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499
한자 恩山 李尙眞 墓- 碑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능묘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은산리 산1-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행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1614년 - 이상진 출생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1690년 - 이상진 사망
문화재 지정 일시 2001년 1월 3일연표보기 - 은산 이상진 묘 및 비 부여군 향토문화유산 제46호 지정
현 소재지 은산 이상진 묘 및 비 -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은산리 산1-1 지도보기
성격 능묘
관련 인물 이상진
문화재 지정 번호 부여군 향토문화유산 제46호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은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이상진의 묘와 묘비.

[개설]

은산 이상진 묘 및 비(恩山 李尙眞 墓 및 碑)는 조선 후기 문신 이상진[1614~1690]의 묘와 묘비이다. 이상진의 본관은 전의(全義)이며, 자는 천득(天得), 호는 만암(晩庵)이며, 1645년(인조 23)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지평, 사간원 정언, 이조참판, 경상도관찰사, 이조판서, 우의정 등을 역임하였다. 1689년 인현왕후 폐위가 거론되었을 때 상소를 올리지 말라는 금령을 어기고 폐위의 부당함을 주장하는 상소를 올려 극변(極邊)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되었다. 종성·북청·철원 등에 귀양을 다니다 신하들의 요청에 따라 방면되었다. 이후 부여에 돌아와 1690년 77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는데, 이때 복관(復官)되고 충정(忠貞)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충직한 기상을 잃지 않았다고 평가되었으며, 1695년 청백리에 뽑히기도 하였다. 은산 이상진 묘 및 비는 2001년 1월 3일 부여군 향토문화유산 제46호로 지정되었다.

[위치]

은산 이상진 묘 및 비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은산리 산1-1번지에 있다.

[형태]

이상진의 분묘는 간결한 봉분에 후대에 두른 것으로 추정되는 호석(護石)이 있다. 분묘의 전면에 묘비석을 두고 혼유석(魂遊石), 상석(床石), 향로석(香爐石)을 두었는데, 묘비석의 대좌와 혼유석, 상석을 하나의 돌로 조성한 것이 특징이다. 묘비의 머릿돌은 우진각형이며, 대좌의 상면 모서리 부분에는 용안을 새겼으며, 하단에는 거북이가 기어오르는 형상을 새겨 놓았다. 비신의 전면에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묘와 묘비석 앞쪽으로는 좌우에 망주석과 석양이 배치되어 있다.

[금석문]

이상진의 묘비석 비신 전면에는 24자가 3줄로 새겨져 있다. 비문은 ‘조선 우의정 만암 이충정공상진지묘 정경부인 연안김씨 부(朝鮮 右議政 晩庵 李忠貞公尙眞之墓 貞敬夫人 延安金氏 祔)’로 만암 이상진과 부인 연안 김씨의 묘임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은산 이상진 묘 및 비는 부여 지역의 인물로 당대인들에게 충직한 기상을 인정받은 이상진을 모신 곳이다. 특히 묘비석과 혼유석, 상석을 하나의 돌로 조성하였다는 점에서 독특한 양식을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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