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526
한자 松鶴里 遺蹟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남면 송학리 425-12|255-2|254-2
시대 선사/청동기
집필자 이화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4년 - 송학리 유적 발굴 조사
현 소재지 송학리 유적 - 충청남도 부여군 남면 송학리 425-12지도보기|255-2지도보기|254-2지도보기
출토 유물 소장처 국립부여박물관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금성로 5[동남리 산16-1]지도보기
성격 생활 유적|무덤 유적
면적 13,403㎡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남면 송학리에 있던 청동기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복합 유적.

[개설]

송학리 유적은 홍산-구룡 간 도로 확장 및 포장 공사 사업으로 확인된 청동기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복합 유적이다. 2004년 고려대학교 고고환경연구소에 의하여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발굴 조사 결과 유적은 2개의 지점으로 나뉘는데, 송학리 ‘가’ 유적에서는 청동기 시대 수전, 백제 시대 대벽건물지 2기, 구상유구 1기, 우물 1기, 조선 시대 주거지 1기 등이 확인되었다. 송학리 ‘나’ 유적에서는 청동기 시대 주거지 5기 및 돌널무덤 1기, 구상유구 4기, 백제 시대 고분 18기, 통일 신라 시대 돌덧널무덤 1기 등이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은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위치]

송학리 유적충청남도 부여군 남면 송학리 425-12번지와 255-2번지, 254-2번지에서 확인된다. 송학리 유적은 북쪽에 있는 낮은 구릉에서 이어지는 능선의 말단부에 있다. 송학리 유적 남쪽으로는 금천이 흐르고 있어 풍부한 수원을 제공하고 있으며, 주변으로는 넓은 충적 대지와 함께 소구릉이 발달하여 있다.

[형태]

송학리 ‘가’ 유적에서 확인된 청동기 시대 수전의 전체 형태는 부채꼴이며, 모두 12개의 경작면이 확인되었다. 각각의 경작면은 소규모로 구획되어 경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관개 시설로는 수로와 취수구, 배수구 등이 확인되었다. 삼국 시대 백제 대벽건물지는 2기 확인되었다. 구릉의 동쪽과 북동쪽 사면부에 있는데, 장축 690㎝, 단축 480㎝ 이상의 규모이다. 삼국 시대 우물은 북동쪽 평탄면에 있는데, 자연석을 이용하여 바닥에서 위로 갈수록 점점 넓어지도록 만들어졌다. 조선 시대 주거지는 원형 평면 형태를 하고 있으며, 내부에서 연질토기편과 분청사기편이 출토되었다.

송학리 ‘나’ 유적에서 확인된 청동기 시대 주거지 5기는 모두 송국리형 주거지에 해당한다. 주거지 내부에서는 돌칼편, 가락바퀴, 대팻날도끼 등 석기류와 석기 제작 관련 도구들이 출토되었다. 청동기 시대 구상유구는 주거지를 중심으로 외곽을 둘러싸면서 5기가 확인되었는데, 주거지와 조합된 환호 기능으로 추정된다. 청동기 시대 돌널무덤 1기는 이중으로 형성된 구상유구 사이에 분포하고 있다. 백제 시대 고분은 18기가 확인되었는데, 구릉의 남서쪽 사면을 중심으로 분포한다. 자연석에 가까운 석재를 이용하여 조성된 소형 석곽 및 횡구식 석곽과 판상석의 석재를 이용하여 조성한 횡혈식 석실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부에서는 널못과 관고리 등이 출토되었다. 통일 신라 시대 돌덧널무덤 1기는 남쪽 경사면에 있는데, 소형 석곽에 해당한다. 내부에서는 통일 신라 시대 완 1점이 출토되었다.

[현황]

부여 송학리 유적은 발굴 조사 이후에 도로 공사가 완공됨으로써 멸실되었다.

[의의와 평가]

부여 송학리 유적은 청동기 시대 송국리 문화 단계에 해당하는 유적으로 소규모 취락 분포 양상을 보이며, 취락과 무덤, 생산 유적[수전]이 함께 확인되어 당시 문화상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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