이는 약 150m 정도이고 다리의 폭은 25m로 왕복 4차선도로이다. 1994년에 완공된 다리로 넓게는 25번 국도(단재로)와 17번국도(청남로)를 연결하는 무심천(無心川)을 가로지르는 다리이고 좁게는 청주남중학교에서 영운동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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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서1동에 속하는 법정동. 절의(節義)를 지킨 사람이 많이 나왔다고 하여 수절(守節), ‘숫절’, 수의동(修義洞)이라 하였다. 본래 청주군(淸州郡) 서강내일하면(西江內一下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강상리(綱常里), 부동(釜洞), 정상리(井上里)를 병합하여 수의리(守儀里)라 명명하고 강서면(江西面)에 편입되었다. 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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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명으로는 흥덕구 강서 1동 14통이고, 법정명으로는 수의동 강촌이다. 수의동은 청주군(淸州郡) 서강내일하면(西江內一下面)의 지역으로 절의를 지킨 사람이 많은 마을이라 하여 수의동(守儀洞)[수절, 숫절]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강상리(綱常里), 부동(釜洞), 정상리(井上里)를 병합하여 수의리(守儀里)로 강서면(江西面)에 편입된 후, 198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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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마을은 관광객보다는 유적 탐방, 답사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 강상마을을 찾아오는 이들 중 학생들은 주로 비석을 탁본하거나, 2004년에 개관한 천곡유물전시관을 찾아 천곡(泉谷) 송상현(宋象賢)[1551~1592]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그 외 유적을 돌면서 역사탐방을 목적으로 한다. 이외 일반인들은 문화답사를 목적으로 하여 이 마을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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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마을 주민들은 강서초등학교가 생기면서 근대식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지금은 가까이에 현암초등학교와 강서초등학교가 있으며, 이 마을 아이들은 대부분 강서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중학교는 1970년대까지 청원군 강내면 미호중학교에 다녔으나, 1983년 청주시에 편입된 후로 청주 전 지역의 학교를 대상으로 배정받는다. 대부분 마을에서 가까운 충북대학교 부설중학교와 서원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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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래부사 송상현 충렬사(東萊 府使 宋象賢 忠烈祠)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 산 1-5에 위치한다. 충렬사는 임진왜란 때 순국한 동래부사 천곡(泉谷) 송상현(宋象賢)[1551~1592]을 제향하는 사당이다. 선조 28년(1595) 동래에 있던 묘소를 지금 위치로 이장하고, 광해군 2년(1610)에 창건하였다. 이후 여러 차례 중수하였으며 지금의 건물은 1980년에 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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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마을은 70여 년 전까지 마을에서 1㎞ 떨어진 묵방산 봉우리에서 산신을 위했다. 묵방산 봉우리 밑 평평한 터에 음력 3월 초중 택일하여 유교식 절차에 맞춰 제를 올렸다. 택일은 대개 3월 초정일(初丁日)로 하였다. 제를 올리던 묵방산 봉우리를 강상마을 사람들은 지질봉(제일봉)이라고도 부른다. 택일과 함께 산제를 주관하는 제관과 축관을 생기복덕에 맞춰 선출하였다.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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윷놀이는 한 해 중 특히 정월에 많이 한다. 남녀를 불문하고 편을 가르거나 개인별로 윷을 논다. 집 안에서 하기보다는 마당에서 멍석을 펴 놓고 한다. 지금도 정월이 되면 마을 회관 마당에 멍석을 펴 놓고 상품을 사다 걸고 내기를 한다. 주로 강상들 논에 물을 대어 썰매장을 만들어 놀았다. 물을 많이 대 수심이 깊을 경우는 숨구멍이 있어 그곳을 지나가면 얼음이 깨져 물에 빠져 옷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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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거라 자거라 귀여운 아기야 꽃속에 잠드는 꽃나비 같이 고요히 잠 들고 꿈나라 가거라 우리아기 잘자라 잠잘 자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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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앞으로 청주와 조치원 간의 국도-일명 청주가로수길-가 개통되어 있어 자가용을 가진 사람은 교통이 편한 편이다. 청주-조치원 간 대중교통 편인 버스가 20분 간격으로 다니고 있다. 마을의 주 산업은 논농사이다. 논농사 중 메벼 농사를 주로 짓고, 밭작물은 콩과 깨, 고추 등으로 자급용이다. 벼의 출하는 2004년까지 주로 농협과 정부수매를 했다. 이외 다른 방법은 방앗간에 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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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마을은 농촌 마을이기 때문에 봄에서 가을까지 농사를 짓고, 겨울에는 경로당에 모여서 쉬며 지낸다. 농사는 벼농사를 주로 한다. 기계로 경작하기 때문에 일손이 많이 가지 않아 연로한 주민도 농사를 짓고 있으며, 밭농사는 자급할 정도만 짓는다. 강상마을은 여산송씨(礪山宋氏) 집성촌이다. 따라서 종중 일에 동네 주민 모두가 합심하여 참석한다. 1년에 6번 충렬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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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은 일찍 일어나 나무 아홉 짐 하고, 아홉 집에서 밥을 얻어먹어야 좋다고 해서 산에 가서 나무를 해다 놓고 밥을 얻어먹는 것을 아홉 번 했다고 한다. 해지기 전에 아홉 짐을 하려면 부지런히 해야 했다. 또한 이 날은 끼니 없이 밥을 먹는 날이고 동네 집집에서 밥을 다 얻어먹을 수 있는 날이다. 그리고 열 나흗날에는 ‘일 년 열두 달 액운이 밥에 다 떠나간다’고 해서 잡곡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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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의 최서단에 위치한 마을로 마을 전 지역이 낮은 구릉지이며 마을 뒤로 낮은 야산이 자리 잡고 있다. 강상마을 뒤로 먹뱅이산이 자리 잡고 있고, 마을 앞 국도 건너에 강상들이 펼쳐 있다. 마을 주민들은 강상들과 마을 서편의 경부고속도로 쪽, 옥산 쪽으로 펼쳐져 있는 학천들에서 벼를 경작하며 생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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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천곡(泉谷)할아버지의 출생지는 서울 황하방인데, 지금 그 위치는 정확하게 어딘지는 모르겠어. 내가 알고 있는 이유는 할아버지들에게 이야기를 듣고 천곡 선생의 부친이 서울에 살고 있다는 기록이 있어요. 할아버지가 사신 곳은 현재로는 전라도 정읍시 망재동 마을인데 거기가 천곡이야. 그래서 호가 천곡이구, 거기를 샘골이라 부르기도 해. 임진왜란 때 일본이 명나라를 치러갈 때 목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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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에 자리를 걷고 짚을 정갈하게 깔고 출산한다. 탯줄은 산파가 잘라 흰 무명실로 마무리한다. 잘린 탯줄 등은 마당에 구덩이를 파고 왕겨 속에 집어넣고 태운다. 탄 재는 인근 개울가에 가서 띄워 보낸다. ◦ 금줄 딸을 낳으면 솔가지와 숯을 꽂아 대문 앞에 치고, 아들을 낳으면 숯과, 고추를 꽂아 금줄을 친다. 기간은 개인적으로 차이가 나지만 대개 일주일 정도 쳤다. ◦ 삼밥 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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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는 예부터 깨끗하고 수준 높은 교육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청주를 교육의 도시로 일컫는 데는 그럴 만한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청주가 역사적인 교육도시라는 것은 무엇보다 먼저 청주백화점 뒤뜰에 우뚝 솟아 있는 국보 제41호 용두사지(龍頭寺址) 철당간을 주목할 때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거기에 새겨져 있는 명문이 교육도시 청주의 역사를 웅변으로 나타내 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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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곡동에 있는 행정동이자 법정동. 산이 불쑥 나온 골짜기라는 뜻인 ‘숙골’이 변형된 것이라는 설과 물이 많은 골짜기라는 뜻인 ‘수(水)골’이 변형된 것이라는 설이 있다. 본래 청주군(淸州郡) 남주내면(南州內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산북리(山北里)라 명명하고 사주면(四州面)에 편입시켰다. 1963년에는 수곡동(秀谷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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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관이나 호텔 등이 영업허가를 취득하여 손님에게 숙박서비스를 제공하고 비용을 받는 업종 시설. 한국 전통사회에서 숙박시설은 다양한 형태로 발전한 것이 특징이며 기능의 특성이 상이하다. 신라시대에는 역(驛)이라는 형태로 존재했으며, 고려시대에는 역, 객사(客舍)라는 형태로 자리하였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역, 원(院), 여각(旅閣), 객주(客主)라고 지칭되면서 발전되어 왔다. 초기 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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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2년(성종 3) 성종(成宗)이 왕위에 오를 때 공을 세운 순성좌리공신(純誠佐理功臣) 숭정대부(崇政大夫) 행호조판서(行戶曹判書) 김길통(金吉通)에게 주어진 4등 좌리공신 녹권(錄券). 좌리공신(佐理功臣)은 성종의 즉위에 공훈(功勳)이 있는 사람에게 주어진 것으로 1·2·3·4 등급이 있다. 1등 공신은 순성명량경제홍화좌리공신(純誠明亮經濟弘化佐理功臣)이라 하였고, 2등 공신은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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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군들이 김매기를 모두 마친 후에 택일하여 음식을 푸짐하게 장만하고 나누어 먹으며 노는 민속놀이. 