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성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954
한자 秋聖培
영어공식명칭 Chu Sungbae
이칭/별칭 추남구(秋南求),추도쇠(秋道釗)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혜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1년 2월 11일연표보기 - 추성배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0일 - 추성배 강경읍 독립 만세 시위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14일 - 추성배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형 언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6월 7일 - 추성배 경성복심법원에서 항소 기각으로 형 확정
몰년 시기/일시 1927년 11월 15일연표보기 - 추성배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3년연표보기 - 추성배 대통령 표창 수훈
출생지 본적 - 충청남도 부여군 세도면 청포리 144 지도보기
활동지 강경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남성

[정의]

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추성배(秋聖培)[1901~1927]는 1901년 2월 11일 부여군 세도면 청포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전국에서 만세 시위가 격화되자 추성배는 3월 6일 창영학교에서 엄창섭(嚴昌燮)·김종갑(金鐘甲)·서삼종(徐三鍾)·고상준(高相俊)·추병갑(秋炳甲) 등과 함께 강경에서 만세 시위를 벌이기로 결의하였다. 세도면 청포리와 강경 포구는 금강을 끼고 마주하며 수로로 직결되어 있었다.

추성배 등은 3월 10일 오후 3시 옥녀봉에 모인 군중에게 전날 미리 만들어 둔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대한 독립 만세를 선창하며 강경 읍내로 시위 행렬을 이끌었다. 시위대는 강경 장터에 모인 군중과 합세하여 만세 시위를 이어 가다가 일제 경찰에 의하여 강제 해산되었고, 추성배는 시위를 주도한 이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추성배는 4월 1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월형을 선고받았고, 6월 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항소 기각으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추성배는 1927년 11월 15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추성배의 공적을 기려 1993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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