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이다. 음서(蔭敍)로 부성위(富城尉)가 되었다. 1264년(원종 5) 과거에 합격하였으며, 그 뒤 해양부녹사(海陽府錄事)에 임명되고, 1275년(충렬왕 1) 대부경 좌사의대부(大府卿左司議大夫)에 임명되었다. 1278년 충렬왕(忠烈王)이 원나라에 갈 때 우부승지로서 수행하여 다루가치(達魯花赤)와 둔전군의 뒷받침이 번거로워 백성들의 고통이 심한 것과, 또...
-
조선 중기 청주지역의 의병장·충신. 본관은 순천(順天)이고, 자는 시응(時應)이며, 호는 매은당(梅隱堂)이다. 교리공(校理公) 박인년(朴引年)의 후손으로 흥덕구 강서동 출신이다. 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청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조헌(趙憲)[1544~1592], 영규대사(靈圭大師)[?~1592]와 함께 청주성 탈환에 공을 세운 민양공(愍襄公) 박춘무(朴春茂)[1544~1611]이고,...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비하동에 있는 박동명(朴東命)[1576~1636]의 정려각. 박동명은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인 박춘무(朴春茂)[1544~1611]의 아들로 아버지를 따라 청주성 탈환에 공을 세웠고, 병자호란 때는 인조를 남한산성으로 호종하던 중 경기도 광주(廣州)에서 적을 만나 싸우다 순절하였다. 이러한 박동명의 충절을 기려 1709년(숙종 35)에 세운...
-
조선 후기의 청주지역의 효자. 본관은 초계(草溪)이고, 자는 양백(養伯)이며, 호는 사익재(四益齋)이다. 정국공신(靖國功臣) 변준(卞寯)의 현손으로 알려져 있다. 어려서부터 효행이 지극하였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집안이 매우 가난하였으나 홀어머니를 섬김에 지극한 정성을 다하였다. 어머니의 병환에 여러 차례에 걸쳐 목욕재계하고 정성껏 하늘에 빌었더니 어머니의 병이 쾌차하여 고을사람...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에 있었던 충청병마절도영(忠淸兵馬節度營)의 건물. 조선시대 충청병마절도영에 세워졌던 건물이다. 병영의 군무를 수행하는데 있어 병영소속의 군관들이, ‘백성들에게 세 가지를 베풀어주라’는 뜻으로 건물의 명칭을 삼석당(三錫堂)이라 한 것으로 보인다. 영조(英祖)년간에 간행된 『여지도서(輿地圖書)』 공해(公廨), ‘삼석당, 십이간(十二...
-
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미숙(美淑), 호는 송암(松巖)이다. 아버지는 신혁(申氵奕)이고, 할아버지는 신득홍(申得洪)이며, 부인은 한산이씨(韓山李氏)이다. 동생으로 신만제(申萬濟)와 신창제(申昌濟)가 있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께서 병석에 누워 있자 간절한 마음으로 인삼을 구하여 드렸다고 한다. 효행이 지극하여 1677년(숙종 3)에 지평(持平)으로 증직되...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모충동에 위치한, 연최적(延最績)의 충효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정려문. 연최적은 사헌부감찰로 재직 중 사직하였다가 다시 기용되었으나,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으로 파직되었다. 1693년에 인현왕후(仁顯王后) 폐위의 부당성과 화를 당한 서인(西人)들의 용서를 구하는 여섯 가지 항목의 상소를 올렸다가 일곱 번의 심한 고문을 받아 옥사...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에 위치한 고려시대 사찰 용두사의 터. 청주시내의 중심지에 자리하고 있는 용두사지(龍頭寺址)는 국보 제41호인 철당간이 남아 있는 관계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용두사의 창건과 폐사에 대한 문헌기록이 없어 자세한 연혁은 알 수 없다. 단지 1천년 이상을 제자리에 서있는 철당간의 당간기가 있어 절 이름뿐만 아니라 고려 초기의 상황을 어느 정도...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에 있었던 충청병마절도영(忠淸兵馬節度營)의 건물. 조선 중기 무렵 충청병마절도영의 중영(中營)에 세워졌던 건물로 목사(牧使) 최상정(崔尙鼎)이 개축하였다. 병영의 군무를 수행하는데 있어, 병영소속의 군관들이 청렴결백하게 업무를 집행해야한다는 뜻을 담아 건물의 명칭을 읍청당(挹淸堂)이라 한 것으로 보인다. 윤동형(尹東衡)[1674...
-
조선시대의 효부.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선비 이지동(李之董)의 부인이자, 효행으로 복호된 김정삼(金鼎三)의 손녀이다. 효부 안동김씨는 남편이 일찍 죽자 함께 죽을 것을 맹세하였다. 그러나 두 눈이 먼 시어머니가 병으로 누워 있어 차마 남편을 따라 죽지 못하고 6년동안 간호하였다. 안동김씨는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시어머니와 나란히 누워 머리의 이가 자기 머리로 옮겨오게 하고, 약...