백중은 음력 7월 보름날을 뜻하며, 음력 1월 보름을 상원(上元), 10월 보름을 하원(下元)이라 불렀던데서 중원(中元)이라 부르기도 한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湖西俗 以十五日 老少出市 飮食爲樂 又爲角力之戱(호서속 이십오일 로소출시 음식위락 우위각력지희:충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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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주성동에 있었던 고개. ‘수름’과 ‘재’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다. 수름의 뜻을 밝히면 되지만 그 어원이 분명하지 않아 이 고개의 유래를 밝히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수름’에 대한 몇 가지의 어원설을 전하고자 한다. 첫째는 술(酒)과 관련하여 이해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음식과 술을 팔고 숙소까지 제공하던 주막이 있었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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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있는 들. ‘숨밖에’는 ‘숨’과 ‘밖에’로 분석된다. 전국적으로 ‘숨’은 ‘숨말’, ‘숨머리’, ‘숨바우’, ‘숨박골’, ‘숨방죽’, ‘숨실’ 등에서 발견되는데, 몇 가지로 다르게 설명할 수 있다. 첫째는 ‘숲[수(藪)]’과의 관련인데, 이는 미파화와 비음화의 결과이다. 예컨대 ‘숲말’이 미파화에 의해 ‘숩말’로, ‘숩말’이 비음화에 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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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에 위치하고 있는 전주이씨 종중 소유의 지석(자기판) 이제열 지석은 1987년 충남 청양군 낙지리에 있는 산소를 사초(莎草)하다가 묘 앞에서 사각형의 이색적인 옹기를 발견하여 파내면서 수습되었다. 다른 명칭으로 숭정 갑오년명 이제열 지석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이제열 지석의 주인공인 이제열(李齊說)[1635~1712]은 조선 숙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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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물과 현상을 비유적으로 표현하여 그것을 알아맞히게 하는 구비문학의 한 형태. 수수께끼를 이르는 말로는 ‘슈지’, ‘슈지겻기’ 등이 있었다. 이 고어들은 수수께끼가 ‘슈지’와 ‘겻기’의 합성어로 이루어져 있으며, ‘슈지’와 ‘겻기’가 그 음이 변하여 고착된 것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여기서 ‘수수’는 숨은 것이며 ‘께끼’는 겨루기를 의미한 것으로 수수께끼란 ‘숨은 것을 찾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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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물과 현상을 비유적으로 표현하여 그것을 알아맞히게 하는 구비문학의 한 형태. 수수께끼를 이르는 말로는 ‘슈지’, ‘슈지겻기’ 등이 있었다. 이 고어들은 수수께끼가 ‘슈지’와 ‘겻기’의 합성어로 이루어져 있으며, ‘슈지’와 ‘겻기’가 그 음이 변하여 고착된 것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여기서 ‘수수’는 숨은 것이며 ‘께끼’는 겨루기를 의미한 것으로 수수께끼란 ‘숨은 것을 찾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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얕은 물로 덮여 있거나 인근 또는 그 위에 지하수면이 있는 수중생태계와 육상생태계 사이의 점이지대. 습지는 다음 세 가지 가운데 최소한 한 가지 이상의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 첫째, 최소한 일시적이라도 습지 생활에 특별하게 적응한 식물인 수생식물이 현저해야 하고 둘째, 구성물질은 배수가 불량한 습지 토양이어여 하며 셋째, 구성물질이 토양이 아닌 경우 일년 중 식물의 생장기에는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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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의 상당산성에서 발원하여 금천동을 지나 무심천(無心川)으로 흘러드는 하천. 쇠내개울, 금천(金川), 명암천(明岩川)이라고도 한다. 쇠내개울은 ‘금이 나는 내’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지역은 지금도 금과 관련된 지명전설이 전해내려 오고 있다. 일제강점기까지도 쇠내개울의 상류에 금광이 있었으며, 내에서 사금을 채취하였고 한다. 또한, 장마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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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에 있는 마을. 일명 ‘시동(枾洞)’이라고도 하며 마을에 감나무가 많아서 붙어진 이름이다. 이곳은 토양과 기후조건이 감나무가 자라기에 알맞다고 한다. ‘시동’은 ‘감나무골’을 한자화한 지명이다. 지역에 따라서 ‘감나무골’을 ‘시목동(枾木洞)’으로 한자화하기도 하고, ‘감나무골’은 지역에 따라서 ‘감나뭇골’ 또는 줄여서 ‘감남골’. ‘강낭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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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에 있는 마을. 일명 ‘시동(枾洞)’이라고도 하며 마을에 감나무가 많아서 붙어진 이름이다. 이곳은 토양과 기후조건이 감나무가 자라기에 알맞다고 한다. ‘시동’은 ‘감나무골’을 한자화한 지명이다. 지역에 따라서 ‘감나무골’을 ‘시목동(枾木洞)’으로 한자화하기도 하고, ‘감나무골’은 지역에 따라서 ‘감나뭇골’ 또는 줄여서 ‘감남골’. ‘강낭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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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부, 비영리 조직으로 각 영역에서 공익적 목표를 지향하는 자발적 결사체. 2005년 현재 충청북도에 등록된 사회단체는 400개가 넘는다. 이중에서 관련법에 의해 운영비를 지원받는 단체들도 비영리민간단체 지원법에 의한 국비 및 도비 지원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다른 분류에 따르면 관변단체로 분류된다. 이런 유형의 사회단체로는 새마을 운동 중앙회, 바르게살기운동 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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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각자가 민주주의를 기초로 권리의식을 자각하고 계층의 차이를 초월한 연대를 추구하며 공통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운동. 청주지역의 시민운동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반독재 민주화운동이 기반이 되어 성장하였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도시산업선교회의 노동인권 보호와 도시 서민의 생존권 보호운동을 꾸준히 전개하였고, 청주 YMCA에서도 시민사업위원회를 조직하여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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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에서 1946년 10월에 있었던 3.1운동 이래 최대 규모의 농민·시민봉기. 미군정에서는 미곡소매의 최고가격을 정해서 미곡유통을 통제했고, 도시의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하여 농촌지역의 쌀을 강제로 수집하는 방침을 각 시·군에 시달했다. 이른바 '미곡수집령(미곡공출)'을 발표한 것이다. 그러나 미군정 당국에서 의도했던 목표를 달성할 수 없었다. 즉, 도시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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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송(宋)나라 위경지(魏慶之)가 편찬한 시문집(詩文集)으로 1439년(세종 21)에 청주에서 판목으로 간행한 책. 이 책은 중국 송(宋)나라 때의 위경지가 편찬한 시문집으로 조선 초기에 집현전(集賢殿) 경연(經筵)에 1본(本)이 소장되어 있었다. 그 후 청주에서 1439년에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충청감사 윤형(尹炯)의 발문 “正統己未朝臣尹炯等…刊於淸州…正統四年 忠淸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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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을 사고 파는 거래장소. 재화, 용역이 거래되는 장소로 여기에서 가격이 결정된다. 광의의 개념으로는 금융시장, 석유시장 등 세계 무역의 모든 것을 포괄한다. 여기서는 시장 개념의 원론적 서술이 아니라 청주지역의 재래시장에 초점을 맞추었다. 시장의 1차적 기능은 공급자와 수요자가 만나 거래를 하는 행위에 있다. 즉 팔사람(상인)과 살사람(고객)의 흥정으로 상행위가 이루어진다.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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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주동에 있는 남주동시장의 옛 이름. ‘새장터’는 남주내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다. 같은 구역 안에 있던 ‘장터’에서 이전하여 새로운 ‘장터’가 조성되자 그 지역을 ‘새장터’라고 한 것이다. ‘새장터’가 생기자 이전하기 전의 ‘장터’는 자연스럽게 ‘구장터’가 되었다. 구장터는 석교정에 있었으나 1906년 대홍수로 없어졌다. ‘구장터’ 대신에 남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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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살이의 고통을 덜기 위해 자위적으로 부르는 노래. 시집살이의 경험을 토대로 거기서 우러나는 서러운 사연을 노래한 부녀자들의 노래이다. 사설은 여인들의 비극적인 삶이나 신세를 한탄하는 내용이 중심을 이룬다. 전승의 분포는 거의 전국적이며, 노동이나 유희의 현장에서 특별한 제목 없이 불리어진다. 예컨대 「시집살이노래」가운데 가장 많은 각 편이 채록된 「중이 된 며느리」는 「밭매기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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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살이의 고통을 덜기 위해 자위적으로 부르는 노래. 시집살이의 경험을 토대로 거기서 우러나는 서러운 사연을 노래한 부녀자들의 노래이다. 사설은 여인들의 비극적인 삶이나 신세를 한탄하는 내용이 중심을 이룬다. 전승의 분포는 거의 전국적이며, 노동이나 유희의 현장에서 특별한 제목 없이 불리어진다. 예컨대 「시집살이노래」가운데 가장 많은 각 편이 채록된 「중이 된 며느리」는 「밭매기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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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고사 지낼 때 불을 밝히는 풍속.