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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787
한자 安應魯
영어공식명칭 An Eungro
이칭/별칭 몽여(夢與),취치(醉癡)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근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86년연표보기 - 안응로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15년 - 안응로 진사시 합격
활동 시기/일시 1616년 - 안응로 별시 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618년 - 안응로 인목대비 폐비와 서궁 유폐 주장
활동 시기/일시 1621년 - 안응로 추숭존숭도감 도청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23년 - 안응로 함경도 회령에 유배
몰년 시기/일시 1628년연표보기 - 안응로 사망
출생지 부여 - 충청남도 부여군
유배|이배지 회령 - 북한 함경북도 회령군
성격 문신
성별 남성
본관 광주(廣州)
대표 관직 사헌부지평

[정의]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문신.

[가계]

안응로(安應魯)[1586~1628]의 본관은 광주(廣州)이며, 자는 몽여(夢與), 호는 취치(醉癡)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안자흠(安子欽)이고, 할아버지는 안사영(安士英)이다. 아버지는 형조정랑을 지낸 안묵지(安默智)이다.

[활동 사항]

안응로는 1586년(선조 19) 부여에서 태어났다.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관직에 나아가기 전 이위경(李偉卿)이 주도한 영창대군(永昌大君)의 역모와 김제남(金悌男)의 처벌 등을 주장하는 상소에 연명하였다. 1615년(광해군 7)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616년 별시 문과에 급제하였다.

문과 급제 이후 예문관검열·예문관대교·세자시강원설서·사간원정언·사헌부헌납을 지냈고, 1621년 5월 안응로는 추숭존숭도감의 도청(都廳)에 임명되었으나 자격이 논란이 되어 교체되었다. 이후 이조좌랑과 이조정랑 등을 지냈다. 1618년에는 인목대비(仁穆大妃)의 폐비와 서궁 유폐를 주장하였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직후 이위경 등의 상소에 연명한 것이 문제가 되어 국문을 받고 함경도 회령(會寧)으로 유배되었다가 1628년 유배지에서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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