-
조선 중기의 열녀. 본관은 충주(忠州)이며, 아버지는 장령(掌令)을 지낸 지전(池筌)이고, 남편은 통정대부 군자감정(軍資監正)에 추증된 충의위(忠義衛) 정검(鄭儉)이다. 부인은 하늘로부터 타고난 효성스러운 성품을 지녔으며, 하동정씨(河東鄭氏) 정검에게 시집을 가서는 지극한 정성으로 시부모님을 섬겼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왜적을 피해 딸과 함께 마을 뒤 응봉산(鷹峯山)으로 피신하...
-
조선 전기 선조대의 열녀. 열녀 이씨는 정지신(鄭之信)의 부인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적을 만나자 자결하여 정려가 내려졌다.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 『호서읍지(湖西邑誌)』,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 이씨의 열행이 기록되어 있다. 남편 정지신도 이름난 효자로 청주목 남이면 노천동리에 효자 정려를 건립했다. 현재 정려는 모두 남아있지 않다....
-
조선 후기의 열녀. 본관은 문화(文化)이며, 충경공(忠景) 유량(柳亮)의 후손인 진사 유식(柳湜)의 딸이며, 승지(承旨)를 지낸 조태명(趙台命)의 아들인 조종혁(趙宗爀)의 후처이다. 한양조씨(漢陽趙氏) 충정공파 족보에 의하면 조태명은 조종환, 조종혁, 조종섭의 세 아들을 두었는데, 큰아들 조종환은 조태승의 양자로 들어갔으며 부인은 광산김씨였다. 셋째인 조종섭은 무과에 급제하여 선략...
-
조선 후기의 열녀. 본관은 원주(原州)이며, 문정공(文定公) 이진(李珍)의 후손인 이재곤(李載坤)의 딸이다. 한양조씨(漢陽趙氏) 조진혁(趙鎭爀)의 아내로 남편 조진혁이 청원군 강내면에 살았다. 부인은 어려서부터 성품이 효성스러웠다. 어려서 아버지가 아플 때 아버지 대신 자기가 아프게 해달라고 하늘에 기도하여 아버지의 병환이 차도가 있었다 한다. 시집 간 다음 해에 잠시 친정에 왔는...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충주(忠州)이며, 자는 수오(受吾), 호는 뇌봉(雷峯)이다. 부원군 지용기(池湧奇)의 8세손으로 청원군 남일면 은행리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성균관 생원 지경청(池景淸)이고, 할아버지는 증호조참의 지란(池蘭), 증조할아버지는 지영수(池永洙), 외할아버지는 송수(宋璲)이다. 부인은 윤직방(尹直方)의 딸 파평윤씨(坡平尹氏)이며, 재취한 부인은 성산이씨 이구...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충주(忠州)이며, 자(字)는 경첨(景瞻)이다. 아버지는 지만유(池萬游), 할아버지는 지광일(池光日), 증조할아버지는 지성귀(池聖龜), 외할아버지는 이양(李瀁)이다. 거주지는 청원군 가덕면 은행리로 추측된다. 1752년(영조 28) 문과 정시(庭試)에서 병과(丙科)의 21위로 급제하여 찰방(察訪)을 지냈다. 1763년 사헌부 지평(持平)에 제수되었으나 한미...
-
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자(字)는 자수(子受), 호는 관곡(寬谷)이다. 의당(義堂) 채귀하(蔡貴河)의 후손이다. 거주지는 청주 산내이상면 문박리(현, 청원군 낭성면 문박리)이다. 아버지는 채유온(蔡有溫)은 절충장군(折衝將軍)으로 용양위(龍衛) 행부사과(行副司果)를 지냈다. 할아버지는 채무민(蔡無閔), 증조할아버지는 채하(蔡河), 외할아버지는 유경훤(柳景萱),...
-
충청북도 청주의 여덟 군데의 명승지.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 청주의 형승(形勝)은 동남쪽에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고, 땅이 넓고, 인구가 조밀하며, 물이 공(功)자처럼 돌고, 현사(懸寺)가 강에 닿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서원팔경이라 하여 1경은 상당귀운(上黨歸雲: 상당산성에 둘러싸인 구름), 2경은 금천어화(金川漁火: 무심천(無心川) 고기 잡는 불빛...
-
근대 개항기의 열녀. 본관은 양성(陽城)이며, 아버지는 이한경(李漢敬)이고, 남편은 경주최씨 최성대(崔成大)이다. 족보상에 기재된 남편의 이름은 항렬을 사용하여 지은 최현식(崔顯植)이지만, 호적(戶籍)이나 실제 생활에서 사용되는 이름은 족보에 자(字)로 기재된 최성대이다. 후사(後嗣)가 없어 조카 최원관(崔元寬)으로 대를 잇게 하였다. 부인은 17세에 문의(文義) 오룡리(현, 충청...
-
조선 전기의 열녀. 본관은 함흥(咸興)이며, 임진왜란 때 순절한 천곡(泉谷) 송상현(宋象賢)[1551~1592]의 첩으로, 함흥한씨(咸興韓氏) 통천군수 한언성(韓彦聖)의 서녀(庶女)이다. 한금섬(韓金蟾)은 송상현의 첩으로 재주와 미모가 뛰어났는데, 13세가 되던 1591년(선조 24)에 송상현이 동래부사(東萊府使)로 부임되자 그를 따라 동래에 갔다. 1592년에 임진왜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