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정월 보름날은 등잔불을 켜 놓고 밤을 새우는데, 마치 섣달 그믐날 밤 수세(守歲)하는 예와 같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때 밤새 켜 놓는 등잔불을 청주에서는 ‘식구불’이라고 한다. 접시에 들기름을 붓고 그 위에 실이나 목화솜, 창호지로 심지를 만들어 불을 밝히고, 이것을 고사시루 위에 올려서 밤새 불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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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식물. 청주시 전역을 청원군이 둘러싸고 있는 가운데 동쪽에는 상당산(上黨山)[419m]과 선도산이 자리하고 서쪽으로는 부모산이 솟아있으며, 시가지와 연접한 동쪽으로는 청주의 상징인 우암산(牛岩山)[338m]이 자리하고 있고, 시가지 중심으로는 도시하천인 무심천(無心川)이 흐르고 있다. 청주시의 식물상은 우암산(牛岩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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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의 산출, 식품의 조리, 가공 및 유통, 상차림의 규범, 의례와 음식의 관행, 용구와 식기, 식품의 금기 및 풍습, 기호 등 음식물 섭취 행위와 관련된 생명 유지의 모든 활동. 청주는 우암산(牛岩山)[338m], 상당산, 무심천(無心川) 등 아름다운 자연의 조화로 과거에는 새뱅이, 올갱이, 미꾸라지, 쏘가리 등 민물 생선과 각종 산채와 버섯 등을 이용하여 올갱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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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속(申洬)[1600~1661]이 1660년(현종 원년)에 청주에서 목판으로 간행한 기근대책용(饑饉對策用) 농업서적. 이 책의 권말 간기에 의하면 “시경자구월하한(時庚子九月下澣)”이라 되어 있어 신속이 1660년(현종 원년)에 서원현감(西原縣監)으로 있을 때, 흉년을 만나 『구황보유(救荒補遺)』를 지어 1554년(명종 9)에 간행하여 배포된 『구황촬요(救荒撮要)』의 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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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에 어린이들의 학습을 위하여 중국 고전에서 선현들의 금언(金言)·명구(名句)를 편집하여 만든 것으로, 1454년 청주목(淸州牧)에서 새롭게(新刊) 목판인쇄의 형태로 대자(大字)로 간행된 책. 한문(漢文) 초학자가 『천자문(千字文)』을 배운 다음 『동몽선습(童蒙先習)』과 함께 기초과정의 교재로 사용된 책으로, ‘명심’이란 명륜(明倫)·명도(明道)와 같이 마음을 밝게 한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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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충청북도 청주에 설립된 신간회 지회. 1927년 2월 좌우합작운동의 일환으로 신간회가 조직되고 전국적으로 지회를 조직하자 이에 호응하여 조직되었으며, 청주를 중심으로 학생운동·농민운동·노동운동·여성운동 등에 관심을 기울이다가 1931년 해소되었다. 1927년 2월 15일 신간회가 창립된 이래 지회 설립에 나섰는데, 신간회 청주지회는 이해 12월 13일 본부로부터 설립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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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 등 해외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1912년 4월 중국 항주의약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동제사(同濟社)와 대동보국단(大同輔國團)에 가입하여 활동하였으며, 1923년 4월 중국군 중교(中校)로 항주군의학교 외과 주임에 임명된 이후 중국군으로 복무하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을 지원하였다. 1939년에는 중경(重慶)으로 이전한 임시의정원 제31회 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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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출판문화인. 1927년 7월 20일 충청북도 청원군 문의면 산덕리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신재한(辛在漢)이며, 어머니는 김대련(金大湅)으로 2남 3년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929년 아버지가 죽자 1932년 청주로 이주하여, 초등학교와 중등과정을 마치고 신흥대학교(현 경희대학교)에 수영특기생으로 입학 1948년 런던올림픽 대표선수로 선발되었으나 늑막염의 발병으로 포기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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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원군 미원장터의 만세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30일 이용실(李容實)·이수란(李水蘭) 등과 함께 미원장터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날 오후 1시경부터 1천여 명의 시위군중이 장터에 모여 독립만세를 외치자, 일본 헌병은 태극기를 빼앗으며 시위군중의 선두에 서서 지휘하던 그를 주재소로 연행하여 감금시켰다. 이에 격분한 시위군중이 주재소로 몰려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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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원군 미원장터의 만세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30일 이용실(李容實)·이수란(李水蘭) 등과 함께 미원장터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날 오후 1시경부터 1천여 명의 시위군중이 장터에 모여 독립만세를 외치자, 일본 헌병은 태극기를 빼앗으며 시위군중의 선두에 서서 지휘하던 그를 주재소로 연행하여 감금시켰다. 이에 격분한 시위군중이 주재소로 몰려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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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 국립청주박물관에 있는 조선시대 고문서. 원래 충청북도 괴산군의 영산신씨 충익공파 종중에서 소장하고 있던 고문서로 현재 국립청주박물관이 관리하고 있다. 2005년 2월 8일부터 2005년 3월 31일까지 국립청주박물관에서 열린 ‘기증 및 기탁문화재 특별전’에 전시되기도 한 이 문서들은 공신교서와 신경행 및 그의 후손에 관한 문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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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주중동에 위치한 지체장애 어린이 재활을 위한 사회복지시설. 1991년 1월 15일 4명의 원생을 중심으로 개원하였다.1995년 5월 청주로 이전하였으며 2002년 은혜의집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1993년 6월 서울시민봉사상을 수상했으며 1997년 12월 31일 문화체육부 장관상(청소년 선도상)을 받았다.1999년 6월 1일 청주시 모범시민상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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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에 있는 골짜기. ‘신굴’로 발음하기도 한다. ‘신골’의 ‘신’은 ‘신(新)’을 의미하고 있고 ‘골’은 골짜기를 의미하고 있어 한자화하면 ‘곡(谷)’이 된다. ‘신골’의 유래는 잘 알 수 없다. 신골이라는 지명은 전국에 대단히 많다. 이에 대해 ‘신씨가 많이 사는 마을’, ‘배나무 꽃이 만발한 마을’, ‘깊은 골짜기’ 등의 유래설이 전하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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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에 있는 골짜기. ‘신굴’로 발음하기도 한다. ‘신골’의 ‘신’은 ‘신(新)’을 의미하고 있고 ‘골’은 골짜기를 의미하고 있어 한자화하면 ‘곡(谷)’이 된다. ‘신골’의 유래는 잘 알 수 없다. 신골이라는 지명은 전국에 대단히 많다. 이에 대해 ‘신씨가 많이 사는 마을’, ‘배나무 꽃이 만발한 마을’, ‘깊은 골짜기’ 등의 유래설이 전하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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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주중동 서북부에서 외평동 사이에 있는 도로. 공항로 옆에 신설된 도로라는 의미이다. 남쪽은 공항로에서 시작하여 북쪽은 청원군 오창면으로 이어진다. 노폭은 35m로 대로 1류에 해당하는 편도 3차선 아스팔트 포장도로이며, 길이는 3,300m이다. 동쪽으로는 공항로가 남북 방향으로 나란히 달리다가, 주중동 서북부에서 합류한다. 원래는 공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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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중함(仲咸)이다. 신명구(申命求)의 아들로, 생부는 신적구이다. 청주에서 거주하였고, 1834년(헌종 9)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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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에 있는 골짜기. ‘신굴’로 발음하기도 한다. ‘신골’의 ‘신’은 ‘신(新)’을 의미하고 있고 ‘골’은 골짜기를 의미하고 있어 한자화하면 ‘곡(谷)’이 된다. ‘신골’의 유래는 잘 알 수 없다. 신골이라는 지명은 전국에 대단히 많다. 이에 대해 ‘신씨가 많이 사는 마을’, ‘배나무 꽃이 만발한 마을’, ‘깊은 골짜기’ 등의 유래설이 전하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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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에 크게 기여한 독립운동가. 구한말 계몽운동을 펼치던 중 1905년 을사오조약을 강제 당하자, 이에 분개하여 자결을 기도, 그 여파로 오른쪽 눈을 실명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상해로 망명, 중국의 신해혁명에 참가하여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였다. 1912년 이후 동제사, 신한혁명당 등 각종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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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이원(而遠), 호는 퇴수재(退修齋), 강암(彊菴)이다. 아버지는 신세제(申世齊)이고, 할아버지는 신혁(申氵奕)이다. 