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1127
한자 南山書院
영어공식명칭 Namsansa shrine
이칭/별칭 현포향현사,남산사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의자로 611-7[장하리 682]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장인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770년연표보기 - 남산서원 창건
훼철|철거 시기/일시 1866년 - 남산서원 훼철
이전 시기/일시 1954년 - 남산서원 이전 복원
개축|증축 시기/일시 1970년 - 남산서원 보수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87년 8월 3일 - 흥학당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25호 지정
개축|증축 시기/일시 2004년 - 남산서원 기단 및 석축 보수
개축|증축 시기/일시 2015년 - 남산서원 흥학당 기반 보수 및 노후 기와 및 목부재 교체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11월 19일 - 흥학당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변경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4년 5월 17일 - 흥학당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변경 지정
현 소재지 남산서원 -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의자로 611-7[장하리 682]지도보기
성격 서원
양식 겹처마 맞배지붕
정면 칸수 3칸[사당]|3칸[묘문]
측면 칸수 3칸[사당]|1칸[묘문]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장하리에 있는 풍양 조씨의 조선 후기 서원.

[개설]

남산서원(南山書院)풍양 조씨 난재(蘭齋) 조태징(趙泰徵)[1650~1717], 백인당(百忍堂) 조명규(趙明奎)[1655~1716]와 기적재(嗜炙齋) 조주진(趙疇鎭)[1726~1786] 3인을 모시고 있다. 조태징은 명재(明齋) 윤증(尹拯)[1629~1714] 문하에서 수학하고 과천현감과 승정원좌승지를 지냈다. 윤증이 당쟁에 휘말려 관직을 추탈당하자 원상 회복을 청원하는 상소문을 작성하여 숙종에게 올리려 하였으나 오히려 형벌을 받고 화병으로 사망하였다. 조명규는 효우와 경학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졌고 사후 사복시정으로 추증되었다. 조주진은 학행이 뛰어났으며 『사례회요(四禮會要)』 4권을 편저하였다.

[위치]

남산서원은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의자로 611-7[장하리 682]에 있다. 백마강이 휘어져서 흐르는 장하리하황리의 경계에 있다.

[변천]

남산서원은 1770년(영조 46) 건립되었고 1866년(고종 3)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이후 임천 남쪽 현포에 사당을 짓고 제향하며 ‘현포향현사(玄浦鄕賢祠)’ 또는 ‘남산사(南山祠)’라 불렀다. 1954년 현재 위치로 옮겨 복원하였다. 1970년 보수를 하고 2004년 기단과 석축 부분을 크게 보수하였다. 2015년 흥학당의 기반을 보수하고 노후 기와 및 목부재를 교체하였다.

[형태]

남산서원은 사당인 남산사, 흥학당, 묘문, 사주문과 유허비 등으로 조성되어 있다. 남산사는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로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앞쪽에 학문을 연마하는 흥학당이 있어 전학후묘식 배치를 이루고 있다. 흥학당풍양 조씨 문중에서 학문 강론 목적으로 1770년(영조 46) 건립하였다. 흥학당은 가운데 6칸의 넓은 대청마루가 있고 양쪽에 3칸과 4칸의 방과 부엌이 연결된 살림집 형식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과 후학을 양성하기 위한 서당의 기능을 겸하고 있다. 흥학당은 일부 변형되었지만 창건 때의 원형을 대체로 유지하고 있다. 묘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솟을삼문이다. 흥학당은 1987년 8월 3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2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변경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바뀌었다.

[현황]

남산서원에서는 매년 음력 3월 15일 춘향제를 지내고 있다.

[의의와 평가]

남산서원풍양 조씨 문중의 학문 숭상과 지조를 알려 주는 사우로서 의미가 있다.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