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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643
한자 孫聖漢
영어음역 Son Seonghan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법상동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한준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시 법상동 지도보기
성별
생년 1928년연표보기
몰년 1945년연표보기
본관 경주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손성한은 본관이 경주(慶州)로 1928년 경상북도 안동시 법상동에서 태어났다. 1945년 사망하였으며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안막동에 있다.

[활동사항]

손성한안동농림학교(安東農林學校) 임과(林科) 10회생으로 입학한 뒤 학생들이 주축이 된 모임에 참여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당시 안동농림학교 학생들은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으로 인하여 군사 교육과 근로 봉사를 강요당했을 뿐만 아니라, 강제로 학도병에 끌려가는 등 일제의 침략 전쟁에 동원되었다.

1943년 일본 도쿄에서 유학하던 이정선(李貞善)이 귀국하여 안동농림학교 9회생 동기들을 규합하였다. 같은 해 4월 이들은 면학과 민족의식 고취를 목적으로 명성회(明星會)를 조직하고 『여명(黎明)』이라는 교양 잡지를 발간하였다. 한편, 안동농림학교 학생인 권영동(權寧東)·고제하(高濟夏) 등은 전쟁에서 연합군이 승리를 거두고 있어 일제의 패전이 확실하다고 판단하고, 학도병으로 끌려가 죽기보다는 차라리 민족을 위해 싸우다 죽자고 결의하고 1944년 10월 말 조선회복연구단(朝鮮恢復硏究團)을 조직하였다.

같은 시기에 조선회복연구단과 명성회는 좀 더 효과적인 투쟁을 전개하기 위하여 서로 연합하고, 안동경찰서를 기습 공격하고 무기고에서 무기를 확보하여 항쟁을 벌인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일제에게 조직이 드러나 1945년 단원 64명이 체포되었다. 손성한은 조선회복연구단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6월 5일 고문 후유증으로 석방되었으나 3일 뒤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77년 건국포장을 받았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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