형으로 신건(申湕)이 있었으며, 부인은 여산이씨(礪山李氏)이다. 1717년(숙종 43)에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 사간원, 승문원의 관직을 두루 거쳐 가선대부 한성부좌윤(漢城府左尹)과 정헌대부 좌부승지(左副承旨)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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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중경(仲卿), 호는 어성(漁城)이다. 한산 출신으로 아버지는 이조참판에 증직된 신영원(申永源)이며, 어머니는 이윤수(李允秀)의 딸이다. 1540년(중종 35) 생원시를 거쳐 1552년(명종 7)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 정자·성균관 전적 등을 거쳐 1563년 정언·지평을 역임한 뒤 1565년 장령이 되었다. 1569년(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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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신촌동과 신대동을 연결하는 다리. 길이는 약 60m이고 교량의 폭은 2차선으로 되었다. 이 다리는 가경천과 석남천이 합류하여 흐르는 석남천이 미호천(美湖川)과 만나는 곳에 설치되었다. 주와 청원군 옥산면을 연결하는 미호천(美湖川) 위에 건설된 다리가 옥산교이고 청주에서 옥산가는 길목에서 옥산교를 건너기 직전 미호천(美湖川) 제방을 따라 우회전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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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신대동에 있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의 교회. 예전에 청주군 신대리에 사는 오천보, 문성심, 오삼근 등이 서울에 자주 왕래하며 행상을 하던 중, 어느 날 경기도 죽산 둔병리에서 열린 부흥사경회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 이들은 나루터 근처의 동네 주막에 흰 광목에 십자가와 태극기를 그려 놓고 예배를 했는데, 이것이 신대교회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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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서2동에 속하는 법정동. 새로 터를 잡아 마을을 이루었기 때문에 ‘새터’, 신대(新垈)라고 하였다. 본래 청주군(淸州郡) 서강내일상면(西江內一上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중신리(中新里)와 하신리(下新里)를 병합하여 신대리(新垈里)라 명명하고 강서면(江西面)에 편입되었다. 1983년 2월 15일 청원군 강서면 일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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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출판문화인. 1927년 7월 20일 충청북도 청원군 문의면 산덕리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신재한(辛在漢)이며, 어머니는 김대련(金大湅)으로 2남 3년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929년 아버지가 죽자 1932년 청주로 이주하여, 초등학교와 중등과정을 마치고 신흥대학교(현 경희대학교)에 수영특기생으로 입학 1948년 런던올림픽 대표선수로 선발되었으나 늑막염의 발병으로 포기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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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정오(靜吾), 호는 현포(玄圃)이다. 대사헌 신식(申湜)의 아들이다. 1603년(선조 36) 생원시에 합격하고, 1610년(광해군 2)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였다. 전적(典籍), 정언(正言), 사예(司藝) 등을 거쳐 강원도관찰사로 나아갔다. 1639년(인조 17)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 빈객(賓客)으로 심양(瀋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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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양오(養吾)이다. 문충공 신숙주(申淑舟)의 후손인 영성군파(靈城君派)의 인물로 청원군 낭성면 지역에 세거했던 인물이다. 아버지는 신용(申涌)이고, 할아버지는 신중엄(申仲淹)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신서(申漵)이다. 부인으로는 광주안씨(廣州安氏)와 풍산심씨(豊山沈氏)가 있었다. 1606년(선조 39)에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였으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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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오다이사(東大寺)의 쇼소인(正倉院)에 보관되어 있는 2매의 통일신라시대의 문서 「신라장적(新羅帳籍)」, 「신라민정문서(新羅民政文書)」. 1933년 일본 도오다이사(東大寺)의 쇼소인(正倉院)에 소장된 13매의 경질(經帙) 가운데 파손된 『화엄경론(華嚴經論)』의 포갑(包匣)을 수리할 때 그 내부의 포심(布心)에 덧붙인 휴지 가운데서 발견되었다. 이 문서는 촬영 후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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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모충동에 위치하고 있는 사립중학교. “올바르게 슬기롭게 성실하게”를 교훈으로 삼아, “올바른 가치관의 확립을 통한 자주적인 사람,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능력의 신장을 통한 창의적인 사람, 충효 정신을 지닌 민주적이고 도덕적인 사람, 강인한 의지와 건전한 심신단련을 통해 건강한 사람, 기초 교육 충실로 정보사회에 부응하는 실력 있는 사람”을 육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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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기 중엽 신라의 청주 진출과 운영. 신라는 청주 및 금강 중상류 지역을 장악하여 삼국통일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신라는 5세기 후반부터 소백산맥을 넘어 한강·금강 유역으로의 진출을 꾀하였다. 6세기 중엽 백제와 연합하여 한강 유역을 획득하여 고구려 세력을 몰아낸 신라는 다시 백제를 압박하여 금강 중상류역까지 진출하게 된다. 이때 청주지역도 신라의 영역에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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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오다이사(東大寺)의 쇼소인(正倉院)에 보관되어 있는 2매의 통일신라시대의 문서 「신라장적(新羅帳籍)」, 「신라민정문서(新羅民政文書)」. 1933년 일본 도오다이사(東大寺)의 쇼소인(正倉院)에 소장된 13매의 경질(經帙) 가운데 파손된 『화엄경론(華嚴經論)』의 포갑(包匣)을 수리할 때 그 내부의 포심(布心)에 덧붙인 휴지 가운데서 발견되었다. 이 문서는 촬영 후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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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오다이사(東大寺)의 쇼소인(正倉院)에 보관되어 있는 2매의 통일신라시대의 문서 「신라장적(新羅帳籍)」, 「신라민정문서(新羅民政文書)」. 1933년 일본 도오다이사(東大寺)의 쇼소인(正倉院)에 소장된 13매의 경질(經帙) 가운데 파손된 『화엄경론(華嚴經論)』의 포갑(包匣)을 수리할 때 그 내부의 포심(布心)에 덧붙인 휴지 가운데서 발견되었다. 이 문서는 촬영 후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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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 지역에서 결성한 타악공연 예술단. 전통의 보존과 발전을 위해 청소년 풍물 강습과 각종 연주활동, 창작활동을 목표로 한다. 1990년 3월 청주에서 창단되었다. 대통령 취임식 행사, 춘천시민을 위한 국악대공연, 서부전선 군부대 위문공연, 심장병 어린이 돕기 자선 공연, 남북통일농구대회 축하공연, 안중근의사 서거 90주년 추모공연, 청주사랑 어울마당 등 각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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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에 있었던 일제강점기 때의 사립학교. 1909년 8월 31일에 설립 인가되어 오창식(吳彰植)이 청주 북부지역 지천(紙川)에 사립학교를 설립하였다. 농촌을 계몽하고 젊은이들에게 교육 계몽 및 생활에 필요한 기초 지식을 제공하기 위함이다. 갑오경장(1894)을 거친 후에 사회 일반에는 민족적 자각이 증대하고 근대 의식이 성장해 감에 따라 경제력을 가진 지방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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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이나 정보를 정기적으로 인쇄·발행하여 독자에게 전달하는 언론매체. 신문사라는 조직이 뉴스나 정보를 취재·편집하여 신문지면에 인쇄하여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대중매체의 하나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민간인들이 신문사를 설립하여 뉴스를 판매하여 이윤을 얻는 한편 여론을 진작시켜 사회의 의제를 설정하는 등 공익적인 역할을 한다. 근대신문은 정기성, 인쇄성, 공개성, 시의성 등의 요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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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사직동에 있는 사설 미술관. 지역현대미술의 발전과 전시기회를 확대하고, 청년작가의 발굴을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다양한 미술 전시로 청주시민의 문화향수의 기회를 증대하고, 미술관 교육을 보다 체계적으로 추진하여 대중의 구체적인 예술문화의 지적수준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2000년 9월 신갤러리가 개관하였고, 2003년 10월 신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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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인물. 청주사람으로 궁예(弓裔)가 나라를 다스릴 때 같은 고을 사람인 아지태(阿志泰)에 의해 입전(笠全), 관서(寬舒) 등과 함께 참소를 당하였다. 이 일을 해당관리가 심리하였으나, 수년이 지나도록 판결이 나지 않았다. 이때 고려 태조(太祖) 왕건(王建)이 사건의 흑백을 분간하여 판결을 내려주어 일이 잘 해결되었다. 이 일로 인해 군문의 장교, 종실, 훈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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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권회복운동과 국내외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1907년 4월에 신민회(新民會)가 창립되자 이에 가입하여 서울과 충청북도에서 활동하였다. 