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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765
한자 沙乞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
집필자 강종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627년 7월 - 사걸 신라전에서 개선
성격 장수
성별

[정의]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장수.

[가계]

사걸(沙乞)[?~?]은 백제 대성팔족(大姓八族)의 하나이자 사비기에 왕비족(王妃族)으로 급부상한 유력한 귀족 가문인 사씨(沙氏) 출신이다. 사씨는 정치적 기반이 사비 지역이었는데, 538년(성왕 16) 사비 천도 과정에서 유력한 정치 세력으로 부상하였다. 그러나 무왕 재위 초기에 사씨 세력이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무왕 재위 초기까지는 사씨 세력이 중앙 정치에서 소외되었으며, 익산 경영으로 정치적 위상은 더욱 약화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627년(무왕 28) 사걸이 장군의 직을 띠고 등장하고, 640년 사탁적덕의 딸인 사씨왕후가 미륵사 서원을 조영하였다는 사실이 「미륵사지사리봉영기」를 통하여 확인된다. 따라서 사씨 세력은 무왕 재위 중반 이후에 다시 중앙 정치에 중용되었으며, 왕비족의 위상을 갖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활동 사항]

사걸은 627년 7월 무왕의 명을 받아 신라의 서쪽 변경 두 성을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신라의 남녀 300여 명을 포로로 잡아 개선하였다. 그리고 627년 신라전의 승리를 기회로 신라에 빼앗긴 땅을 되찾기 위하여 대대적으로 군사를 일으켰다. 그러나 신라가 당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여 신라에 대한 공세를 중지하였다. 무왕은 재위 중에 신라에 대한 공세를 위하여 중국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고구려를 견제하였으며, 신라와는 13차례에 걸쳐 전쟁을 벌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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