1909년에는 청년학우회(靑年學友會)에, 1909년에는 대동청년당(大東靑年黨)에 가입하여 활동을 하는 등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였다. 1911년 만주로 망명하여 봉천성 일대에서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는데 노력하였고, 귀국 후 3·1운동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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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본명은 신복영(申復永)으로 청주 출신이다. 청주지역 고령신씨(高靈申氏) 입향조인 신식(申湜)의 5대손이자, 경종대에 남인으로 활약하던 신경제(申慶濟)의 손자이다. 청주지역 고령신씨는 연산군 대에 낭성과 가덕에 낙향하여 상당산(上黨山)[419m] 동쪽에 살았으므로 산동신씨라고 지칭되어 왔으며, 낭성에서 대과급제 24명, 진사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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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신봉동 일대에 조성된 근린공원. 명심공원은 낮은 구릉인 명심산(明心山)[113.4m] 일대에 조성되어 있다. 동쪽에는 무심천(無心川)이 남에서 북으로 흐르고 있으며, 과거에는 명심산 기슭까지 범람원이 형성되었다. 범람원은 제방공사를 거쳐 농지로 개간되었으나, 1980년대부터 택지로 전용되어 시가지가 들어섰다. 충청북도 청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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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운천동·신봉동에 속하는 법정동.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신담(新潭)과 상봉(上鳳)서 한 글자씩을 따서 신봉리라 하였다. 본래 청주군 서주내면(西州內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담(新潭), 상봉(上鳳), 하봉(下鳳), 운천(雲泉)리의 일부 및 북내주면(北內州面)의 사천리(斜川里)를 병합하여 신봉리(新峰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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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신봉동에 있는 구석기시대 한데유적·매장유적·생활유적. 신봉동 구석기 유적은 봉명·신봉 지구 토지구획 정리사업 추진 계획에 따라 조사한 5개 구역 중 Ⅰ지구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신봉동 산 10번지 일원에 위치하는 해발 88~102m지역이다. 조사면적은 약 1500㎡로 구획은 자북방향에 맞추어 4×4m의 발굴 구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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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신봉동(新鳳洞)에 있는 문화유씨(文化柳氏)의 선조를 모신 재실(齋室). 명심산(明心山)[113.4m]으로 일컬어지는 문화유씨 집단 묘역 남쪽의 건축자재사 안쪽에 위치한다. 본래는 지금의 농수산물시장 자리에 있었는데, 농수산물시장이 들어서자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건물은 앞쪽 2칸 반, 옆면 1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목조기와집 형식의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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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시대의 생활유적. 청주 신봉·봉명동 지구 토지구획정리사업 추진계획에 따라 1993년 11월~12월에 걸쳐 지표조사를 실시하였고, 지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1998년 3월~5월에 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시굴조사를 통하여 확인된 유적의 성격·시대·분포범위 등에 따라 전체 조사대상지역을 Ⅰ~Ⅴ 지구로 구분하였다. 이중 Ⅳ지구는 원삼국기의 널무덤유고가 조밀하게 분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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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봉명동에 있는 천주교 청주교구 소속의 성당. 흥덕구 신봉동 지역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섬에 따라 성당신설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1992년 봉명동성당에서 분가했다. 1994년 봉명동 642-1번지[1순환로 543]로 이사, 첫 미사를 가졌다. 1995년 6월 신봉동 600여평의 땅을 신축부지로 매입키로 계약했다. 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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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신봉동에서 출토된 고려시대의 매장유적. 청주시 중심부에서 북서쪽으로 약간 치우친 해발 60~115m쯤의 비교적 완만한 구릉지역 일대를(1,001,840㎡) 청주 봉명지구·신봉지구 토지구획 정리사업 지구로 지정하여 토지구획 정리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의 일환으로 이 지역 일대의 조사가 이루어졌다. 이 토지구획 정리사업은 청주시에서 주관하여 시행하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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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신봉동에 있는 산. 이 산의 ‘명심(明心)’은 밝은 마음의 산으로 붙어진 이름이고 ‘신봉산’은 신봉동에 있는 산으로 붙어진 이름으로 추정된다. 또한, 어당 뒤쪽에 있어 뒷산으로 부르기도 한다. 산의 높은 봉우리를 ‘상봉’, 낮은 봉우리를 ‘하봉’이라고 하여 구별한다. 명심산의 ‘옥녀봉’은 옥녀가 머리를 산발한 하고 있는 봉우리, 옥녀가 거문고를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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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이고, 자는 택경(澤卿)이며, 호는 와룡(臥龍)이다. 청원군 낭성면 출신으로 아버지는 파주목사를 지낸 신필청(申必淸)이고, 할아버지는 신집(申潗)이며, 형은 신담(申霮), 동생은 신방(辛方)과 신탁이 있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성호 이익(李瀷)이 신부의 처남이다. 부인은 기계유씨(杞溪兪氏)와 안동김씨(安東金氏)가 있었다. 청원군 낭성면 일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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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서경(恕卿), 호는 송재(松齋)이다. 1486년(성종 17) 주부(主簿) 한창유(韓昌愈)의 아들로 청주에서 출생하였다. 1510년(중종 5) 생원이 되고, 1513년 별시문과(別時文科)에 장원하여 전적(典籍)을 거쳐 정언(正言)·이조정랑(吏曹正郞)·응교(應敎) 등을 역임하였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도량이 크며 독서를 즐겼다.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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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으로 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1907년 서울의 협성신학교(協成神學校)를 졸업하고 감리교 목사가 되어 서울 수표교교회에서 재임하던 1919년 2월 중순경, 오화영(吳華英)으로부터 3·1운동에 관한 계획을 듣고 동참하기로 결심하였다. 이해 2월 28일, 그는 손병희(孫秉熙)[1861~1922]의 집에서 열린 민족대표의 최종 회합에 참여하였고,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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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기원전 1만년 전부터 1천년까지의 시기로 석기시대의 마지막단계. 신석기시대에는 식량을 채집하고 뗀석기[打製石器]를 사용하던 구석기 단계에서 더 나아가 간석기[磨製石器]의 사용으로 농경·수렵·벌채용의 식량을 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 자연의 의존에서 벗어나 자연을 이용 개발할 수 있는 단계로까지 발전하였다. 이는 정착생활을 가능하게 하여 결과적으로 문명형성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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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서2동에 속하는 법정동. 부모산성(父母山城)이 바라보이는 곳에 새로 형성된 마을이므로 신성(新城)이라고 하였다. 본래 청주군(淸州郡) 서강내일상면(西江內一上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신성리(新城里)라 명명하고 강서면(江西面)에 편입되었다. 1983년 2월 15일 청원군 강서면 일원이 청주시에 편입될 때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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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신성동에 있는 청동기시대부터 삼국시대의 유물이 출토된 유적지. 흥덕구 신성동의 상신성마을 동쪽에 동-서로 뻗어 있는 능선의 정상부에 위치한다. 유적 서쪽으로는 석남천이 흐르고 있고, 북서쪽으로는 미호천(美湖川) 유역의 충적평야인 신대들이 넓게 펼쳐져 있다. 현재 밭으로 경작되고 있다. 능선의 정상부 일대에서 민무늬 토기편·돌도끼·토기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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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미숙(美淑), 호는 송암(松巖)이다. 아버지는 신혁(申氵奕)이고, 할아버지는 신득홍(申得洪)이며, 부인은 한산이씨(韓山李氏)이다. 동생으로 신만제(申萬濟)와 신창제(申昌濟)가 있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께서 병석에 누워 있자 간절한 마음으로 인삼을 구하여 드렸다고 한다. 효행이 지극하여 1677년(숙종 3)에 지평(持平)으로 증직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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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농학자.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호중(浩仲), 호는 이지당(二知堂)이다. 승지 신경락(申景洛)의 아들이며, 족부 영원군(靈原君) 신경식(申景植)에게 입양되었다. 1624년(인조 2) 진사로서 명경시(明經試)에 응시하여 합격하지 못하였으나 시험관의 천거로 별제(別提)에 제수되고, 이어 충훈부도사(忠勳府都事)·호조낭관·옥천현감 등을 역임하였고, 1644년 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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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숙정(叔正), 호는 졸재(拙齋)·임곡(臨谷)이다. 신식은 영의정 신숙주(申叔舟)의 5대손이며, 현령(縣令) 신중엄(申仲淹)의 아들이다. 이황(李滉)과 성운(成運)의 문인으로, 1576년(선조 9)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 지평(持平)·헌납(獻納) 등을 거쳐 1590년 집의(執義)로 있을 때 정여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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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효자. 본관은 아주(鵝州)이며, 신심(申鐔)은 효자 신지익(申之益)의 아들이다. 병자호란에 갑작스럽게 적병을 만나 자신의 몸으로 부모를 막고 슬피 울며 살려줄 것을 청하니 적병들도 차마 어찌하지 못하였다. 또한 어머니의 병에 단지(斷指)하여 구완하였다. 산외면(山外面) 송동리(松洞里) 삼효각(三孝閣)에 아버지 신지익, 사촌 신협(申鋏)과 함께 숙종 때 효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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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사흠(士欽), 아버지는 신일권(申一權)이다. 청원군 낭성면 지역에 세거했던 고령신씨(高靈申氏) 영성군파의 인물이다. 1787년(정조 11)에 문과정시(文科庭試)에 급제하였으며, 관직은 사헌부 장령(掌令)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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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때 청주의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던 독립운동가. 1919년 당시 서울의 중앙학교(中央學校) 재학생으로 3월 1일 「독립선언서」를 입수하여 귀향하였다. 그는 3월 9일 청주농업학교(淸州農業學校) 기숙사로 가서 농업학교 학생들에게 서울의 독립만세운동 상황을 알렸다. 그리고 청주에서도 독립만세시위를 벌이자고 제의하여 찬성을 얻어 「독립선언문」과 경고문 등을 제작하고 인쇄하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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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인물, 임란의사(壬亂義士).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자는 문길(文吉)이다. 고려 개국공신이었던 장절공(壯節公) 신숭겸(申崇謙)의 후손이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군이 충청북도 청원군 오창지역으로 진격할 때 왜적에게 사로 잡혀 일본으로 끌려갔다. 왜국으로 끌려간 신예남(申禮男)은 그들의 온갖 협박과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조선인으로서의 절개를 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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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열녀. 민사건(閔思謇)의 딸이며, 공조참판에 증직된 신예남(申禮男)의 아내이다. 임진왜란 때 남편 신예남을 따라 진보(眞寶)로부터 청주 오창(梧倉)으로 옮겨 살았다. 왜적이 들이닥쳐 신예남이 잡히자 적에게 뛰어들어 구하고자 하였다. 심하게 다친 채 뜻을 이루지 못하고 두 아들을 데리고 고향 진보로 옮겨가 남편의 의관으로 초혼장(招魂葬)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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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계달(季達), 계수(季收)이며, 호는 하은(霞隱)이다. 문충공 신숙주(申淑舟)의 후손인 영성군파(靈城君派)의 인물로 신숙주의 5세손이다. 아버지는 신중엄(申仲淹), 할아버지는 신서(申漵), 증조할아버지는 신광윤(申光潤)이다. 형으로 신저(申渚)와 신식(申湜)이 있고, 동생으로는 신은(申氵隱)이 있다. 11세에 형 신식과 함께 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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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신용금고법에 의해 설립된 서민, 영세상공인 및 중소기업을 위한 지역금융기관. 상호신용금고는 1972년 8·3 대통령 긴급명령에 따라 사금융을 양성화하기 위해 제정된 상호신용금고법에 의해 설립된 금융기관이다. 상호신용금고의 주된 업무는 예금업무와 대출업무이며, 주로 가계의 여유자금을 예금의 형태로 조달하여 해당 지역의 서민, 영세상공인 및 중소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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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수동 우암산(牛岩山)[338m]에 있는 사찰. 대한불교수도원은 불상 대좌와 파손된 불상이 여러 점 확인되는 등 옛 사찰의 흔적이 뚜렷한 자리에 1952년 용화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된 절이다. 청주시 흥덕구 사직동에 같은 이름의 사찰이 있어 신 용화사(新 龍華寺)라는 이름으로 불려오다 1974년 창건주인 벽산스님이 대한불교수도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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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미재(美哉)이다. 아버지는 삼강록에 효행이 실리고 지역의 사림들이 생사당(生祠堂)을 짓기까지 한 신용제(申龍濟)이며, 할아버지는 좌승지로 추증된 신완(申浣)이다. 부인은 문화유씨(文化柳氏)이다. 1717년(숙종 43)에 문과에 급제하여 승정원의 주서(注書)를 지냈으며, 다음해인 1718년 28세에 죽었다. 충청북도 청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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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덕중(德中)이고, 문충공 신숙주의 후손인 영성군파(靈城君派)의 인물이다. 아버지는 신낙권(申樂權), 할아버지는 신백연(申伯淵), 증조할아버지는 신철(申澈)이다. 부인은 전주이씨(全州李氏)이다. 1825년(순조 25) 식년문과(式年文科)에 합격하였으며, 관직은 사간원 정언(正言)과 남포현감(藍浦縣監)을 지냈다. 충청북도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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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에 있는 근린공원. 본래 이곳이 신율봉과 신율마을이 있었던 곳으로 서씨(徐氏)들이 마을을 처음 조성할 때 밤나무를 많이 심었다고 하여 마을이름에 신자와 율자를 넣었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이름을 따서 공원의 이름이 되었다. 1983년 6월 10일 조성계획을 수립하여 1988년 12월 31일 조성하여 개원하였다. 청주가로수길과 사직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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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광복군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 1943년 10월 일제에 의해 강제로 징집 당하여 중국 남경지구(南京地區)의 일본군 부대에 배속되었다. 그러나 그는 중국 중경(重慶)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1944년 5월 한국광복군에 입대할 것을 결심하고 일본군을 탈출한 후 우선 중국군 유격대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이어 1945년 4월 중국 중경에 도착하여 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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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서1동에 속하는 법정동. ‘신전동(薪田洞)’은 ‘섶밭’을 한자로 바꾼 이름이다. ‘섶밭’은 ‘섶’과 ‘밭’으로 분석된다. ‘섶’은 ‘섶나무’의 준말로, ‘잎나무, 물거리, 풋나무 등의 총칭’이다. 따라서 ‘섶밭’은 '섶나무가 무성한 밭'으로 해석된다. 과거 이 곳은 섶밭이었다. 이 섶밭에 마을이 생기자 밭 이름으로 마을 이름을 삼은 것이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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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신전동의 섶밭마을에 있는 버드나무. 수령 200년으로 추정되는 이 버드나무는 과거에 주민들이 마을의 평화와 풍년농사를 기원하기 위하여 매년 정월 대보름날 동제를 열었던 민속신앙의 대상이었다. 한 동안 맥이 끊겼던 동제는 마을에 우환을 방비하자는 주민회의를 거쳐 2003년부터 다시 지내고 있다. 마을의 기금으로 동제를 준비하며, 동제를 지낸 뒤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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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신전동에 있는 근대의 주택. 이 가옥은 안채의 종도리 장혀에 “歲在丙寅二月十八日巳時入柱上樑于申坐寅向之基戊戌生成造運(세재병인이월십팔일사시입주상량우신좌인향지기무술생성조운)”이라는 상량문이 적혀 있어 1926년에 지어졌음을 알 수 있다. 지어진 연대는 오래되지 않으나 조선시대의 전통적인 가옥이 일제강점기를 통해 변화되고 있는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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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희범(希范)으로 문충공 신숙주(申淑舟)의 후손인 영성군파(靈城君派)의 인물로 신숙주의 4세손이다. 아버지는 신서(申漵)이고, 할아버지는 갑자사화(甲子士禍) 이후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청원군 낭성면 지역으로 은거한 신광윤(申光潤)이다. 부인은 문화유씨(文化柳氏)와 전주이씨(全州李氏) 부인이 있었다. 아들로 신저(申渚), 신식(申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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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아주(鵝州)이고, 효자 신심(申鐔)의 아버지이고, 효자 신협(申鋏)의 숙부이다. 일찍이 부친을 여의고 홀어머니를 지극한 효성으로 모셨다. 어머니가 병환이 나자 목욕재계하고 북두칠성에 빌었으며, 손가락을 잘라 그 피로 어머니 병간호를 하였다. 상을 당하여서는 애통함이 지나쳐 곡을 하다 혼절하기도 하였으며, 최질을 풀지 않고 집상(執喪)하였다. 이 일이 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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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효자.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호는 종산(種山)이다. 문과에 급제한 이듬해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나갔다가 청요직을 거쳐 감사를 역임한 신용(申涌)의 손자이고, 아버지는 신득치(申得治)이다. 1684년(숙종 10) 정시(庭試) 갑과(甲科)에 장원한 신필청(申必淸)이 그의 아들이다. 부인은 권서(權緖)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천성적으로 효행을 타고 났었다. 9살에 그의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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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언론인·독립운동가·문인.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호는 일편단생(一片丹生), 단생(丹生) 혹은 단재(丹齋)이다. 1880년 12월 8일 충청남도 대덕군(大德郡) 산내면(지금의 대전광역시 중구 어남동)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필명은 금협산인(錦頰山人), 무애생(無涯生), 열혈생(熱血生), 한놈, 검심(劍心), 적심(赤心), 연시몽인(燕市夢人) 등이다. 조선시대 신숙주(申淑舟)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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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본명은 신복영(申復永)으로 청주 출신이다. 청주지역 고령신씨(高靈申氏) 입향조인 신식(申湜)의 5대손이자, 경종대에 남인으로 활약하던 신경제(申慶濟)의 손자이다. 청주지역 고령신씨는 연산군 대에 낭성과 가덕에 낙향하여 상당산(上黨山)[419m] 동쪽에 살았으므로 산동신씨라고 지칭되어 왔으며, 낭성에서 대과급제 24명, 진사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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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8년(영조 4)에 소론(少論) 과격파들과 남인(南人)이 영조(英祖)와 노론을 제거하고 밀풍군(密豊君) 탄(坦)을 왕으로 추대하기 위해 일으킨 난. 1728년에 일어난 무신란은 노론(老論)이 지지하는 영조의 즉위로 위협을 느낀 소론의 과격파들과 남인이 영조와 노론을 제거하고 소현세자(昭顯世子)의 증손(曾孫)인 밀풍군 탄(坦)을 왕으로 추대하기 위해 일으킨 난이다.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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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서1동에 속하는 법정동. 새로 생긴 마을이라서 새말(사벌) 또는 신촌(新村)이라 하였다. 본래 청주군(淸州郡) 서강내이하면(西江內二下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서강내일하면(西江內一下面)의 신촌리를 병합하여 신촌리라 명명하고 강내면(江內面)에 편입되었다. 1987년 1월 1일 신촌리도 청주시에 편입되어 강서1동 관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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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관. 조선 철종 대 충청도 병마절도사영의 병마우후를 지낸 무관이다. 신태희(申泰羲)의 선정을 기려 1859년(철종 10)에 세운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가 현재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 9번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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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송(宋)나라 때에 웅절(熊節)이 편찬하고, 웅강대(熊剛大)가 주해한 책으로 청주목에서 1488년(성종 19)에 목판으로 간행. 권말의 간기에 의하면, “홍치원년무신계춘일 승훈랑행청주교수김효정근발(弘治元年戊申季春日 承訓郞行淸州敎授金孝貞謹跋)”이라 하여 1488년 3월에 청주목에서 간행된 목판본이다. 그런데 이 책은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1444년(세종 26) 8월 「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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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충청북도 청원군 미원장터의 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30일 미원장터에서 전개된 군내 최대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그는 이날 오후 1시경 1천여 명의 시위 군중의 선두에 서서 태극기를 높이 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를 주도하였다. 이 때 일본 헌병이 출동하여 주도자를 강제로 주재소로 연행해가자 군중들과 주재소로 쇄도하여 투석전을 벌이는 등 격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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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정동에 있는 서원. 호서지방에서 보은의 상현서원(象賢書院)에 이어 두 번째로 건립된 서원으로, 1570년(선조 3)에 청주목 서주내면 유정리 안말마을(현 청주시 상당구 용정동 120번지[이정골로 115-8])에 건립되었다. 신항서원의 창건당시의 이름은 서원이 위치한 마을이름을 따라 유정서원(有定書院)이라 하였다가 1660년 사액을 받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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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정동에 위치한, 신항서원의 건립경위와 제향인물에 대해 기술한 비. 청주지역의 사림들이 주로 호서(湖西)지방의 훌륭한 유학자들의 신위를 신항서원에 모셔놓고 제향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상당구 용정동의 안말마을 뒷산자락의 평지에 서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방형 받침돌[대좌] 위에 높이 190㎝, 폭74㎝, 두께 40㎝의 오석(烏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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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독립을 청원한 파리장서사건(巴里長書事件)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자는 여종(汝宗), 호는 우석(友石)이다. 참봉 신현기(申鉉基)의 장남으로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서촌동 179번지[동촌로116번길 23]에서 출생하였다. 대사성을 지낸 지산(志山) 김복한(金福漢) 문하에서 다년간 수학하여 시문에 뛰어났다. 1919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서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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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성기(聖紀), 호는 월헌(月軒)이다. 아버지는 옥과현감을 지낸 신득홍(申得洪)이고, 할아버지는 홍문관 부제학을 지낸 신용(申涌)이다. 부인은 광산노씨(光山盧氏)이다. 1684년(숙종 10)에 문과에 급제하여 승정원의 주서(注書)를 지냈다. 손자인 신근(申氵近)이 좌부승지(左副承旨)에 올랐기에 통정대부 승문원 부정자(副正字)로 증직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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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아주(鵝州)이며, 청원군에서 효자로 이름 높았던 신지익(申之益)의 조카이고, 효자 신심(申鐔)과 종형제이다. 어머니가 병환이 들자 지극정성으로 간호하였고, 차도가 없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그 피로 어머니를 소생시켜 주위로부터 효성이 크게 알려 졌다. 그의 효성은 집안 내력이었다. 숙부 신지익과 종형제 신심 등 한 집안에서 3명의 효자가 나와 나라에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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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금을 모금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한 독립운동가. 1920년 음력 8월경 신흥구(申興求)·이종만(李鍾萬) 등과 함께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한 지원활동을 펴기로 결의하고 유영창(柳永昌)·한병호(韓秉浩) 등을 동지로 포섭하여 비밀결사 평양결사단 청주지부를 조직하였다. 이후 그는 동지들과 함께 모의권총을 소지하고 충청북도 일대를 중심으로 군자금 모금활동을 펴던 중 일경에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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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고령(高靈)이다. 충청북도 청원군 낭성면 일대에 세거하는 고령신씨(高靈申氏) 영성군파(靈城君派)의 인물로 신숙주(申淑舟)의 5세손이다. 아버지는 신중황(申仲潢)이고, 할아버지는 신서(申漵)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신광윤(申光潤)이다. 형으로 신운(申澐), 동생으로 신징(申澂)이 있다. 무과에 급제하여 만호(萬戶)를 지냈다. 병자호란 때에 관찰사 정규(鄭規)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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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35세 때에 청주북감리교회에서 미국인에게 세례를 받고 기독교 신자가 되었고, 1913년 서울의 협성신학교(協成神學校)를 졸업하고 감리교 목사로서 공주에서 포교활동을 시작하였다. 1917년 평양남산현교회(平壤南山峴敎會) 목사로 옮겨 재임하던 1919년 2월, 동지의 규합을 위해 평양에 온 이승훈(李昇薰)으로부터 3·1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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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 등 해외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1912년 4월 중국 항주의약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동제사(同濟社)와 대동보국단(大同輔國團)에 가입하여 활동하였으며, 1923년 4월 중국군 중교(中校)로 항주군의학교 외과 주임에 임명된 이후 중국군으로 복무하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을 지원하였다. 1939년에는 중경(重慶)으로 이전한 임시의정원 제31회 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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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충청북도 청원군 미원장터의 만세시위를 주도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원 활동을 벌인 독립운동가. 1919년 3·1독립운동 당시 신형식(申亨植)·신학구(申學求) 등 문중 사람들과 같이 3월 30일 청원군 미원장터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그 후 일경의 추적을 피해 잠적하였다가 1920년 9월에 동지인 이종만(李鍾萬)의 집에서 신형식 등과 비밀리에 회합하여 상해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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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향정동에 있는 향토기업. 농촌을 살리는 고품질, 고성능의 건조기를 생산, 공급함으로써 농민 모두가 꿈꾸는 풍요로운 복지농촌 건설에 기여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창업주 김호수 회장은 연초생산조합에 근무하면서 연초재배농가들의 재래식 건조실의 불편을 해소하고 좋은 등급을 받도록 할 방안으로 잎담배 건조 벌크건조기를 개발, 1974년 청주시 영동 104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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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에 6.25 전쟁 중 세워진 신흥초급대학(현 경희대학교 전신)의 분교. 전시에 피난민 및 지방 청년들에게 고등교육의 기회를 주고 교양 있는 직업인을 양성하려는 목적으로 세워졌다. 1946년 설립된 배영대학관과 1947년 설립된 신흥전문학교가 합병되어 1949년 5월에 서울에서 신흥초급대학(2년제)을 개교하였다. 그 이듬해에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곧 끝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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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내덕동에 있었던 향토기업. 한국동란 후 극심한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잉여농산물 가운데 주종을 이루었던 소맥을 제분, 공급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한국동란 종전 무렵 정부는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전국 각 지역에 정부지정 밀 제분 공장을 지정하였는데, 신흥정미소가 지정돼 1일 1백톤의 소맥을 처리하게 된다. 종전 후 미국이 ‘농업교역진흥 및 원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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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에서 활동하는 사진동아리. 청주의 중견사진작가로 구성되어 있으며, 창조적인 사진작업을 위하여 창립된 단체이다. 매년 1회 이상 회원전을 개최하여 13회째 회원사진전을 가졌으며, 특히 1994년 ‘신세대(New Generation)’를 주제로 사진전 및 설문조사를 통하여 신세대와 기성세대간의 문제점을 잘 표현하였다 평을 받았다. 1994년,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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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육과 고등교육의 중간 단계에 위치하는 학제상의 과정 또는 학교 형태. 중등교육에 속하는 학교에는 학령의 차이에 따라 일반적으로 구분하는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있다. 이 가운데 고등학교는 전문 직업으로 진출하느냐, 고등교육으로 진출을 준비하느냐에 따라 일반계 고등학교와 실업계 고등학교로 나눌 수 있고, 또 적령기에 미취학한 자와 성인들의 교육 기회를 확대하거나 학생들의 특별한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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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천(無心川)은 청주시 청원구에서 발원해 남서쪽으로 흐르다가 남일면 상대리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청주시내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미호천(美湖川)에 합류하고 금강을 거쳐 서해에 이르는, 전체 길이 34.5㎞, 유역면적 177.71㎢의 지방하천이다. 동쪽으로는 한남금북정맥으로 연결되는 우암산(牛岩山)[338m], 상당산(上黨山)[419m], 것대산(484.0m), 선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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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이며, 자는 덕수(德粹)이다. 청송심씨 도총제공파(都摠制公派)의 인물로 아버지는 심경수(沈景洙)이고, 할아버지는 심공망(沈公望)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심지란(沈之蘭), 외할아버지는 김후창(金後敞)이다. 거주지는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 일대로 추정된다. 형으로 심조해(沈朝海), 심우해(沈遇海), 심유해(沈有海), 심일해(沈日海), 심연해(沈延海)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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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무관. 조선후기 철종 때 충청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무관이다. 심의풍(沈宜豊)은 순조 때 선전관(宣傳官)을 지냈으며, 1857년(철종 8)에는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에 제수되었고, 1862년(철종 13)에는 공충도(충청도) 병마절도사에 제수되었다. 1864년(고종 1) 금위영 기사 별장에 임명되어 중앙으로 이직하게 되자 병마절도사로 재직하면서 군인과 백성들을 잘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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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천(無心川)은 청주시 청원구에서 발원해 남서쪽으로 흐르다가 남일면 상대리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청주시내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미호천(美湖川)에 합류하고 금강을 거쳐 서해에 이르는, 전체 길이 34.5㎞, 유역면적 177.71㎢의 지방하천이다. 동쪽으로는 한남금북정맥으로 연결되는 우암산(牛岩山)[338m], 상당산(上黨山)[419m], 것대산(484.0m), 선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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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지북동과 평촌동의 사이에 있던 다리. 이 다리는 지북동과 평촌동의 경계에 있었던 다리로, 일제강점기 때 만든 다리인데, 지금은 그 자리에 큰 다리를 놓았다. 다리가 쌍을 이루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월운천을 통과하기 위하여 놓은 다리로 일방통행의 다리가 쌍으로 건설되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전국에 ‘쌍다리’라는 이름의 다리가 많다. 25번 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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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평촌동에 있는 다리. 한때 ‘쌍다리’라고 하던 다리였으나 ‘쌍다리’는 지북동과 평촌동의 경계에 있던 다리로 일제강점기 때 놓여진 다리인데, 지금은 그 자리에 큰 다리를 새로 놓고 ‘평촌교’라고 한다. 다리가 쌍을 이루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월운천을 통과하기 위하여 만든 다리로 일방통행의 다리가 쌍으로 건설되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도로를 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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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청주 율봉역에 속한 역. 『청주읍지(淸州邑誌)』에 의하면 율봉역에 속한 역으로 청주에서 남쪽 16리에 있고, 역로는 청주율봉역-쌍수역-율치(栗峙)-문의 덕류(德留)역-형강(荊江)역, 주안(周岸)역-옥천 증약(增若)역으로 이어진다. 쌍수역에는 역리(驛吏) 40명, 역노(驛奴) 10명, 역비(驛婢) 7명이 있고, 상등마(上等馬) 4마리, 중등마(中等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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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우암동에 있는 환경운동단체. 쓰레기 문제를 공동사안으로 연대하고 각 회원 단체 간의 상호협력을 증진하며, 쓰레기 문제에 대한 국민환경의식 제고, 쓰레기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대안 마련 및 제시, 시민들의 생활실천운동 활성화, 환경친화적인 쓰레기 관리, 재활용체계의 구축, 쓰레기 문제의 해결을 위한 시민단체의 역량 강화와 지원을 목적으로 한다. 환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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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내덕동에 있는 영상문화발전을 위한 단체. ‘보는이 중심의 새로운 영상문화를 위하여’를 슬로건으로 청주의 영상문화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영화단체이다. 영화를 통해 세상이 보다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새롭고 다양한 영화보기를 시도하고 있다. 보는 이의 능동적 참여를 통해 헐리우드식의 상업영화보기가 거의 전부인 현재의 영상문화현실을 극복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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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유의 민속경기. 여러 문헌에는 각저(角抵), 각저(角觝), 각력(角力), 각지(角支), 각교(角校), 쟁교(爭交), 각저(殼抵), 상박(相撲) 등으로 불리어져 왔다. 여기에서 각(角)은 ‘서로 겨루다’를 의미하며, 저(抵)는 ‘달려든다’, 저(觝)는 ‘받다’의 뜻으로, 마치 황소들이 맞붙어 힘겨루기를 하듯 ‘서로 달려들어 힘겨루기를 한다’는 의미가 있다. 또한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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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에 있던 청주 지역의 유선방송국. 씨씨에스충북방송은 프로그램의 다양성, 채널의 전문화, 선명한 화질, 다양한 부가서비스를 통한 다양한 정보 제공, 지역간 문화격차 해소 등을 목적으로 2001년 설립되었다. 지상파방송을 중계하는 청주서부유선방송, 청주공시청, 청주유선, 대전시유선방송, 옥산유선방송이 등이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설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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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및 충청북도지역의 젊은 풍물꾼들이 모여 창단한 풍물전문단체. 백성이라는 의미의 고어 ‘씨알’과 세상이라는 뜻의 순우리말 ‘누리’를 합쳐 만든 ‘씨알누리’는 백성이 주인 되는 세상을 풍물로 실현해 나간다는 의지를 담아 1990년 1월 청주 및 충청북도지역의 젊은 풍물꾼들이 모여 창단하였다. 풍물을 통해 전통문화를 되살리고 복원하며, 우리의 전통음악을 현재의 감성에 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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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사직동에 있는 민영방송. 민영상업방송인 청주방송은 충북전역을 가시청권으로 충청북도민의 알 권리와 지적욕구를 충족시킬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90년 이전까지 우리나라의 방송은 KBS와 MBC 두 공영방송사에 의해 독점되어 왔다. 1980년대 중반 이후 급격한 사회변화와 더불어 새로운 방송채널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